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9책(ㅊㅍ)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9책(ㅊㅋㅌㅍ) 676쪽

태화당 2019. 12. 21. 11:26

太伯】 ①有道禪師的尊稱 祖堂集六投子 沙彌便問 和尙與摩道 意作摩生 趙州云 遇著个太伯 沙彌歸 擧似師 便大笑 又稱泰伯 見泰伯 鐔津文集六 文王太伯其同道者哉

태백(太伯) 도가 있는 선사의 존칭. 조당집6 투자. 사미가 곧 묻되 화상의 이러한 말씀은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이르되 태백(太伯)을 만났다. 사미가 돌아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곧 크게 웃었다. 또 명칭이 태백(泰伯)이니 태백(泰伯)을 보라. 심진문집6. 문왕과 태백(太伯)은 그 동도자(同道者)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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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白唐 李白(701-762) 字太白 詳見李白 禪門拈頌集第三一二則 心聞賁頌 風月山川共一家 誰來語下定龍蛇 太白不曾登便殿 筆頭昨夜自生花

태백(太白) 당 이백(701-762)의 자가 태백이니 상세한 것은 리백(李白)을 보라. 선문염송집 제312. 심문분이 송하되 풍월과 산천이 함께 일가(一家)/ 누가 와서 어하(語下)에 용사(龍蛇)를 정하는가/ 태백(太白)이 일찍이 편전(便殿)에 오르지 않았어도/ 붓 끝에서 어젯밤 절로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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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伯一作太伯 姬姓 周部落首領古公亶父長子 周代諸侯國吳國第一代君主 釋氏稽古略一云 吳 泰伯弟虞仲之後也 初古公亶父(大王也) 長子曰泰伯 次曰虞仲 少曰季歷(王季也) 季歷生昌(文王也) 昌生有聖瑞 泰伯虞仲知古公欲立季歷以傳昌 乃亡如荊蠻 文身斷髮以讓季歷 是曰勾吳 號爲吳泰伯 無子 虞仲生季簡 季簡生叔達 叔達生周章 武王克殷求其後得周章 時已君吳矣 因封之於吳(今浙西道平乃路揚州之域也) 祖庭事苑四 泰伯端委而治 故無慙德 仲雍翦髮文身 從俗致化

태백(泰伯) 한편으론 태백(太伯)으로 지음. 희성(姬姓)이며 주부락(周部落)의 수령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장자며 주대(周代) 제후국 오국(吳國)의 제1대 군주임. 석씨계고략1에 이르되 오()는 태백(泰伯)의 동생 우중(虞仲)의 후손이다. 처음에 고공단보(古公亶父; 大王也)의 장자는 가로되 태백(泰伯)이며 차자는 가로되 우중(虞仲)이며 막내는 가로되 계력(季歷; 王季也)이다. 계력이 창(; 文王也)을 낳았고 창은 태어나자 성서(聖瑞)가 있었다. 태백과 우중이, 고공(古公)이 계력을 세워 창에게 전하려고 함을 알고 이에 망명하여 형만(荊蠻)으로 가서 문신단발(文身斷髮)하고 계력에게 양보했다. 이를 가로되 구오(勾吳)니 호하여 오태백(吳泰伯)이라 했다. 자식이 없었고 우중이 계간(季簡)을 낳았고 계간이 숙달(叔達)을 낳았고 숙달이 주장(周章)을 낳았다. 무왕이 은()에 이기자 그 후손을 구하여 주장을 얻었는데 당시에 이미 오()의 군주였다. 인하여 오에 봉했다(지금의 浙西道 平乃路 揚州의 지역임). 조정사원4. 태백(泰伯)은 단정히 맡겨 다스리게 했으므로 고로 덕에 부끄러울 게 없지만 중옹(仲雍; 古公亶父次子虞仲인데 어떤 책엔 仲雍이라 했음)은 머리카락을 깎고 문신(文身)하여 풍속을 좇아 교화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