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世尊 一日見文殊在門外立 乃云 文殊文殊 何不入門來 文殊曰 世尊 我不見一法在門外 何以敎我入門
*大覺璉頌 閫內不須分*閫外 時淸文物盡同風 *大千沙界無違犯 詎出*金輪一化中
*玄覺徵 爲復是門外語門內語
*潙山喆代 吾不如汝
天童覺上堂擧此話云 文殊大士被釋迦老子一問 直得迷失*四向 討門戶不着 却道我不見一法在門外 玄覺云 是門外語門內語 諸人還會麽 賞不給大平之士 禍不入愼家之門
●第九則; 此話出聯燈會要一 ▲入法界體性經(一卷 隋 闍那崛多譯) 爾時世尊 告文殊師利童子言 文殊師利 是舍利弗比丘 今在門外 爲欲聽法 汝令使入 文殊師利言 世尊 若彼舍利弗際 若法界際 世尊 此二際 豈有在內在外 若中間二耶 佛言 不也
●大覺璉; 大覺懷璉(1009-1090) 宋代雲門宗僧 俗姓陳 漳州龍溪(今屬福建)人 少年入道 嗣泐潭懷澄(雲門下三世)之法 宋仁宗皇祐二年(1050)正月 詔住京師十方淨因禪院 二月十九日 詔對化成殿 問佛法大意 奏對稱旨 賜號大覺禪師 故世稱大覺懷璉 治平(1064-1067)中乞歸 後四明郡守迎住阿育王山廣利寺 故又稱育王懷璉 與蘇軾爲方外之友 交誼甚厚 [禪林寶訓音義 佛祖歷代通載十八 佛祖統紀四十五 五燈會元十五]
●閫外; 祖庭事苑二 閫外 馮唐(漢代人)曰 上古王者遣將也 跪而推轂曰 閫以內者 寡人制之 閫以外者 將軍制之 韋昭曰 此郭門之閫 門中橛曰閫
●大千沙界; 同大千世界 沙界 恆河沙之世界 恒河沙者多數之喩 ▲金剛經 是諸恆河所有沙數佛世界 如是寧爲多不
●金輪; 轉輪聖王所感得之七寶之一 此輪寶有金銀銅鐵四種之差等 因之而生金輪王乃至鐵輪王之優劣 俱舍論十二曰 謂鐵輪王王一洲界 銅輪王二 銀輪王三 若金輪王王四洲界
●玄覺; 玄覺行言 五代法眼宗僧 泉州(今屬福建)晉江人 嗣淸涼文益 南唐主于金陵(今江蘇南京)建報慈院 命師住持 大闡禪道 署號玄覺導師 [傳燈錄二十五 十國春秋三十三]
●潙山喆; 潙山慕喆(?-1095) 宋代臨濟宗僧 臨川(今屬江西)聞氏 依建昌永安圓覺得度 勵道甚勤 後至南昌 謁翠巖可眞爲侍者 世稱喆侍者 爲人剛直 以荷法爲志 出住潭州 遷慧光大潙 衆二千指 紹聖改元(1094) 奉驛召 引對延和殿 稱旨 錫紫服眞如號 尋補大相國寺 二年十月八日 無疾說偈別衆 良久示寂 有大潙山語錄 黃庭堅作序 [禪林僧寶傳二十五 統要續集二十一 五燈會元十二]
●四向; 四方
【九】 세존이 어느 날 문수가 문밖에 서 있음을 보고 이에 이르되 문수야 문수야, 왜 문에 들어오지 않느냐. 문수가 가로되 세존이시여 나는 한 법도 문밖에 있음으로 보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나로 하여금 문에 들어오라 하십니까.
대각련(*大覺璉)이 송하되 곤내(閫內)에서 곤외(*閫外)를 나눔이 쓰이지 않나니/ 시절이 청평하니 문물이 다 동풍(同風)이다/ 대천사계(*大千沙界)에 위범(違犯)이 없거늘/ 어찌 금륜(*金輪)의 일화중(一化中)을 나타내리오(出)
현각(*玄覺)이 징(徵)하되 다시 이는 문밖의 말이 되는가 문 안의 말이 되는가.
위산철(*潙山喆)이 대(代; 代世尊)하되 내가 너만 같지 못하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하여 차화(此話)를 들고 이르되 문수대사(文殊大士)가 석가노자의 1문(問)을 입자 바로 사향(*四向; 사방)을 미실(迷失)함을 얻어 문호(門戶)를 찾음도 얻지 못했거늘(不着) 도리어 말하되 나는 한 법도 문밖에 있음으로 보지 않는다 하였다. 현각이 이르되 이는 문밖의 말인가. 문 안의 말인가 하니 제인은 도리어 알겠는가. 상은 태평지사(大平之士)에게 주지 않고 화는 신가지문(愼家之門)에 들지 않는다.
