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五八】石霜居方丈 有僧在明䆫外問 咫尺之閒 爲什麽不覩師顔 師云 我道徧界不曾藏 僧後問雪峰 徧界不曾藏 意旨如何 峰云 什麽處不是石霜 僧迴擧似師 師云 這老漢 有什麽死急
蔣山泉頌 *霜峰雪老盡悠悠 月下相逢互唱酬 爭似*釣螺江上客 一聲漁笛過*滄洲 〈兼擧玄沙拈〉
保寧勇頌 雙眸自少患生盲 兩耳從前只聽聲 *指點萬端都不見 如何彈指得分明
知非子頌 參徒曾不覩師顔 只對明䆫咫尺閒 徧界不藏還會否 天台南嶽萬重山
玄沙拈 *山頭老漢蹉過也
洞山代 笑殺*土地
五祖戒代 着甚來由
瑯瑘覺云 雪峰雖有利人之心 且無出人之眼 石霜雖有出人之眼 未知向上一竅
法雲秀云 要見石霜麽 富嫌千口少 貧恨一身多
東禪齊拈 只如雪峰 是會石霜意 不會石霜意 若會 也佗爲什麽道死急 若不會 作麽生 雪峰豈可不會 然法且無異 奈以師承不同 解之差別 他云徧界不曾藏 也須曾學來 始得會 亂說則不可
天童覺拈 石霜雪峰 相去多少 直是千里萬里 若有人問*長蘆 徧界不曾藏意旨 向道 什麽處是石霜
天寧琦上堂擧此話云 雪峰與麽道 是爲者僧 不爲者僧 是是爲者僧 什麽處是爲伊處 若道不爲這僧 又向伊道什麽處不是石霜 諸人若向這裏見得 可謂十二時中 言談語笑動止施爲 無非佛事 若見不得 三十年後此話大行
佛眼遠拈 旣知咫尺之閒 爲什麽卻道不覩師顔 旣言徧界徧空 如何更云不曾藏覆 還見落節處麽 若見得 便見石霜老子雪峰大師
白雲昺擧此話 至甚處不是石霜 連擧玄沙云 老老大大 腳跟不點地在 師頌曰 咫尺之閒 不覩師顔 幸然獨露 誰作遮攔 潦倒石霜曾指月 區區雪老重饒舌 釣魚船上謝三郞 金剛腦後添生鐵
●第五五八則; 此話出傳燈錄十五 ▲祖堂集六石霜和尙 石霜病重時 有新到二百來人 未參見和尙 惆悵出聲啼哭 石霜問監院 是什摩人哭聲 對云 二百來个新到 不得參見和尙 因此啼哭 師云 喚他來 隔窓相看 侍者便喚他新到一際上來 隔窓禮拜問 咫尺之間 爲什摩不睹尊顔 師云 遍界不曾藏 雪峰擧此話讚師 後問 遍界不曾藏 是什摩界 對云 是什摩問和尙 峰云 問有橫豎 是你因什摩與摩道 學人不會又問 衷情無可祗對 峰造一首偈曰 可怜徒懃子 時人笑你昏 神淸如鏡像 迥然與物分
●霜峰雪老; 指石霜慶諸與雪峰義存
●滄洲; 濱水的地方 古時常用以稱隱士的居處
●釣螺江上客; 指玄沙師備 師備福州閩縣人也 閩中有螺江 幼好垂釣
●指點; 一提說 二指示
●山頭老漢; 此指雪峯義存 山頭卽山上
●土地; 土地神的略
●長蘆; 指天童正覺自身 曾住長蘆寺
【五五八】 석상(石霜)이 방장에 거처했는데 어떤 중이 명창(明䆫) 밖에 있으면서 묻되 지척지간(咫尺之閒)이거늘 무엇 때문에 스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내가 말하기를 편계(徧界; 온 세계)에 일찍이 숨기지 않았다. 중이 후에 설봉에게 묻되 편계에 일찍이 숨기지 않았다는 의지가 무엇입니까. 설봉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석상이 아니냐. 중이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스님이 이르되 이 노한이 무슨 사급(死急)함이 있는가.
