酩酊▶酩은 술 취할 명. 酊은 술 취할 정.
音茗鼎 醉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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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명정이니 취함이 심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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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皇
鳳皇山彊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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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강선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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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龍
師諱慧球 生泉州之蒲田 受業於龜洋 參於玄沙備 一日 問 如何是第一月 玄沙曰 用月作麽 師遂領旨 朱梁開平二年 玄沙示寂 遺言於閩師王氏 請居臥龍 爲第二世 亦曰中塔 後五年 不疾而終 號寂照禪師 閩師嘗問玄沙 繼師之道誰乎 玄沙曰 球子得▶師는 마땅히 帥로 지어야 함. 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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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는 慧球(?-913. 玄沙의 法嗣)며 천주의 포전에서 태어났다. 龜洋에서 受業하고 玄沙師備를 參했다. 어느 날 묻되 무엇이 이 第一月입니까. 현사가 가로되 달을 써서 무엇하려느냐. 스님이 드디어 지취를 領悟했다. 朱梁(五代의 後梁은 朱氏임) 開平二年908 현사가 示寂하면서 閩帥인 王氏(王審知니 在位 909-925)에게 유언해 청하여 臥龍에 거주하게 했으니 第二世가 되며 또한 가로되 中塔이다. 五年 후에 질병 없이 마쳤으며 호가 寂照禪師다. 閩帥가 일찍이 현사에게 묻되 스님의 도를 이을 자가 누구입니까. 현사가 가로되 球子(子는 助字)가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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巖頭
師諱全豁 泉州何氏子 剃頭受具 久習經律 晚游叢席自餘杭與雪峰欽山議參臨濟 屬濟亡 由仰山參德山 氣類相投 若合符節 晚結茅於洞庭之臥龍山 學者依焉 遭會昌沙汰 著襴衫 戴席帽 游諸聚落 乃於洞庭之別港 艤舟其下 兩岸置板 人欲過 卽扣板以召師 師舞橈요而渡之 未幾 牽復舊居 至僖宗光啓三年 賊宼中原 四海擾攘 師端居自若 俄被剚사刃 大叫一聲而終 僖宗諡淸嚴大師 剚 側吏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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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는 全豁(827-887. 德山宣鑑의 法嗣)이며 천주 何氏의 아들이다. 머리를 깎고 受具하고 경률을 오래 익혔다. 늦게서야 叢席에 游行했는데 餘杭으로부터 雪峰(義存이니 德山宣鑑의 法嗣) 欽山(文邃니 洞山良价의 法嗣)과 더불어 의논해 임제를 參하려 했으나 임제의 죽음에 속한지라 앙산을 경유하여 덕산을 참했고 氣類가 서로 투합함이 符節(예전에 돌이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들어 信標로 삼던 물건. 주로 使臣들이 가지고 다녔으며 둘로 갈라서 하나는 朝廷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다니면서 身分의 증거로 삼았음)을 합함과 같았다. 만년에 洞庭의 臥龍山에 茅庵을 엮자 학자가 依附했다. 會昌841-846의 沙汰를 만나자 襴衫을 입고 席帽를 쓰고 여러 聚落으로 游行하다가 이에 洞庭의 別港에서 그 아래 배를 대고(艤는 배 댈 의) 兩岸에 板을 안치했다. 사람이 지나가려면 곧 板을 두드려 스님을 불렀고 스님이 노를 저어 그를 건네 주었다. 얼마 안되어(未幾) 견인하여 舊居로 돌아왔다. 僖宗 光啓三年887에 이르러 도적이 中原을 겁탈하자 四海가 擾攘(擾는 시끄러울 요. 어지러울 요. 攘은 어지러울 양. 곧 한꺼번에 떠들어서 요란함)했다. 스님이 端正히 거처하며 自若했는데 갑자기 칼날에 꽂힘(剚는 칼 꽂을 사)을 입었으며 一聲을 크게 부르짖으며 마쳤다. 僖宗이 시호하여 淸嚴大師라 했다. 剚는 側吏切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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桚▶짓누를 찰.
子末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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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末切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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