●第九則; 차화는 연등회요1에 나옴. ▲입법계체성경(入法界體性經; 一卷 隋 闍那崛多譯) 이때 세존이 문수사리 동자에게 고해 말씀하시되 문수사리야, 이 사리불 비구가 지금 문밖에 있으면서 청법(聽法)하려고 한다. 네가 들어오게 하거라. 문수사리가 말하되 세존이시여, 저 사리불제(舍利弗際)거나 법계제(法界際)이거나(若; 은 조사) 세존이시여 이 2제(際)에 어찌 재내재외(在內在外)와 이에 중간의 둘(二)이 있겠습니까. 불타가 말씀하시되. 아니다.
●大覺璉; 대각회련(大覺懷璉; 1009-1090) 송대 운문종승. 속성은 진이며 장주 용계(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소년에 입도했고 늑담회징(泐潭懷澄; 운문하 3세)의 법을 이었음. 송 인종 황우 2년(10 50) 정월 조칙으로 경사 시방정인선원에 주(住)했고 2월 19일 화성전(化成殿)에서 조대(詔對; 불러서 대면)하여 불법대의를 물었고 주대(奏對)하여 칭지(稱旨)했고 사호(賜號)하여 대각선사라 했음. 고로 세칭이 대각회련(大覺懷璉)임. 치평(1064- 1067) 중 걸귀(乞歸)했음. 후에 사명군수(四明郡守)가 영접하여 아육왕산 광리사(廣利寺)에 주(住)한지라 고로 또 호칭이 육왕회련(育王懷璉)임. 소식(蘇軾)과 방외지우(方外之友)가 되었고 교의(交誼; 友誼)가 매우 돈독했음 [선림보훈음의. 불조역대통재18. 불조통기45. 오등회원15].
●閫外; 조정사원2. 곤외(閫外) 풍당(馮唐; 漢代 사람)이 가로되 상고의 왕자(王者)가 장수를 파견하매 꿇어앉아 수레의 바퀴를 밀며 가로되 곤(閫) 이내의 것은 과인이 통제하리니 곤 이외의 것은 장군이 그것을 통제하시오. 위소(韋昭; 삼국시대 吳의 문학가. 字는 弘嗣)가 가로되 이것은 곽문(郭門)의 곤이다. 문 가운데의 문지방(橛)을 가로되 곤임.
●大千沙界; 同大千世界 사계(沙界)는 항하사의 세계. 항하사란 것은 다수의 비유. ▲금강경. 모든 항하에 있는 바 모래 수의 불세계가 이와 같다면 어찌 많다고 하겠는가.
●金輪; 전륜성왕이 감득하는 바의 7보의 하나. 이 윤보는 금ㆍ은ㆍ동ㆍ철 4종의 차등이 있음. 이로 인해 금륜왕 내지 철륜왕의 우열이 발생함. 구사론12에 가로되 구사론12에 이르되 철륜왕은 1주계(一洲界)에 왕 노릇하고 동륜왕은 2며 은륜왕은 3이며 이에 금륜왕은 4주계에 왕 노릇한다.
●玄覺; 현각행언(玄覺行言)이니 오대 법안종승. 천주(지금 복건에 속함) 진강 사람이니 청량문익(淸涼文益)을 이었음. 남당주(南唐主)가 금릉(지금의 강소 남경)에 보자원(報慈院)을 건립하고 스님에게 명해 주지하게 했음. 선도(禪道)를 대천(大闡)했고 서호(署號)하여 현각도사(玄覺導師)라 했음 [전등록25. 십국춘추33].
●潙山喆; 위산모철(潙山慕喆; ?-1095)이니 송대 임제종승. 임천(지금 강서에 속함) 문씨. 건창 영안원각에게 의지해 득도했고 도에 힘씀이 매우 부지런했음. 후에 남창에 이르러 취암가진(翠巖可眞)을 참알하고 시자가 되었음. 세칭이 철시자(喆侍者)임. 사람됨이 강직했고 하법(荷法; 법을 짊어짐)으로 뜻을 삼았음. 출세해 담주에 거주하다가 혜광 대위로 옮겼는데 대중이 2천 지(指)였음. 소성 개원(1094) 역소(驛召; 역마로 부름을 전함)를 받들어 연화전에서 인대(引對)하였고 칭지(稱旨; 主上의 뜻에 부합함)했으며 자복(紫服)과 진여(眞如)의 호를 주었음. 이윽고 대상국사에 보임(補任)했음. 2년 10월 8일 질병 없이 게를 설하여 대중과 이별하고 양구(良久)에 시적했음. 대위산어록이 있으며 황정견이 서를 지었음 [선림승보전25. 통요속집21. 오등회원12].
●四向; 사방.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blog.daum.net
'선문염송집주(5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문염송집 권1 제11칙 (0) | 2021.09.02 |
---|---|
선문염송집 권1 제10칙 (0) | 2021.09.02 |
선문염송집 권1 제8칙(한글) (0) | 2021.09.02 |
선문염송집 권1 제8칙(한문) (0) | 2021.09.02 |
선문염송집 권1 제7칙 (0) | 2021.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