擧 *麻谷*持錫到*章敬 遶*禪床三匝振錫一下 卓然而立〈可曬有禪〉 敬云 是是〈且信一半〉 谷又到南泉 遶禪床三匝振錫一下 卓然而立〈*來朝更獻楚王看〉 泉云 不是不是〈也且信一半〉 谷云 章敬道是 和尙爲什麽道不是〈棺木裏睜眼〉 泉云 章敬卽是 是汝不是〈*雪上加霜〉 此是風力所轉 終成敗壞〈殺人須見血〉
●麻谷; 麻谷寶徹 唐代僧 籍貫 俗姓 生卒年皆不詳 嗣法馬祖道一 居於蒲州(山西)麻谷山 [祖堂集十五 傳燈錄七]
●持錫; 錫 錫杖 略稱錫或杖 梵語隙棄羅 喫棄羅 又作聲杖 有聲杖 智杖 德杖 鳴杖 金錫 比丘十八物之一 ▲翻譯名義集七 隙棄羅 此云錫杖 由振時作錫錫聲故 十誦名聲杖 錫杖經又名智杖 亦名德杖 彰智行功德故 聖人之幖幟 賢士之明記道法之幢 根本雜事云 比丘乞食 深入長者之家 遂招譏謗 比丘白佛 佛云 可作聲警覺 彼卽呵呵作聲喧鬧 復招譏毁 佛制不聽 遂拳打門 家人怪問 何故打破我門 默爾無對 佛言 應作錫杖 苾芻不解 佛言 杖頭安鐶圓如醆口 安小鐶子 搖動作聲而爲警覺 動可一二 無人聞時 卽須行去 五百問論 持錫有多事 能警惡蟲毒獸等 義淨云 錫杖都有三分 上分是錫 中木 下或牙角也 若二股六鐶是迦葉佛製 若四股十二鐶是釋迦佛製
●章敬; 章敬懷暉(754-815) 唐代僧 又作懷惲 泉州人 俗姓謝 貞元元年(785)禮馬祖道一 得其心要 後隱於岨峽山 寓居濟州(山東)靈巖寺 定州(河北)百巖寺 又於中條山大開禪法 元和三年(808) 敕住長安章敬寺毘盧遮那院 竝常入大內 居於上座 元和十年示寂 壽六十二 敕諡大覺禪師 後又追諡大宣敎禪師 [傳燈錄七 宋高僧傳十]
●禪床; 又作禪牀 牀 同床 玉篇 床 俗牀字 禪牀又作繩牀 坐禪牀 卽以繩草或籐 所製之折疊牀 以其輕巧 且攜帶方便 故爲比丘經常攜行之道具 屬十八物之一
●來朝更獻楚王看; 祖庭事苑三 卞和 楚人卞和獻玉於楚厲王 王曰 石也 遣使刖一足 及武王卽位 和又獻之武 武王復怒 又刖一足 至楚文王立 和抱璞哭於荊山之下 文王召而謂曰 刖足者 何怨乎 曰 不怨刖足 而怨眞玉以爲凡石 忠事以爲慢事 是以哭之 文王乃使工剖石 乃眞玉也 文王嘆曰 哀哉 二先君易刖人足 而難於剖石 令和果是璧 乃國寶也 見韓子(韓非子和氏第十三)
●雪上加霜; 比喩事之重複而無必要 與頭上安頭 錯上加錯同義
거(擧)하다. 마곡(*麻谷)이 석장(錫杖)을 가지고(*持錫) 장경(*章敬)에 이르러 선상(*禪床)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떨치고 탁연(卓然; 탁월)히 섰다. 〈가히 매우 선(禪)이 있다〉 장경이 이르되 옳다, 옳다(是是). 〈다만 일반(一半; 折半)만 믿겠다〉 마곡이 또 남천(南泉)에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떨치고 탁연히 섰다. 〈내일 아침 다시 초왕에게 바쳐보아라(*來朝更獻楚王看)〉 남천이 이르되 옳지 않다, 옳지 않다(不是不是). 〈또 다만 일반(一半; 折半)만 믿겠다〉 마곡이 이르되 장경은 말하기를 옳다 했는데 화상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합니까. 〈관목(棺木)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구나〉 남천이 이르되 장경은 곧 옳지만 이 너는 옳지 않다.〈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이것은 이 풍력에 굴리는 바라 마침내 패괴(敗壞)를 이룬다. 〈살인하면 반드시 피를 본다〉
●麻谷; 마곡보철(麻谷寶徹)이니 당대승. 적관(籍貫)ㆍ속성(俗姓)ㆍ생졸년은 모두 불상임. 마조도일의 법을 잇고 포주(산서) 마곡산에 거주했음 [조당집15. 전등록7].
