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여무명(如無明)

태화당 2026. 2. 17. 09:57

如無明 三衢人 參雲盖智 汾陽十智同眞話 凡說禪 便說十智同眞 叢林號爲如十智 後住道場 水菴圓極皆依之 故圓極甞贊之曰 生鐵面皮難湊泊 等閑擧步動乾坤 戲拈十智同眞話 不負黃龍嫡骨孫 後終思溪圓覺 其塔存焉

如無明; 法如 宋代黃龍派僧 衢州(今屬浙江)徐氏 住安吉州道場寺 參雲蓋守智得悟 [普燈錄六 五燈會元十八]

雲盖智; 守智(1025-1115) 宋代黃龍派僧 劒州(福建南平)陳氏 出家劍浦林重院 受具後遊方至豫章大寧 參法昌倚遇不契 復謁翠巖可眞 亦無省發 及見黃龍慧南於積翠 始盡餘疑 遂開法道吾 徙雲蓋 閉戶三十年 政和四年(1114) 出主開福 政和乙未三月七日 安坐而化 壽九十一 臘六十六 [續傳燈錄十五 五燈全書三十七 普燈錄四]

汾陽十智同眞; 聯燈會要十一汾陽善昭 示衆云 夫說法者 須具十智同眞 若不具十智同眞 邪正不辨 緇素不分 不能與人天爲眼目 決斷是非 如鳥飛空而折翼 如箭射的而斷弦 弦斷故射的不中 翼折故空不可飛 弦壯翼牢 空的俱徹 作麽生是十智同眞 與諸上座點出 一同一質 二同大事 三總同參 四同眞智 五同徧普 六同具足 七同得失 八同生殺 九同音吼 十同得入 汾陽; 善昭(947-1024) 宋代臨濟宗僧 太原(山西)人 俗姓兪 少有大智 於一切文字 常能自然通曉 十四歲時父母相繼去世 遂剃髮受具足戒 遊歷諸方 參訪七十一員碩德尊宿 至汝州首山參省念禪師而大悟 嗣其法 後遊衡湘襄沔之間 郡首力邀 請住諸名刹 師皆不允 及首山省念入寂 方應西河道俗之請 住汾州(今山西汾陽)太子院 師平生閱大藏經六遍 廣說宗要 以三句四句三訣十八唱等機用接化學人 名震一時 師足不越閫者三十年 道俗益重 不敢直呼其名 而以汾陽稱之 宋仁宗天聖二年示寂 壽七十八 諡號無德禪師 有汾陽無德禪師語錄 汾陽昭禪師語錄 汾陽昭禪師語要等傳世 [傳燈錄十三 廣燈錄十六 續燈錄一 聯燈會要十一 佛祖歷代通載十八]

圓極; 彦岑 宋代楊岐派僧 字圓極 臺城(江蘇南京)人 依雲居法如領旨 住太平州隱靜院 [五燈會元二十 普燈錄二十一]

生鐵; 未受冶工鍛鍊之鐵

嫡骨孫; 嫡親孫兒 指第三代直系傳人

 

여무명(如無明; 法如)은 삼구(三衢) 사람이며 운개지(雲盖智; 守智)를 참()했다. 분양십지동진화(汾陽十智同眞)를 깨쳤고 무릇() 설선(說禪)하면 바로(便) 십지동진(十智同眞)을 설한지라 총림에서 호()하기를 여십지(如十智)라 했다. 후에 도량(道場; 도량사)에 주()했는데 수암(水菴; 師一)과 원극(圓極; 彦岑)이 모두 그()에게 의지했다. 고로 원극(圓極)이 일찍이 그()를 찬()해 가로되 생철(生鐵)의 면피(面皮)라 주박(湊泊; 湊合)하기 어렵나니/ 등한(等閑)히 거보(擧步)하매 건곤을 진동(振動; )한다/ 희롱으로() 십지동진화(十智同眞話)를 염()했으며/ 황룡(黃龍; 慧南)의 적골손(嫡骨孫)임을 저버리지() 않는다. 후에 사계(思溪)의 원각(圓覺; 원각사)에서 마쳤고 그 탑이 존재한다.

如無明; 법여(法如)니 송대 황룡파승. 구주(지금 절강에 속함) 서씨. 안길주 도량사에 주()했고 운개수지(雲蓋守智)를 참해 깨침을 얻었음 [보등록6. 오등회원18].

