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著道人玅總 蘇太師之孫女 徧參諸大老 後謁玅喜于徑山 因上堂 擧 石頭道 恁麽也不得 不恁麽也不得 恁麽不恁麽總不得 時馮濟川侍郞在座下 忽有省 趍方丈告曰 和尙擧石頭話 揖會也 喜曰 侍郞作麽生會 馮云 恁麽也不得 蘇嚕娑婆訶 不恁麽也不得 悉唎娑婆訶 恁麽不恁麽總不得 蘇嚕悉唎娑婆訶 適總自外至 喜擧馮語似之 總咲曰 向來郭象注莊子 然有識者謂莊子注郭象 喜私識之 次日入室 喜問云 古德不出門 因甚在莊上喫糍 總云 和尙放某過 卽向和尙道 喜曰 我放過你 試道看 總云 某甲放和尙過 喜曰 爭奈油糍何 總喝一喝而出 乃作投機頌曰 驀然撞著鼻頭 伎倆冰消瓦解 達磨何必西來 二祖枉費三拜 更問如何若何 一隊艸賊大敗 喜搥鼓印證曰 汝旣悟得祖師意 一刀兩段直下了 臨機一一任天眞 世出世間無欠少 我作此偈爲證明 四聖六凡盡驚撓 休驚撓 碧眼胡僧猶未曉
●玅總; (?-1163) 宋代楊岐派尼僧 號無著 大慧宗杲法嗣 丹徒(江蘇鎭江)人 俗姓蘇 婚適毘陵許壽源 壽源仕於嘉興時 逢大慧宗杲說法 妙總參與盛會 會中宗杲大罵諸方 衆人皆驚 惟妙總獨喜 說法畢 妙總叩請道號 宗杲與無著之號 竝示偈云 盡道山僧愛罵人 只有無著罵不動 一日 正危坐(端坐 危 端正)間 忽大悟 宗杲爲之印可 於是名聞四方 紹興(1131-1162)年間出家 隆興元年示寂 壽不詳 [續傳燈錄三十二 續比丘尼傳二 吳都法乘五上]
●太師; 三公(太師太傅太保)之一 補佐天子的中國最高地位也
●石頭; 希遷(700-790) 唐代僧 又稱無際大師 端州高要(廣東高要)人 俗姓陳 曾禮六祖慧能 靑原行思爲師 得靑原行思之印可 天寶(742-755)初年 居衡山南寺 寺之東有石狀如臺 乃結庵其上 時號石頭和尙 時江西以馬祖爲主 湖南以石頭爲主 四方學徒多輻湊於二師之門 唐貞元六年十二月示寂 壽九十一 臘六十三 諡無際大師 著有參同契 草庵歌各一篇行世 [宋高僧傳九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馮濟川; 馮楫(?-1153) 宋代楊岐派居士 四川遂寧人 字濟川 曾任給事知事等官 壯年時 參學於佛眼淸遠(楊岐下三世)座下 竝嗣其法 復參大慧宗杲 得其心印 晩年勤修淨土 以往生西方爲願 竝自費補修大藏經 於紹興二十三年示寂 有語錄 [五燈會元二十 五燈全書四十四 居士分燈錄下]
●郭象; (252 ?-312) 西晉思想家 河南人 字子玄 早歲卽精通老莊 結交王衍等淸談之士 辯才無礙 人稱魏之王弼再世 歷任司徒掾 司空掾 太學博士 黃門侍郞等職 晉惠帝永安元年(304)之後 專致於政治而權勢大振 著有莊子注三十三卷
●古德不出門下; 古德 指南泉或鵝湖 五燈會元七鵝湖智孚 師一日不赴堂 侍者來請赴堂 師曰 我今日在莊喫油糍飽 者曰 和尙不曾出入 師曰 你但去問取莊主 者方出門 忽見莊主歸謝和尙到莊喫油糍
●油糍; 糍 一種把糥米烝熟搗碎後做成的食品
●冰消瓦解; 冰消爲水 瓦解爲泥 形容解疑或失本形
●二祖枉費三拜; 廣燈錄六菩提達磨 二祖出禮三拜 依位而立 師云 汝得吾髓 ◆三拜; 示三業之敬意而爲三拜也 西天無此法 ▲釋氏要覽中 俗中兩拜者 蓋法陰陽也 今釋氏以三拜者 蓋表三業歸敬也 ▲四分律名義標釋一 原其西國 無三拜禮 但以十爪布地 叩頭三禮 中間更無起義 ▲南海寄歸內法傳三 凡禮拜者 意在敬上自卑之儀也 欲致敬時及有請白 先整法衣搭左肩上 (中略)足跟雙豎 脊頂平直 十指布地 方始叩頭 然其膝下迥無衣物 復還合掌復還叩地 慇懃致敬 如是至三 必也尋常一禮便罷 中間更無起義 西國見爲三拜 人皆怪之
