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763쪽

태화당 2019. 12. 10. 09:37

存獎(830-888) 五代後唐臨濟宗僧 孔子後裔 流寓甘泉縣 初硏敎旨 聞臨濟義玄盛化滹沱 乃往親依 有省得法 未幾轉謁三聖慧然 魏府大覺 後住大明府興化院 學子甚衆 大闡祖道 寂謚廣濟禪師 [傳燈錄十二 廣燈錄十二] 宗統編年十六 唐僖宗戊申文德元年(888) 臨濟第二世魏州興化廣濟祖寂 注云 堯封潛正訛記曰 景德傳燈錄 魏府興化存獎禪師 爲後唐莊宗師 莊宗一日謂師曰 朕收大梁 得一顆明珠 未有人酬價 師曰 請陛下珠看 帝以手舒開幞頭脚 師曰 君王之寶 誰敢酬價 碑文 師化於文德元年七月十二日 唐僖宗文德元年戊申(888) 去後唐莊宗同光元年癸未(923) 凡三十六年 則非莊宗明矣

존장(存獎) (830-888) 오대 후당(後唐)의 임제종승. 공자(孔子)의 후예(後裔)니 감천현(甘泉縣)에 유입(流入)하여 살았음. 처음엔 교지(敎旨)를 연구하다가 임제의현(臨濟義玄)이 호타(滹沱)에서 성화(盛化)한다 함을 듣고 이에 가서 친히 의지하다가 깨침이 있어 득법(得法)했음. 얼마 안되어 삼성혜연(三聖慧然)ㆍ위부대각(魏府大覺)을 옮겨가며 참알(參謁)했고 뒤에 대명부(大明府) 흥화원(興化院)에 거주했음. 배우는 제자가 매우 많았으며 조도(祖道)를 크게 열었음. 입적하자 광제선사(廣濟禪師)로 시호했음 [전등록12. 광등록12]. 종통편년16. () 희종(僖宗) 무신(戊申) 문덕원년(文德元年; 888) 임제 제2세 위주흥화광제조(魏州興化廣濟祖)가 입적했다. ()에 이르기를 요봉잠(堯封潛)의 정와기(正訛記)에 가로되 경덕전등록 위부흥화존장선사(魏府興化存獎禪師)는 후당 장종(莊宗)의 스승이 되었다. 장종이 어느 날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짐이 대량(大梁)을 거두면서 한 알의 명주(明珠)를 얻었는데 값을 매길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청컨대 폐하(陛下)의 구슬을 보여 주십시오. ()가 손으로 복두(; 冠帽의 하나)의 다리를 열었다. 스님이 가로되 군왕(君王)의 보배를 누가 감히 값을 매기겠습니까 했다. 비문(碑文)에 스님은 문덕원년(文德元年) 712일에 화()했다 했으니 당() 희종(僖宗) 문덕원년무신(文德元年戊申. 888)에서 후당 장종 동광원년계미(同光元年癸未; 922)와의 떨어짐이 무릇 36년이다. 곧 장종이 아님이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