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記]如彼偈云 非他非因緣 分別分別事 五法及二心 寂靜無如是 問 如集量論說 諸心心法 皆證自體 是名現量 若不爾者 如不曾見 不應憶念 此中經說 云不自見 如是相違 云何會通 答 此有異意 欲不相違 何者 此經論意 欲明離見分外無別相分 相分現無所見 亦不可說卽此見分反見見分 非二用故 外向起故 故以刀指爲同法喩 集量論意 雖其見分不能自見 而有自證分用 能證見分之體 以用有異故 向內起故 故以燈?爲同法喩 由是義故 不相違背 又復此經論中爲顯實相故 就非有義說無自見 集量論主爲立假名故 依非無義說有自證 然假名不動實相 實相不壞假名 不壞不動 有何相違 如此中說離見無相 故見不見相 而餘處說相分非見分 故見能見相分 如是相違 何不致怪 當知如前亦不相壞 又說爲顯假有 故說有相有見 爲顯假無 故說無相無見 假有不當於有 故不動於無 假無不當於無 故不壞於有 不壞於有 故宛然而有 不動於無 故宛然而無 如是甚深因緣道理 蕭焉靡據 蕩然無礙 豈容違諍於其間哉
[별기] 예컨대 그(입릉가경10) 게에 이르되 그(他)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며/ 분별과 분별사(分別事)다/ 5법(法) 및 2심(心)이/ 적정(寂靜)이라서 이와 같음이 없다. 묻되 예컨대(如) 집량론(集量論)에 설하되 모든 심과 심법은 모두 자체를 증(證)했으니 이 이름이 현량(現量)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찍이 보지 못함과 같아서 응당 억념하지 못한다 했다. 이 중의 경(入楞伽經)에선 설하기를 이르되 스스로 보지 못한다(不自見) 했으니 이와 같이 상위(相違)하거늘 어떻게 회통(會通)하겠는가. 답하되 여기에 다른 뜻이 있어서 상위하지 않음인가 한다(欲不相違). 왜냐하면 이 경에서 논한 뜻은 견분(見分)을 여읜 밖엔 따로 상분(相分)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지라 상분(相分)이 나타나더라도 보이는 바가 없으며 또한 곧 이 견분(見分)이 도리어(反) 견분을 본다고 가히 설하지 못함은 2용(用)이 아닌 연고며 밖으로 향하여 일어나는 연고(外向起故)인지라 고로 칼과 손가락으로써 동법(同法)의 비유로 삼았으며 집량론의 뜻은 비록 그 견분(見分)이 능히 스스로를 보지 못하지만 자증분(自證分)의 용(用)이 있는지라 견분(見分)의 체를 능증(能證)하나니 용(用)에 다름이 있기 때문의 연고며 안을 향해 일으나는 연고라 고로 등염(燈?)으로써 동법(同法)의 비유로 삼았다. 이 뜻을 말미암는 연고로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또 다시 이 경의 논중에선 실상을 나타내기 위한 연고로 비유(非有)의 뜻을 좇아(就) 스스로를 봄이 없다고 설했고 집량론주(集量論主)는 가명(假名)을 세움이 되는 고로 비무(非無)의 뜻에 의해 자증(自證)이 있음을 설했다. 그러나 가명(假名)이 실상(實相)을 움직이지 못하고 실상이 가명을 파괴하지 못하나니 파괴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거늘 무슨 상위(相違)가 있겠는가. 예컨대(如) 이 가운데의 설은 견(見)을 여의면 상(相)이 없는지라 고로 보아도(見) 상(相)으로 보지 않음이며 여처(餘處)에선 설하되 상분(相分)은 견분(見分)이 아닌지라 고로 견(見)이 상분(相分)을 능히 본다 하니 이와 같이 상위(相違)하거늘 어찌 치괴(致怪; 괴이에 至함)가 아니겠는가 하나 마땅히 알라 전과 같아서 또한 상괴(相壞)하지 않는다. 또 설하되 가유(假有)를 나타내기 위함인지라 고로 유상유견(有相有見)을 설하며 가무(假無)를 나타내기 위함인지라 고로 무상무견(無相無見)을 설한다. 가유(假有)는 유(有)에 해당하지 않는지라 고로 무(無)를 움직이지 않고 가무(假無)는 무(無)에 상당하지 않는지라 고로 유(有)를 파괴치 않는다. 유를 파괴치 않는지라 고로 완연(宛然; 依然)히 유(有)며 무를 움직이지 않는지라 고로 완연히 무(無)다. 이와 같은 매우 깊은 인연의 도리는 소언(蕭焉; 쓸쓸한 모양)하여 의거(依據)함이 없고(靡; 없을 미) 탕연(蕩然; 자취 없이 된 모양)하여 무애(無礙)이거늘 어찌 그 사이에 위쟁(違諍)을 용납하겠는가.
當知以下 次明非有而不無義 初言當知世間乃至無體可得唯心虛妄者 是明非有 次言以心生則法生以下 顯其非無 依無明力不覺心動 乃至能現一切境等 故言心生則種種法生也 若無明心滅境界隨滅 諸分別識皆得滅盡 故言心滅則種種法滅 非約刹那以明生滅也 廣釋意竟
마땅히 알라(當知) 이하는 차(次) 비유(非有)이면서 불무(不無)인 뜻을 밝혔다. 초(初)에 말한 마땅히 알라 세간 내지 가히 얻을 체가 없으며 오직 마음의 허망이라 한 것은 이는 비유(非有)를 밝혔고 차(次)에 말한 마음이 나면 곧 법도 나고 이하는 그 비무(非無)를 밝혔다(顯). 무명(無明)의 힘에 의해 불각에 심이 동하고 내지 능히 일체의 경계를 나타낸다 등이라 했으니 고로 말하되 마음이 나면 곧 갖가지 법도 난다 했다. 만약 무명의 마음이 멸하면 경계도 따라 멸하고 모든 분별식이 모두 멸진(滅盡)함을 얻는지라 고로 말하되 마음이 멸하면 곧 갖가지 법도 멸한다 했거니와 찰나심(刹那以)를 괄약하여 생멸을 밝힘이 아니다. 의(意)를 광석(廣釋)함을 마쳤다.
●5법(法); 1은 명(名)이며 2는 상(相)이며 3은 망상(妄想)이며 4는 정지(正智)며 5는 여여(如如)임 [大乘義章三].
●집량론(集量論); 인도 신인명학(新因明學)의 중요한 저작임. 신인명 창시인 진나(陳那; Diṅnāga)저(著). 식삼분설(識三分說)과 인명삼지작법(因明三支作法)을 제출했음. 현량(現量)ㆍ위자비량(爲自比量)ㆍ위타비량(爲他比量)ㆍ관유사유(觀喩似喩)ㆍ관리(觀離)ㆍ관과(觀過) 6품으로 분류했음. 당 의정법사(義淨法師)가 일찍이 역출(譯出)했고 4권으로 분류했는데 단지 오래지 않아 곧 망일(亡佚)했음 [百度百科].
●현량(現量); 인명용(因明用) 3량(量)의 하나며 또 심식(心識) 3량의 하나니 현실을 양지(量知)함임. 색 등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자상(自相)을 양지하여 터럭만큼도 분별하며 추구하는 사념이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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