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覺情多念子孫〈婆心太切〉 而今慚愧起家門〈*三十年不少鹽醋〉 是須記取南山語〈貴人多忘〉 鏤骨銘肌共報恩〈恨心不捨〉
●三十年不少鹽醋; 禪苑蒙求上 馬祖闡化於江西 南嶽讓問衆曰 道一爲衆說法否 衆曰 已爲衆說法 讓曰 總未見人持箇消息來 衆無對 因遣一僧去 囑曰 待伊上堂時但問作麽生 伊道底言語記將來 僧去一如讓旨 回謂讓曰 馬祖云 自從胡乱後 三十年不曾少鹽醬 讓然之
노각(老覺)이 정이 많아 자손을 염려하니 〈파심(婆心; 노파심)이 매우 간절하다〉/ 이금(而今; 如今)에 부끄럽게 여기며(慚愧) 가문을 일으켰다 〈30년 동안 염초가 적지 않았다(*三十年不少鹽醋)〉/ 이는 모름지기 남산어(南山語)를 기취(記取)할지니 〈귀인(貴人)은 망각이 많다〉/ 뼈에 새기고 피부에 새겨(鏤骨銘肌) 함께 보은하자 〈한심(恨心)을 버리지 못하는구나〉.
●三十年不少鹽醋; 선원몽구상. 마조가 강서에서 천화(闡化; 교화를 밝히어 드러냄)했다. 남악양(南嶽讓)이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도일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는가. 대중이 가로되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양(讓; 懷讓)이 가로되 저(箇) 소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을 모두 보지 못했다.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인하여 한 중을 보내면서 부촉하여 가로되 그가 상당할 때를 기다렸다가 다만 어떠하냐고 물어보고 그가 말한 언어를 기록해 가져오너라. 중이 가서 회양의 의지(意旨)와 똑같이 했다. 돌아와서 회양에게 일러 가로되 마조가 이르기를 호란(胡乱; 胡도 乱)한 후로부터 30년 동안 일찍이 염장(鹽醬)을 적게 하지 않았다(三十年不曾少鹽醬) 하더이다. 회양이 그렇게 여겼다.
師云 此頌如*韓文*毛頴傳 理事雙彰 眞俗並擧 一往觀來 潙山爲老覺 仰山以下爲子孫 *就裏卽不然 僧問長沙*岑大蟲 *本來人還成佛否 沙云 爾道 大唐天子還割茅刈草否 是知 刈茆乃臣子邊事 而今慚愧起家門 千年無影樹 今時沒底靴 *住持千嶂月 衣鉢一溪雲 皆是得力兒孫紹承家業 是知 君臣父子 非特曹洞創立 潙仰父子已行此令 若不是潙山*點破 一向*光影門頭 弄粥飯氣 *驢前馬後 以當平生 甚爲可惜 所以天童敎記取南山刈茆一轉語 鏤骨銘肌報恩不盡 *法燈云 野老負薪歸 催婦連宵織 看他家事忙 且道承誰力 問渠渠不知 特地生疑惑 傷嗟今古人 幾箇知恩德 *知有後如何 *斷臂不覺痛 立雪不敢倦 所以萬松老來住報恩院
●韓文; 卽韓愈(768-824) 唐代古文家 字退之 鄧州南陽(河南南陽)人 先世居昌黎 讚揚儒家 反對佛敎道敎 憲宗時 官至刑部侍郞 後以諫迎佛骨事 貶爲潮州刺史 晩年官至吏部侍郞 人稱韓吏部 嘗問道於大顚和尙 長慶四年十二月卒 時年五十七 贈禮部尙書 謚曰文 [舊唐書一六○ 新唐書一七六 祖庭事苑四 百度百科]
●毛頴傳; 毛頴 卽毛筆 作於韓愈三十六至四十七歲間 [百度百科]