장산천(蔣山泉)이 송하되 상봉과 설로(*霜峰雪老)가 모두 유유(悠悠)하나니/ 달 아래 상봉하여 서로 창수(唱酬)했다/ 어찌 나강 위에서 낚시하는 객(*釣螺江上客)이/ 한 소리 어적(漁笛; 어부의 피리 소리)에 창주(*滄洲)를 지남만 같으랴. 〈현사의 염을 겸거(兼擧)했음〉.
보녕용(保寧勇)이 송하되 쌍모(雙眸; 雙眼)는 어릴 적부터 생맹(生盲)의 질환이나/ 양이(兩耳)는 종전(從前)대로 다만 소리를 듣는다/ 만단(萬端)을 지점(*指點; 지시)해도 다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탄지(彈指)해야 분명함을 얻는가.
지비자(知非子)가 송하되 참도(參徒)가 일찍이 스승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다만 명창(明䆫)을 상대해 지척간(咫尺閒)이다/ 편계(徧界)에 감추지 않았음을 도리어 아느냐/ 천태와 남악이 만 겹의 산이다.
현사(玄沙)가 염하되 산두노한(*山頭老漢)이 차과(蹉過; 놓치다)했다.
동산(洞山)이 대(代)하되 토지(*土地; 토지신)를 너무 웃겼다.
오조계(五祖戒)가 대(代)하되 무슨 내유(來由)를 이루리오(着).
낭야각(瑯瑘覺)이 이르되 설봉이 비록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 있으나 다만(且) 사람을 벗어나게 하는 눈이 없다. 석상은 비록 사람을 벗어나게 하는 눈이 있으나 향상의 일규(向上一竅)를 알지 못했다.
법운수(法雲秀)가 이르되 석상을 보고자 하느냐. 부유하면 1천 식구도 적다고 혐의하지만 빈곤하면 1신(身)도 많음을 한탄한다.
동선제(東禪齊)가 염하되 지여(只如) 설봉은 이 석상의 뜻을 아느냐 석상의 뜻을 알지 못하느냐. 만약 안다면 또한 그가 무엇 때문에 말하되 사급(死急)이라 했으며 만약 알지 못한다면 어떠한가. 설봉이 어찌 가히 알지 못하리오만 그러나 법은 다만 다름이 없지만 사승(師承)이 부동(不同)하여 이해의 차별(差別)임을 어찌하겠는가. 그가 이르되 편계(徧界)에 일찍이 감추지 않았다 하니 또한 꼭 일찍이 배워 왔어야 비로소 이회를 얻을 것이며 난설(亂說)하면 곧 옳지 못하다.
천동각(天童覺)이 염하되 석상과 설봉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인가. 바로 이 천 리 만 리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장로(*長蘆)에게 편계(徧界)에 일찍이 숨기지 않았다는 의지를 묻는다면 향해 말하되 어느 곳이 이 석상인가.
천녕기(天寧琦)가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설봉이 이렇게 말한 것은 이는 이 중을 위함이냐 이 중을 위하지 않음이냐. 이것이 이 이 중을 위했다 하면 어느 곳이 이 그를 위한 곳이며 만약 말하되 이 중을 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또 그를 향해 말하되 어느 곳이 이 석상이 아니냐 하였다. 제인이 만약 이 속을 향해 견득(見得)한다면 가위(可謂) 십이시(十二時) 중에 언담어소(言談語笑)하고 동지시위(動止施爲)함이 불사가 아님이 없겠지만 만약 봄을 얻지 못한다면 30년 후에 차화(此話)가 대행(大行)하리라.
