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衣】 一僧伽梨 卽大衣 重衣 雜碎衣 上街托鉢時 或奉召入王宮時所穿之衣 由九至二十五條布片縫製而成 又稱九條衣 二鬱多羅僧 卽上衣 中價衣 又稱入衆衣 爲禮拜聽講布薩時所穿用 由七條布片縫製而成 故又稱七條衣 三安陀會 卽著中衣 中宿衣 五條衣 爲日常工作時或就寢時所穿著之貼身衣 ▲緇門警訓七. 三衣者何 一曰 僧伽梨 謂之大衣 入聚應供登座說法則著之 二曰 欝多羅僧 謂之中衣 隨衆禮誦入堂受食則著之 三曰 安陀會 謂之下衣 道路往來寺中作務則著之 ▲天目明本雜錄中 古人三衣一鉢外 皆目之爲長物
삼의(三衣) 1. 승가리(僧伽梨; 梵 saṃghāṭī) 곧 대의(大衣)ㆍ중의(重衣)ㆍ잡쇄의(雜碎衣)니 길에 올라 탁발(托鉢)할 때나 혹은 부름을 받들어 왕궁에 들어갈 때 입는 바의 옷임. 9로부터 25조(條)에 이르기까지의 베조각으로 봉제(縫製)하여 만듦. 또 명칭이 9조의(九條衣)임. 2. 울다라승(鬱多羅僧; 梵 uttara-āsaṅga) 곧 상의(上衣)ㆍ중가의(中價衣)니 또 명칭이 입중의(入衆衣)임. 예배ㆍ청강(聽講)ㆍ포살(布薩)할 때 입는 바의 용도가 됨이니 7조(條)의 베조각을 봉제(縫製)하여 만들기 때문에 고로 또 명칭이 7조의(七條衣)임. 3. 안타회(安陀會; 梵 antarvāsa) 곧 착중의(著中衣)ㆍ중숙의(中宿衣)ㆍ5조의(五條衣)니 곧 일상의 공작(工作)할 때나 혹은 취침(就寢)할 때 입는 바의 첩신의(貼身衣)가 됨. ▲치문경훈7. 3의(衣)란 것은 무엇인가. 1은 가로되 승가리(僧伽梨)니 이를 일러 대의(大衣)라 한다. 취락(聚落)에 들어가 응공(應供)하거나 등좌(登座)하여 설법할 적에 곧 이것을 입는다. 2는 가로되 울다라승(欝多羅僧)이니 이를 일러 중의(中衣)라 한다. 대중을 따라 예송(禮誦)하거나 입당(入堂)하여 밥을 받을 때 곧 이것을 입는다. 3은 가로되 안타회(安陀會)니 이를 일러 하의(下衣)라 한다. 도로를 왕래하거나 사중(寺中)에서 작무(作務)할 적에 곧 이것을 입는다. ▲천목명본잡록중. 고인은 3의1발(三衣一鉢) 외엔 모두 이를 명목해 장물(長物; 불필요한 물건)이라 했다.
【三疑】 祖庭事苑五 三疑 我聞一唱 頓息三疑 一疑阿難轉身成佛 二疑它方佛來 三疑世尊再起說法 一唱 謂如是我聞也 ▲禪林類聚八 世尊滅後 諸聖弟子於畢鉢巖中結集法藏 阿難旣陞座 形儀與佛無殊 大衆遂生三疑 一疑阿難成佛 二疑佛再現身 三疑他方佛化 阿難唱云 如是我聞 衆疑皆息
삼의(三疑) 조정사원5. 3의(疑) 아문(我聞)이라고 한 번 창(唱)하매 문득 3의(疑)가 쉬어졌다. 1의(疑)는 아난이 몸을 전변(轉變)해 성불했는가. 2의는 다른 지방의 불타가 오셨는가. 3의는 세존이 재기(再起)하여 설법하시는가. 1창(唱)은 이르자면 여시아문(如是我聞)임. ▲선림류취8. 세존이 멸한 후에 모든 성제자(聖弟子)가 필발암(畢鉢巖) 가운데서 법장(法藏)을 결집했다. 아난이 이미 승좌하자 형의(形儀)가 불타와 다름이 없었다. 대중이 드디어 3의(疑)를 내었다. 1의(疑)은 아난이 성불했는가. 2의는 불타가 다시 현신(現身)하셨는가. 3의는 다른 지방의 불타가 화현(化現)하셨는가. 아난이 창(唱)해 이르되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 대중의 의심이 모두 식멸(熄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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