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11년 집주역해오종록서(集註譯解五宗錄序)

태화당 2020. 11. 5. 19:49

檀紀 4344(2011)年 辛卯

 

집주역해오종록서(集註譯解五宗錄)

 

臨濟之機用 曹洞之向上 潙仰之體用 雲門之截斷 法眼之唯心 烹佛鍛祖之鑪鞴 轉凡成聖之靈方 大鑑法嗣南嶽靑原 兩大法系支分派列 宗風永扇於法界 兒孫星羅于寰宇 天下禪伯據曲彔木 敲床竪拂揚眉瞬目 鼓脣搖舌談玄說妙 撒屎撒尿帶水拖泥 蓋不出於四家五家之圈䙡 未免斗裏瓮裏之蝦鼈 五家語錄者 略稱五宗錄 應一花開五葉之讖 南嶽下出臨濟潙仰雲門法眼 靑原下出曹洞一宗 故爲五宗 余蚤游心於祖域 已過於四十餘稔 深嗟我國高麗末葉 龜谷覺雲撰禪門拈頌說話後 六百年來都無一種禪語錄漢文注釋書 始于今年五月初旬下手集註 六月中旬集畢譯解 逮於八月下旬告終 註釋總三千一百个 予傾鉢囊刊行流通 善先行丁寶英一助 此事唯我能知 故云秪重他不爲我說破 射石沒羽未免徒爲 故云設有一法過此者 我說如夢如化 然不可儱侗顢頇 在此衣線下不明大事 是名最苦 雖謂悟了同未悟 悟者無碍膺之物 乃能披毛戴角牽犂拽耒 不愛天堂不怕地獄 我爲法王於法自在 始知粉骨碎身未足酬祖佛之恩 古人道 我若一向擧揚宗敎 法堂裏須草深一丈 序文愈短愈好 止此 時

檀紀四三四四年歲次辛卯 桂月十三日 平心寺主淨圓 謹序于泰華堂

 

임제의 기용과 조동의 향상과 위앙의 체용과 운문의 절단과 법안의 유심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단련하는 화로의 풀무며 범부를 굴려 성인을 이루는 신령한 약방(藥方)이다. 대감의 법사(法嗣)인 남악과 청원의 두 큰 법계(法系)가 지분(支分)하고 파열(派列)하여 종풍이 영원히 법계에 불고 아손이 별처럼 환우(寰宇)에 나열했다. 천하의 선백(禪伯)이 곡록목(曲彔木)에 기대어 선상을 두드리고 불자를 세우며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박이며 입술을 두드리고 혀를 놀리며 현()을 얘기하고 묘()를 설하며 똥을 뿌리고 오줌을 뿌리며 물을 띠고 진흙을 끌거니와 대개 사가(四家), 오가(五家)의 권괴를 벗어나지 못하며 말 속과 독 속의 새우와 자라를 면하지 못한다. 오가어록이란 것은 약칭이 오종록이다. 일화(一花)에 오엽(五葉)이 핀다는 참언(讖言)에 응해 남악 아래 임제ㆍ위앙ㆍ운문ㆍ법안이 나오고 청원 아래 조동 1종이 나왔으니 고로 오종이 된다. 내가 일찍이 조역(祖域)에 마음을 노닐은 지 이미 사십여 해가 지났는데 우리나라는 고려 말엽에 귀곡각운이 선문염송설화를 지은 후에 육백 년 래에 도무지 일종의 선어록 한문주석서가 없음을 깊이 탄식했다. 금년 5월 초순에 손을 대어 주석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6월 중순에 모으기를 마치고 역해했으며 8월 하순에 이르러 마침을 고했다. 주석은 모두 31백 개다. 내가 발낭을 기울여 간행하고 유통했으며 선선행정보영이 일조했다. 이 일은 오직 나만이 능히 아나니 고로 이르되 단지 그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으셨음을 존중한다. 돌을 쏘아 화살깃이 잠기더라도 공연한 짓임을 면치 못하나니 고로 이르되 설사 이것을 초과하는 한 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설하기를 꿈과 같고 환화(幻化)와 같다. 그러나 농동(顢頇)과 만한(顢頇)은 옳지 못하나니 이 의선(衣線) 아래 있으면서 대사를 발명하지 못하면 이 이름이 가장 괴로움이다. 비록 이르기를 깨달아 마치더라도 깨치지 못함과 같다 하지만 깨친 자라야 애응(碍膺)의 물건이 없어 이에 능히 털을 입고 뿔을 이고 쟁기를 끌고 가래를 끌며 천당을 좋아하지 않고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내가 법왕이 되어 법에 자재하다. 비로소 분골쇄신하더라도 족히 조불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줄 안다. 고인이 말하되 내가 만약 한결같이 종교를 거양하면 법당 속에 반드시 풀의 깊이가 1()이리라 했다. 서문은 짧을수록 더욱 좋다. 여기에서 그친다. 때는

단기 4344년 세차신묘 계월(桂月) 13일 평심사주 정원이 태화당에서 근서(謹序)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