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三 雪竇祖英上 34 사호( 射虎)

태화당 2019. 9. 5. 09:22

射虎

西漢李廣 北平出獵 見草中石 以爲虎而射之 中石沒鏃 視之 石也 因復更射之 終不能入矣 又韓詩外傳 熊渠子夜行 見寢石似虎 彎弓射之 沒金飮羽 葛稚川西京雜記云 李廣與兄弟 共獵於冥山之北 見臥虎焉 射之一矢卽斃 斷其髑髏以爲枕 示服猛也 鑄銅像其形爲溲器 示猒辱之也 它日復獵於冥山之陽 又見臥虎 射之 矢飮羽 進而視之 乃石也 其形類虎 退而更射 鏃破簳折而石不傷 余嘗以問楊子雲 雲曰 至誠則金石爲開 予應之曰 昔人有遊東海者 旣而風惡 船漂不能制 船隨風浪莫知所之 一日一夜 得至一孤洲 共侶歡然 下石植纜 登洲煑食 食未熟而洲沒 在船者斫斷其纜 船復漂蕩 向者孤洲 乃大魚 怒棹揚鬣 吸波吐浪而去 疾如風雲 在洲上死者十餘人 又予所知陳縞 質木人也 入終南山採薪 還晚 趨舍未至 見張丞相墓前石馬 謂爲鹿也 卽以斧?之 斧缺柯折 石馬不傷 此二者亦至誠也 卒有沈溺缺斧之事 何金石所感之偏乎 子雲無以應 斃 音弊 頓化也 溲 所留切 小便也?字가 없으니 (칠 과)로 의심됨. 는 마땅히 로 지어야 함.

 

西漢(後漢)李廣北平에 사냥 나갔다가 풀 가운데의 돌을 보고 범으로 여겨 그것을 쏘았는데 돌에 적중하여 살촉이 잠겼다. 그것을 보매 돌이었다. 인해 다시 그것을 쏘았더니 마침내 능히 들어가지 않았다. 韓詩外傳(韓詩詩經四家의 하나인 漢代 燕韓嬰한 것. 毛詩가 성행하면서부터 점점 쇠약하여 지금은 겨우 韓故 韓內傳 韓說文 外傳 등이 전하여질 뿐임. 外傳은 본문 밖에 더 붙인 기록. 韓詩外傳卷六) 熊渠子夜行하다 누운 돌이 범과 같음을 보고 활을 당겨 그것을 쏘았다. 金鏃이 잠겼고 깃마저 삼켰다. 葛稚川(나라 葛洪稚川이며 抱朴子)西京雜記(漢代 劉歆著 東晉 葛洪輯抄 第五卷)에 이르되 李廣이 형제와 더불어 함께 冥山의 북쪽에서 사냥하다가 누운 범을 보았다. 그것을 쏘아 한 화살에 곧 죽였다. 髑髏(해골)를 절단해 베개로 삼았음은 맹수를 복종시킴을 보임이며 구리로 주조해 그 形象을 본떠 溲器(는 오줌 수)로 삼았음은 그것을 싫어해 욕보임을 보인 것이다. 다른 날에 다시 冥山(山南)에서 사냥하다가 또 누운 범을 보고 그것을 쏘았는데 화살의 깃마저 삼켰다. 나아가 그것을 보니 곧 돌이었으며 그 형상이 범과 유사했다. 물러나서 다시 쏘았는데 활촉이 깨어지고 화살대는 꺾어졌지만 돌은 손상되지 않았다. (劉歆) 일찍이 楊子雲(楊雄이니 子雲. 나라 成都 사람)에게 물으니 이 가로되 至誠이면 곧 金石도 열리게 된다. 내가 응대해 가로되 옛사람에 東海에 노닐은 자가 있었다. 이미 바람이 사나워 배는 漂流하여 능히 制御하지 못했으며 배가 풍랑을 따라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一日一夜 만에 한 孤洲(외딴 섬)에 이름을 얻어 동무들과 함께 歡然하며 돌을 내려 닻줄을 심었고 섬에 올라 밥을 끓였다. 밥이 익지도 않았는데 섬이 잠기므로 배에 있던 자가 그 닻줄을 斫斷했으며 배는 다시 漂蕩했다. 아까의 외딴 섬은 곧 大魚였으니 해 노질하며 갈기를 드날리며 파도를 마시고 물결을 토하면서 떠나는데 빠르기가 풍운 같았다. 섬 위에 있다가 죽은 자가 십여 인이었다. 또 내가 아는 바인 陳縞質木(評斷 評量이니 곧 나무를 鑑定)하는 사람이다. 終南山에 들어가 땔나무를 採集하다가 도리어 날이 저물었다. 집으로 달려가다가 이르지 않아서 張丞相 묘 앞의 石馬를 보고는 이르기를 사슴이로다 하고 곧 도끼로 그것을 쳤다. 도끼는 이가 빠지고 자루는 부러졌지만 석마는 하지 않았다. 이 둘도 또한 至誠이지만 마침내 沈溺(침몰해 잠김)缺斧(도끼의 이가 빠짐)의 일이 있거늘 어찌하여 金石所感이 편벽되는가. 子雲이 나에게 응대함이 없었다. 는 음이 폐니 頓化(문득 변화함). 所留切이니 소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