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891쪽

태화당 2019. 12. 11. 08:00

周幽周幽王姬宮湦(795-771 在位前781-771) 姬姓 名宮湦(一作宮生) 周宣王姬靜之子 母姜后 西周第十二代君主 前七七一年 犬戎攻入西周都城鎬京 殺死姬宮湦 西周滅亡 姬宮湦死後 諡號幽王 諸侯共同擁立其子姬宜臼繼位 是爲周平王 史稱東周 [百度百科] 禪林寶訓音義 周幽 名宮涅() 宣王之子 謚法 壅遏不通曰幽 殆政虐民 遂致岐山自崩 山川水竭 得褒人女名褒姒以寵之 乃貶申后 幷太子宜臼 褒姒不好笑 於驪山擧火 戲媚褒姒之笑 後申侯怒 召犬戎殺於驪山之下 禪林寶訓一 桀紂幽厲昔之人主也 今以其人而比之 而人皆怒

주유(周幽) 주유왕(幽王) 희궁생(姬宮湦; 795-771. 재위 781-771)이니 희성(姬姓)이며 이름은 궁생(宮湦; 한편으론 宮生으로 지음). 주선왕 희정의 아들이니 모친은 강후(姜后)며 서주 제12대 군주. () 771년 견융(犬戎)이 서주 도성 호경(鎬京)을 공입(攻入)하여 희궁생을 죽였으며 서주가 멸망했음. 희궁생이 죽은 후 시호가 유왕(幽王). 제후가 공동으로 그 아들 희의구(姬宜臼)를 옹립해 계위(繼位)하게 했으니 이것이 주평왕이 되며 사칭(史稱)이 동주(東周)[백도백과]. 선림보훈음의. 주유(周幽) 이름이 궁열(宮涅; 으로 의심됨)이며 선왕의 아들이다. 시법(謚法) 옹알(壅遏)하여 통하지 않음을 가로되 유(). 태정학민(殆政虐民; 위태한 정치에 인민을 학대함)했고 드디어 기산(岐山)이 스스로 붕괴되고 산천의 물이 고갈됨에 이르렀다. 포인(褒人)의 여자를 얻었는데 이름이 포사(褒姒)며 그를 총애했다. 이에 신후(申后)와 아울러 태자 의구(宜臼)를 폄출(貶黜)했다. 포사가 웃는 걸 좋아하지 않자 여산(驪山)에 봉화를 들어올려 희롱으로 포사의 웃음에 아첨했다. 후에 신후가 노하여 견융(犬戎)을 불러들여 여산의 아래에서 죽였다. 선림보훈1. 걸주유려(桀紂幽厲)는 옛적의 인주(人主)지만 여금에 그 사람으로 비교하면 사람이 다 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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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由周由者也之略 圓悟語錄七 直下便是 更不周由

주유(周由) 주유자야의 약칭. 원오어록7. 직하에 곧 옳으니 다시 주유(周由)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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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由者也謂言語紛繁迂曲 亦作周遊者也 者也周由 五燈會元八三角志操 僧問 敎法甚多 宗歸一貫 和尙爲甚麽說得許多周由者也 師曰 爲你周由者也

주유자야(周由者也) 이르자면 언어가 분번(紛繁)하고 우곡(迂曲). 또한 주유자야(周遊者也)ㆍ자야주유(者也周由)로 지음. 오등회원8 삼각지조. 중이 묻되 교법이 매우 많지만 종()은 일관(一貫)으로 돌아가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허다한 주유자야(周由者也)를 설해 얻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네가 주유자야(周由者也)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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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遊者也卽周由者也 傳燈錄二十三三角志操 僧問 敎法甚多 宗歸一貫 和尙爲什麽說得許多周遊者也 師曰 爲爾周遊者也

주유자야(周遊者也) 곧 주유자야(周由者也). 전등록23 삼각지조. 중이 묻되 교법이 매우 많지만 종()은 일관(一貫)으로 돌아가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허다한 주유자야(周遊者也)를 설해 얻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네가 주유자야(周遊者也)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