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386쪽

태화당 2019. 12. 29. 09:19

蹊蹺亦作蹊蹻 指奇怪 可疑 或不平正 又指花樣 奧妙 祖欽語錄四 維摩 尫羸面孔 蹊蹺肚膓 憂愁苦惱 詐病在床 說離生死妙法 一默無雙

혜교(蹊蹺) 또한 혜교(蹊蹻)로 지음. 기괴ㆍ가의(可疑) 혹 불평정(不平正)을 가리킴. 또 화양(花樣)ㆍ오묘(奧妙)를 가리킴. 조흠어록4. 유마(維摩) 왕리(尫羸; 쇠약함)한 면공(面孔)이며/ 혜교(蹊蹺)의 두장(肚膓)이니/ 우수하고 고뇌하며/ 꾀병으로 병상에 있다/ 생사를 여의는 묘법을 설함은/ 일묵(一默)이 무쌍(無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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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球(?-913) 五代閩僧 泉州莆田(福建莆田)人 又稱中塔 於龜洋山出家 玄沙師備法嗣 師備示寂後 繼之主持福州臥龍山安國院 於五代後梁乾化三年示寂 署號寂照禪師 [傳燈錄二十一]

혜구(慧球) (?-913) 오대 민승(閩僧). 천주 보전(복건 보전) 사람이며 또 명칭이 중탑(中塔). 귀양산에서 출가했고 현사사비(玄沙師備)의 법사니 사비가 시적한 후 이어서 복주 와룡산 안국원을 주지(主持)했음. 오대 후량 건화 3년 시적했고 서호(署號)는 적조선사 [전등록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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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懃(1059-1117) 又作慧勤 宋代楊岐派僧 舒州(安徽)人 俗姓汪 字佛鑑 自幼師事廣敎圓深 後參五祖法演 竝爲其法嗣 曾應舒州太守孫鼎臣之請 住持太平山興國禪院 法道大播 徽宗政和(1111-1118)初年 師應詔住汴京智海寺 經五年乞歸 得旨居建康蔣山 樞密鄧子常上奏 賜師紫衣 竝賜佛鑑禪師之號 政和七年入寂 壽五十九 與佛果克勤佛眼淸遠 同被譽爲五祖法演門下之三佛 [佛祖歷代通載十九 釋氏稽古略四 五燈會元十九]

혜근(慧懃) (1059-1117) 또 혜근(慧勤)으로 지으며 송대(宋代) 양기파승. 서주(舒州; 安徽)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왕()이며 자()는 불감(佛鑑). 어릴 적부터 광교원심(廣敎圓深)을 사사(師事)했고 후에 오조법연(五祖法演)을 참알(參謁)해 아울러 그의 법사(法嗣)가 되었음. 일찍이 서주태수(舒州太守) 손정신(孫鼎臣)의 요청에 응해 태평산(太平山) 흥국선원(興國禪院)에 주지(住持)하면서 법도(法道)를 크게 퍼뜨렸음. 휘종(徽宗) 정화(政和; 1111-1118) 초년(初年)에 스님이 조칙(詔勅)에 응해 변경(汴京) 지해사(智海寺)에 주()했고 5년이 경과하자 걸귀(乞歸)했고 성지(聖旨)를 얻어 건강(建康) 장산(蔣山)에 거주했음. 추밀(樞密) 등자상(鄧子常)이 상주(上奏)해 스님에게 자의(紫衣)를 주었으며 아울러 불감선사(佛鑑禪師)란 호를 주었음. 정화(政和) 7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59. 불과극근(佛果克勤)ㆍ불안청원(佛眼淸遠)과 함께 오조법연문하(五祖法演門下)의 삼불(三佛)이란 명예를 입었음 [불조역대통재19. 석씨계고략4. 오등회원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