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일적

태화일적(泰華一滴) 7

태화당 2019. 5. 2. 08:38

7使齊軍入魏地爲十萬竈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三萬竈 龐涓行三日 大喜曰 我固知齊軍怯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乃弃其步軍 與其輕銳倍日幷行逐之 孫子度其行 暮當至馬陵 馬陵道陜 而旁多阻隘 可伏兵 乃斫大樹白而書之曰 龐涓死于此樹之下 於是令齊軍善射者萬弩 夾道而伏 期曰 暮見火擧而俱發 龐涓果夜至所木下 見白書 乃鑽火燭之 讀其書未畢 齊軍萬弩俱發 魏軍大亂相失 龐涓自知智窮兵敗 乃自剄曰 遂成豎子之名 齊因乘勝盡破其軍 虜魏太子申以歸 *孫臏以此名顯天下 世傳其兵法 史記六十五 孫子傳

 

제군(齊軍)으로 하여금 위지(魏地)에 들어가 10만의 부뚜막을 만들게 했다. 다음날에 5만의 부뚜막을 만들었고 또 다음날은 3만의 부뚜막을 만들었다. 방연(龐涓)3일을 행군하고는 크게 기뻐하며 가로되 내가 진실로() ()의 군법을 안다.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에 사졸이 도망간 자가 과반이다. 이에 그 보군(步軍)을 버리고 그 경예(輕銳; 경첩하고 정예한 사졸)와 더불어 배일(倍日; 하루에 이틀 길을 감)하여 아울러 행군하며 쫓아갔다. 손자가 그 행군을 헤아리매 밤에 마땅히 마릉(馬陵)에 이르게 되었다. 마릉은 길이 좁고 옆길은 험하고 좁았다. 가히 복병할 만했다. 이에 큰 나무를 쪼개어 알리어 써서 가로되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이에 제군(齊軍)에서 잘 쏘는 자 만노(萬弩)를 시켜 길을 끼고 엎드리게 했다. 기약하여 가로되 밤에 횃불을 듦을 보거든 모두 발사하라. 방연이 과연 밤에 나무 아래의 곳에 이르렀다. 백서(白書; 알리는 글)를 보고 이에 부싯불로 그것을 비추었다. 그 글을 읽음을 마치지도 아니하여서 제군이 만뇌를 다 발사했다. 위군이 크게 혼란하면서 서로 잃었다. 방연이 스스로 지혜가 다하고 싸움에서 패한 줄 알았다. 이에 스스로 목을 베며 가로되 드디어 풋내기(豎子)의 명성을 이루게 했다. 제가 인하여 승기를 타고 그의 군사를 모두 깨뜨리고 위의 태자 신()을 포로로 하여 귀국했다. 손빈(孫臏)이 이로써 이름이 천하에 현저했으며 세상에서 그의 병법을 전했다.

 

*孫臏;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병가(兵家). 조정사원5(祖庭事苑五) 본전(本傳)을 안험(按驗; 查驗)컨대 손빈(孫賓)은 손무자(孫武子)의 후예다. 병법을 잘하여 감조지술(減竈之術; 부뚜막의 수를 점차 줄이는 술수)을 시설해 방연(龐涓)을 마릉(馬陵)에서 패배시켰다. 이로써 이름이 천하에 드러났으며 세상에서 그 병법을 전한다 …… ()이 그 발을 빈(; 정강이뼈를 베는 형벌)한지라 고로 이름을 바꿨다. ()은 비인절(毗忍切; )이니 슬개(膝蓋; 종지뼈)를 제거하는 형벌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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