●就裏; 就 代詞 相當于此 其
●岑大蟲; 長沙景岑 見上第十則長沙
●本來人; 與本來身本來面目同義 指吾人本來淸淨之自性
●住持; (一)安住於世而保持法也 如圓覺經云 一切如來光嚴住持 (二)一寺之主僧名住持 此由禪門起 百丈淸規二住持章曰 佛敎入中國四百年而達磨至 又八傳而至百丈 唯以道相授受 或岩居穴處 或寄律寺 未有住持之名 百丈以禪宗寖盛 上而君相王公 下而儒老百氏 皆嚮風問道 有徒實蕃 非崇其位則師法不嚴 始奉其師爲住持 而尊之曰長老 如天竺之稱舍利弗須菩提 以齒德俱尊也
●點破; 點檢 破 助詞 相當于得 了 著
●光影門頭; 指禪家接人之方便法門 光影 喩指虛幻不實之物 亦常指禪家接人之方便法門 方便法門非眞實大法 故稱
●驢前馬後; 驢前馬後漢 謂隨逐於驢馬前後之奴隸 禪宗用以指斥追從他人言行 而無自己獨特之機用者
●法燈; 法燈泰欽(?-974) 宋代法眼宗僧 魏府(今河北大名南)人 嗣法眼文益 辯才無礙 雖解悟逸格 未爲人知 一日法眼問大衆曰 虎項下金鈴 何人解得 對者不契 欽適自外至 卽謂大衆曰 何不道繫者解得 於是人人改觀 初住洪州(今江西南昌)雙林院 後遷金陵(今江蘇南京)淸涼道場 傳法於雲居道齊 太祖開寶七年示寂 壽不詳 諡號法燈禪師 世人多稱師金陵法燈 淸涼泰欽 [傳燈錄二十五 聯燈會要二十七 五燈全書十八]
●知有; 知有此事 又知道 知曉
●斷臂; 五燈會元一菩提達磨章云 其年十二月九日夜 天大雨雪 光(神光)堅立不動 遲明積雪過膝 祖憫而問曰 汝久立雪中 當求何事 光悲淚曰 惟願和尙慈悲 開甘露門 廣度羣品 祖曰 諸佛無上妙道 曠劫精勤 難行能行 非忍而忍 豈以不德小智 輕心慢心 欲冀眞乘 徒勞勤苦 光聞祖誨勵 潛取利刀 自斷左臂 置于祖前 祖知是法器 乃曰 諸佛最初求道 爲法忘形 汝今斷臂吾前 求亦可在 祖遂因與易名曰慧可 可曰 諸佛法印 可得聞乎 祖曰 諸佛法印 匪從人得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祖曰 將心來 與汝安 可良久曰 覔心了不可得 祖曰 我與汝安心竟
스님이 이르되 이 송은 한문(*韓文)의 모영전(*毛頴傳)과 같나니 이사(理事)를 쌍창(雙彰)하고 진속(眞俗)을 병거(並擧)했다. 한 번 가서 보매 위산은 노각(老覺)이 되고 앙산 이하는 자손이 된다. 취리(*就裏)는 곧 그렇지 않나니 중이 장사(長沙) 잠대충(*岑大蟲)에게 묻되 본래인(*本來人)이 도리어 성불합니까. 사(沙; 저본에 山으로 지었음)가 이르되 네가 말하라, 대당천자가 도리어 할모예초(割茅刈草)하는가. 이로 알지니 예모(刈茆)는 곧 신자(臣子; 臣下) 쪽의 일이다. 이금(而今; 如今)에 부끄럽게 여기며(慚愧) 가문을 일으켰다 하니 천년(千年)의 그림자 없는 나무며 금시(今時)의 바닥 없는 신발(靴)이며 주지(*住持)하매 천 봉우리의 달이며 의발은 한 개울의 구름이다. 다 이는 득력(得力)한 아손(兒孫)이 가업을 소승(紹承)한 것이다. 이로 알지니 군신부자(君臣父子)는 특수하게 조동(曹洞)이 창립한 게 아니며 위앙(潙仰) 부자(父子)도 이미 이 영(令)을 행했다. 만약 이 위산이 점파(*點破)하지 않았다면 한결같이(一向) 광영문두(*光影門頭)에서 죽반기(粥飯氣)를 희롱하며 여전마후(*驢前馬後)로 평생에 당적(當敵)하리니 매우 가석(可惜)하다 하리라. 