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주심경

삼주심경(三註心經) 4

태화당 2020. 9. 16. 15:12

觀自在菩薩

관자재보살이

 

忠云 此破凡夫 塵劫背心 唯觀諸法 被法所拘 不得自在 大意只令衆生背境觀心 悟心無法可得 何以故 且如色法因心而起 反觀起心 無有處所 實不可得 心尙自無 色從何有 猶如夢幻 不念不著 方知於色法得自在 乃至一切法不可得 亦不被一切法所攝 於一切處得自在 如是之人 悟心無心 了境無境 心境兩忘 無了可了 坦然無礙 故名自在 菩之言了 薩之言見 了見諸法本來空寂 故名菩薩也

 

()이 이르되 이는 파범부(破凡夫)진겁(塵劫)에 마음을 등지고 오직 제법을 관하면서 법에 구속되는 바를 입어 자재를 얻지 못하므로, 대의(大意)는 단지 중생으로 하여금 경계를 등지고 마음을 관하게 함이니 마음을 깨치면 가히 얻을 법이 없다. 무슨 연고냐, 차여(且如) 색법(色法; 心法에 대한 명칭)이 마음으로 인해 일어나나니 도리어 일으키는 마음을 관하매 처소가 있지 않으므로 실로 가히 얻지 못한다. 마음도 오히려 스스로 없거늘 색이 어디로 좇아 있겠는가, 마치 몽환(夢幻)과 같다. 사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비로소 색법에 자재를 얻을 줄 아나니 내지 일체법을 가히 얻지 못하며 또한 일체법에 거두어지는 바를 입지 않아서 일체처에 자재를 얻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마음엔 마음이 없음을 깨닫고() 경계엔 경계가 없는 줄 깨치어() 심경(心境)을 양망(兩忘)하고 가히 깨칠() 깨침()이 없으며 탄연(坦然)하여 걸림이 없는지라 고로 이름이 자재다. ()는 요()를 말함이며 살()은 견()을 말함이니 제법이 본래 공적함을 환히 보는지라(了見) 고로 이름이 보살이다.

 

楷云 菩薩之人 以般若妙慧 照了前境了無凝滯 所以觀空之時 不礙萬象燦然 涉有之時 自然一道淸淨 心境融通 理智無二 故曰觀自在也 凡夫妙慧不明 六塵覩對 翳障心光 物物頭頭皆成障礙 故名不自在也

 

(; 道楷)가 이르되 보살의 사람이 반야의 묘혜(妙慧)로써 전경(前境)을 조료(照了)하매 마침내() 응체(凝滯)가 없다. 소이로 공을 관할 때 만상의 찬연(燦然)함에 걸리지 않으며 유()에 건널 때에도 자연히 일도(一道)가 청정하여 심경(心境)이 융통하고 이지(理智)가 둘이 없는지라 고로 관자재다. 범부(凡夫)는 묘혜가 밝지 못해 6()을 보고 상대하면 심광(心光)을 예장(翳障)하여 물물두두(物物頭頭)가 모두 장애를 이루는지라 고로 이름이 부자재(不自在).

 

진겁(塵劫); 장원(長遠)의 시겁(時劫)을 말함. 법화경3. 어떤 사람이 힘으로써 삼천대천의 흙을 갈아 이 모든 지종(地種; 四大種의 하나니 大種. 사물상의 견고한 성품을 일러 지라 하며 이 견고한 성품이 일체의 물질에 두루하여 능히 만드는 이 되므로 고로 이르되 大種)을 다하여 모두 다 먹으로 삼아서 1천 국토를 지나면 이에 1()을 떨어뜨려 점 찍는다. 이와 같이 전전(展轉)히 점 찍어 이 모든 진묵(塵墨)을 다하고는 이와 같은 모든 국토, 점 찍거나 점 찍지 않은 등을 다시 모두 가루로 만들어 진()을 삼으면 1()1()이 된다. 이 모든 미진(微塵)의 수에 그 겁은 다시 이를 초과하나니 그 부처가 멸도하여 온 게 이와 같이 무량한 겁이다.

차여(且如); ()는 발어사(發語辭)며 여()는 예거(例擧)를 표시.

범부(凡夫); 성자에 상대한 명칭. 이르자면 사소한 단혹증리(斷惑證理)도 없는 자임. ()이란 것은 상()이며 또 비일(非一)이니 범상하면서 이런 무리가 많으므로 고로 이르되 범부임.

물물두두(物物頭頭); 만사만물을 가리킴. 또 두두물물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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