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無菴 姑蘇人 冶父川金剛小師 久依育王佛智 與慈覺眞爲友 商確古今無不明 唯室中機緣不發 晝夜哀泣不睡 未甞與人說世間話 如是者累年 一日 在室中擒住問曰 有句無句 如藤倚樹 道 道 全擬開口 智擘面一拳 豁然大悟 連呌數聲屈屈 智便放 有頌曰 鼓笛轟轟袒半肩 龍樓香噴益州船 有時著脚弄明月 蹈破五湖波底天 出世遍匡大刹 終于虎丘
●全無菴; 法全(?-1169) 宋代楊岐派僧 字無庵 姑蘇(江蘇蘇州)陳氏 從東齊道川落髮 久依佛智端裕 得心印 出住安吉道場寺 遷平江靜慈 [普燈錄十九 五燈會元二十]
●冶父川; 道川 宋代臨濟宗僧 崑山(今屬江蘇)狄氏 初爲縣之弓級 聞東齋謙爲道俗演法 往從之 一日因不職遭笞 忽於杖下大悟 遂辭職 依謙 謙爲改今名 建炎(1127-1130)初 謁天封蹣庵繼成 蒙其認可 歸憩東齋 道俗愈敬 學子請益 依金剛般若撰頌行世 隆興改元(1163) 住無爲軍(安徽)冶父山實際禪院 [普燈錄十七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三十]
●佛智; 端裕(?-1150) 宋代楊岐派僧 會稽(浙江紹興)錢氏 吳越王裔 嗣圓悟克勤 開法鄧之丹霞 次遷虎丘徑山 謝事 徇平江道俗之請 庵于西華秀峰 閱數稔 勑居建康保寧 後移蘇城萬壽 及閩中玄沙 壽山西禪 復被旨補靈隱 慈寧皇太后請說法 賜金襴衣和佛智師號 又赴明之育王 紹興庚午十月十八日而逝 謚大悟禪師 [五燈嚴統十九 佛祖歷代通載二十 普燈錄十四]
○전무암(全無菴; 法全)은 고소(姑蘇) 사람이다. 야보천(冶父川; 道川) 금강(金剛; 금강경을 가리킴)의 소사(小師)며 육왕(育王; 육왕사) 불지(佛智; 端裕)에게 오래 의지했고 자각진(慈覺眞)과 벗이 되었다. 고금(古今)을 상확(商確; 商討)하매 밝히지 못함이 없었지만 오직 실중(室中)에서 기연(機緣)이 불발(不發)했다. 주야로 애읍(哀泣)하며 자지 않았고 일찍이 사람들과 더불어 세간화(世間話)를 말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한 게 누년(累年)이었다. 어느 날 실중에서 금주(擒住)하고 문왈(問曰)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藤)이 나무에 기댄 것과 같다. 말하라, 말하라. 전(全)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지(智)가 얼굴에다(擘面) 한 주먹 때렸다(一拳). 활연(豁然)히 대오하고 연달아 몇 소리 굴굴(屈屈; 굴복합니다, 굴복합니다)을 부르짖었다. 지(智)가 바로 놓아 주었다(放). 송(頌)이 있어 가로되 고적(鼓笛)이 굉굉(轟轟; 몹시 요란한 소리)한데 반쪽 어깨(半肩)를 드러내었고(袒)/ 용루(龍樓; 皇宮)의 향이 익주(益州; 四川省의 首都)의 배에 뿜는다/ 어떤 때 발을 붙여(著脚) 명월을 희롱하나니/ 오호(五湖)의 파도 밑의 하늘을 도파(蹈破)했다. 출세하여 두루 대찰(大刹)을 바로 잡았고(匡) 호구(虎丘; 호구산)에서 마쳤다.
●全無菴; 법전(法全; ?-1169)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무암(無庵)이며 고소(강소 소주) 진씨. 동제도천(東齊道川)을 좇아 낙발(落髮)했고 오래 불지단유(佛智端裕)에게 의지해 심인을 얻었음. 출세해 안길 도량사에 주(住)하다가 평강 정자로 옮겼음 [보등록19. 오등회원20].
●冶父川; 도천(道川)이니 송대 임제종승. 곤산(지금 강소에 속함) 적씨. 처음에 현(縣)의 궁급(弓級)이 되었는데 동재겸(東齋謙)이 도속(道俗; 승속)을 위해 연법(演法)한다 함을 듣고 가서 그를 좇았음. 어느 날 부직(不職; 직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태형(笞刑)을 만났는데 홀연히 태장(笞杖) 아래에서 대오했음. 드디어 사직하고 겸(謙)에게 의지했는데 겸이 지금의 이름(道川)으로 개명했음. 건염(1127-1130) 초 천봉 만암계성(蹣庵繼成. 임제하 10세)을 참알해 그 인가를 받았음. 동재(東齋)로 돌아가 쉬는데 도속이 더욱 공경했음. 학자가 청익하자 금강반야경에 의해 송을 지었는데 세상에 행함. 융흥 개원(1163) 무위군(안휘) 야보산(冶父山) 실제선원에 주(住)했음 [보등록17. 오등회원12. 속전등록30].
●佛智; 단유(端裕; ?-1150)니 송대 양기파승. 회계(절강 소흥) 전씨. 오월왕의 후예. 원오극근(圓悟克勤)을 이었고 등(鄧)의 단하에서 개법했으며 다음으로 호구와 경산으로 옮겼음. 일을 그만두고 평강 도속의 요청에 따라 서화의 수봉에 암자를 엮고 몇 해를 지냈음. 칙령으로 건강의 보녕에 거주하다가 후에 소성의 만수 및 민중의 현사, 수산의 서선으로 옮겼음. 다시 성지(聖旨)를 받아 영은에 보직되었음. 자녕황태후의 요청으로 설법했으며 금란의와 불지(佛智)라는 사호(師號)를 주었음. 또 명(明)의 육왕(育王)에 다다랐음. 소흥 경오 10월 18일에 떠났으며 시호는 대오선사 [오등엄통19. 불조역대통재20. 보등록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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