●艸賊; 猶草賊 與草竊同 草野之賊也 ▲三國志六十吳書 周魴曰 山棲草藏 亂心猶存
●四聖六凡; 四聖者 佛 菩薩 聲聞 緣覺也 六凡者 天 人 阿修羅 餓鬼 畜生 地獄也
●碧眼胡僧; 原指西域印度等地來的碧眼僧人 於禪林 則專稱初祖達磨大師 略稱碧眼 碧眼胡
○무착도인(無著道人) 묘총(玅總)은 소태사(蘇太師)의 손녀다. 여러 대로(大老)를 편참(徧參)했고 후에 묘희(玅喜)를 경산(徑山)에서 참알(參謁)했다. 상당(上堂)으로 인해 거(擧)했다. 석두(石頭; 希遷)가 말하되 이러해도(恁麽也) 얻지 못하고 이러하지 않아도 얻지 못하고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 얻지 못한다. 당시에 풍제천(馮濟川) 시랑(侍郞)이 좌하(座下)에 있다가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방장(方丈)으로 달려가(趍) 고(告)해 가로되 화상이 석두화(石頭話)를 드시매(擧) 즙(揖)이 알았습니다(會). 희왈(喜曰) 시랑(侍郞)이 어떻게(作麽生) 압니까. 풍운(馮云) 이러해도 얻지 못한다 하니 소로사바하(蘇嚕娑婆訶). 이러하지 않아도 얻지 못한다 하니 실리사바하(悉唎娑婆訶).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 얻지 못한다 하니 소리실리사바하(蘇嚕悉唎娑婆訶). 마침(適) 총(總)이 밖으로부터 이르렀다. 희(喜)가 풍어(馮語)를 들어 그(之)에게 보였다(似). 총(總)이 웃으며 가로되 향래(向來; 以前)에 곽상(郭象)이 장자(莊子)를 주(注)했지만 그러나 유식(有識)한 자가 이르기를 장자(莊子)가 곽상을 주(注)했다 합니다. 희(喜)가 몰래(私) 이(之)를 알았다. 차일(次日) 입실하자 희(喜)가 문운(問云) 고덕(古德)이 출문(出門)하지도 않았거늘(古德不出門) 무엇으로 인해(因甚) 장상(莊上; 上은 방면을 표시)에 있으면서 끽자(喫糍)했는가. 총운(總云) 화상이 모(某; 나)의 허물을 방면(放免; 放)한다면 곧 화상을 향해 말하겠습니다. 희왈(喜曰) 내가 너의 허물을 방면한다. 시험 삼아 말해보아라. 총운(總云) 모갑(某甲; 나)이 화상의 허물을 방면합니다. 희왈 유자(油糍)는 어찌하겠는가(爭奈). 총(總)이 할(喝)로 한 번 할하고 나갔다. 이에 투기송(投機頌)을 지어 가로되 맥연(驀然; 갑자기)히 비두(鼻頭; 頭는 조사)를 당착(撞著; 부딪치다)하니/ 기량(伎倆)이 빙소와해(冰消瓦解)다/ 달마가 서래(西來)함이 어찌 필요하며(何必)/ 2조는 헛되이 삼배를 허비했다(二祖枉費三拜)/ 다시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묻는다면/ 일대(一隊)의 초적(艸賊)이 대패(大敗)했다. 희(喜)가 북을 치고(搥鼓) 인증(印證)해 가로되 네가 이미 조사의(祖師意)를 오득(悟得)했나니/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직하(直下)에 마쳤다(了)/ 임기(臨機)하여 하나하나 천진(天眞)에 맡기니/ 세출세간(世出世間)에 흠소(欠少)가 없다/ 내가 차게(此偈)를 지어 증명으로 삼나니/ 사성육범(四聖六凡)이 모두 경요(驚撓; 驚擾)한다/ 경요(驚撓)하지 말지니/ 벽안호승(碧眼胡僧)도 오히려 깨닫지(曉) 못했다.