●持錫; 석(錫)은 석장(錫杖)이니 약칭이 석(錫) 혹은 장(杖)이며 범어로는 극기라(隙棄羅)ㆍ끽기라(喫棄羅)임. 또 성장(聲杖)ㆍ유성장(有聲杖)ㆍ지장(智杖)ㆍ덕장(德杖)ㆍ명장(鳴杖)ㆍ금석(金錫)으로 지으며 비구 18물(物)의 하나임. ▲번역명의집7. 극기라(隙棄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석장이다. 떨칠 때 석석성(錫錫聲)을 짓기 때문의 연고이다. 십송(十誦)엔 성장(聲杖)으로 이름했고 석장경(錫杖經)엔 또 지장(智杖)으로 이름했고 또 이름이 덕장(德杖)이니 지행(智行)의 공덕을 나타내는 연고이다. 성인의 표치(幖幟)며 현사(賢士)의, 도법을 명기(明記)하는 깃발이다. 근본잡사(根本雜事)에 이르되 비구(比丘)가 걸식(乞食)하면서 장자(長者)의 집에 깊이 들어가자 드디어 기방(譏謗; 譏는 나무랄 기)을 초래했다. 비구가 불타에게 사뢰자 불타가 이르시되 가히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하라. 그가 곧 하하(呵呵; 呵는 웃을 가. 원음이 하)하며 소리를 지어 훤뇨(喧鬧. 喧은 시끄러울 훤. 鬧는 시끄러울 뇨)해서 다시 기훼(譏毀)를 초래했다. 불타가 억제하여 청허(聽許; 聽은 허락할 청)하지 않자 드디어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가인(家人)이 괴이히 여겨 묻되 무엇 때문에 나의 문을 타파하느냐. 침묵하며 대답이 없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응당 석장(錫杖)을 만들어라. 필추(苾蒭)가 알지 못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장두(杖頭)에 고리(鐶)를 안치하되 둥글기는 잔구(醆口; 醆은 술잔 잔)와 같이 하고 작은 고리를 안치해 요동(搖動)하여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을 하라. 요동은 한 두 번이 옳나니 듣는 사람이 없을 때는 곧 떠나감을 써라. 오백문론(五百問論) 지석(持錫)함엔 여러 일이 있다. 능히 악충(惡蟲)과 독수(毒獸) 등을 경각한다. 의정(義淨)이 이르되 석장은 모두 3분(分)이 있다. 상분(上分)은 이 석(錫; 주석)이며 중(中)은 나무며 하(下)는 혹 아각(牙角)이다. 만약 2고6환(二股六鐶)이면 이는 가섭불의 법제(法製)며 만약 4고12환(四股十二鐶)이면 이 석가불의 법제다.
●章敬; 장경회휘(章敬懷暉; 754-815)니 당대승. 또 회운(懷惲)으로 지으며 천주 사람이며 속성은 사(謝). 정원 원년(785)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예알하고 그의 심요(心要)를 얻었음. 후에 저협산(岨峽山)에 은거했으며 제주(산동) 영암사와 정주(하북) 백암사에 우거(寓居)하기도 했음. 또 중조산(中條山)에서 선법을 크게 열었음. 원화 3년(808) 칙명으로 장안 장경사(章敬寺)의 비로자나원(毘盧遮那院)에 주(住)했으며 아울러 대내(大內)에 상입(常入)했고 상좌(上座)에 거처했음. 원화 10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62. 칙시(敕諡)가 대각선사(大覺禪師)며 뒤에 또 추시(追諡)하여 대선교선사(大宣敎禪師)라 했음 [전등록7. 송고승전10].
●禪床; 또 선상(禪牀)으로 지음. 상(牀)은 상(床)과 같음. 옥편 상(床) 상(牀)의 속(俗) 글자다. 선상(禪牀)은 또 승상(繩牀)ㆍ좌선상(坐禪牀)으로 지음. 곧 승초(繩草)나 혹 등(籐)으로 제작한 바의 절첩상(折疊牀; 접이식 상)이니 그것이 경교(輕巧)하고 또 휴대하기가 방편(方便)한지라 고로 비구가 경상(經常; 平時)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됨. 18물의 하나에 속함.
