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수암의 호가 일조다(水菴號一糙)

태화당 2026. 2. 17. 09:55

水菴一和尙 婺之東陽人 外行觕糙 叢林謂之一糙 久參月菴果 果甞擧雲門話墮詰之 一日 下語云 靈山受記 須是和尙始得 又甞頌曰 二八佳人美態嬌 繡衣輕整暗香飄 偸身華圃徐徐立 引得黃鶯下柳條 月菴器之 後與同列不和 遭人暗計擠之 月菴信其言 擯出院 臨行 書偈譏之曰 稽首月菴藏裏佛 黃金玅相實堪觀 白面夜叉七八箇 推轉如珠走玉盤 後出世台之慈雲 爲佛智嗣 葢從參政錢公之請 錢公於佛智 爲俗門弟昆 然叢林中亦有短之者 室中常以西天胡子因甚無髭鬚話驗學者

水庵一; 師一(1107-1176) 宋代楊岐派僧 字水庵 婺州(浙江金華)馬氏 年十六出家 從法雲善遵爲師 受具後 遊雲居 聞高庵夜參語 刻意踐之 逮見佛智端裕於西禪 浩然大徹 佛智笑而可之 後歷四郡 住持八院 乾道七年(1171) 自寶林遷淨慈 有語要一卷 [續傳燈錄三十一 普燈錄十九]

下語; 給出機語

受記; <> vyākaraṇa 梵語弊迦蘭陀 和伽羅那 和羅那 又作授決 受決 授記 受莂 記別 記莂 十二部經之一 九部經之一 區別 分析 發展之意 本指分析敎說 或以問答方式解說敎理 轉指弟子所證或死後之生處 後專指未來世證果及成佛名號之預言(又作預記)

夜叉; <> yakşa 又曰閱叉 新作藥叉 夜乞叉 譯言能噉鬼 捷疾鬼 勇健 輕捷等 玄應音義三 閱叉或云夜叉 皆訛也 正言藥叉 此譯云能噉鬼 謂食噉人也 又云傷者 謂能傷害人也 法華玄贊二 夜叉者此云勇健 飛騰空中攝地行類諸羅刹也 羅刹云暴惡 亦云可畏 彼皆訛音 梵語正云藥叉邏刹娑

佛智; 端裕(?-1150) 宋代楊岐派僧 會稽(浙江紹興)錢氏 吳越王裔 嗣圓悟克勤 開法鄧之丹霞 次遷虎丘徑山 謝事 徇平江道俗之請 庵于西華秀峰 閱數稔 勑居建康保寧 後移蘇城萬壽 及閩中玄沙 壽山西禪 復被旨補靈隱 慈寧皇太后請說法 賜金襴衣和佛智師號 又赴明之育王 紹興庚午十月十八日而逝 謚大悟禪師 [五燈嚴統十九 佛祖歷代通載二十 普燈錄十四]

參政; 官名 宋代參知政事的省稱 爲宰相的副職 元於中書省行中書省 皆置參政 爲副貳之官 明於布政使下置左右參政 淸初 各部也設參政 後改侍郞 袁世凱統治時期設參政院 所指派的成員亦稱參政 [百度百科]

胡子; 卽胡人 子 後綴 禪語中多指初祖菩提達摩

 

수암일(水菴一; 師一) 화상은 무(; 婺州)의 동양(東陽) 사람이다. 밖으로 추조(觕糙; 麤糙와 같음. 거칢)를 행해 총림에서 그()를 일러 일조(一糙)라 했다. 월암과(月菴果; 善果)를 오래 참()했다. ()가 일찍이 운문화타(雲門話墮)를 들어 그()에게 힐문(詰問; )하자 어느 날 하어(下語)해 이르되 영산(靈山)의 수기(受記)는 모름지기 이 화상이라야 비로소 옳습니다. 또 일찍이 송왈(頌曰) 이팔(二八; 16) 가인(佳人)의 미태(美態)가 아리따운데()/ 수의(繡衣; 수놓은 옷)가 경정(輕整)하고 몰래() 향이 나부낀다()/ 몰래() 몸을 화포(華圃; 꽃밭)에서 서서(徐徐)히 세우니/ 황앵(黃鶯)이 버들가지에 내림을 인득(引得)했다. 월암(月菴)이 그()를 법기(法器; )로 여겼다. 후에 동렬(同列)과 불화(不和)하여 사람이 암계(暗計)로 그()를 배척(排斥; )함을 만났는데() 월암이 그 말을 믿고 사원(寺院; )에서 빈출(擯出)했다. 임행(臨行)에 게()를 써() 그것()을 비웃어() 가로되 월암장(月菴藏) 속의 부처에게 계수(稽首)하나니/ 황금의 묘상(玅相)이 실로 감(; )히 볼 만하다/ 백면(白面)의 야차(夜叉) 칠팔 개가/ 퇴전(推轉; 밀어 돌림)하니 구슬이 옥반(玉盤)에 달림과 같네. 후에 태()의 자운(慈雲)에서 출세했고 불지(佛智; 端裕)의 사()가 되었다. 대개(大蓋; ) 참정(參政) 전공(錢公)의 청을 좇았는데 전공(錢公)은 불지(佛智)에게 속문(俗門)의 제곤(弟昆; 弟兄)이 된다. 그러나 총림 중에 또 그()를 헐뜯는() 자가 있었다. 실중(室中)에서 늘 서천(西天)의 호자(胡子; 胡人)는 무엇으로() 인해 자수(髭鬚; 수염)가 없느냐로써 학자를 감험(勘驗; )했다.

