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四四一】*瓎瓉和尙云 吾有一言 *絶慮忘緣 巧說不得 只要心傳
蔣山元上堂擧此話 良久云 若要心傳 直待驢年
圓悟勤拈 者老漢 魚行水濁 漏逗不小 然雖如是 个中或有解忘緣能絶慮者 出來道 作麽生是心傳 若也會得 已傳了也 若會不得 心卽且置 畢竟是那个一言 歸堂歇去
●第一四四一則; 此話出圓悟錄十八擧話文 ▲宗鏡錄九十八 懶瓚和尙歌云 …… 吾有一言 絶慮忘緣 巧說不得 只用心傳(云云)
●瓎瓉; 宗鏡錄九十八 圓悟錄十八作懶瓚 歷朝釋氏資鑑七作明瓚 明瓚 唐代僧 初參嵩山普寂 默證心契 竝嗣其法 然人罕推重 乃閑居衡巖 衆僧營作 師則晏如 縱被詆訶 殊無愧恥 人稱懶瓚 懶殘 好食衆人之殘食 逐之則所出言語皆契佛理 時人疑是彌陀應身 天寶元年(742)頃 至南嶽寺執役 夜止群牛之下 如是經二十年 李泌隱居衡山時 曾往拜謁 卒諡大明禪師 塔存南嶽 有南嶽懶瓚和尙歌行世 [宋高僧傳十九 傳燈錄三十]
●絶慮忘緣; 斷絶妄慮俗情 忘却事物因緣 是禪悟的境界
【一四四一】 날찬화상(*瓎瓉和尙)이 이르되 나에게 일언이 있나니/ 절려망연(*絶慮忘緣)하여/ 교설(巧說)로 얻지 못하고/ 다만 심전(心傳)을 쓴다.
장산원(蔣山元)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양구하고 이르되 만약 심전(心傳)을 요한다면 바로 여년(驢年)을 기다려라.
원오근(圓悟勤)이 염하되 이 노한은 고기가 다니매 물이 탁해져 누두(漏逗)가 적지 않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개중에 혹 망연(忘緣)하고 능히 절려(絶慮)할 줄 아는 자가 있거든 나와서 말하라. 무엇이 이 심전(心傳)인가. 만약에 회득(會得)한다면 이미 전한 것이지만 만약 이회를 얻지 못했다면 마음은 그래 두더라도 필경 이 어느 것이 일언(一言)인가. 귀당(歸堂)하여 쉬거라.
●第一四四一則; 차화는 원오록18 거화문(擧話文)에 나옴. ▲종경록98. 나찬화상가(懶瓚和尙歌)에 이르되 …… 나에게 일언이 있나니/ 절려망연(絶慮忘緣)하여/ 교설(巧說)로 얻지 못하고/ 다만 심전(心傳)을 쓴다 (운운).
●瓎瓉; 종경록98, 원오록18에 나찬(懶瓚)으로 지었고 역조석씨자감(歷朝釋氏資鑑) 17에 명찬(明瓚)으로 지었음. 명찬(明瓚)은 당대승. 처음에 숭산보적(嵩山普寂)을 참해 묵묵히 증득하고 마음에 계합했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그러나 사람들이 추중(推重)함이 드물었고 이에 형암(衡巖)에 한가히 거처했음. 중승이 영작(營作; 집 따위를 짓거나 물건을 만듦)해도 스님은 곧 안여(晏如; 편안한 모양)했으며 비록 저가(詆訶; 꾸짖고 책망함)를 입어도 특수히 부끄러움이 없었음. 사람들이 나찬(懶瓚)ㆍ나잔(懶殘)으로 호칭했음. 중인(衆人)의 남은 밥을 먹기를 좋아했으며 그를 축출하면 곧 내뱉는 언어가 모두 불리(佛理)에 계합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이 미타의 응신이라고 의심했음. 천보 원년(742) 무렵 남악사(南嶽寺)에 이르러 집역(執役; 服役)했는데 밤에는 뭇 소(群牛) 아래에 머물렀으며 이와 같이 20년을 경과했음. 이비(李泌)가 형산에 은거할 때 일찍이 가서 배알(拜謁)했음. 졸시(卒諡)는 대명선사며 탑이 남악에 존재함. 남악나찬화상가(南嶽懶瓚和尙歌)가 있어 세상에 유행함 [송고승전19. 전등록30].
●絶慮忘緣; 망려(妄慮)와 속정(俗情)을 단절하고 사물의 인연을 망각함이니 이는 선오(禪悟)의 경계.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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