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璉】 宋代楊岐派僧 合州(重慶合川)董氏 兒時出家 晦跡南嶽二十年 居思大三生藏 因號璉三生 嗣潭州大潙山善果 歷住報恩 福嚴 玉泉 匾其室曰窮谷 劉琦鎭荊南 曾往參問 [五燈會元二十 續燈正統六]
종련(宗璉) 송대 양기파승. 합주(중경 합천) 동씨. 아동일 때 출가했고 남악에 회적(晦跡)하기 20년이었는데 사대(思大)의 삼생장(三生藏)에 거주한지라 인하여 호가 연삼생(璉三生)임. 담주 대위산 선과(善果)를 이었고 보은ㆍ복엄ㆍ옥천을 역주(歷住)했음. 그 실(室)에 현판(懸板; 匾)해 가로되 궁곡(窮谷)이라 했음. 유기(劉琦)가 형남을 진수(鎭守)하면서 일찍이 가서 참문했음 [오등회원20. 속등정통6].
【從璉】 宋代黃龍派僧 居泉州淸化院 嗣東林常總 [續燈錄十九]
종련(從璉) 송대 황룡파승. 천주 청화원에 거주했고 동림상총을 이었음 [속등록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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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縱令】 設令 縱然 ▲祖堂集十四百丈 若不能任摩得 縱令誦得十二圍陁經 只成增上慢 卻是謗佛 不是修行
종령(縱令) 설령. 종연(縱然). ▲조당집14 백장. 만약 능히 이렇게 얻지 못하면 종령(縱令) 12위타경(圍陁經)을 송득(誦得)하더라도 다만 증상만(增上慢)을 이루며 도리어 이는 방불(謗佛)이니 이 수행이 아니다.
【宗令】 宗門之命令 ▲廣燈錄三十靈鳳惠端 祖師宗令 如斯提唱
종령(宗令) 종문의 명령. ▲광등록30 영봉혜단. 조사의 종령(宗令)을 이와 같이 제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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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雷】 宗炳 雷次宗 白蓮社客也 宗炳 字少文 善琴書 累辟不起 衡陽王至其廬 命之角巾布衣 引見不拜 王曰 屈先生重祿可乎 曰 祿如腐草 衰盛幾何 嘗游荊巫衡岳 晩年畫圖於室 曰 吾老矣 名山不可再覩 唯澄懷觀道 臥以遊之 撫琴動操 欲令衆山皆響 雷次宗 字仲倫 立館東林僧房 宋文帝徵至都 立學於雞籠山 主生員百餘人 久之 復還社中 [祖庭事苑三 同四] ▲明覺語錄六 和酬郞簽判殿丞 向國心存了了身 大方無外且同塵 江城早晩重相見 解笑宗雷十八人
종뢰(宗雷) 종병(宗炳)과 뇌차종(雷次宗)이니 백련사객(白蓮社客)임. 종병은 자가 소문(少文)이며 금서(琴書)를 잘했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일어나지 않았음. 형양왕이 그의 오두막에 이르러 그에게 명하여 각건(角巾)과 포의로 인견(引見)케 했지만 절하지 않았음. 왕이 가로되 중록(重祿)으로 선생을 굽히려 하는데 가(可)합니까. 가로되 녹(祿)은 부초(腐草)와 같거늘 얼마나 쇠성(衰盛)하겠습니까. 일찍이 형무(荊巫; 형산과 무산)와 형악(衡岳)을 유람했고 만년에 실내에 화도(畫圖; 그림을 그리다)하고 가로되 내가 늙었다. 명산을 가히 다시 보지 못하리니 오직 징회관도(澄懷觀道)하리라. 누워 거기에 유람하면서 무금동조(撫琴動操;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움직여 操縱함)하여 뭇 산에 다 울리게 하려고 했음. 뇌차종은 자가 중륜이며 동림(東林)의 승방(僧房)에 집을 세웠는데 송문제(宋文帝)가 불러 경도에 이르러 계롱산에 학사(學舍)를 세우고 생원 백여 인을 주재(主宰)했음. 오래되자 다시 사중(社中)으로 귀환했음 [조정사원3, 동4]. ▲명각어록6. 화수낭첨판전승(和酬郞簽判殿丞) 나라를 향한 마음이 존재하고 요료(了了)한 몸이니/ 대방(大方)은 무외(無外)라 다만 티끌과 같다/ 강성(江城)에서 조만(早晩)에 거듭 상견한다면/ 종뢰(宗雷) 18인을 웃을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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