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135쪽

태화당 2019. 12. 13. 10:40

祗候恭敬地探測 祗 只也 正也 廣雅 祗 適也 爾雅 祗 敬也 正字通 祗與祇通 候 探測 觀察 禪門拈頌集第四四則 趙州訪道吾 吾見來 著豹皮裩 把吉撩棒 在三門前等候 纔見師來 便高聲唱喏而立 師云 小心祗候著 吾又唱喏一聲而去

지후(祗候) 공경지(恭敬地)에서 탐측(探測). ()는 지(). (). 광아 지() ()이다. 이아 지() ()이다. 정자통 지()와 지()는 통한다. ()는 탐측(探測). 관찰. 선문염송집 제440. 조주가 도오를 방문했다. 도오가 오는 것을 보고는 표피곤(豹皮裩)을 입고 길료방(吉撩棒)을 잡고 삼문 앞에 있으면서 등후(等候)했다. 겨우 스님이 오는 걸 보고는 바로 고성으로 야(; 인사하는 소리)를 부르고 섰다. 스님이 이르되 소심(小心)하여 지후(祗候)하라. 도오가 또 한 소리 야(; 대답하는 말 낙. 인사하는 소리 야)를 부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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祇候猶祗候 羅湖野錄下 演曰 記得在那裏相見來 顯曰 全火祇候

지후(祇候) 지후(祗候)와 같음. 나호야록하. (; 法演)이 가로되 나리(那裏)에서 상견했는지 기득(記得)하는가. ()이 가로되 전화(全火; 全員)가 지후(祇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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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暉(873-956) 五代後唐曹洞宗僧 洛陽咸秦人 俗姓高 年少時偶遊佛寺 誓志出家 遂禮圭峰溫剃度 後又謁高安本仁(嗣良价) 嗣其法 未久回洛陽 於溫室院施藥救衆 後梁開平五年(911) 歸返圭峰之終南舊居 師一日閑步 於巖岫間睹數珠 銅甁 察笠等前生道器 欲就地建寺以酬昔因 當除草開基時 有祥雲蔽日 屯於峰頂久而不散 因之呼爲重雲山 谷中猛獸皆自引去 潭中蛟龍亦徙他所 後唐明宗賜長興之額 道化頗盛 後周顯德三年示寂 壽八十四 [宋高僧傳二十八 傳燈錄二十]

지휘(智暉) (873-956) 오대 후당 조동종승. 낙양 함진 사람이며 속성은 고. 연소할 때 우연히 불사(佛寺)에 놀러갔다가 출가를 서지(誓志; 서원을 발하며 뜻을 세움)했음. 드디어 규봉온을 예알하고 체도(剃度)했고 후에 또 고안본인(高安本仁; 양개를 이었음)을 참알하여 그의 법을 이었음. 오래지 않아 낙양으로 회귀하여 온실원(溫室院)에서 약을 시여하며 중인(衆人)을 구제했음. 후량 개평 5(911) 규봉의 종남 구거(舊居)로 귀반(歸返)했음. 스님이 어느 날 한가히 걷다가 암수(巖岫; 석굴) 사이에서 수주(數珠)ㆍ동병(銅甁)ㆍ찰립(察笠) 등 전생의 도기(道器)를 보았고 바로 그 땅에 사원을 세워 석인(昔因)을 갚았음. 제초(除草)하여 개기(開基)할 때에 당하여 상운(祥雲)이 있어 해를 가렸고 봉정에 주둔하여 오래되어도 흩어지지 않는지라 이로 인해 중운산(重雲山)으로 호칭했음. 계곡 속의 맹수들이 모두 스스로 인솔해 떠났고 못 속의 교룡(蛟龍)도 또한 다른 곳으로 이사갔음. 후당 명종이 장흥이란 편액을 주었고 도화(道化)가 자못 흥성했음. 후주 현덕 3년에 시적했고 나이는 84 [송고승전28. 전등록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