●來朝更獻楚王看; 조정사원3. 변화(卞和) 초(楚)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초(楚)의 여왕(厲王)에게 옥을 바쳤다. 왕이 가로되 돌이로다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한 발을 잘랐다. 및 무왕(武王; 재위 前 740-前 690)이 즉위하자 화(和)가 또 무왕에게 그것을 바쳤다. 무왕이 다시 노해 또 한 발을 잘랐다. 초문왕(楚文王; 재위 前 689-前 675)이 옹립됨에 이르러 화가 옥덩이를 안고 형산(荊山) 아래에서 곡(哭)했다. 문왕이 불러서 일러 가로되 발을 베인 자야, 무엇을 원망하는가. 가로되 발을 베임을 원망함이 아니라 진옥(眞玉)을 범석(凡石)으로 삼고 충사(忠事)를 만사(慢事; 慢은 傲慢할 만)로 삼음을 원망함이니 이 때문에 그것을 곡합니다. 문왕이 이에 공인(工人)을 시켜 돌을 쪼개게 했는데 곧 진옥(眞玉)이었다. 문왕이 탄식하며 가로되 슬프다, 두 선군(先君)이 사람의 발을 쉬이 자르면서 돌을 쪼갬엔 어려워했다. 변화(卞和)에게 시키니 과연 이 벽옥(璧玉)은 곧 국보(國寶)였다. 한자(韓子; 한비자 화씨 제13)를 보라.
●雪上加霜; 일이 중복되어 필요가 없음에 비유함. 두상안두ㆍ착상가착(錯上加錯)과 같은 뜻.
師云 昔日仰山到*中邑*謝戒 邑於禪床上拍手云 *阿㖿阿㖿 仰從西過東 從東過西 復向中心立 然後謝戒 邑云 甚處得此三昧 仰云 於*曹溪脫印子學來 邑云 汝道 曹溪三昧接甚麽人 仰云 接*一宿覺 仰復問 和尙甚處得此三昧 邑云 馬大師處得此三昧 蒲州麻谷寶徹禪師 恰如*永嘉初見六祖 持錫到章敬 遶禪床三匝振錫一下 卓然而立 也如曹溪脫印子學來 此名*三昧王三昧 一切三昧皆從此生 章敬道 是是 萬松道 有何不可 *勝默光和尙道 是無可是 非無眞非 是非無主 萬善同歸 梟鷄晝夜 徒自支離 我無*三寸 鱉得喚龜 迦葉不肯 一任*攢眉 萬松道 多愁早老 麻谷要與諸方勘同 麻谷又曾到*忠*國師處 遶禪床三匝振錫而立 國師云 旣能如是 何用更見貧道 谷又振錫 國師云 這*野狐精出去 看他賓主相見 有照有用 有首有尾 良由熟處難忘慣得其便 又到南泉遶床 振錫依前而立 南泉却道 不是不是 便似曾與章敬廝*計會來 大潙喆云 章敬道是 落在麻谷彀中 南泉道不是 亦落在麻谷彀中 大潙卽不然 忽有人持錫遶禪床三匝 卓然而立 但向伊道 未到這裏 好與三十棒 萬松道 不可口行*人事 便打 谷云 章敬道是 和尙爲什麽 道不是 不妨疑著 泉云 章敬卽是 是汝不是 見機而作 臨險推人 *圓通善國師道 麻谷卽是 南泉不是 此語正如*鄧峯永庵主問僧審奇 汝久不見 何所爲 奇曰 近見偉*藏主 有箇安樂處 永曰 試擧似我 奇因敘其所得 永曰 汝是偉未是 奇莫測 歸語於偉 偉大笑曰 汝非永不非也 奇走質於*積翠南禪師 南亦大笑 永聞之作偈曰 明暗相參殺活機 大人境界*普賢知 同條生不同條死 笑倒庵中老古錐 覺範云 觀其語言 想見當時 法喜游戲之逸韻 萬松道 麻谷章敬南泉 此興亦不淺 若聞此是風力所轉終成敗壞 更是好笑 這王老師 不唯把定乾坤 兼有*出身之路 *保寧勇和尙頌云 顔色規模恰似眞 人前拈弄越光新 及乎入火重烹鍊 *到了終歸是假銀 麻谷到此 *瓦解氷消 若要氷河發焰鐵樹花開 須得天童別下一轉語 頌云
●中邑; 中邑洪恩 唐代僧 師事馬祖道一 得其密傳 出居朗州(今湖南常德)中邑 人稱中邑洪恩 每見僧來 拍口作和和聲 [五燈會元三 傳燈錄六]
