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782쪽

태화당 2019. 12. 10. 09:50

宗隆(?-1542) 明代臨濟宗僧 俗姓賈 字大休 益都(今屬山東)人 依本郡石佛寺出家 後寓成都北寺爲典座 一日出街挑水 忘乎所以 忽頭撞壁有省 遂赴河南乾明寺謁無盡海 呈其所得 遂蒙印證 出主隨州(今屬湖北)七尖峰 垂三關語 以示學者 [五燈全書六十]

종륭(宗隆) (?-1542) 명대 임제종승. 속성은 가()며 자는 대휴니 익도(지금 산동에 속함) 사람. 본군(本郡) 석불사에 의지해 출가했음. 후에 성도 북사에 우거(寓居)하며 전좌(典座)가 되었음. 어느 날 거리로 나가 물을 들어올리다가 소이(所以)를 잊었는데 홀연히 머리가 벽에 부딪히면서 성찰이 있었음. 드디어 하남 건명사에 다다라 무진해(無盡海)를 예알하고 그의 소득을 보이자 드디어 인증을 받았음. 출세해 수주(지금 호북에 속함) 칠첨봉을 주지(主持)했음. 3관어(三關語)를 내려 학자에게 보였음 [오등전서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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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泐(1318-1391) 明初臨濟宗僧 臺州(浙江臨海)人 俗姓周 字季潭 號全室 八歲 就杭州淨慈寺笑隱大訢學法 十四歲剃度 二十歲受具足戒 大訢於金陵龍翔集慶寺(天界寺)開山時 師隨行之 而嗣其法 初主水西寺 後移住中天竺 雙徑等寺 明初 蒙詔住天界寺 奉敕與如玘撰楞伽經注解四卷 般若心經注解 及金剛般若經注解各一卷 竝點檢大藏經 製作讚佛樂章等 洪武十年(1377) 求法西域 得莊嚴寶王經及文殊經等 十五年歸朝 任同年所創設之僧祿司右善世 掌理天下之僧敎 以受朝臣嫉害 乃建圓通庵隱退 二十四年示寂於江浦石佛寺 壽七十四 著作除上述者外 尙有全室外集一卷 全室槀一卷等 [五燈嚴統二十二 金陵梵刹志一 十六 淨慈寺志十 十九 釋氏稽古略續集二]

종륵(宗泐) (1318-1391) 명초 임제종승. 대주(절강 임해) 사람이며 속성은 주며 자는 계담이며 호는 전실(全室). 8세에 항주 정자사 소은대흔(笑隱大訢)에게 나아가 학법(學法)했고 14세에 체도(剃度)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대흔이 금릉 용상집경사(龍翔集慶寺; 天界寺)에서 개산(開山)할 때 스님이 그를 수행하고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은 수서사를 주지(主持)했고 후에 중천축ㆍ쌍경 등 사원으로 이주했고 명초 조칙을 받아 천계사에 주()했음. 봉칙하여 여기(如玘)와 릉가경주해 4권ㆍ반야심경주해 및 금강반야경주해 각 1권을 찬()했고 아울러 대장경을 점검하고 찬불악장(讚佛樂章) 등을 제작했음. 홍무 10(1377) 서역으로 구법(求法)했는데 장엄보왕경 및 문수경 등을 얻고 15년 귀조(歸朝)했음. 동년에 창설한 바의 승록사우선세(僧祿司右善世)에 임명되어 천하의 승교(僧敎)를 장리(掌理)했는데 조신(朝臣)의 질해(嫉害)를 받았으므로 이에 원통암을 건립하여 은퇴했음. 24년 강포 석불사에서 시적했으니 나이는 74. 저작에 상술(上述)한 것을 제한 밖에 오히려 전실외집 1권과 전실고 1권 등이 있음 [오등엄통22. 금릉범찰지1, 16. 정자사지19. 석씨계고략속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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