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우연지(尤延之)

태화당 2026. 2. 20. 07:54

尤延之侍郞於宗門甚注意 初自郞中出守台州 朝覲次 孝宗忽問曰 卿去南台 地里圖中有何勝槩 尤奏曰 國淸萬年 孝宗大喜 又戲問曰 聞方廣有五百應眞大士 元來是强人 忽然一時出現 卿以何法治之 尤不覺豎起拳頭云 臣有金剛王寶劒 孝宗喜動天顔 尤旣至台 以寬慈御民 民甚愛之 但南台旱澇易得 尤甞作詩曰 來雨一朝成汗漫 纔晴三日人憂乾 向來盡道天難做 天到台州分外難 然黃堂政暇 多過報恩與佛照論道 佛照後赴冷泉之請 繼請伊菴權住持 衆常四五百

尤延之; 宋代居士 姓尤 名袤 字延之 號遂初居士 問道於水庵一禪師 [禪林寶訓音義]

郞中; 秦代以後的官名 補佐尙書之政務 事物紀原五曰 漢置尙書郞 初止稱守郞中 晉武帝始置諸曹郞中 唐以來號正郞 武德三年(620)尙書郞改爲郞中 按秦有郞中 令臣瓚以爲主郞內諸官 則郞中秦官也

; 一代詞 表示第一人稱 爾雅 朕 我也 郭璞注 古者貴賤皆自稱朕 又朕 身也 郭璞注 今人亦自呼爲身 邢昺疏 身 卽我也 二皇帝的自稱 自秦始皇始 祖庭事苑二 朕 直稔切 我也 秦始二十六年(221) 始爲天子之稱

汗漫; 廣大 無

黃堂; 古代太守衙門中的正堂 借指太守本人

伊菴權; 有權(?-1180) 宋代楊岐派僧 臨安府昌化(位於浙江)人 俗姓祁 號伊菴() 世稱伊菴有權 十四歲出家 入靈隱之佛智端裕門下受業 其後 嗣道場寺無菴法全(楊岐下五世)之法 曾住常州華藏寺(位於江蘇) 淳熙七年示寂 [五燈會元二十 大明高僧傳七]

 

우연지(尤延之; 尤袤) 시랑(侍郞)은 종문(宗門)에 심히 주의(注意)했다. 처음 낭중(郞中)으로부터 나가서 태주(台州; 지금의 浙江省 臨海縣)를 다스렸다(). 조근(朝覲; 朝見)하던 차에 효종(孝宗)이 홀연히 문왈(問曰) ()이 남태(南台)로 갔는데 지리도(地里圖) 가운데 어떤 승개(勝槩; 수승한 景槪)가 있었습니까. ()가 주왈(奏曰) 국청만년(國淸萬年)입니다. 효종이 크게 기뻐했다. 또 희롱으로 문왈(問曰) ()이 듣기에 방광(方廣; 방광사)에 오백 응진(應眞; 아라한) 대사(大士)가 있다는데 원래 이 강인(强人)입니다. 홀연히 일시에 출현한다면 경()이 무슨 법으로써 그()를 다스리겠습니까. ()가 불각에 주먹(拳頭)을 세워 일으키고 이르되 신()에게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劒)이 있습니다. 효종이 기뻐하며 천안(天顔)을 동()했다. ()가 이미 태()에 이르자 관자(寬慈)로써 어민(御民; 인민을 다스림)했고 인민이 심히 그를 사랑했다. 단지 남태(南台)는 한로(旱澇; 가뭄과 장마)를 쉽게 얻었다. ()가 일찍이 시를 지어 가로되 오는 비가 일조(一朝)에 한만(汗漫)을 이루고/ 겨우 개이면() 3일 만에 인민이 건조(乾燥; )를 걱정한다()/ 향래(向來; 以前)에 다 말하기를 천()은 짓기() 어렵다 하거니와/ ()이 태주(台州)에 이르면 분외(分外; 過分. 特別)로 어렵다. 그러나 황당(黃堂)의 정가(政暇; 政務의 여가)에 많이 보은(報恩; 보은사)에 이르러() 불조(佛照; 德光)와 더불어 논도(論道)했다. 불조가 후에 냉천(冷泉; 냉천사)의 청에 다다르자 이어서() 이암권(伊菴權)을 주지(住持)로 청했는데 대중이 늘 사오백(四五百)이었다.

尤延之; 송대 거사. 성은 우며 이름은 무()며 자가 연지(延之)며 호가 수초거사니 수암일선사(水庵一禪師)에게 도를 물었음 [선림보훈음의].

郞中; 진대(秦代) 이후의 벼슬 이름. 상서의 정무를 보좌했음. 사물기원5에 가로되 한()에서 상서랑을 설치했는데 처음엔 다만 수랑중(守郞中)으로 호칭했다. 진무제(晉武帝)가 비로소 제조낭중(諸曹郞中)을 설치했다. 당 이래로는 호가 정랑(正郞)이었는데 무덕 3(620) 상서랑을 고쳐 낭중(郞中)으로 삼았다. 안험컨대 진()에 낭중이 있었으며 신찬(臣瓚)으로 하여금 주랑(主郞)을 삼고 제관(諸官)을 받아들였으니 곧 낭중은 진관(秦官)이었음.

; 1 대사(代詞)니 제1인칭을 표시함. 이아(爾雅) () (). 곽박(郭璞)의 주() 옛적에 귀천(貴賤)이 다 자칭 짐()이라 했다. 또 짐()은 신(). 곽박의 주() 금인(今人)이 또한 스스로 호칭해 신()이라 한다. 형병(邢昺)의 소() ()은 곧 아(). 2 황제(皇帝)의 자칭이니 진시황(秦始皇)으로부터 비롯했음. 조정사원2. () 직임절(直稔切; )이니 아(). 진시(秦始) 26(221)에 비로소 천자의 호칭이 되었음.

汗漫; 광대함. 넓어서() 변제(邊際)가 없음.

黃堂; 고대(古代) 태수(太守) 아문(衙門) 중의 정당(正堂). 태수 본인을 차지(借指).

伊菴權; 유권(有權; ?-1180)이니 송대 양기파승. 임안부 창화(절강에 위치함) 사람이며 호가 이암(伊菴; )이니 세칭이 이암유권(伊菴有權). 14세에 출가했고 영은의 불지단유(佛智端裕) 문하에 들어가 수업(受業)했으며 그 후 도량사 무암법전(無菴法全; 양기하 5)의 법을 이었음. 일찍이 상주 화장사(華藏寺; 江蘇에 위치함)에 주()했고 순희 7년에 시적했음 [오등회원20. 대명고승전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