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9책(ㅊㅍ)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9책(ㅊㅋㅌㅍ) 674쪽

태화당 2019. 12. 21. 11:24

太忙生生 助詞 白雲守端廣錄二 雲在嶺頭閒不徹 水流澗下太忙生

태망생(太忙生) 생은 조사. 백운수단광록2. 구름은 영두(嶺頭)에 있으면서 한가함이 사무쳤으나(不徹; 은 조사) 물은 개울 아래 흐르면서 매우 바쁘다(太忙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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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命一朝廷的命令 二舊時敬稱他人的囑托 仁勇語錄 知府龍圖 特垂台命

태명(台命) 1. 조정의 명령. 2. 구시에 타인의 촉탁(囑托)의 경칭(敬稱). 인용어록. 지부(知府)의 용도(龍圖; 龍圖閣)에서 특별히 태명(台命)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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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廟是中國古代皇帝的宗廟 太廟在夏朝時稱爲世室 殷商時稱爲重屋 周稱爲明堂 秦漢時起稱爲太廟 最早太廟只是供奉皇帝先祖的地方 後來皇后和功臣的神位在皇帝的批准下 也可以被供奉在太廟 [百度百科] 五燈會元十六法泉佛慧 僧問 古人說不到處 請師說 師曰 夫子入太廟

태묘(太廟) 이는 중국 고대 황제의 종묘(宗廟). 태묘는 하조(夏朝) 시엔 일컬어 세실(世室)이라 했고 은상(殷商) 시엔 일컬어 중옥(重屋)이라 했고 주()에선 일컬어 명당(明堂)이라 했고 진한(秦漢) 시에 비로소 태묘(太廟)로 호칭했음. 최조(最早)의 태묘는 다만 이 황제의 선조를 공봉(供奉)하는 지방(地方)이었고 후래에 황후와 공신(功臣)의 신위도 황제의 비준 아래에서 또한 가이(可以) 태묘에서 공봉(供奉)을 입었음 [백도백과]. 오등회원16 법천불혜. 중이 묻되 고인이 설하여 이르지 못한 곳을, 스님의 설을 청합니다. 스님이 가로되 부자(夫子)가 태묘(太廟)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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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戊商之第九代王 雍己弟 以伊隲爲相 亳有祥 桑穀共生于朝 一暮大拱 大戊問於伊隲 隲曰 妖不勝德 君之政其有闕歟 太戊於是修先王之政 明養老之禮 早朝晏退 問疾弔喪 三日而祥枯死 三年遠方重譯 而至者七十六國 有賢臣巫咸臣扈等 共輔佐之 商道復興 號稱中宗 在位七十五年 [釋氏稽古略一] 禪門拈頌集第一二七則智海淸 君不見 周公輔成王兮 合穗呈祥 大戊興殷湯兮 拱把修德

태무(太戊) ()의 제9대왕(第九代王)이며 옹기의 동생이니 이척(伊隲)을 재상으로 삼았음. ()에 상(; 재앙)이 있었으니 상곡(桑穀; 뽕나무와 닥나무)이 조정(朝廷)에 함께 났는데 하룻밤에 크기가 아름()이었음. 태무가 이척에게 묻자 이척이 가로되 요()가 덕을 이기지 못합니다. 주군의 정치에 그 궐()함이 있는가 합니다. 태무가 이에 선왕의 정치를 닦고 양로의 예()를 밝혔음. 조조안퇴(早朝晏退; 일찍 朝會하고 늦게 퇴근)하고 문질조상(問疾弔喪; 병자를 문병하고 喪事에 조문)했더니 3일 만에 상(; 재앙)이 고사(枯死)했으며 3년 만에 원방(遠方)에서 중역(重譯)하며 이른() 것이 76국이었음. 현신(賢臣) 무함(巫咸)ㆍ신호(臣扈) 등이 있어 함께 보좌했고 상도(商道)가 부흥했으며 호칭하기를 중종(中宗)이라 했음. 재위 75[석씨계고략1]. 선문염송집 제1207칙 지해청. 그대가 보지 못하는가 주공이 성왕(成王)을 보필하매 합수(合穗)가 상서를 보였고 태무(大戊; 太戊)가 은탕(殷湯)을 일으키면서 공파(拱把)하여 덕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