●玅總; (?-1163) 송대 양기파 니승(尼僧). 호는 무착(無著)이며 대혜종고의 법사니 단도(강소 진강) 사람이며 속성은 소. 비릉(毘陵) 허수원에게 혼인하여 시집갔는데 수원이 가흥(嘉興)에서 벼슬할 때 대혜종고의 설법을 만났고 묘총도 성회(盛會; 성대한 법회)에 참여했음. 회중(會中)에 종고가 제방을 매우 욕하자 중인이 모두 놀랐으나 오직 묘총만 홀로 기뻐했음. 설법을 마치자 묘총이 도호(道號)를 고청(叩請; 간절히 청함)했고 종고가 무착이란 호를 주며 아울러 게를 보여 이르되 다 말하기를 산승이 사람을 욕하기 좋아한다 하는데 다만 무착이 있어 욕해도 동하지 않더라. 어느 날 바로 위좌(危坐; 端坐니 危는 端正)한 사이에 홀연히 대오했으며 종고가 그를 인가했고 이에 이름이 사방에 알려졌음. 소흥(1131-1162)년 간 출가했고 융흥 원년 시적했음. 나이는 상세하지 못함 [속전등록32. 속비구니전2. 오도법승5상].
●太師; 3공(三公; 太師ㆍ太傅ㆍ太保)의 하나. 천자를 보좌하는 중국 최고의 지위임.
●石頭; 희천(希遷; 700-790)이니 당대승. 또 호칭이 무제대사(無際大師). 단주(端州) 고요(高要; 광동 고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진(陳). 일찍이 6조 혜능을 참례했고 청원행사(靑原行思)를 스승으로 삼아 청원행사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천보(天寶; 742-755) 초년(初年)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 거주했는데 사원의 동쪽에 암석이 있어 형상(形狀)이 돈대(臺)와 같았으며 이에 암자를 그 위에 엮은지라 당시에 호하기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 했음. 당시(當時)에 강서(江西)는 마조(馬祖)를 주체(主體)로 삼았고 호남(湖南)에선 석두(石頭)를 주체로 삼았는데 사방의 학도(學徒)가 많이 두 스님의 문으로 복주(輻湊)하였음. 당 정원(貞元) 6년 12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91이며 승랍은 63. 시호(諡號)가 무제대사(無際大師)며 저서에 참동계(參同契)ㆍ초암가(草庵歌) 각 1편(篇)이 있어 세상에 행함 [송고승전9. 전등록14. 오등회원5].
●馮濟川; 풍즙(馮楫; ?-1153)이니 송대 양기파 거사. 사천 수녕 사람이니 자는 제천(濟川)이며 일찍이 급사(給事)ㆍ지사(知事) 등의 관직에 입명되었음. 장년(壯年) 시 불안청원(佛眼淸遠; 양기하 3세)의 좌하(座下)에서 참학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다시 대혜종고를 참해 그의 심인을 얻었음. 만년에 정토를 근수(勤修)했고 서방에 왕생함을 원으로 삼았으며 아울러 자비(自費)로 대장경을 보수했음. 소흥 23년 시적했고 어록이 있음 [오등회원20. 오등전서44. 거사분등록하].
●郭象; (252 ?-312) 서진(西晉)의 사상가. 하남 사람이며 자가 자현. 젊은 나이에 곧 노장에 정통하였으며 왕연 등 청담지사(淸談之士)와 결교하였으며 변재가 무애했음. 사람들이 일컫기를 위(魏)의 왕필이 재세(再世; 부활)했다 했음. 사도연ㆍ사공연ㆍ태학박사ㆍ황문시랑 등의 직책을 역임했음. 진 혜제 영안 원년(304)의 후에 정치를 마음대로 다하여 권세를 크게 떨쳤음. 저서에 장자주(莊子注) 33권이 있음.
