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25권)

선문염송집 권21 제859칙

태화당 2022. 2. 4. 07:49

八五九雲居因僧問 *僧家畢竟如何 師云 居山好 僧便作禮 師云 汝作麽生會 僧云 出家人 於善惡逆順生死境界 如山之不動 師便打云 辜負先聖 喪我兒孫 師復問傍僧 你作麽生會 僧云 眼不見玄黃之色 耳不聞絲竹之聲 師又打云 辜負先聖 喪我兒孫

 

投子靑頌 *䃐矹嵯峨萬仞橫 四邊無路不通行 自古兩輪光不到 夜深*王老入西岑

白雲昺頌 僧家畢竟居山好 掛角羚羊何處討 行人休說路歧難 目前便是長安道 萬里平田無寸草 尋聲逐迹數如麻 到頭辜負雲居老

黃龍南上堂擧此話云 且作麽生道得一句 不辜先聖 不喪兒孫 若人道得 到處靑山 無非道場 若道不得 有寒暑兮促君壽 有鬼神兮妬君福 以拂子擊禪床

枯木成上堂擧此話云 諸仁者 古人得與麽簡易 今人得與麽艱難 還知弘覺爲人處麽 若不知 香山有頌 見聞物物盡塵埃 慚愧身心冷似灰 閉戶不須防俗客 此中能有幾人來

天童覺小叅擧此話云 有底道 山是不變之體 靑靑黯黯處去 有什麽交涉 有底道 白雲一重又一重 个是裏許時節 有什麽交涉 若會得者居山好 有什麽不得處 應機而對 隨問而酬 豈不是恰恰相應底 你若作承當 作擔荷 作佛作法 便見不相應 是他平常伊麽用 若是眞實衲僧 點頭相許 若不伊麽 又成千里萬里去也

慈受上堂擧此話云 *道人行處 如火消冰 鳥道玄途 轉身有路 者僧若是个漢 才見他道你作麽生會 但云 和尙*刀耕 學人*火種 和尙煎茶 學人掃地 若下者一轉語 直饒弘覺老子 門深似海 道重如山 聲色形容不可干犯 也須敎滿面是笑

 

第八五九則; 此話出禪宗頌古聯珠通集二十九 大同小異

僧家; 拈頌說話曰 僧家者 非謂山家也 如儒家道家也

䃐矹; 投子義靑語錄下作突兀 從容錄二作㟮屼

王老; 指雲居道膺 俗姓王

道人行處; 聯燈會要二十三玄沙師備 師云 道人行處 如火銷氷 終不却成氷 箭旣離絃 無返回勢 所以牢籠不肯住 呼喚不回頭 古聖不安排 至今無處所

刀耕; 指農耕 刀 形狀象刀的農具

火種; 指農耕 謂火燒後播種而耕作

 

八五九운거가, 중이 묻되 승가(*僧家)는 필경 어떻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산에 거주함이 좋다. 중이 곧 작례(作禮)했다. 스님이 이르되 네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중이 이르되 출가인은 선악ㆍ역순ㆍ생사 경계에 산의 부동(不動)함과 같아야 합니다. 스님이 곧 때리고 이르되 선성(先聖)을 고부(辜負; 저버리다)하고 나의 아손을 죽였다(). 스님이 다시 곁의 중에게 묻되 너는 어떻게 이회하느냐. 중이 이르되 눈은 현황지색(玄黃之色)을 보지 않고 귀는 사죽지성(絲竹之聲)을 듣지 않습니다. 스님이 또 때리고 이르되 선성(先聖)을 고부(辜負)하고 나의 아손을 죽였다().

 

투자청(投子靑)이 송하되 돌올(*䃐矹)하고 차아(嵯峨; 높고 험함)하여 만인(萬仞)이 가로놓였나니/ 사변(四邊)에 길이 없어 통행하지 못한다/ 자고(自古)로 양륜(兩輪; 日月)의 빛이 이르지 않나니/ 야심에 왕로(*王老)가 서잠(西岑; 西峯)으로 들어갔다.

 

백운병(白雲昺)이 송하되 승가(僧家)는 필경 산에 거주함이 좋나니/ 뿔을 건 영양(羚羊)을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행인은 길이 갈래지고 어려움을 설하지 말지니/ 목전이 곧 이 장안의 길이다/ 만 리의 평전(平田; 평지의 넓은 논밭)에 촌초(寸草)도 없거늘/ 심성축적(尋聲逐迹)하는 수가 삼과 같지만/ 마침내(到頭) 운거로(雲居老)를 고부(辜負)했다.

