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452쪽

태화당 2019. 5. 4. 08:34

繫著繫於事物而執著不離 聯燈會要五大達無業 兄弟 只爲貪欲成性 二十五有 向脚跟下繫著 無成辨之期

계착(繫著) 사물에 묶여 집착하면서 여의지 못함. 연등회요5 대달무업. 형제여, 다만 탐욕이 자성을 이루기 때문에 25()에서 발꿈치 아래를 향해 계착(繫著)하므로 성변(成辨; 성공)할 기약이 없다.


季札(576-484) 姬姓 名札 又稱公子札 延陵季子 延州來季子 季子 春秋時吳王壽夢第四子 封於延陵(今常州) 後又封州來 傳爲避王位 棄其室而耕常州武進焦溪的舜過山下 季札品德高尙 而具有遠見卓識的政治家和外交家 [百度百科] 祖庭事苑五 季札 史記(31) 延陵季子出聘過徐 徐君慕季子劍 季子心許之 及回 徐君已亡 因挂寶劍於墓樹而去 從者曰 徐君已死 季子曰 不然 吾心許之 豈以死背吾心哉 雪峰慧空語錄序 禪衲竟編 烏焉成馬 念欲鏤正 以廣其傳 今始符所願 亦季子掛劒之義矣

계찰(季札) (576-484) 희성(姬姓)이며 이름은 찰이니 또 호칭이 공자찰ㆍ연릉계자ㆍ연주래계자ㆍ계자며 춘추 때 오왕 수몽의 넷째 아들. 연릉(지금의 상주)에 봉해졌으며 후에 또 주래에 봉해졌음. 전하기를 왕위를 피해 그의 집을 버리고 상주 무진 초계의 순과산 아래에서 경작했음. 계찰은 품덕이 고상하고 멀리 내다보는 탁월한 식견을 갖추어 있는 정치가며 또한 외교가였음 [백도백과]. 조정사원5. 계찰(季札) 사기(31) 연릉의 계자(季子)가 사신으로 나가 서()에 이르렀다(). 서군(徐君)이 계자의 검을 탐했다(). 계자가 마음에 그것을 허락했는데 및 회귀하매 서군이 이미 죽었다. 인해 보검을 무덤 가의 나무에 걸어 놓고 떠나자 종자가 가로되 서군은 이미 죽었습니다. 계자가 가로되 그렇지 않나니 내가 마음에 그것을 허락했거늘 어찌 죽었다 하여 나의 마음을 배신하리오. 설봉혜공어록서. 선납이 편집을 마쳤으나 오언(烏焉)이 마()를 이룬지라 생각하기를 바르게 새겨 그 전()을 광대하게 하리라 했는데 이제 비로소 소원에 부합하니 또한 계자(季子)가 검을 건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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