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91칙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8. 08:33

犀牛扇子用多時遇夏則涼遇冬則暖 人人具足 爲甚不知 阿誰不曾用 問著元來總不知知則知 會則不會 莫瞞人好 也怪別人不得 無限淸風與頭角在什麽處 不向自己上會 向什麽處會 天上天下 頭角重生 是什麽 無風起浪 盡同雲雨去難追蒼天蒼天 也是失錢遭罪 雪竇復云 若要淸風再復 頭角重生人人有箇犀牛扇子 十二時中全得他力 因什麽問着總不知 還道得麽 請禪客各下一轉語鹽官猶在 *三轉了也 問云 扇子旣破 還我犀牛兒來也有一箇半箇 咄 也好推倒禪床 時有僧出云 大衆參堂去賊過後張弓 被奪却槍 前不搆村 後不迭店 雪竇喝云 拋鉤釣*鯤鯨 釣得箇蝦蟆 便下座招得他恁麽地 賊過後張弓 *佛果自徵此語云 又直問爾諸人 這僧道 大衆參堂去 是會不會 若是不會 爭解恁麽道 若道會時 雪竇又道 拋鉤釣鯤鯨 只釣得箇蝦蟆 便下座 且道 誵訛在什麽處 試請參詳看

三轉了也; 鹽官話 雪竇頌 今新提起 故三轉也

鯤鯨; 莊子逍遙遊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祖庭事苑四 鯤鯨 二大魚也 雄曰鯨 雌曰鯤

佛果自徵此語云; 以下文佛果之評語 非著語也

 

서우선자(犀牛扇子)를 씀이 다시(多時)로되 여름을 만나면 곧 서늘하고 겨울을 만나면 곧 따뜻한지라 사람마다 구족했거늘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하느냐. 누가 일찍이 쓰지 않으리오. 문착(問著)하면 원래 다 알지 못한다 ()하기야 곧 지()하지만 회()함은 곧 회()하지 못함이니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좋으리라. 또한 다른 사람을 괴이하게 여김을 얻지 못하리라. 무한한 청풍과 두각(頭角)이여 어느 곳에 있는가. 자기상(自己上)을 향해 알려고 하지 않고 어느 곳을 향해 알려고 하는가. 천상천하다. 두각이 거듭 생겨났으니 이 무슨 무풍기랑인가. 다 운우(雲雨)와 함께 가니 쫓기() 어렵다 창천, 창천이여. 또 이는 돈 잃고 죄를 만남이다. 설두가 다시 이르되 만약 청풍을 다시 회복하고 두각이 거듭 생겨남을 요하거든 사람마다 이() 서우선자가 있어 십이시 중에 그의 힘을 얻거늘 무엇으로 인해 문착(問着)하면 다 알지 못하느냐. 도리어 도득(道得)하겠는가. 선객에게 청하노니 각기 1전어(轉語)를 내려라 하고 염관이 아직 있다. 3전하여 마쳤다(*三轉了也). 물어 이르되 부채가 이미 깨어졌다면 나에게 서우아를 송환해 오너라. 또한 일 개 반 개가 있구나(이 화두를 드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구나). (). 또한 좋이 선상을 밀어 거꾸러뜨렸겠다.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이르되 대중이여,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도적이 지나간 후에 활을 당기는구나. 창을 빼앗겨버림을 입었구나. 앞으로는 촌을 만나지 못했고 뒤로는 가게를 바꾸지 못했다. 설두가 할()하고 이르되 갈고리를 던져 곤경(*鯤鯨)을 낚으려 했더니 저() 두꺼비를 낚아 얻었다. 곧 하좌했다. (설두)의 이러함(恁麽地)을 초득(招得)함은 도적이 지나간 후 활을 당겨서이다. 불과(원오)가 차어를 자징하여 이르되(*佛果自徵此語云) 또 바로 너희 제인에게 묻나니 이 중이 말하되 대중이여 참당하러 가거라 하니 이는 안 것인가, 알지 못한 것인가. 만약 이 알지 못했다고 할진대 어찌 이러히 말할 줄 알며 만약 알았다고 할진대 설두가 또 말하되 갈고리를 던져 곤경(鯤鯨)을 낚으려 했더니 다만 저() 두꺼비를 낚아 얻었다 하고 바로 하좌했다. 그래 말하라 효와(誵訛)가 어느 곳에 있느냐, 시험삼아 청하노니 참상()하여 보아라.

