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773쪽

태화당 2020. 1. 1. 11:26

後際後世 未來 三際之一 黃檗宛陵錄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후제(後際) 후세. 미래. 3제의 하나. 황벽완릉록. 전제는 감이 없고 금제는 머묾이 없고 후제(後際)는 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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后稷姬姓 名棄 黃帝玄孫 帝嚳嫡長子 母姜嫄 堯舜時期掌管農業之官 周朝始祖 后稷出生於稷山(今山西省稷山縣) 被稱爲稷王(也做稷神或者農神) [百度百科] 禪林寶訓音義 孔子觀周 入后稷之廟 有金人焉 三緘其口

후직(后稷) 희성(姬姓)이며 이름은 기()니 황제(黃帝)의 현손(玄孫)이며 제곡(帝嚳)의 적장자(嫡長子)며 모친은 강원. 요순 시기 농업을 장관한 관리였고 주조(周朝)의 시조임. 후직은 직산(지금의 산서성 직산현)에서 출생했고 피칭(被稱)하여 직왕(稷王; 稷神 혹자는 農神으로 지음)이라 했음 [백도백과]. 선림보훈음의. 공자가 주()를 관광하다가 후직(后稷)의 묘()에 들어갔는데 금인(金人)이 있었고 그 입을 3()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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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進一後輩 後學 二學識或資歷較淺的人 廣燈錄二十一五祖戒 師云 鍾皷相催 當爲何事 先德如是 後進如何委悉 五燈會元六玄泰禪師 後居蘭若 曰金剛臺 誓不立門徒 四方後進依附 皆用交友之禮

후진(後進) 1. 후배. 후학. 2. 학식 혹 자력(資歷)이 조금 얕은 사람. 광등록21 오조계. 스님이 이르되 종과 북이 서로 최촉(催促)함은 마땅히 무슨 일 때문인가. 선덕(先德)은 이와 같거니와 후진(後進)은 어떻게 위실(委悉; 자세히 앎)해야 하는가. 오등회원6 현태선사. 후에 란야(蘭若)에 거주했으니 가로되 금강대(金剛臺). 맹서하여 문도(門徒)를 세우지 않았다. 사방의 후진(後進)이 의부(依附)했는데 모두 교우지례(交友之禮)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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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晉高祖(892-942) 卽石敬瑭 沙陀部人 居太原(山西太原西南) 李克用部將臬捩鷄之子 後改姓石氏 稱契丹主爲父皇帝 割讓幽雲十六州 和每年獻帛三十萬匹 契丹主立敬瑭爲帝 改元天福 在位七年 國忌敕宰臣百僚詣寺 行香飯僧 永以爲式 漢中沙門可洪 進大藏音義四百八十卷 敕入藏 [新五代史八 佛祖統紀四十二 佛法金湯編十二]

후진고조(後晉高祖) (892-942) 곧 석경당(石敬瑭)이니 사타부(沙陀部) 사람이며 태원(산서 태원 서남)에 거주했고 이극용(李克用)의 부장(部將) 얼렬계(臬捩鷄)의 아들이며 후에 석씨로 개성(改姓)했음. 글단주(契丹主)를 일컬어 부황제(父皇帝)라 했고 유운(幽雲) 16주를 할양(割讓)하고 그리고 매년 비단 30만 필을 바쳤음. 글단주가 경당을 세워 제()로 삼았음. 개원(改元)하여 천복이라 했고 재위는 7. 국기(國忌)엔 재신(宰臣)과 백료(百僚)에게 칙명하여 사원에 나아가 행향(行香)하고 반승(飯僧)하게 했고 길이 법식으로 삼았음. 한중(漢中) 사문 가홍(可洪)이 대장음의(大藏音義) 480권을 진상하자 칙명으로 입장(入藏)했음 [신오대사8. 불조통기42. 불법금탕편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