水庵一; 사일(師一; 1107-1176)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수암(水庵)이며 무주(절강 금화) 마씨. 나이 16에 출가해 법운선준을 수종(隨從)하다가 스승으로 삼았음. 수구(受具)한 후에 운거에 노닐었고 고암(高庵)의 야참어(夜參語)를 듣다가 뜻에 새겨 이를 실천했음. 서선(西禪)에서 불지단유(佛智端裕)를 참견함에 이르러 호연(浩然)히 크게 사무쳤으며 불지가 웃으며 그를 인가(印可)했음. 후에 4()을 경력하면서 8()에 주지했고 건도 칠년(1171) 보림으로부터 정자로 옮겼음. 어요(語要) 1권이 있음 [속전등록31. 보등록19].

下語; 기어(機語)를 급출(給出).

受記; <> vyākaraṇa. 범어 폐가란타(弊迦蘭陀)ㆍ화가라나(和伽羅那)ㆍ화라나(和羅那). 또 수결(授決)ㆍ수결(受決)ㆍ수기(授記)ㆍ수별(受莂)ㆍ기별(記別)ㆍ기별(記莂)로 지음. 12부경의 하나며 9부경의 하나니 구별ㆍ분석ㆍ발전의 뜻. 본래는 교설을 분석하거나 혹은 문답 방식으로 교리를 해설함을 가리켰음. ()하여 제자의 소증(所證) 혹 사후의 생처(生處)를 가리켰음. 후에 오로지 미래세의 증과(證果) 및 성불명호(成佛名號)의 예언(預言; 預記로 지음)을 가리켰음.

夜叉; <> yakşa. 또 가로되 열차(閱叉)며 신역은 약차(藥叉)ㆍ야걸차(夜乞叉)로 지음. 번역해 말하면 능담귀(能噉鬼)ㆍ첩질귀(捷疾鬼)ㆍ용건(勇健)ㆍ경첩(輕捷) 등임. 현응음의3. 열차(閱叉) 혹은 이르되 야차는 다 그르다. 바른 말로는 약차(藥叉)니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능히 먹는 귀(能噉鬼)니 이르자면 사람을 식담(食噉)한다. 또 이르되 상자(傷者)니 이르자면 능히 사람을 상해한다. 법화현찬2. 야차란 것은 여기에선 이르되 용건(勇健)이니 공중에 비등하고 땅을 밟고() 다니는 종류의 모든 라찰(羅刹)이다. 라찰은 이르되 포악이며 또 이르되 가외(可畏). 그것은 모두 와음(訛音)이며 범어로 바르게 이르면 약차라찰사(藥叉邏刹娑).

佛智; 단유(端裕; ?-1150)니 송대 양기파승. 회계(절강 소흥) 전씨. 오월왕의 후예. 원오극근(圓悟克勤)을 이었고 등()의 단하에서 개법했으며 다음으로 호구와 경산으로 옮겼음. 일을 그만두고 평강 도속의 요청에 따라 서화의 수봉에 암자를 엮고 몇 해를 지냈음. 칙령으로 건강의 보녕에 거주하다가 후에 소성의 만수 및 민중의 현사, 수산의 서선으로 옮겼음. 다시 성지(聖旨)를 받아 영은에 보직되었음. 자녕황태후의 요청으로 설법했으며 금란의와 불지(佛智)라는 사호(師號)를 주었음. 또 명()의 육왕(育王)에 다다랐음. 소흥 경오 1018일에 떠났으며 시호는 대오선사 [오등엄통19. 불조역대통재20. 보등록14].

參政; 벼슬 이름. 송대 참지정사(參知政事)의 생칭(省稱). 재상의 부직(副職)이 됨. ()은 중서성과 행중서성(行中書省)에 모두 참정을 설치했고 부이지관(副貳之官)이 됨. ()은 포정사(布政使) 아래 좌우참정을 설치했음. 청초(淸初) 각부(各部)에 또한 참정을 설치했고 후에 시랑(侍郞)으로 고쳤음. 원세개가 통치하던 시기 참정원을 설치했고 지파(指派; 파견)한 바의 성원(成員)도 또한 일컬어 참정이라 했음 [백도백과].

胡子; 곧 호인(胡人). 자는 후철. 선어(禪語) 중 다분히 초조 보리달마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