 

三轉了也; 염관화(鹽官話)ㆍ설두송(雪竇頌)과 지금 새로 제기(提起)한지라 고로 3().

鯤鯨; 장자 소요유. 북명(北冥)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 된다. 곤의 크기는 그것이 몇 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변화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은 붕()이 된다. 붕의 등은 그것이 몇 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노해서 날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조정사원4. 곤경(鯤鯨) 두 마리의 대어다. 수컷을 가로되 경()이며 암컷을 가로되 곤()이다.

佛果自徵此語云; 이하의 글은 불과(佛果; 원오)의 평어(評語)며 착어가 아님.

 

犀牛扇子用多時 問著元來總不知 人人有箇犀牛扇子 十二時中 全得他力 爲什麽問著總不知*去著 侍者投子 乃至保福 亦總不知 且道雪竇還知麽 不見無著訪文殊 喫茶次 文殊擧起玻璃盞子云 南方還有這箇麽 著云無 殊云 尋常用什麽喫茶 著無語 若知得這箇公案落處 便知得犀牛扇子有無限淸風 亦見犀牛頭角崢嶸 四箇老漢恁麽道 如朝雲暮雨一去難追 雪竇復云 若要淸風再復頭角重生 請禪客各下一轉語 問云 扇子旣破 還我犀牛兒來 時有一禪客出云 大衆參堂去 這僧奪得主家權柄 道得也殺道 只道得八成 若要十成 便與掀倒禪床 爾且道 這僧會犀牛兒不會 若不會却解恁麽道 若會雪竇因何不肯伊 爲什麽道 拋鉤釣鯤鯨 只釣得箇蝦蟆 且道畢竟作麽生 諸人無事 試拈掇看

 

去著; 去著二字疑衍 

 

서우선자(犀牛扇子)를 씀이 다시(多時)로되 문착(問著)하면 원래 다 알지 못한다 하니 사람마다 이() 서우선자가 있어 십이시(十二時) 중에 온전(穩全)히 그의 힘을 얻거늘 무엇 때문에 문착(問著)하면 모두 거착(*去著)함을 알지 못하는가. 시자와 투자(投子) 내지 보복(保福)도 또한 모두 알지 못했나니 그래 말하라 설두는 도리어 아느냐. 보지 못하느냐, 무착이 문수를 방문하여 끽다(喫茶)하던 차에 문수가 파리잔자(玻璃盞子; 는 조사)를 들어 일으키며 이르되 남방에도 도리어 이것(這箇)이 있느냐. 무착이 이르되 없습니다. 문수가 이르되 심상(尋常)에 무엇을 써서 끽다하는가. 무착이 말이 없었다. 만약 이(這箇) 공안의 낙처를 지득(知得; 은 조사)하면 곧 서우선자에 무한한 청풍이 있음을 지득(知得)하며 또한 서우(犀牛)의 두각(頭角)이 쟁영(崢嶸; 높고 가파른 모양)함을 보리라. 4개 노한의 이러히 말함(위의 評語)이 조운모우(朝雲暮雨)가 한 번 가면 쫓기 어려움과 같다. 설두가 다시 이르되 만약 청풍을 다시 회복하고 두각이 거듭 생겨남을 요하거든 선객에게 청하노니 각기 1전어(轉語)를 내려라 하고 물어 이르되 부채가 이미 깨어졌다면 나에게 서우아를 송환해 오너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이르되 대중이여,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하니 이 중이 주가(主家)의 권병(權柄)을 뺏아 얻었으므로 말함(道得)은 또한 심하게 말했으나 다만 팔성(八成)을 말해 얻었다. 만약 십성(十成)을 요한다면 곧 선상을 번쩍 들어 엎었어야 하리라. 너희가 그래 말하라, 이 중이 서우아(犀牛兒)를 알았느냐 알지 못했느냐. 만약 알지 못했다고 한다면 도리어 이러히 말할 줄 알았으며 만약 알았다면 설두가 무엇 때문에 그를 긍정치 않았으며 무엇 때문에 말하되 갈고리를 던져 곤경(鯤鯨)을 낚으려 했더니 저() 두꺼비를 낚아 얻었다 했는가. 그래 말하라 필경 어떻다 하는가. 제인이 일이 없거든(無事) 시험삼아 염철(拈掇; 擧說)해 보아라.

 

去著; 거착(去著) 2자는 연(; 문장에서 잘못 끼어든 굴자)으로 의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