●古德不出門下; 고덕은 남천(南泉) 혹은 아호(鵝湖)를 가리킴. 오등회원7 아호지부(鵝湖智孚). 스님이 어느 날 승당에 이르지 않았다. 시자가 와서 승당에 이를 것을 청하자 스님이 가로되 나는 금일 장사(莊舍)에 있으면서 유자(油糍; 일종의 기름에 튀긴 찹쌀 식품)를 먹어 배부르다. 시자가 가로되 화상은 일찍이 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네가 다만 가서 장주(莊主)에게 물어보아라. 시자가 막 문을 나서자 홀연히 돌아오는 장주를 보았는데 화상에게 장사(莊舍)에 이르러 유자를 잡순 데 감사하였다.
●油糍; 자(糍)는 일종의, 나미(糥米; 찹쌀)를 쪄서 익히고 도쇄(搗碎; 찧어 으깸)한 후에 만들어 이룬 식품.
●冰消瓦解;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기와가 풀려 진흙이 됨이니 의심이 풀리거나 혹 본형을 잃음을 형용.
●二祖枉費三拜; 광등록6 보리달마. 2조가 나와 3배(拜)로 예(禮)하고 의위(依位)해 서자 스님이 이르되 너는 나의 수(髓)를 얻었다. ◆三拜; 3업의 경의(敬意)를 보이는지라 3배함. 서천엔 이 법이 없음. ▲석씨요람중. 세속 중에 양배(兩拜)란 것은 대개 음양을 본받음이다. 여금에 석씨가 3배하는 것은 대개 3업으로 귀경(歸敬)함을 표함이다. ▲사분율명의표석1. 그 서국(西國)에 의거(原)하자면 3배의 예절이 없다. 다만 10조(爪; 손톱)를 땅에 펴고 고두(叩頭; 머리를 조아림)하며 3례(禮)하는데 중간에 다시 일어나는 뜻이 없다. ▲남해기귀내법전3. 무릇 예배란 것은 뜻이 위를 공경하고 스스로 낮춤의 의식(儀式)에 있다. 치경(致敬; 경의를 표함)하려고 할 때 및 청백(請白; 청하면서 고함)이 있으면 먼저 법의를 정리하여 어깨 위에 싣는다 (중략) 발뒤꿈치를 쌍으로 세우고 등과 머리를 고르고 곧게(平直) 한다. 열 손가락을 땅에 펴고 비로소 고두(叩頭; 머리를 조아림)한다. 그러나 무릎 아래 판이하게(迥) 의물(衣物)이 없다. 다시 도리어 합장하고 다시 도리어 고지(叩地; 바닥에 조아림)하면서 은근히 치경(致敬)하는데 이와 같이 세 번에 이른다. 반드시 또 심상(尋常)에 1례(禮)하고 곧 마치며 중간에 다시 일어나는 뜻이 없다. 서국(西國)에서 3배함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괴이하게 여긴다.
●艸賊; 초적(草賊)과 같음. 초절(草竊; 좀도둑. 竊은 훔칠 절)과 같음. 초야(草野)의 도적임. ▲삼국지60 오서. 주방(周魴)이 가로되 산에 살고 풀속에 숨어서(山棲草藏) 난심(亂心)이 오히려 존재한다.
●四聖六凡; 4성(聖)이란 것은 불ㆍ보살ㆍ성문ㆍ연각이며 6범(凡)이란 것은 천ㆍ인ㆍ아수라ㆍ아귀ㆍ축생ㆍ지옥임.
●碧眼胡僧; 원래 서역이나 인도 등의 지역에서 온 벽안의 승인을 가리키지만 선림에선 곧 오로지 초조 달마대사를 일컬음. 약칭이 벽안ㆍ벽안호.
'총림성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이덕원(李德遠) (0) | 2026.02.21 |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경수좌(瓊首座) (0) | 2026.02.20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우연지(尤延之) (0) | 2026.02.20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전무암(全無菴) (0) | 2026.02.19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안만암(顔卍菴) (0) |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