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正倫】 (?-658) 唐代相州洹水(河北魏縣)人 隋末擧秀才 入唐纍官至中書令 執政事 素重佛法 躬領歸戒 翼護佛門 維持僧侶 多著宏勛 [舊唐書七十] ▲宗鏡錄六 杜正倫云 心是如來之言 高推聖地 身卽菩提之說 自隔凡倫 不悟夫功德無量 唯在方寸之中 相好宛然 不出陰界之外
두정륜(杜正倫) (?-658) 당대 상주 원수(하북 위현) 사람. 수말(隋末)에 수재(秀才)로 천거되었음. 입당(入唐)하여 벼슬을 거듭하며 중서령ㆍ집정사에 이르렀음. 본디 불법을 존중한지라 몸소 귀계(歸戒)를 받고 불문을 익호(翼護; 보호)하고 승려를 유지했음. 저서가 많고 공훈이 큼 [구당서70]. ▲종경록6. 두정륜(杜正倫)이 이르되 마음은 이 여래의 말씀이니 높이 성지(聖地)를 받들고 몸은 곧 보리의 설(說)이니 스스로 범륜(凡倫)을 격(隔)한다. 깨닫지 못하겠는가, 공덕이 무량함은 오직 방촌(方寸)의 속에 있고 상호(相好)가 완연(宛然)함은 음계(陰界)의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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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逗湊】 互相投合 湊合 ▲憨山夢遊集三 文者心之章也 學者不達心體 强以陳言逗湊 是可爲文乎
두주(逗湊) 호상 투합하고 주합(湊合)함. ▲감산몽유집3. 글이란 것은 마음의 장(章)이다. 학자가 심체를 통달하지 못하고서 억지로 언설을 펴며 두주(逗湊)한다면 이것을 가히 글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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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撰】 原指在詩文或其他著作中 妄作論述而毫無根據之情形 其語由來下列諸說 一漢代之田何精通易學 遷居杜陵 世稱杜田生 然或謂其易學實無師承之處 故世人多以杜田 或杜園 譏之 後訛稱爲杜撰 二據傳 道家五千餘卷之書中 除道德經二卷外 其餘均爲唐末文人杜光庭所撰述 多屬虛誕之說 故後人多稱僅憑臆造而無所本之說爲杜撰 三宋代文人杜默作詩時 常不合律 時人遂以行事不合法式者 謂之杜撰 ▲碧巖錄第四十八則 杜撰禪和 如麻似粟 ▲雲臥紀談上 泉入黃龍室章 杜撰試官 如麻似粟 ▲續傳燈錄三法華全擧 杜撰長老 如麻似粟
두찬(杜撰) 원래 시문(詩文)이나 혹은 기타의 저작 가운데 있어 망령(妄靈)되이 논술을 지어 터럭만큼도 근거가 없는 정형(情形)을 가리킴. 그 말의 유래는 아래에 여러 설을 나열하겠음. 1. 한대(漢代)의 전하(田何)가 역학(易學)을 정통하였으며 두릉(杜陵)에 옮겨 거주했는데 세칭이 두전생(杜田生)임. 그러나 혹은 이르기를 그 역학이 실은 사승(師承)한 곳이 없는지라 고로 세인이 많이 두전(杜田) 혹은 두원(杜園)이라 하여 그를 비웃었음. 후에 잘못 호칭하여 두찬(杜撰)이라 했음. 2. 전(傳)에 의거하건대 도가(道家)의 5천여 권의 책 중에 도덕경 2권(道經ㆍ德經)을 제한 밖에 그 나머지는 균일하게 당말(唐末)의 문인인 두광정(杜光庭)이 찬술한 것이며 많이 허탄(虛誕)의 설에 속한지라 고로 후인이 많이들 겨우 억설(臆說)에 의빙하여 조작하고 근본할 바의 설이 없는 것을 일컬어 두찬(杜撰)이라 하였음. 3. 송대(宋代)의 문인 두묵(杜默)이 시를 지을 때 늘 율(律)에 맞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사람이 드디어 행사(行事)가 법식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杜撰)이라고 말했음. ▲벽암록 제48칙. 두찬(杜撰)의 선화(禪和)가 여마사속(如麻似粟; 삼과 같고 좁쌀과 같다)이다. ▲운와기담상. 천입황룡실장(泉入黃龍室章) 두찬(杜撰)의 시관(試官)이 여마사속(如麻似粟)이다. ▲속전등록3 법화전거. 두찬(杜撰)의 장로가 여마사속(如麻似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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