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경수좌(瓊首座)

태화당 2026. 2. 20. 07:58

瓊首座 四明人 徧見諸老 留象骨四十年不出山 唯占禪悅寮一板頭 冬夏一衲 人莫能親踈之 侍鐵菴 閩帥趙汝愚仰其風 累虛大刹 請其出 堅臥不應 然須欲一見 託鐵菴以計誘其入府 大作供養 面囑其受請 瓊秉志不渝 趙公愈敬 乃以詩送歸山 云 萬仞峰頭雪作堆 一枝寒木倚巖隈 靑靑不改四時操 任待春風吹不回 府判以下幕職皆賀其光大法門不少 與夫今之持書覔院住者 不可同日語之也

象骨; 象骨巖 又稱象骨峰象骨山 雪峰山(位於福建侯官縣西)原名象骨山 雪峰山下有象骨巖

面囑; 指當面囑咐或叮囑

府判; 府判官 宋代設置 爲開封府行政長官開封尹的副職

幕職; 地方長官的屬吏 因在幕府供職 故稱

 

경수좌(瓊首座)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제로(諸老)를 두루 뵈었고 상골(象骨)에 머물며 40년 동안 출산(出山)하지 않았다. 오직 선열료(禪悅寮)의 한 판두(板頭; 板子. 는 조사)를 점거(占居; )하여 동하(冬夏)에 일납(一衲)이었다. 사람이 능히 그()를 친소(親踈)하지 못했고 철암(鐵菴)을 모셨다. 민수(閩帥) 조여우(趙汝愚)가 그의 도풍(道風; )을 앙모(仰慕; )했고 거듭() 대찰(大刹)을 비워() 그의 출세(出世; )를 청했으나 견와(堅臥)하여 불응(不應)했다. 그러나 꼭 일견(一見)하고 싶어 철암(鐵菴)에게 부탁(付託; )해 계책(計策; )을 써() 그의 입부(入府)를 유도(誘導; )했다. 크게 공양(供養)을 짓고 그()에게 수청(受請)하기를 면촉(面囑)했으나 경()의 병지(秉志; 意志를 굳게 잡다)가 변하지() 않았다. 조공(趙公)이 더욱() 공경했다. 이에 시로써 귀산(歸山)을 전송(餞送)해 이르되 만 길 봉두(峰頭)에 눈이 무더기()를 지었고/ 일지(一枝)의 한목(寒木)이 암외(巖隈; 바위의 굽이)에 기대었다/ 청청(靑靑)하여 사시(四時)의 절조(節操; )를 고치지 않나니/ 기다림에 맡겨 춘풍이 불어도 돌이키지() 않는다. 부판(府判) 이하(以下)의 막직(幕職)이 모두 그의 광대(光大)한 법문(法門)이 적지 않음을 경하(慶賀;)했다. 여금의 지서(持書)하여 원주(院住; 사원의 住持)를 찾는 자와 더불어(與夫; 는 조사) 가히 동일(同日)에 말하지 못한다.

象骨; 상골암(象骨巖)이니 또 명칭이 상골봉ㆍ상골산. 설봉산(복건 후관현 서쪽에 위치함)의 원명이 상골산이니 설봉산 아래 상골암이 있음.

面囑; 당면(當面)하여 촉부(囑咐) 혹 정촉(叮囑)함을 가리킴. .

府判; 부판관(府判官)이니 송대(宋代) 설치. 개봉부(開封府) 행정장관인 개봉윤(開封尹)의 부직(副職)이 됨.

幕職; 지방장관의 속리(屬吏)니 막부(幕府)에 있으면서 공직(供職)함으로 인해 고로 일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