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805쪽

태화당 2019. 12. 10. 10:54

宗純(1394-1481) 日本臨濟宗奇僧 法名宗純 字一休 號狂雲子 初名周建 好詠狂歌 不拘威儀 又善書畫 六歲出家 初於建仁寺習詩文 後至近江(滋賀縣)堅田之華叟宗曇處參學 承其印可 其後放曠漫遊 行止無定 所至廣交各階層人士 奇行爲時人所週知 師致力於改革當時孤立之禪風 使趨向大衆化 八十一歲時嗣法爲大德寺之第四十七世 致力振興此寺 並將茶道引入寺院 形成與其他禪寺不同之寺風 於日本文明十三年入寂 享壽八十八 後人集其詩集爲狂雲集 此外 另有佛鬼軍 一休法語等書行世

종순(宗純) (1394-1481) 일본 임제종 기승(奇僧). 법명은 종순이며 자는 일휴(一休)며 호는 광운자(狂雲子)니 처음 이름은 주건이었음. 광가(狂歌)를 잘 읊었으며 위의에 구애되지 않았고 또 서화(書畫)를 잘했음. 6세에 출가했고 처음에 건인사에서 시문을 익혔고 후에 근강(近江; 滋賀縣) 견전(堅田)의 화수종담(華叟宗曇)의 처소에 이르러 그의 인가를 받았음. 그 후 방광만유(放曠漫遊)하며 행지(行止)에 정함이 없었음. 이르는 곳마다 각 계층의 인사와 널리 교류했고 기행(奇行)은 시인(時人)이 두루 아는 바가 되었음. 스님은 당시 고립의 선풍을 개혁하여 대중화로 추향(趨向)하게 함에 치력(致力; 힘을 들임)했음. 81세 시 사법(嗣法)하여 대덕사(大德寺)의 제47세가 되었고 이 사원의 진흥에 치력(致力)했으며 아울러 다도(茶道)를 가지고 사원에 인입(引入)하여 기타 선사(禪寺)와 같지 아니한 사풍(寺風)을 형성했음. 일본 문명 13년에 입적했고 향수(享壽)88. 후인이 그의 시를 모아 편집해 광운집을 만들었음. 이 밖에 따로 불귀군ㆍ일휴법어 등 서책이 있어 행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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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襲五代僧 福建人 雪峰義存之高足 後行化浙中 吳越王欽服道化 命居杭州大錢山闡法 學者紛至 大振宗風 世稱大錢禪師 [傳燈錄十九 五燈會元七]

종습(從襲) 오대승. 복건 사람. 설봉의존(雪峰義存)의 고족(高足). 후에 절중(浙中)에 행화(行化)했는데 오월왕이 도화(道化)에 흠복(欽服)했고 명하여 항주 대전산에 거주하며 천법(闡法)하게 했음. 학자가 분지(紛至)했고 종풍을 대진(大振)했으니 세칭이 대전선사(大錢禪師) [전등록19. 오등회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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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乘各宗所弘之宗義及敎典云宗乘 多爲禪門及淨土門標稱自家之語 雲門廣錄上 問 學人有疑請師不責 從上宗乘事作麽生 師云 三拜不虛 碧巖錄第二則 直饒棒如雨點 喝似雷奔 也未當得向上宗乘中事

종승(宗乘) 각종(各宗)에서 홍포(弘布)하는 바의 종의(宗義)와 및 교전(敎典)을 종승이라고 말함. 다분히 선문(禪門)과 및 정토문(淨土門)에서 자가(自家)의 말을 표칭(標稱)함임. 운문광록상. 묻되 학인이 의심이 있으니 청컨대 스님은 책망하지 마십시오.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의 일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3배함이 헛되지 않으리라. 벽암록 제2. 직요(直饒; 가령. 卽使) ()이 우점(雨點; 빗방울)과 같고 할()이 뇌분(雷奔)과 같더라도 또한 향상의 종승(宗乘) 중의 일에 당득(當得)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