불안원(佛眼遠)이 염하되 이미 지척지간(咫尺之閒)임을 알았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스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했는가. 이미 말하되 편계편공(徧界徧空)이라 했거늘 어찌하여 다시 이르되 일찍이 장부(藏覆)하지 않았다 했는가. 도리어 낙절(落節)한 곳을 보느냐. 만약 견득(見得)한다면 곧 석상노자(石霜老子)와 설봉대사를 보리라.
백운병(白雲昺)이 차화를 들어 至어느 곳이 이 석상이 아니냐. 이어서 들되 현사가 이르되 노로대대(老老大大)가 각근(腳跟; 발 뒤꿈치)이 땅에 닿지 않았다. 스님이 송왈(頌曰) 지척지간(咫尺之閒)에서/ 스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행연(幸然)히 독로하면/ 누가 차란(遮攔; 막다)하겠는가/ 요도(潦倒) 석상이 일찍이 지월(指月)했고/ 구구(區區)한 설로(雪老)가 거듭 요설(饒舌; 말이 많음)이다/ 조어선상의 사삼랑(釣魚船上謝三郞; 현사)이/ 금강(金剛; 금강역사)의 뇌후(腦後)에 생철(生鐵)을 더했다.
●第五五八則; 차화는 전등록15에 나옴. ▲조당집6 석상화상(石霜和尙). 석상이 병중(病重; 병이 重篤)할 때 신도(新到; 新到僧) 2백래인(二百來人; 2백 이상의 사람)이 있어 화상을 참견(參見)하지 못해 추창(惆悵; 슬퍼하다)하며 소리 내어 제곡(啼哭)했다. 석상이 감원(監院)에게 묻되 이 어떤 사람들의 곡성(哭聲)인가. 대답해 이르되 2백래개(二百來个)의 신도(新到)가 화상을 참견함을 얻지 못해 이로 인해 제곡(啼哭)합니다. 스님이 이르되 그들을 불러와서 창 너머에서 상간(相看)케 하라. 시자가 곧 그 신도(新到)를 불러 일제히 올라오게 했다. 창 너머에서 예배하고 묻되 지척지간(咫尺之間)이거늘 무엇 때문에 존안(尊顔)을 뵙지 못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편계에 일찍이 숨기지 않았다(遍界不曾藏). 설봉이 차화를 들고 찬사(讚師)한 후에 묻되 편계에 일찍이 숨기지 않았다 하니 이 무슨 계(界)인가. 대답해 이르되 이 무엇인지 화상에게 묻습니다. 설봉이 이르되 물음에 횡수(橫豎)가 있나니 이 네가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 말하느냐. 학인이 알지 못해 또 묻되 충정(衷情)으로 가히 지대(祗對)할 게 없습니다. 설봉이 1수(首)의 게를 지어 가로되 가령(可怜; 可憐)하구나 도연히 수고하는 자(子; 남자)여/ 시인(時人)이 너의 혼미(昏迷)를 비웃는다/ 정신의 맑기가 경상(鏡像)과 같아야/ 형연(迥然)히 사물과 더불어 나뉜다.
●霜峰雪老; 석상경제와 설봉의존을 가리킴.
●滄洲; 빈수(濱水; 물 가)의 지방이니 고시(古時) 상용하여 은사(隱士)의 거처를 일컬었음.
●釣螺江上客; 현사사비(玄沙師備)를 가리킴. 사비는 복주 민현(閩縣) 사람이며 민중(閩中)에 나강(螺江)이 있으며 어릴 적에 수조(垂釣)를 좋아했음.
●指點; 1. 제설(提說; 설해 일으킴). 2. 지시.
●山頭老漢; 여기에선 설봉의존을 가리킴. 산두(山頭)는 곧 산상(山上).
●土地; 토지신(土地神)의 약(略).
●長蘆; 천동정각(天童正覺) 자신을 가리킴. 일찍이 장로사(長蘆寺)에 주(住)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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