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844쪽

태화당 2019. 11. 12. 10:42

星火子星 比喩星狀物 多指細碎細小 或閃亮的東西 子 後綴 五燈全書九十五雪鑑意 冷燄堆頭星火子 爆開烈烈燼重樓

성화자(星火子) ()은 성상(星狀; 별 모양)의 물건에 비유함. 다분히 세쇄세소(細碎細小; 잘고 작음)하거나 혹 섬량(閃亮; 번쩍이며 밝음)의 동서(東西; 물건)를 가리킴. 자는 후철. 오등전서95 설감의. 냉염퇴두(冷燄堆頭; 차가운 불더미)의 성화자(星火子)가 폭개(爆開)하여 열렬(烈烈; 熱裂)하니 중루(重樓)가 회신(灰燼)했다.


城隍祖庭事苑六 城隍 音皇 說文 城池也 有水曰池 無水曰隍 古尊宿語錄二十海會演 法眼頌云 山水君居好 城隍我亦論 靜聞鐘角響 閑對白雲屯

성황(城隍) 조정사원6. 성황(城隍). 음이 황임. 설문 성지(城池). 물이 있음을 가로되 지()며 물이 없음을 가로되 황()이다. 고존숙어록20 해회연. 법안의 송에 이르되 산수는 그대가 거주하기 좋고/ 성황(城隍)은 내가 또한 논한다/ 고요히 종각(鐘角; 종과 畫角)의 음향을 듣고/ 한가히 백운의 둔취(屯聚)를 대한다.


城隍神爲民間傳說中 神界之地方司法官 而非佛敎供奉之神祇 俗謂仁人君子死後可主其事 每於祭典時出巡全境 前有謝必安(七爺) 范無救(八爺)二將軍爲其開道 此名詞出自周易城復于隍勿用師之句 初指保護城市之防禦工事 三國時 始建廟塑像 唐時已相當普遍 至明太祖更按京都 府 州 縣之城隍 依序晉封爲王 公 侯 伯等爵位 至淸代 則將祭祀城隍列入祀典 新官到任 竝得前往擧行就任奉告典禮 始行視事 據臺灣省通志禮俗篇載 淸朝視臺灣爲難治之區 故一入版圖 卽於府治設城隍廟 假借神道以補治化之不足 祖庭事苑七 城隍神問高(高中令)曰 汝更修何善 追贖過尤乎

성황신(城隍神) 민간 전설 중 신계(神界)의 지방 사법관이 되며 불교에서 공봉(供奉)하는 신기(神祇)가 아님. 세속에서 이르기를 인인(仁人)이나 군자가 사후에 가히 그 일을 주재한다 함. 매번 제전(祭典) 시에 나와서 전경(全境)을 순찰함. 앞에 사필안(謝必安; 七爺)과 범무구(范無救; 八爺) 두 장군이 있어 그를 위해 길을 엶. 이 명사는 주역(周易) 성복우황물용사(城復于隍勿用師; 성이 으로 돌아갔다면 軍師를 쓰지 말아라)란 구()로부터 나왔음. 처음은 성시(城市)를 보호하는 방어공사(防禦工事)를 가리켰는데 삼국 시 처음으로 묘()와 소상(塑像)을 세웠음. 당시(唐時)에 이미 상당히 보편(普遍)했고 명태조에 이르러 다시 경도(京都)ㆍ부()ㆍ주()ㆍ현()의 성황(城隍)을 안험하고 차례에 의해 왕()ㆍ공()ㆍ후()ㆍ백() 등의 작위를 진봉(晉封; 加封)했음. 청대에 이르자 곧 성황을 제사함을 가지고 사전(祀典; 제사를 지내는 禮典)에 열입(列入)했음. 신관(新官)이 도임(到任)하면 모두 앞으로 가서 취임의 봉고전례(奉告典禮)를 거행함을 얻고서야 비로소 시사(視事)를 행했음. 대만성통지(臺灣省通志) 예속편(禮俗篇)의 기재에 의거하면 청조(淸朝)에서 대만은 다스리기 어려움이 되는 구역으로 보았으므로 고로 한 번 판도(版圖)에 들어가면 곧 부치(府治)에 성황묘를 설치하고 신도(神道)를 가차(假借)하여 치화(治化)의 부족에 보충했음. 조정사원7. 성황신(城隍神)이 고(高中令)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다시 어떤 선()을 지어 따라서() 과우(過尤; 는 허물. 過誤)를 속죄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