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慧命】 指佛敎法脉 智慧是佛敎的生命 故稱慧命 ▲元賢廣錄三十 大道惟公 法無偏黨 後世妄生人我 割截虗空 嗣臨濟者 謗曹洞 嗣曹洞者 謗臨濟 破滅法門 自喪慧命 豈不深可痛哉
혜명(慧命) 불교의 법맥을 가리킴. 지혜는 이 불교의 생명인지라 고로 혜명이라 일컬음. ▲원현광록30. 대도는 오직 공평(公平)하고 법은 편당(偏黨; 일변에 편향함)이 없다. 후세에 인아(人我)를 망령되이 생기(生起)해 허공을 할절(割截)하여 임제를 이은 자는 조동을 비방하고 조동을 이은 자는 임제를 비방하면서 법문을 파멸하고 스스로 혜명(慧命)을 상실(喪失)하니 어찌 깊이 가통(可痛; 가히 痛歎)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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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明】 見慧明 五祖弘忍法嗣 後避慧能上字 改名道明
혜명(惠明) 혜명(慧明)을 보라. 5조 홍인의 법사며 후에 혜능(慧能)의 상자(上字)를 피해 도명으로 개명했음.
【慧明】 ①又作惠明 五祖弘忍法嗣道明之本名 詳見道明 ②五代法眼宗僧 錢塘人 俗姓蔣 幼年出家 初習經敎 長而慕禪 歷訪閩越諸尊宿 後於臨川參法眼文益 未久嗣其法 遂隱於鄞水(浙江)大梅山 遷於天台 四方緇素趨之 錢塘忠懿王聞其道風 特延內殿與之論道 深得玄旨 兩度命師駐錫資崇院 杭州報恩院 於後周世宗顯德年間(954-959)示寂 壽七十餘 [宋高僧傳二十三 傳燈錄二十五] ③宋代法眼宗僧 亦作惠明 字延珊 筠陽(今屬四川)張氏 年十三出家 二十受具 居杭州景德靈隱寺 嗣法靈隱文勝 [廣燈錄三十 續傳燈錄十三] ④宋代黃龍派僧 字解空 居紹興石佛 嗣法雲蓋守智 [普燈錄六] ⑤(1318-1386) 明代臨濟宗僧 黃巖(浙江台州)夏(一說項)氏 號性原 別號幻隱 出家於寶冠寺 後至徑山參謁元叟行端(楊岐下八世) 竝嗣其法 洪武五年(1372) 奉太祖之召 於鍾山大宣宗法 洪武十一年 住持杭州靈隱寺 洪武十九年 師蒙讒受誣 有司未及緝令 師卽自投官府 當場宣法說偈而泰然入寂 世壽六十九 [五燈會元續略四 增集續傳燈錄四 續釋氏稽古略二] ⑥(1337-1411) 日本曹洞宗僧 相模(神奈川縣)糟谷人 姓藤原 號了菴 幼遊鎌倉建長寺 從建長寺之不聞契聞得度 乃遍歷諸方 先後參謁永澤寺之通幻寂靈 總持寺之峨山韶碩等禪林尊宿 而於峨山處豁然契悟 其後嗣通幻之法 歷住總寧寺 總持寺 永澤寺 龍泉寺等名刹 應永元年(1394) 於相模創建大雄山最乘寺 晩年結庵於大雄山下 應永十八年示寂 世壽七十五 著有天童小參抄點破 諸嶽二代峨山和尙行實等 [洞上聯燈錄三 延寶傳燈錄八 本朝高僧傳三十八]
혜명(慧明) ①또 혜명(惠明)으로 지음. 5조 홍인의 법사 도명의 본명이니 상세한 것은 도명(道明)을 보라. ②오대 법안종승. 전당 사람이며 속성은 장. 유년에 출가했고 처음 경교를 학습했고 장성하자 모선(慕禪)하여 민월(閩越)의 여러 존숙을 역방(歷訪)했음. 후에 임천(臨川)에서 법안문익(法眼文益)을 참했고 오래지 않아 그의 법을 이었음. 드디어 은수(鄞水; 절강) 대매산에 은거하다가 천태로 옮겼음. 사방의 치소(緇素)가 추향(趨向)했고 전당(錢塘) 충의왕이 그 도풍을 듣고 특별히 내전으로 연청(延請)하여 그와 도를 논했고 깊이 현지(玄旨)를 얻었음. 두 차례 스님에게 명하여 자숭원과 항주 보은원에 주석(駐錫)했음. 후주 세종 현덕년 간(954-959) 시적했고 나이는 70여 [송고승전23. 전등록25]. ③송대 법안종승. 또 혜명(惠明)으로 지음. 자는 연산(延珊)이며 균양(지금 사천에 속함) 장씨. 나이 13에 출가했고 20에 수구(受具)했고 항주 경덕 영은사에 거주했고 영은문승(靈隱文勝)의 법을 이었음 [광등록30. 속전등록13]. ④송대 황룡파승. 자는 해공(解空)이며 소흥 석불에 거주했고 운개수지(雲蓋守智)의 법을 이었음 [보등록6]. ⑤(1318-1386) 명대 임제종승. 황암(절강 태주) 하(夏; 일설에 項)씨며 호는 성원(性原)이며 별호는 환은(幻隱). 보관사에서 출가했고 후에 경산에 이르러 원수행단(元叟行端; 양기하 8세)을 참알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홍무 5년(1372) 태조의 부름을 받들어 종산(鍾山)에서 종법(宗法)을 대선(大宣)했음. 홍무 11년 항주 영은사에 주지했고 홍무 19년 참소(讒訴)를 입어 무고(誣告)를 받자 유사(有司)가 즙령(緝令; 체포의 명령)에 미치지 아니한 전에 스님이 곧 스스로 관부(官府)에 투입하여 당장(當場)에서 선법설게(宣法說偈)하고 태연히 입적했으니 세수는 69 [오등회원속략4. 증집속전등록4. 속석씨계고략2]. ⑥(1337-1411) 일본 조동종승. 상모(相模; 신나천현) 조곡 사람. 성은 등원이며 호는 요암(了菴). 어릴 적에 겸창 건장사를 유람하다가 건장사의 불문계문을 좇아 득도(得度)했음. 이에 제방을 편력하면서 선후로 영택사의 통환적령(通幻寂靈)ㆍ총지사의 아산소석(峨山韶碩) 등 선림의 존숙을 참알했고 아산의 처소에서 활연(豁然)히 계오했고 그 후 통환의 법을 이었음. 총녕사ㆍ총지사ㆍ영택사ㆍ용천사 등 명찰을 역주(歷住)했고 응영 원년(1394) 상모(相模)에 대웅산 최승사를 창건했음. 만년에 대웅산 아래 결암(結庵)했고 응영 18년 시적했음. 세수는 75. 저서에 천동소참초점파ㆍ제악이대아산화상행실이 있음 [동상연등록3. 연보전등록8. 본조고승전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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