소이로 천동이 남산예모(南山刈茆) 1전어(轉語)를 기취(記取)케 하였으니 뼈에 새기고 피부에 새겨(鏤骨銘肌) 보은(報恩)해도 다하지 않는다. 법등(*法燈)이 이르되 야로(野老)는 섶을 지고 귀가하고/ 최부(催婦; 재촉하며 바쁜 婦人)는 밤을 이어 방직(紡織)한다/ 그를 보건대 가사(家事)가 바쁘거니와/ 그래 말하라 누구의 힘을 승수(承受)했나/ 그(渠)에게 물으니 그(渠)는 알지 못하고/ 특지(特地; 특별. 更加) 의혹을 낸다/ 금고(今古)의 사람을 상차(傷嗟; 슬프게 歎息함)하나니/ 몇 개가 은덕을 아는가. 지유(*知有)한 후는 어떠한가. 단비(*斷臂)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입설(立雪)하여 감히 게으르지 않나니 소이로 만송로(萬松老)가 보은원(報恩院)에 내주(來住)한다.
●韓文; 곧 한유(韓愈; 768-824)니 당대(唐代)의 고문가(古文家). 자는 퇴지(退之)며 등주 남양(하남 남양) 사람이니 선세(先世; 前代. 先祖)는 창려에 거주했음. 유가(儒家)을 찬양(讚揚)했고 불교와 도교에 반대했음. 헌종 때 벼슬이 형부시랑에 이르렀고 후에 불골(佛骨)을 영접하는 사건을 간하다가 폄직(貶職)되어 조주자사가 되었음. 만년에 벼슬이 이부시랑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한이부(韓吏部)라 일컬었음. 일찍이 대전화상(大顚和尙)에게 도를 물었고 장경 4년 12월에 졸(卒)했으며 당시의 나이는 57. 예부상서를 추증하고 시호를 가로되 문(文)이라 했음 [구당서160. 신당서176. 조정사원4. 백도백과].
●毛頴傳; 모영(毛頴)은 곧 모필(毛筆; 짐승의 털로 맨 붓). 한유가 36에서 47세 사이에 지었음 [백도백과].
●就裏; 취(就)는 대사(代詞)니 차(此)ㆍ기(其)에 상당함.
●岑大蟲; 장사경잠(長沙景岑)이니 위 제10칙 장사(長沙)를 보라.
●本來人; 본래신(本來身)ㆍ본래면목과 같은 뜻. 우리 사람의 본래 청정한 자성을 가리킴.
●住持; (1) 세간에 안주하며 법을 보지(保持)함임. 예컨대(如) 원각경에 이르되 일체 여래와 광엄(光嚴; 重重으로 交光하며 비춤이 환함)으로 주지(住持)하셨다. (2) 1사(寺)의 주승(主僧)을 이름해 주지니 이는 선문(禪門)으로부터 일어났음. 백장청규2 주지장(住持章)에 가로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지 4백 년에 달마가 이르렀고 또 8전(傳)하여 백장에 이르렀다. 오직 도상(道相)을 주고 받았으며 혹은 바위에 거처커나 동굴에 거처커나 혹은 율사(律寺)에 기탁하면서 주지란 명칭이 있지 않았다. 백장이, 선종이 점점 성대해지자 위로는 군상왕공(君相王公)과 아래론 유로백씨(儒老百氏)가 다 도풍을 향해 도를 물었으며 도중이 실로 번성함이 있었는데 그 지위를 숭상하지 않으면 사법(師法)이 엄하지 않으므로 비로소 그 스승을 받들어 주지로 삼고 존중해 가로되 장로라 했다. 천축의 사리불과 수보리를 일컬음과 같나니 나이와 덕이 다 높기 때문이다.
●點破; 점검. 파는 조사니 득(得)ㆍ료(了)ㆍ착(著)에 상당함.