雲盖智; 수지(守智; 1025-1115)니 송대 황룡파승. 검주(복건 남평) 진씨. 검포 임중원에서 출가했고 수구(受具)한 후에 유방하다가 예장 대녕에 이르러 법창의우를 참했으나 계합하지 못했음. 다시 취암가진을 참알했으나 또한 성발(省發; 領會)하지 못했고 황룡혜남(黃龍慧南)을 적취(積翠)에서 참견(參見; 찾아 뵙)함에 이르러 비로소 남은 의혹을 다했음. 드디어 도오에서 개법했고 운개(雲蓋)로 옮겨 30년 동안 폐호(閉戶)했음. 정화 4(1114) 나가서 개복을 주지(主持)했고 정화 을미 37일에 안좌(安坐)하여 화(; 죽음)했음. 나이는 91이며 납은 66 [속전등록15. 오등전서37. 보등록4].

汾陽十智同眞; 연등회요11 분양선소(汾陽善昭). 시중해 이르되 무릇 설법하는 자는 모름지기 십지동진(十智同眞)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십지동진을 갖추지 못하면 사정(邪正)을 분변하지 못하고 치소(緇素)를 구분하지 못하여 능히 인천에게 안목이 되어 주거나 시비를 결단하지 못한다. 새가 허공에 날다가 날개가 부러짐과 같고 화살이 표적을 쏘다가 줄이 끊어짐과 같나니 줄이 끊어진 고로 표적을 쏘아도 적중하지 못하고 날개가 부러진 고로 허공에 가히 날지 못한다. 줄이 굳세고 날개가 꿋꿋해야 허공과 표적을 모두 사무친다. 무엇이 이 십지동진인가, 여러 상좌를 위해 점출(點出)하겠다. 1은 동일질이며 2는 동대사며 3은 총동참이며 4는 동진지며 5는 동편보며 6은 동구족이며 7은 동득실이며 8은 동생살이며 9는 동음후며 10은 동득입이다. 汾陽; 선소(善昭; 947-1024)니 송대 임제종승. 태원(산서) 사람이며 속성은 유(). 어려서 대지(大智)가 있었으며 일체의 문자를 늘 능히 자연히 통효(通曉)했음. 14세 때 부모가 서로 이어 세상을 떠나자 드디어 머리 깎고 구족계를 받았음. 제방을 유력(遊歷)하며 71()의 석덕존숙(碩德尊宿)을 참방하였는데 여주(汝州) 수산(首山)에 이르러 성념선사(省念禪師)를 참알(參謁)하여 대오하고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형상(衡湘)과 양면(襄沔)의 사이를 노닐었는데 군수(郡首)가 힘껏 맞이하며 여러 명찰(名刹)에 주지할 것을 요청했으나 스님이 다 윤허(允許)하지 않았음. 수산성념(首山省念)이 입적함에 이르러 비로소 서하(西河) 도속(道俗; 僧俗)의 요청에 응해 분주(汾州; 지금의 산서 분양) 태자원(太子院)에 주()했음. 스님은 평생에 대장경을 6() 열람했고 종요(宗要)를 광설(廣說)했는데 3()4구ㆍ3()18() 등의 기용(機用)으로써 학인을 접화(接化)했으며 명성이 일시(一時)를 진동했음. 스님은 발이 문지방을 넘지 않은 것이 30년이었으며 도속(道俗)이 더욱 존중해 감히 그 이름을 바로 부르지 못하고 분양(汾陽)으로써 그를 호칭했음. 송 인종 천성 2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8이며 시호는 무덕선사(無德禪師). 분양무덕선사어록ㆍ분양소선사어록ㆍ분양소선사어요 등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13. 광등록16. 속등록1. 연등회요11. 불조역대통재18].

圓極; 언잠(彦岑)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원극(圓極)이며 대성(강소 남경) 사람이니 운거법여(雲居法如)에게 의지하여 영지(領旨)했고 태평주 은정원에 주()했음 [오등회원20. 보등록21].

生鐵; 야공(冶工)의 단련을 받지 아니한 철.

嫡骨孫; 적친(嫡親; 혈통이 가장 가까운 親屬)의 손아(孫兒; 손자)니 제3()의 직계의 전인(傳人)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