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鍾情】 禪林疏語考證三 鍾情 晉王衍甞喪幼子 山簡弔之 衍悲不自勝 簡曰 懷抱中物何至於此 衍曰 聖人忘情 最下不及情 然則情之所鍾正在我輩 簡服其言 更爲之慟 ▲禪林疏語考證三 鍾情祖母痛歸地府之幽 歸命慈尊願荷覺天之庇
종정(鍾情) 선림소어고증3. 종정(鍾情; 感情을 專注함) 진(晉) 왕연(王衍)이 일찍이 유자(幼子)를 상실(喪失)했다. 산간(山簡)이 그것을 조문했다. 왕연이 슬픔을 스스로 이기지 못했다. 산간이 가로되 회포(懷抱) 중의 물건을 어찌하여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왕연이 가로되 성인(聖人)은 망정(忘情; 정을 잊다)하고 최하의 사람은 정에 미치지 못하나니(不及情) 그러한 즉 정의 소종(所鍾; 鍾은 모으다)은 바로 아배(我輩)에게 있다. 산간이 그 말에 탄복하며 다시 그를 위해 통곡했다. ▲선림소어고증3. 종정(鍾情)의 조모는 애통하게 지부(地府)의 유명(幽冥)으로 돌아가셨으니 자존(慈尊)에게 귀명하며 각천(覺天)의 비호(庇護)를 하담(荷擔)하기를 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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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正】 宋代楊岐派僧 潼川郪縣(四川三台)人 居懷安雲頂 嗣法圓悟克勤 [普燈錄十四]
종정(宗正) 송대 양기파승. 동천 처현(사천 삼태) 사람. 회안 운정에 거주했고 원오극근의 법을 이었음 [보등록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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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鍾鼎家】 鍾鳴鼎食之家 鍾鳴鼎食 直意爲豪門貴族吃飯時要奏樂擊鍾 用鼎盛各種食品來吃 ▲祖庭事苑三 寒山子詩云 (중략)寄語鍾鼎家 虛名定無益
종정가(鍾鼎家) 명종정식지가(鍾鳴鼎食之家)니 명종정식이란 직의(直意)는 호문귀족(豪門貴族)이 밥을 먹을 때 음악을 연주하고 종을 울리고 솥을 사용하여 각종 식품을 담아 와서 먹음이 됨. ▲조정사원3. 한산자 시에 이르되 (중략) 종정가(鍾鼎家)에게 말을 기탁하노니 허명은 반드시 무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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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正少卿】 官名 北齊設立宗正寺 宗正改稱宗正寺卿或宗正卿 副官稱宗正少卿 掌管皇族事務 管理皇族宗族外戚的譜牒 守護皇族陵廟 唐代宗正寺管理道士僧侶 隋唐兩宋相沿 爲九寺之一 遼朝爲特里袞 金朝爲判大宗正事 元朝爲大宗正府 明淸爲宗人府 不再屬於九寺 [百度百科] ▲居士分燈錄下張九成 紹興初 成狀元及第 授鎭東軍簽判 遷著作郞 未幾 除宗正少卿兼刑部侍郞
종정소경(宗正少卿) 벼슬 이름. 북제(北齊)에서 종정시(宗正寺)를 설립하고 종정(宗正)을 개칭하여 종정시경(宗正寺卿) 혹 종정경이라 했고 부관을 일컬어 종정소경(宗正少卿)이라 했음. 황족의 사무를 장관하고 황족ㆍ종족ㆍ외척의 보첩(譜牒)를 관리하고 황족의 능묘를 수호했음. 당대(唐代) 종정시는 도사와 승려를 관리했음. 수ㆍ당 양조(兩宋)가 상연(相沿)했으며 9시(寺)의 하나가 됨. 요조(遼朝)에선 특리곤(特里袞)이라 했고 금조(金朝)에선 판대종정사(判大宗正事)라 했음. 명ㆍ청에선 종인부(宗人府)라 했고 다시 9시(寺)에 속하지 않았음 [백도백과]. ▲거사분등록하 장구성. 소흥 초 장원급제를 성취했고 진동군 첨판에 제수(除授)되었다가 저작랑(著作郞)으로 옮겼으며 오래지 않아 종정소경(宗正少卿) 겸형부시랑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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