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2책(ㄴㄷ)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2책(ㄴㄷ) 718-719쪽

태화당 2019. 5. 29. 08:41

同體如波之於水 四肢之於一身 謂之同體 爲霖餐香錄上 盡大地衆生 是同體眷屬

동체(同體) 예컨대() 파도와 물, 사지(四肢)와 일신(一身)을 일러 동체라 함. 위림찬향록상. 온 대지의 중생은 이 동체(同體)의 권속이다.


同體大悲又作同體慈悲 指觀一切衆生與己身同體 而生起拔苦與樂 平等絶對之悲心 圜悟心要上終 諸佛出世祖師西來 鞠其旨歸斷無他事 唯以同體大悲無緣等慈 揭示此段大因緣

동체대비(同體大悲) 또 동체자비로 지음. 일체중생이 자기의 몸과 동체임을 관하여 발고여락(拔苦與樂; 고를 뽑고 낙을 줌)을 생기(生起)하는 평등하고 절대(絶對)한 비심(悲心)을 가리킴. 원오심요상종. 제불이 출세하고 조사가 서래하였지만 그 지귀(旨歸)를 추궁하매 결단코 다른 일이 없다. 오직 동체대비(同體大悲)와 무연등자(無緣等慈; 연유가 없는 평등한 자비)로 차단(此段)의 대인연을 게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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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體三寶指佛寶法寶僧寶三者 同體不殊 又作一體三寶 同相三寶 祖庭事苑四 同體三寶者 眞如有覺性名佛寶 眞如有軌持義名法寶 眞如有和合義名僧寶

동체삼보(同體三寶) 불보ㆍ법보ㆍ승보 3자가 동체라 다르지 않음을 가리킴. 또 일체삼보ㆍ동상삼보로 지음. 조정사원4. 동체삼보(同體三寶)란 것은 진여에 각성이 있음이 이름이 불보며 진여에 궤지(軌持; 본받아 가짐)의 뜻이 있음이 이름이 법보며 진여에 화합의 뜻이 있음이 이름이 승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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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初(1908-1977) 近代僧 江蘇泰縣人 俗姓范 字鐙朗 號仁曙 年十三 依本籍姜堰觀音庵靜禪和尙出家 年二十二 於寶華山受具足戒 先後就讀鎭江竹林佛學院 及廈門閩南佛學院 親近太虛大師 繼而參禪於常州天寧寺 經年有省 民國二十四年(1935) 於鎭江焦山定慧寺 受曹洞宗智光和尙付法 三十五年繼席該寺方丈 其間與其法兄雪煩共創佛學院 發行中流月刊 兩年後退方丈職 遊化京滬各地 三十八年抵臺灣 翌年于臺北投法藏寺掩關 次年於關中創辦人生月刊 四十五年創建中華佛敎文化館 先後影印大正大藏經 竝創辦佛敎文化季刊 師曾任中國佛敎會常務理事等職 但於卓錫臺灣之後 專心於修持及佛敎文化事業之推廣 晩年致力於佛敎史學之硏究 中日佛敎交通史 中印佛敎交通史 中國佛敎近代史三書 爲其代表性著作 此外尙有佛敎藝術 禪 心經思想史等著作多種 師曾數度遊訪印度 印尼 日本 美國等地 六十六年十二月示寂 世壽七十 僧臘五十七 法臘四十二

동초(東初) (1908-1977) 근대승. 강소 태현 사람. 속성은 범이며 자는 등랑이며 호는 인서. 나이 13에 본적(本籍) 강언 관음암 정화상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나이 22에 보화산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선후로 진강 죽림불학원 및 하문 민남불학원에 나아가 독서하면서 태허대사를 친근했음. 이어서 상주 천녕사에서 참선하다가 해를 경과해 깨침이 있었음. 민국 24(1935) 진강 초산 정혜사에서 조동종 지광화상(智光和尙)의 부법(付法)을 받았음. 35년에 그 절의 방장의 자리를 이었음 그 사이 그의 법형인 설번과 불학원을 함께 창립하고 중류월간을 발행했음. 두 해 만에 방장직에서 후퇴하고 경호(京滬) 각지를 유화(遊化)했음. 38년 대만에 다다랐고 다음해에 대북에서 법장사에 투입하여 엄관(掩關)했음. 다음해 관중(關中)에서 인생월간을 창판(創辦; 처음으로 사업을 개시함)했음. 45년 중화불교문화관을 창건했음. 선후로 대정대장경을 영인했으며 아울러 불교문화계간을 창판했음. 스님이 일찍이 중국불교회 상무이사 등의 직을 맡았지만 단지 대만에 석장을 세운 후로 수지(修持) 및 불교문화사업의 추광(推廣)에 전심했음. 만년에 불교사학의 연구에 힘을 들였음. 중일불교교통사ㆍ중인불교교통사ㆍ중국불교근대사 3()는 그의 대표성 저작이 됨. 이 밖에 오히려 불교예술ㆍ선ㆍ심경사상사 등 저작이 여러 종 있음. 스님이 일찍이 여러 차례 인도ㆍ인니ㆍ일본ㆍ미국 등지를 유람했음. 6612월에 시적했음. 세수 70, 승랍 57, 법랍 42.


洞初度淸代曹洞宗僧智度 字洞初 詳見智度

동초도(洞初度) 청대 조동종승 지도의 자가 동초니 상세한 것은 지도(智度)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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銅鈔鑼裏滿盛油銅沙羅裏盛油 鈔鑼 卽沙鑼 普燈錄四泐潭洪英 釋迦老子 當時一手指天一手指地云 天上天下唯我獨尊 釋迦老子旁若無人 當時若遇箇明眼衲僧 直教他上天無路入地無門 然雖如是 也須是銅鈔鑼裏滿盛油始得

동초라리만성유(銅鈔鑼裏滿盛油) 동사라리성유(銅沙羅裏盛油)를 보라. 초라(鈔鑼)는 곧 사라(沙鑼). 보등록4 늑담홍영. 석가노자가 당시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르되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했거니와 석가노자는 가히 방약무인이라고 이를 만하다. 당시에 만약 명안납승을 만났더라면 그로 하여금 하늘에 오르려고 해도 길이 없고 땅에 들어가려고 해도 문이 없게 했으리라.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으나 또한 모름지기 이는 동초라 속에 기름이 가득해야(銅鈔鑼裏滿盛油) 비로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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