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氎】 寫於白氎之佛像也 ▲祖庭事苑六 寫氎 後漢永平十年乙丑(65 永平十年丁卯也 宗統編年作四年辛酉) 正月十五日 孝明帝夜夢金人 身長丈六 紫磨金色 頂有圓光 (中略)帝卽遣羽林郞秦景 博士王遵等一十四人迎佛敎 至大月氏國 果遇摩騰竺法蘭 以白氎畫釋迦像 幷四十二章經 載以白馬 及修多羅等敎 至永平十四年戊辰之歲(68 宗統編年作十一年)十二月三十日 摩騰達于洛陽 明晨 竺法蘭至 ▲古尊宿語錄三十龍門佛眼 釋迦如來出山像贊 雕檀寫氎 像未孩乳
사첩(寫氎) 백첩(白氎; 흰 모직물)에 베낀 불상임. ▲조정사원6. 사첩(寫氎) 후한 영평 10년 을축(65. 영평 10년은 정묘; 67임. 종통편년엔 4년 신유; 61로 지어졌음) 정월 15일 효명제(孝明帝)가 밤에 금인(金人)을 꿈꾸었는데 신장이 장6(丈六)이며 자마금색(紫磨金色; 치문경훈주中에 이르기를 類苑에 이르되 金의 우수한 것을 가로되 紫磨라 한다)이며 정수리에 원광이 있었다 (중략) 제(帝)가 곧 우림랑 진경(秦景)과 박사 왕준(王遵) 등 14인을 보내어 불교를 영입하게 했다. 대월지국(大月氏國)에 이르러 과연 마등(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났으며 백첩(白氎)으로 석가상(釋迦像)을 그리고 아울러 사십이장경을 백마(白馬)로써 실었으며 및 수다라(修多羅) 등의 교였다. 영평 14년 무진지세(戊辰之歲; 68. 종통편년엔 11年으로 지어졌음) 12월 23일 마등이 낙양에 도달했고 다음날 아침에 축법란이 이르렀다. ▲고존숙어록30 용문불안. 석가여래출산상찬 조단사첩(雕檀寫氎; 전단에 새기고 모직물에 베끼다)하니 불상이 해유(孩乳; 幼少)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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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祠牒】 祠部牒 ▲五燈會元十九象耳袁覺 郡守塡祠牒 誤作袁字 疑師慊然 戲謂之曰 一字名可乎 師笑曰 一字已多
사첩(祠牒) 사부첩(祠部牒). ▲오등회원19 상이원각(象耳袁覺) 군수가 사첩(祠牒; 祠部牒)을 전사(塡寫; 빈 칸에 써서 채워 넣음)하다가 잘못하여 원자(袁字)로 짓고는 스님의 겸연(慊然; 불만족의 뜻)을 의심하며 가로되 1자(字)의 이름도 옳겠습니까.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1자도 이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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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嗣淸】 ①宋代楊岐派僧 山陰(浙江紹興)于氏 字夢窗 居四明壽國 嗣法逕山浙翁如琰 [增集續傳燈錄二] ②宋代楊岐派僧 字簡庵 依淨慈師一受法 住袁州仰山 [增集續傳燈錄一 續燈存稾一]
사청(嗣淸) ①송대 양기파승. 산음(절강소흥) 우씨. 자는 몽창이며 사명 수국에 거주했으며 경산 절옹여염의 법을 이었음 [증집속전등록2]. ②송대 양기파승. 자는 간암이며 정자사일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원주 앙산에 거주했음 [증집속전등록1. 속등존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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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四諦) ☞ 사제(四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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