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祗候】 恭敬地探測 祗 只也 正也 廣雅 祗 適也 爾雅 祗 敬也 正字通 祗與祇通 候 探測 觀察 ▲禪門拈頌集第四四○則 趙州訪道吾 吾見來 著豹皮裩 把吉撩棒 在三門前等候 纔見師來 便高聲唱喏而立 師云 小心祗候著 吾又唱喏一聲而去
지후(祗候) 공경지(恭敬地)에서 탐측(探測)함. 지(祗)는 지(只)임. 정(正)임. 광아 지(祗) 적(適)이다. 이아 지(祗) 경(敬)이다. 정자통 지(祗)와 지(祇)는 통한다. 후(候)는 탐측(探測). 관찰. ▲선문염송집 제440칙. 조주가 도오를 방문했다. 도오가 오는 것을 보고는 표피곤(豹皮裩)을 입고 길료방(吉撩棒)을 잡고 삼문 앞에 있으면서 등후(等候)했다. 겨우 스님이 오는 걸 보고는 바로 고성으로 야(喏; 인사하는 소리)를 부르고 섰다. 스님이 이르되 소심(小心)하여 지후(祗候)하라. 도오가 또 한 소리 야(喏; 대답하는 말 낙. 인사하는 소리 야)를 부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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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祇候】 猶祗候 ▲羅湖野錄下 演曰 記得在那裏相見來 顯曰 全火祇候
지후(祇候) 지후(祗候)와 같음. ▲나호야록하. 연(演; 法演)이 가로되 나리(那裏)에서 상견했는지 기득(記得)하는가. 현(顯)이 가로되 전화(全火; 全員)가 지후(祇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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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暉】 (873-956) 五代後唐曹洞宗僧 洛陽咸秦人 俗姓高 年少時偶遊佛寺 誓志出家 遂禮圭峰溫剃度 後又謁高安本仁(嗣良价) 嗣其法 未久回洛陽 於溫室院施藥救衆 後梁開平五年(911) 歸返圭峰之終南舊居 師一日閑步 於巖岫間睹數珠 銅甁 察笠等前生道器 欲就地建寺以酬昔因 當除草開基時 有祥雲蔽日 屯於峰頂久而不散 因之呼爲重雲山 谷中猛獸皆自引去 潭中蛟龍亦徙他所 後唐明宗賜長興之額 道化頗盛 後周顯德三年示寂 壽八十四 [宋高僧傳二十八 傳燈錄二十]
지휘(智暉) (873-956) 오대 후당 조동종승. 낙양 함진 사람이며 속성은 고. 연소할 때 우연히 불사(佛寺)에 놀러갔다가 출가를 서지(誓志; 서원을 발하며 뜻을 세움)했음. 드디어 규봉온을 예알하고 체도(剃度)했고 후에 또 고안본인(高安本仁; 양개를 이었음)을 참알하여 그의 법을 이었음. 오래지 않아 낙양으로 회귀하여 온실원(溫室院)에서 약을 시여하며 중인(衆人)을 구제했음. 후량 개평 5년(911) 규봉의 종남 구거(舊居)로 귀반(歸返)했음. 스님이 어느 날 한가히 걷다가 암수(巖岫; 석굴) 사이에서 수주(數珠)ㆍ동병(銅甁)ㆍ찰립(察笠) 등 전생의 도기(道器)를 보았고 바로 그 땅에 사원을 세워 석인(昔因)을 갚았음. 제초(除草)하여 개기(開基)할 때에 당하여 상운(祥雲)이 있어 해를 가렸고 봉정에 주둔하여 오래되어도 흩어지지 않는지라 이로 인해 중운산(重雲山)으로 호칭했음. 계곡 속의 맹수들이 모두 스스로 인솔해 떠났고 못 속의 교룡(蛟龍)도 또한 다른 곳으로 이사갔음. 후당 명종이 장흥이란 편액을 주었고 도화(道化)가 자못 흥성했음. 후주 현덕 3년에 시적했고 나이는 84 [송고승전28. 전등록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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