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星火子】 星 比喩星狀物 多指細碎細小 或閃亮的東西 子 後綴 ▲五燈全書九十五雪鑑意 冷燄堆頭星火子 爆開烈烈燼重樓
성화자(星火子) 성(星)은 성상(星狀; 별 모양)의 물건에 비유함. 다분히 세쇄세소(細碎細小; 잘고 작음)하거나 혹 섬량(閃亮; 번쩍이며 밝음)의 동서(東西; 물건)를 가리킴. 자는 후철. ▲오등전서95 설감의. 냉염퇴두(冷燄堆頭; 차가운 불더미)의 성화자(星火子)가 폭개(爆開)하여 열렬(烈烈; 熱裂)하니 중루(重樓)가 회신(灰燼)했다.
【城隍】 祖庭事苑六 城隍 音皇 說文 城池也 有水曰池 無水曰隍 ▲古尊宿語錄二十海會演 法眼頌云 山水君居好 城隍我亦論 靜聞鐘角響 閑對白雲屯
성황(城隍) 조정사원6. 성황(城隍). 음이 황임. 설문 성지(城池)다. 물이 있음을 가로되 지(池)며 물이 없음을 가로되 황(隍)이다. ▲고존숙어록20 해회연. 법안의 송에 이르되 산수는 그대가 거주하기 좋고/ 성황(城隍)은 내가 또한 논한다/ 고요히 종각(鐘角; 종과 畫角)의 음향을 듣고/ 한가히 백운의 둔취(屯聚)를 대한다.
【城隍神】 爲民間傳說中 神界之地方司法官 而非佛敎供奉之神祇 俗謂仁人君子死後可主其事 每於祭典時出巡全境 前有謝必安(七爺) 范無救(八爺)二將軍爲其開道 此名詞出自周易城復于隍勿用師之句 初指保護城市之防禦工事 三國時 始建廟塑像 唐時已相當普遍 至明太祖更按京都 府 州 縣之城隍 依序晉封爲王 公 侯 伯等爵位 至淸代 則將祭祀城隍列入祀典 新官到任 竝得前往擧行就任奉告典禮 始行視事 據臺灣省通志禮俗篇載 淸朝視臺灣爲難治之區 故一入版圖 卽於府治設城隍廟 假借神道以補治化之不足 ▲祖庭事苑七 城隍神問高(高中令)曰 汝更修何善 追贖過尤乎
성황신(城隍神) 민간 전설 중 신계(神界)의 지방 사법관이 되며 불교에서 공봉(供奉)하는 신기(神祇)가 아님. 세속에서 이르기를 인인(仁人)이나 군자가 사후에 가히 그 일을 주재한다 함. 매번 제전(祭典) 시에 나와서 전경(全境)을 순찰함. 앞에 사필안(謝必安; 七爺)과 범무구(范無救; 八爺) 두 장군이 있어 그를 위해 길을 엶. 이 명사는 주역(周易) 성복우황물용사(城復于隍勿用師; 성이 隍으로 돌아갔다면 軍師를 쓰지 말아라)란 구(句)로부터 나왔음. 처음은 성시(城市)를 보호하는 방어공사(防禦工事)를 가리켰는데 삼국 시 처음으로 묘(廟)와 소상(塑像)을 세웠음. 당시(唐時)에 이미 상당히 보편(普遍)했고 명태조에 이르러 다시 경도(京都)ㆍ부(府)ㆍ주(州)ㆍ현(縣)의 성황(城隍)을 안험하고 차례에 의해 왕(王)ㆍ공(公)ㆍ후(侯)ㆍ백(伯) 등의 작위를 진봉(晉封; 加封)했음. 청대에 이르자 곧 성황을 제사함을 가지고 사전(祀典; 제사를 지내는 禮典)에 열입(列入)했음. 신관(新官)이 도임(到任)하면 모두 앞으로 가서 취임의 봉고전례(奉告典禮)를 거행함을 얻고서야 비로소 시사(視事)를 행했음. 대만성통지(臺灣省通志) 예속편(禮俗篇)의 기재에 의거하면 청조(淸朝)에서 대만은 다스리기 어려움이 되는 구역으로 보았으므로 고로 한 번 판도(版圖)에 들어가면 곧 부치(府治)에 성황묘를 설치하고 신도(神道)를 가차(假借)하여 치화(治化)의 부족에 보충했음. ▲조정사원7. 성황신(城隍神)이 고(高中令)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다시 어떤 선(善)을 지어 따라서(追) 과우(過尤; 尤는 허물. 곧 過誤)를 속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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