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401-402쪽

태화당 2019. 12. 29. 09:29

慧命指佛敎法脉 智慧是佛敎的生命 故稱慧命 元賢廣錄三十 大道惟公 法無偏黨 後世妄生人我 割截虗空 嗣臨濟者 謗曹洞 嗣曹洞者 謗臨濟 破滅法門 自喪慧命 豈不深可痛哉

혜명(慧命) 불교의 법맥을 가리킴. 지혜는 이 불교의 생명인지라 고로 혜명이라 일컬음. 원현광록30. 대도는 오직 공평(公平)하고 법은 편당(偏黨; 일변에 편향함)이 없다. 후세에 인아(人我)를 망령되이 생기(生起)해 허공을 할절(割截)하여 임제를 이은 자는 조동을 비방하고 조동을 이은 자는 임제를 비방하면서 법문을 파멸하고 스스로 혜명(慧命)을 상실(喪失)하니 어찌 깊이 가통(可痛; 가히 痛歎)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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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明見慧明 五祖弘忍法嗣 後避慧能上字 改名道明

혜명(惠明) 혜명(慧明)을 보라. 5조 홍인의 법사며 후에 혜능(慧能)의 상자(上字)를 피해 도명으로 개명했음.


慧明】 ①又作惠明 五祖弘忍法嗣道明之本名 詳見道明 五代法眼宗僧 錢塘人 俗姓蔣 幼年出家 初習經敎 長而慕禪 歷訪閩越諸尊宿 後於臨川參法眼文益 未久嗣其法 遂隱於鄞水(浙江)大梅山 遷於天台 四方緇素趨之 錢塘忠懿王聞其道風 特延內殿與之論道 深得玄旨 兩度命師駐錫資崇院 杭州報恩院 於後周世宗顯德年間(954-959)示寂 壽七十餘 [宋高僧傳二十三 傳燈錄二十五] 宋代法眼宗僧 亦作惠明 字延珊 筠陽(今屬四川)張氏 年十三出家 二十受具 居杭州景德靈隱寺 嗣法靈隱文勝 [廣燈錄三十 續傳燈錄十三] 宋代黃龍派僧 字解空 居紹興石佛 嗣法雲蓋守智 [普燈錄六] (1318-1386) 明代臨濟宗僧 黃巖(浙江台州)(一說項)氏 號性原 別號幻隱 出家於寶冠寺 後至徑山參謁元叟行端(楊岐下八世) 竝嗣其法 洪武五年(1372) 奉太祖之召 於鍾山大宣宗法 洪武十一年 住持杭州靈隱寺 洪武十九年 師蒙讒受誣 有司未及緝令 師卽自投官府 當場宣法說偈而泰然入寂 世壽六十九 [五燈會元續略四 增集續傳燈錄四 續釋氏稽古略二] (1337-1411) 日本曹洞宗僧 相模(神奈川縣)糟谷人 姓藤原 號了菴 幼遊鎌倉建長寺 從建長寺之不聞契聞得度 乃遍歷諸方 先後參謁永澤寺之通幻寂靈 總持寺之峨山韶碩等禪林尊宿 而於峨山處豁然契悟 其後嗣通幻之法 歷住總寧寺 總持寺 永澤寺 龍泉寺等名刹 應永元年(1394) 於相模創建大雄山最乘寺 晩年結庵於大雄山下 應永十八年示寂 世壽七十五 著有天童小參抄點破 諸嶽二代峨山和尙行實等 [洞上聯燈錄三 延寶傳燈錄八 本朝高僧傳三十八]

혜명(慧明) 또 혜명(惠明)으로 지음. 5조 홍인의 법사 도명의 본명이니 상세한 것은 도명(道明)을 보라. 오대 법안종승. 전당 사람이며 속성은 장. 유년에 출가했고 처음 경교를 학습했고 장성하자 모선(慕禪)하여 민월(閩越)의 여러 존숙을 역방(歷訪)했음. 후에 임천(臨川)에서 법안문익(法眼文益)을 참했고 오래지 않아 그의 법을 이었음. 드디어 은수(鄞水; 절강) 대매산에 은거하다가 천태로 옮겼음. 사방의 치소(緇素)가 추향(趨向)했고 전당(錢塘) 충의왕이 그 도풍을 듣고 특별히 내전으로 연청(延請)하여 그와 도를 논했고 깊이 현지(玄旨)를 얻었음. 두 차례 스님에게 명하여 자숭원과 항주 보은원에 주석(駐錫)했음. 후주 세종 현덕년 간(954-959) 시적했고 나이는 70[송고승전23. 전등록25]. 송대 법안종승. 또 혜명(惠明)으로 지음. 자는 연산(延珊)이며 균양(지금 사천에 속함) 장씨. 나이 13에 출가했고 20에 수구(受具)했고 항주 경덕 영은사에 거주했고 영은문승(靈隱文勝)의 법을 이었음 [광등록30. 속전등록13]. 송대 황룡파승. 자는 해공(解空)이며 소흥 석불에 거주했고 운개수지(雲蓋守智)의 법을 이었음 [보등록6]. (1318-1386) 명대 임제종승. 황암(절강 태주) (; 일설에 )씨며 호는 성원(性原)이며 별호는 환은(幻隱). 보관사에서 출가했고 후에 경산에 이르러 원수행단(元叟行端; 양기하 8)을 참알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홍무 5(1372) 태조의 부름을 받들어 종산(鍾山)에서 종법(宗法)을 대선(大宣)했음. 홍무 11년 항주 영은사에 주지했고 홍무 19년 참소(讒訴)를 입어 무고(誣告)를 받자 유사(有司)가 즙령(緝令; 체포의 명령)에 미치지 아니한 전에 스님이 곧 스스로 관부(官府)에 투입하여 당장(當場)에서 선법설게(宣法說偈)하고 태연히 입적했으니 세수는 69 [오등회원속략4. 증집속전등록4. 속석씨계고략2]. (1337-1411) 일본 조동종승. 상모(相模; 신나천현) 조곡 사람. 성은 등원이며 호는 요암(了菴). 어릴 적에 겸창 건장사를 유람하다가 건장사의 불문계문을 좇아 득도(得度)했음. 이에 제방을 편력하면서 선후로 영택사의 통환적령(通幻寂靈)ㆍ총지사의 아산소석(峨山韶碩) 등 선림의 존숙을 참알했고 아산의 처소에서 활연(豁然)히 계오했고 그 후 통환의 법을 이었음. 총녕사ㆍ총지사ㆍ영택사ㆍ용천사 등 명찰을 역주(歷住)했고 응영 원년(1394) 상모(相模)에 대웅산 최승사를 창건했음. 만년에 대웅산 아래 결암(結庵)했고 응영 18년 시적했음. 세수는 75. 저서에 천동소참초점파ㆍ제악이대아산화상행실이 있음 [동상연등록3. 연보전등록8. 본조고승전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