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慧恭】 (820-903) 唐代僧 俗姓羅 福州(今屬福建)人 十七歲擧進士 游終南山奉日寺 見祖師遺像 頓生道心 遂求出家 二十二受戒 後嗣德山宣鑒 景福(892-893)中 南游天台 州牧杜雄爲其于紫凝山創立瑞龍院 禪侶四集 成大叢林 天復三年癸亥十二月 加趺瞑目儼然而化 春秋八十四 僧夏六十二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六]
혜공(慧恭) (820-903) 당대승. 속성은 나(羅)며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17세에 진사에 선발되었음. 종남산 봉일사를 유람하다가 조사의 유상(遺像)을 보고 문득 도심(道心)이 생겨 드디어 출가를 구했고 22에 수계했고 후에 덕산선감(德山宣鑒)을 이었음. 경복(892-893) 중 천태로 남유(南游)했는데 주목(州牧) 두웅이 그를 위해 자응산에 서룡원을 창립했고 선려(禪侶)가 사방에서 모여 대총림을 이루었음. 천복 3년 계해 12월 가부하고 눈을 감고 엄연(儼然)히 화(化)했음. 춘추는 84며 승하(僧夏)는 62 [송고승전12. 전등록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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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空】 ①(1100-1162) 宋代黃龍派僧 又作惠空 字東山 福州(今屬福建)陳氏 年十四圓具 遊諸方 遍謁耆宿 紹興二十三年(1153) 開法雪峰 嗣法泐潭善淸 遠近緇素 景仰敬羨 有語錄與東山外集行世 [統要續集二十一 五燈會元十八 續傳燈錄二十三] ②(1106-1176) 宋代楊岐派僧 號中庵 贛城(江西贛州)蔡氏 少爲書生 年三十六投郡之觀音院落髮 歷參仰山祖 翠巖燈 徑山杲 皆蒙印可 後抵敎忠 侍晦庵彌光 一日入室 聞擧女子出定話大悟 紹興十九年(1149) 光移住龜山 囑空繼席 遷大安及崇福 歷寓雪峰東庵 洋嶼雲門 末居法石 [普燈錄二十一 續傳燈錄三十四] ③淸代臨濟宗尼僧 鄞縣(今屬浙江)王氏 年三十三 辭俗出家 初參念佛是誰 苦無入處 因謁天童通奇 乃得徹悟 住四明薜蘿庵 [五燈全書九十七 續比丘尼傳四]
혜공(慧空) ①(1100-1162) 송대 황룡파승. 또 혜공(惠空)으로 지음. 자는 동산(東山)이며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진씨. 나이 14에 원구(圓具)했고 제방을 유행하면서 기숙(耆宿)을 편알(遍謁)했음. 소흥 23년(1153) 설봉에서 개법했고 늑담선청(泐潭善淸)의 법을 이었음. 원근의 치소(緇素)가 경앙(景仰)하고 경선(敬羨)했음. 어록과 동산외집이 있어 행세함 [통요속집21. 오등회원18. 속전등록23]. ②(1106-1176) 송대 양기파승. 호는 중암(中庵)이며 공성(강서 공주) 채씨. 소년에 서생(書生)이 되었고 나이 36에 군(郡)의 관음원에 투입하여 낙발(落髮)했음. 앙산조ㆍ취암등ㆍ경산고를 역참(歷參)했고 모두 인가를 받았음. 후에 교충(敎忠)에 이르러 회암미광(晦庵彌光)을 모셨는데 어느 날 입실하여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를 듦을 듣다가 대오했음. 소흥 19년(1149) 미광이 귀산으로 이주하면서 혜공에게 계석(繼席)하라고 부촉했음. 대안 및 숭복으로 옮겼고 설봉 동암ㆍ양서 운문을 역우(歷寓)했고 마지막에 법석에 거주했음 [보등록21. 속전등록34]. ③청대 임제종 니승. 은현(지금 절강에 속함) 왕씨. 나이 33에 속가에 고별하고 출가했음. 처음은 염불시수(念佛是誰)를 참했고 애를 썼으나 입처가 없었음. 천동통기(天童通奇)를 참알함으로 인해 이에 철오를 얻었고 사명 벽라암에 주(住)했음 [오등전서97. 속비구니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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