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970쪽

태화당 2019. 12. 12. 08:57

中仁(?-1179) 宋代楊岐派僧 洛陽人 字拗堂 少投東京奉先院出家 宣和(1119-1125)初年賜牒 於慶基殿落髮 受具足戒後 恆往來三藏譯經所 諦窮經論 然於宗門則未之能信 其時圜悟克勤居天寧寺 有大名聲 師前往參 叩問之間 克勤劈口擊之 因墜一齒 遂大悟 留侍不去 請問無間 後開法於大覺寺 又遷中竺 復徙靈峰 淳熙元年(1174) 召入內殿問法 稱旨 於淳熙六年入寂 [續燈正統二 釋氏疑年錄八]

중인(中仁) (?-1179) 송대 양기파승. 낙양 사람이며 자는 요당(拗堂). 소년에 동경 봉선원에 투입해 출가했고 선화(1119-1125) 초년(初年) 사첩(賜牒)하여 경기전(慶基殿)에서 낙발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 항상 삼장역경소에 왕래하며 경론을 자세히 궁구했으나 그러나 종문엔 곧 능히 믿지 못했음. 그때 원오극근(圜悟克勤)이 천녕사에 거주했는데 큰 명성이 있었음. 스님이 앞으로 가서 참알하여 고문(叩問)하는 사이, 극근이 입에다 쳤는데 인하여 1()가 추락하면서 드디어 대오했음. 유시(留侍)하며 떠나지 않았고 청문(請問)하면서 간단(間斷)이 없었음. 후에 대각사에서 개법했고 또 중축으로 옮겼으며 다시 영봉으로 이사했음. 순희 원년(1174) 불러 내전에 들어가 문법(問法)했고 칭지(稱旨)했음. 순희 6년에 입적했음 [속등정통2. 석씨의년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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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分金剛經註正訛云 初日分者早晨 中日分者日午 後日分者晚間 日有六時 擧此以該終日耳 金剛經 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 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亦以恒河沙等身布施 五燈會元二十蒙庵思岳 曰 如何是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 師曰 築著磕著

중일분(中日分) 금강경주정와에 이르되 초일분(初日分)이란 것은 조신(早晨; 이른 새벽)이며 중일분(中日分)이란 것은 일오(日午; 正午)며 후일분(後日分)이란 것은 만간(晚間)이다. 하루에 6()가 있으니 이를 들어 종일을 해라(該羅)한다. 금강경. 초일분에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하고 중일분(中日分)에 다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하고 후일분에 또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한다. 오등회원20 몽암사악. 가로되 무엇이 이 중일분(中日分)에 다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함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축착개착(築著磕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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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慈對僧衆的尊稱 密菴語錄 久立 衆慈 伏惟珍重

중자(衆慈) 승중에 대한 존칭. 밀암어록. 구립(久立)했다. 중자(衆慈), 복유컨대 진중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