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超宗】 陳郡陽夏人 南北朝宋著名的文人 生於宋文帝元嘉七年(430) 元嘉九年(432) 因謝靈運受到誣陷 全家被貶謫到廣州 元嘉三十年(453) 父親謝鳳去世後 才得返回都城建康 勤奮好學 具有文才 盛得名譽 宋孝武帝大爲贊賞 超宗殊有鳳毛 靈運復出矣 此爲鳳毛麟角之由來 [百度百科] ▲碧巖錄第十五則 南史云 宋時謝超宗 陳郡陽夏人 謝鳳之子
사초종(謝超宗) 진군 양하 사람. 남북조 송의 저명한 문인임. 송 문제 원가 7년(430)에 출생했고 원가 9년(432) 사영운(謝靈運)이 무함(誣陷)을 받음으로 인해 전가(全家)가 폄적(貶謫; 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을 보내던 일)을 입어 광주(廣州)에 이르렀음. 원가 30년(453) 부친 사봉(謝鳳)이 세상을 떠난 후 겨우 도성 건강(建康)으로 반회(返回)함을 얻었음. 근분(勤奮; 부지런히 노력함)하며 학문을 좋아했고 문재(文才)를 갖추어 있었으며 성대하게 명예를 얻었음. 송 효무제가 크게 찬상(贊賞)하되 초종(超宗)은 특수히 봉모(鳳毛)가 있나니 영운이 다시 출현했다. 이것이 봉모인각(鳳毛麟角)의 유래가 됨 [백도백과]. ▲벽암록 제15칙. 남사(南史)에 이르되 송시(宋時)의 사초종(謝超宗)은 진군 양하 사람이며 사봉(謝鳳)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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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聰】 元代臨濟宗僧 字無聞 汝州香山人 初參獨峰 看三不是話 同雲峰月山等六人立盟 互相究竟 復見無能敎 無方普 後逢鐵山瓊 方得穎脫 住汝州香嚴 至元中註金剛經 有紫雲瑞芝之應 [五燈全書五十七 金剛持驗下 續稽古略三]
사총(思聰) 원대 임제종승. 자는 무문(無聞)이며 여주 향산 사람. 처음엔 독봉을 참해 삼불시화(三不是話)를 간했음. 운봉ㆍ월산 등 6인과 함께 맹세를 세우고 호상 구경(究竟)했음. 다시 무능교ㆍ무방보를 참견했고 후에 철산경(鐵山瓊)을 만나 비로소 영탈(穎脫)을 얻었음. 여주 향엄에 거주했고 지원 중 금강경을 주(註)했는데 자운(紫雲)과 서지(瑞芝)의 감응이 있었음 [오등전서57. 금강지험하. 속계고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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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聰】 (1312-1381) 明代臨濟宗僧 字木庵 黃巖(浙江台州)謝氏 年十五從鄞靈峰汶祝髮 受具 歷謁天童平石砥 武林竹泉 靈隱竺田 登徑山依元叟行端典藏 後嗣竺原妙道(竺元妙道) 至太白 掩一室於蒙堂 終日禪誦 後出世里之洪佑 洪武二年(1369) 復住天童五年 受詔與兩浙高僧於鐘山校勘大藏經 事竣還山 退居東堂 因自號東院 [增集續傳燈錄六 康熙天童寺志三]
사총(司聰) (1312-1381) 명대 임제종승. 자는 목암이며 황암(절강 대주) 사씨. 나이 15에 은령봉문을 좇아 머리를 깎았고 수구(受具)했음. 천동 평석지ㆍ무림 죽천ㆍ영은 축전을 역알(歷謁)했음. 경산에 올라 원수행단에게 의지하며 전장(典藏; 장경을 맡음)했고 후에 축원묘도(竺原妙道; 竺元妙道)를 이었음. 태백에 이르러 몽당(蒙堂)에서 1실(室)을 잠그고 종일 선송(禪誦)했음. 후에 향리의 홍우에서 출세했음. 홍무 2년(1369) 다시 천동에 5년 동안 거주했음. 조칙을 받아 양절(兩浙)의 고승들과 더불어 종산(鐘山)에서 대장경을 교감(校勘)했고 일을 마치자 환산(還山)하였고 동당에 퇴거했으며 인하여 자호가 동원(東院)임 [증집속전등록6. 강희천동사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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