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45쪽

태화당 2019. 12. 13. 08:37

知方謂明悟禪法 虛堂語錄七 僧歸越 露激風摶岸草秋 攬衣何處上蘭舟 無方始是知方者 莫傚支師泥沃洲

지방(知方) 이르자면 선법을 밝게 깨침. 허당어록7. 승귀월(僧歸越) 이슬이 세차고 바람이 후려치는() 안초(岸草)의 가을에/ 옷을 잡아당겨 어느 곳에서 난주(蘭舟)에 오르나/ 무방(無方)이라야 비로소 이 지방자(知方者)/ 지사(支師; 支遁), 옥주(沃洲; 산 이름)에 구니(拘泥)됨을 본받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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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方眼悟道者的法眼 南石文琇語錄四 送南維那 佛未生時下一槌 刻舟求劍不勝遲 脚頭幸有知方眼 肯學尋常擿埴兒

지방안(知方眼) 오도자의 법안. 남석문수어록4. 송남유나(送南維那) 부처가 탄생하지 아니한 때 일추(一槌)를 내리더라도/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 더딤을 이기지 못한다/ 각두(脚頭)에 다행히 지방안(知方眼)이 있거늘/ 어찌() 심상의 적식아(擿埴兒; 장님처럼 지팡이로 땅을 더듬어 가는 자)에게 배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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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方漢明悟禪法者 宗門拈古彚集二十七 夾山若是個知方漢 必然明牕下安排

지방한(知方漢) 선법을 밝게 깨친 자. 종문염고휘집27. 협산이 만약 이 지방한(知方漢)이라면 필연코 명창 아래 안배했으리라.


紙背紙的反面 傳燈錄二十八藥山惟儼 更有一般底 只向紙背上記持言語 多被經論惑

지배(紙背) 종이의 반면(反面; 뒷면. 이면). 전등록28 약산유엄. 다시 일반의 것이 있어 다만 지배(紙背) 위를 향해 언어를 기지(記持)하여 다분히 경론의 혹란을 입는다.


智伯荀瑤(-453) 卽知襄子 又稱知瑤(智瑤) 後世多稱知伯(智伯) 知伯瑤(智伯瑤) 由於智氏出於荀氏 故左傳又稱之荀瑤 姬姓 知()氏 春秋時期晉國卿大夫 智氏家族領主 他於公元前四七五年 成爲晉國執政 此後欲滅同列卿位的趙魏韓三家 並取代晉國 乃威脅魏韓二家 於公元前四五五年 共同對趙氏發動晉陽之戰 此後趙襄子派人向魏韓陳說利害 魏韓因而與趙氏聯合 反攻智氏 智伯被趙襄子擒殺 智氏就此衰落 [互動百科] 祖庭事苑六 史記 預讓 義士也 先仕晉卿范中行 後被智伯滅之 讓轉仕智伯 智伯被趙襄子所滅

지백(智伯) 순요(荀瑤; -453)니 곧 지양자(知襄子). 또 호칭이 지요(知瑤; 智瑤)며 후세에 다분히 지백(知伯; 智伯)ㆍ지백요(知伯瑤; 智伯瑤)라 일컬음. 지씨(智氏)가 순씨(荀氏)에서 나옴으로 인해 고로 좌전에 또 그를 일컬어 순요라 했음. 희성(姬姓)이며 지(; )씨니 춘추시기 진국(晉國) 경대부(卿大夫)며 지씨 가족의 영주(領主)였음. 그는 공원전 475년 진국 집정(執政)이 되었고 차후에 동열(同列) 경위(卿位)의 조위한(趙魏韓) 3()를 없애고 아울러 진국을 취대(取代)하려고 했음. 이에 위한(魏韓) 2가를 위협하여 공원전 455년 공동으로 조씨(趙氏)에 대해 진양지전(晉陽之戰)을 발동(發動)했음. 차후에 조양자(趙襄子)가 사람을 파견해 위한(魏韓)을 향해 이해를 진설(陳說)했고 위한이 이로 인해 조씨와 연합하여 지씨(智氏)를 반공(反攻)했음. 지백은 조양자에게 사로잡혀 살해됨을 입었고 지씨는 바로 이에서 쇠락했음 [호동백과]. 조정사원6. 사기 예양(預讓)은 의사(義士). 먼저 진경(晉卿)인 범중행(范中行)에게 벼슬했는데 후에 지백(智伯)에게 멸망함을 입었다. 예양이 옮겨 지백에게 벼슬했는데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에게 멸망하는 바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