●光影門頭; 선가에서 접인(接人)하는 방편법문을 가리킴. 광영(光影)은 허환(虛幻)하여 실답지 못한 사물을 비유로 가리킴. 또한 늘 선가에서 접인(接人)하는 방편법문을 가리킴. 방편법문은 진실한 대법(大法)이 아니므로 고로 일컬음.
●驢前馬後; 여전마후한(驢前馬後漢)이니 이르자면 나귀나 말의 전후를 따라 쫓는 노예임. 선종에서 인용하여 타인의 언행을 추종하고 자기의 독특한 기용이 없는 자를 가리킴.
●法燈; 법등태흠(法燈泰欽; ?-974)이니 송대 법안종승. 위부(魏府; 지금의 河北 大名 南) 사람이며 법안문익(法眼文益)을 이었음. 변재(辯才)가 무애하여 비록 해오(解悟)가 일격(逸格; 逸品)이었으나 사람들이 알지 못했음. 어느 날 법안이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범의 목 아래 금령(金鈴)을 어떤 사람이 풀겠는가. 대답한 자가 계합치 못했음. 태흠이 마침 밖으로부터 이르러 곧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어찌하여 맨 자가 푼다고 말하지 못합니까. 이에 사람마다 개관(改觀)했음. 처음엔 홍주(洪州; 지금의 江西 南昌) 쌍림원(雙林院)에 주(住)했고 후에 금릉(金陵; 지금의 江蘇 南京) 청량도량(淸涼道場)으로 옮겼음. 운거도제(雲居道齊)에게 전법(傳法)하고 태조(太祖) 개보 7년에 시적(示寂)했는데 나이는 불상(不詳)이며 시호가 법등선사(法燈禪師)니 세인이 많이들 스님을 금릉법등(金陵法燈)ㆍ청량태흠(淸涼泰欽)으로 호칭함 [전등록25. 연등회요27. 오등전서18].
●知有; 차사(此事)가 있음을 앎. 또 지도(知道; 알다. 이해하다). 지효(知曉; 알아서 깨달음. 또는 환히 앎).
●斷臂; 오등회원1 보리달마장에 이르되 그 해(534; 宗統編年) 12월 9일 밤에 하늘이 눈을 크게 내렸다. 광(光; 神光)이 굳건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무렵(遲明; 遲는 至의 뜻)엔 눈이 쌓여 무릎을 지났다. 조사가 그를 가엾이 여겨 물어 가로되 네가 오래 눈 속에 선 것은 마땅히 어떤 일을 구함이냐. 신광이 슬프게 눈물 흘리며 가로되 오직 원컨대 화상은 자비로 감로문(甘露門)을 여시어 널리 군품(群品)을 제도하소서. 조사가 가로되 제불의 위없는 묘도(妙道)는 광겁(曠劫)에 정근(精勤)하여 난행(難行)을 능히 행하며 참지 못할 것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부덕한 소지(小智)와 경심만심(輕心慢心)으로 진승(眞乘)을 바라고자 하느냐, 근고(勤苦)함이 헛수고다. 신광이 조사의 회려(誨勵)를 듣고 몰래 예리한 칼을 취해 스스로 왼쪽 팔을 절단하여(自斷左臂) 조사의 앞에 두니 조사가 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이에 가로되 제불이 최초에 구도하면서 법을 위해 형체를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절단하니 구함도 또한 가하다. 조사가 드디어 인해 이름을 바꾸어 주어서 가로되 혜가(慧可)라 했다. 혜가가 가로되 제불의 법인(法印)을 가히 얻어 듣겠습니까. 조사가 가로되 제불의 법인은 타인으로부터 얻는 게 아니다. 혜가가 가로되 나의 마음이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 편안하게 해 주시기를 구걸합니다. 조사가 가로되 마음을 가지고 오면 너를 편안케 해 주리라. 혜가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마음을 찾았으나 가히 얻지 못하겠습니다. 조사가 가로되 내가 너에게 마음을 편안케 해 주길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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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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