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이덕원(李德遠)

태화당 2026. 2. 21. 08:37

李侍郞德 守南台日 以鴻福萬年薦善 請拙菴伊菴鐵菴三大老出世 一時龍象騈集 後以國淸請密菴 密菴當時住衢之烏巨 是皆專爲應菴之故 及開堂 各有所稟 信之 此事各在當人 故不可以人情取悅士大夫也 後李公歸番陽 閑居日 甞語人曰 浩平生雖在仕路 家貧不足以自給 無資可以濟人 唯在丹丘請得三員善知識出世 續佛慧命 其功德不可思議哉

 

이시랑(李侍郞) 덕원(; 李浩. 저본에 德邁로 지었음)이 남태(南台)를 다스리던() 날 홍복(鴻福; 홍복사)ㆍ만년(萬年; 만년사)ㆍ천선(薦善; 천선사)으로써 졸암(拙菴)ㆍ이암(伊菴)ㆍ철암(鐵菴) 삼대로(三大老)의 출세를 청했으니 일시(一時)에 용상(龍象)이 변집(騈集; 나란히 모임)했다. 후에 국청(國淸; 국청사)으로써 밀암(密菴; 咸傑)에게 청했는데 밀암은 당시에 구(; 衢州)의 오거(烏巨; 오거암)에 주()했으니 이는 모두 오로지() 응암(應菴; 曇華)을 위한 연고였다. 및 개당(開堂)하자 각자 품수(稟受; )한 바가 있었다. 이를 믿을지니 차사(此事)는 각기 당인(當人)에게 있는지라 고로 인정(人情)으로써 사대부에게 취열(取悅)함은 옳지 못하다. 후에 이공(李公)이 반양(番陽; 은 땅이름 반)으로 돌아갔는데 한거일(閑居日)에 일찍이 사람에게 말해 가로되 호(; 李浩)가 평생토록 비록 사로(仕路)에 있었지만 가빈(家貧)하여 족히 자급(自給)하지 못했고 가이(可以; 는 조사) 제인(濟人)할 자산(資産; )이 없었다. 오직 단구(丹丘)에 있으면서 삼원(三員)의 선지식의 출세를 청득(請得)하여 불타의 혜명(慧命)을 이은() 그 공덕은 불가사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