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406쪽

태화당 2019. 12. 29. 09:33

慧思(515-577) 南北朝時代之高僧 武津(河南上蔡)人 俗姓李 世稱南嶽尊者 思大和尙 思禪師 天台宗第三祖 自幼歸佛樂法 心愛法華經 年十五出家 後參河南慧文禪師 得授觀心之法 北齊天保五年(554) 師至光州 不分遠近 爲衆演說 長達十四年之久 又師於河南南部之大蘇山傳法與智顗 陳代光大二年(568)始入湖南衡山(南嶽) 悟三生行道之迹 講筵益盛 居止十年 遂有南嶽尊者之稱 倍受宣帝禮遇 尊稱大禪師 故思大和尙 又稱思禪師 蓋基於此 太建九年 晏然而化 壽六十三 著作多半門徒筆記而成 如法華經安樂行義一卷 諸法無諍三昧法門二卷 大乘止觀法門四卷 四十二字門二卷 受菩薩戒儀一卷等 自撰者有南嶽思大禪師立誓願文一卷 [續高僧傳十七 弘贊法華傳四 佛祖統紀六 佛祖歷代通載十一] 聯燈會要二十九 南岳慧思禪師 因誌公令人傳語云 何不下山 敎化衆生 目視雲漢 作甚麽 師云 三世諸佛 被我一口呑盡 何處更有衆生可化

혜사(慧思) (515-577) 남북조시대의 고승. 무진(武津; 하남 상채) 사람이며 속성은 이(). 세칭이 남악존자(南嶽尊者)ㆍ사대화상(思大和尙)ㆍ사선사(思禪師)니 천태종 제3. 어릴 적부터 불타에게 귀의하고 불법을 좋아했으며 마음에 법화경을 사랑했음. 나이 15에 출가했고 후에 하남(河南) 혜문선사(慧文禪師)를 참해 관심지법(觀心之法)을 득수(得授)했음. 북제(北齊) 천보 5(554) 스님이 광주(光州)에 이르러 원근을 분별하지 않고 대중을 위해 연설했으며 길게는 14년의 장구함에 도달했음. 또 스님이 하남 남부의 대소산(大蘇山)에서 지의(智顗)에게 전법했음. 진대(陳代) 광대 2(568) 비로소 호남 형산(衡山; 南嶽)에 들어가 삼생행도(三生行道)의 자취를 깨쳤으며 강연(講筵)이 더욱 흥성했음. 거지(居止)한 지 10년이라 드디어 남악존자의 명칭이 있음. 선제(宣帝)의 예우를 배수(倍受)했고 존칭하여 대선사(大禪師)라 했으며 고로 사대화상(思大和尙), 또 사선사(思禪師)라 일컬었음이 대개 여기에서 기본(基本)했음. 태건 9년 안연(晏然)히 화()했으니 나이는 63. 저작은 다반(多半; 대부분)이 문도의 필기(筆記)로 이루어졌으니 예컨대() 법화경안락행의 1권ㆍ제법무쟁삼매법문 2권ㆍ대승지관법문 4권ㆍ사십이자문 2권ㆍ수보살계의 1권 등임. 자찬(自撰)한 것은 남악사대선사입서원문 1권임 [속고승전17. 홍찬법화전4. 불조통기6. 불조역대통재11]. 연등회요29. 남악혜사선사(南岳慧思禪師), 지공(誌公)이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해 이르되 왜 하산하여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눈으로 운한(雲漢)을 보아서 무엇하리오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삼세제불도 내가 한입에 삼켜 없앰을 입었거늘 어느 곳에 다시 중생이 있어 가히 교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