 

황룡남(黃龍南)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그래 어떻게 1구를 도득(道得)해야 선성(先聖)을 저버리지 않고 아손을 죽이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도득(道得)하면 도처가 청산이며 도량이 아님이 없겠지만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할진대 한서(寒暑)가 있어 그대의 수명을 재촉하고 귀신이 있어 그대의 복을 질투하리라. 불자로써 선상을 쳤다.

 

고목성(枯木成)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제인자(諸仁者)여 고인이 이렇게 간이(簡易)함을 얻었거늘 금인(今人)은 이렇게 간난(艱難)함을 얻는다. 도리어 홍각(弘覺; 운거)이 사람을 위하는 곳을 아느냐. 만약 알지 못할진대 향산(香山; 枯木成)이 송이 있다. 견문(見聞)하는 물건마다 다 진애(塵埃)/ 신심(身心)의 차갑기가 재와 같음을 참괴(慚愧)한다/ 폐호(閉戶)하여 속객(俗客)을 막음을 쓰지 않더라도/ 이 가운데 능히 몇 사람이나 옴이 있는가. ()하라.

 

천동각(天童覺)이 소참에 차화를 들고 이르되 어떤 이는 말하되 산은 이 불변(不變)의 체()니 청청암암(靑靑黯黯)한 곳으로 간다 하거니와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어떤 이는 말하되 백운이 일중(一重)에 또 일중(一重)이니 이것이 이(个是) 이허(裏許; 이면)의 시절이라 하거니와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만약 회득(會得)하는 자는 산에 거주함이 좋나니 무슨 얻지 못할 곳이 있겠는가. 응기(應機)하여 응대하고 수문(隨問)하여 응수하거늘 어찌 이 흡흡(恰恰) 상응하여 감이 아니겠는가. 너희가 만약 승당(承當)을 짓거나 담하(擔荷)를 짓거나 불()을 짓고 법을 지으면 곧 불상응(不相應)을 보리니 이는 그가 평상에 이렇게 쓴 것이다. 만약 이 진실한 납승이라면 점두(點頭)하며 상허(相許)하려니와 만약 이러하지 않을진대 또 천리만리(千里萬里)를 이루어 간다.

 

자수(慈受)가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도인의 행처(*道人行處)는 불이 얼음을 녹임과 같나니 조도(鳥道)와 현도(玄途)에 전신(轉身)할 길이 있다. 이 중이 만약 시개한(是个漢; 진정한 장부)이었다면 그가 말하되 네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함을 겨우 보고는 단지 이르되 화상이 도경(*刀耕)하면 학인은 화종(*火種)하고 화상이 전다(煎茶)하면 학인이 소지(掃地)하겠습니다. 만약 이 일전어(一轉語)를 내렸다면 직요(直饒) 홍각노자(弘覺老子)의 문이 바다와 같이 깊고 도가 산과 같이 무거워 성색과 형용(形容)으로 가히 간범(干犯)하지 못할지라도 또한 꼭 만면(滿面)으로 하여금 이 웃게 했으리라.

 

第八五九則; 차화는 선종송고연주통집29에 나옴. 대동소이함.

僧家; 염송설화에 가로되 승가(僧家)란 것은 산가(山家)를 말함이 아니라 유가(儒家)ㆍ도가(道家)와 같음 것임.

䃐矹; 투자의청어록하(投子義靑語錄下)에 돌올(突兀; 높이 솟은 모양)로 지어졌고 종용록2에 돌올(㟮屼; 突兀과 같은 뜻)로 지어졌음.

王老; 운거도응을 가리킴. 속성이 왕.

道人行處; 연등회요23 현사사비. 스님이 이르되 도인의 행처(道人行處)는 불이 얼음을 녹임과 같아서(如火銷氷) 마침내 도리어 얼음을 이루지 않는다. 화살이 이미 활시위를 떠나면(箭旣離絃) 반회(返回)할 기세가 없나니 소이로 뇌롱(牢籠)하려 해도 긍정해 머물지 않고 호환(呼喚)해도 머리를 돌리지 않나니 고성(古聖)이 안배(按排)치 못하고 지금(至今; 至于今略語) 처소가 없다

刀耕; 농경(農耕)을 가리킴. ()는 형상(形狀)이 칼을 형상(刑象)하는 농구(農具).

火種; 농경(農耕)을 가리킴. 이르자면 불로 태운 후 파종(播種)하고 경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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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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