●謝戒; 沙彌得度受戒後 至戒師處致拜謝禮 稱爲謝戒 ▲百丈淸規五沙彌得度 謝戒詞云 某等獲登戒品 濫廁僧倫 仰荷庇庥 特此拜謝 答云 宿承佛記 僧戒圓成 堅忍受持 力扶宗敎
●阿㖿; 亦作阿耶 阿邪 阿哪 病患者的呻吟聲 呼痛聲
●曹溪; ①位於韶州(今廣東曲江縣東南)之河 發源於狗耳嶺 西流與溱水合 以經曹侯塚故 又稱曹侯溪 梁天監元年(502) 天竺婆羅門三藏智藥 到曹溪口 飮其水而知此源爲勝地 乃勸村人建寺 復因其地似西國之寶林山 故稱寶林寺 智藥預言 一七○年後 有肉身菩薩 於此開演無上法門 得道者如林 至唐儀鳳二年(677)春 六祖慧能從弘忍得法後 從印宗剃髮 受具足戒而歸寶林寺 大弘法化 人稱曹溪法門 ②指六祖慧能 慧能以曹溪寶林寺爲中心 開展敎化活動 世人尊稱爲曹溪古佛 曹溪高祖
●印子; 圖章 喩指以心印心爲傳承方式的禪法
●一宿覺; 唐代僧人玄覺 赴曹溪參謁六祖慧能 初次見面 應對契合禪旨 六祖稱嘆善哉善哉 少留一宿而辭別 當時稱爲一宿覺 [五燈會元二 六祖壇經 傳燈錄五]
●永嘉初見六祖; 禪宗頌古聯珠通集八 永嘉眞覺玄覺禪師(嗣六祖)精天台止觀圓妙法門 四威儀中常冥禪觀 後因左溪朗激勵 與東陽筞同詣曹溪 初到 振錫攜甁 繞祖三帀 祖曰 夫沙門者 具三千威儀八萬細行 大德自何方而來生大我慢 師曰 生死事大無常迅速 祖曰 何不體取無生了無速乎 師曰 體卽無生 了本無速 祖曰 如是如是 時大衆無不愕然 師方具威儀參禮 須臾告辭 祖曰 返太速乎 師曰 本自非動 豈有速耶 祖曰 誰知非動 師曰 仁者自生分別 祖曰 汝甚得無生之意 師曰 無生豈有意耶 祖曰 無意誰當分別 師曰 分別亦非意 祖歎曰 善哉善哉 留一宿 時謂一宿覺
●三昧王三昧; 又名王三昧 又曰三昧王 三昧中之最勝者
●勝默光; 宋代曹洞宗僧 得法於王山體 住順天(北京市)慶壽寺 [續燈存稾十一]
●三寸; 三寸之舌 ▲史記七十六 以三寸之舌 彊(當也)於百萬之師
●攢眉; 皺眉 表示不愉快
●忠國師; 慧忠國師 慧忠(?-775) 又作惠忠 唐代僧 浙江諸曁人 俗姓冉 自幼學佛 初習戒律 長通經論 聞六祖慧能大師之名 卽踰嶺叩謁 獲其心印 而入南陽白崖山黨子谷(白草谷) 靜坐長養 四十餘年足不出山 而學者就之 恆逾百千 開元年中 玄宗欽其道譽 迎赴京師 敕住龍興寺 未久逢安史之亂 師乃遁歸 肅宗上元二年(761) 再召赴京 住千福寺西禪院 公卿士庶參叩求法 不捨晝夜 代宗繼位 優禮有加 遷住光宅寺 後歸南陽 於大曆十年在黨子谷示寂 年壽當在八十以上 諡號大證禪師 世稱南陽慧忠 南陽國師 [宋高僧傳九 傳燈錄五 傳法正宗記七]
●國師; 祖庭事苑七 國師 西域之法 推重其人 外內攸同 邪正俱有 擧國歸依 乃彰斯號 聲敎東漸 唯北齊高僧法常 齊主崇爲國師 國師之號 自常公始 陳隋之代 天台智顗爲陳宣隋煬菩薩戒師 故時號國師 唐則天朝 神秀召入京師 及中睿玄凡四朝 皆號爲國師 後有慧忠 肅代二朝 入禁中說法 亦號國師 元和中 敕署知玄號悟達國師 若偏覇之國 則蜀後主 賜右街僧錄光業爲祐聖國師 吳越稱德韶爲國師 [大宋僧史略卷中]
●野狐精; 原指野狐之精魅 能作變幻 以欺誑他人 禪錄中多用作對不合禪法者的責罵語 或機語問答時 嘲謔對方的呵斥語
●計會; 會計 計算 引申爲計慮 商量
●人事; ①人間事務 人間交往 ▲宗門武庫 遂發誓 遇休沐 還私宅 屛絶人事 炷香禮佛 刺血寫華嚴經一部 ②禮拜 參拜 ▲臨濟語錄 有一老宿參師 未曾人事便問 禮拜卽是 不禮拜卽是 ▲仰山語錄 師禮拜了 却入客位 具威儀再上人事 東寺見乃云 已相見了也 ③奉送 饋贈 ▲傳燈錄十二寶應 思明和尙未住西院時 到參禮拜後白曰 別無好物人事 從許州買得一口江西剃刀來獻和尙 ④表籍貫 同人氏 ▲聯燈會要十五寶峰文準 文(克文)云 甚處人事 師云 興元府 此指③
●圓通善國師; 宋代僧 未詳法嗣 疑雲門宗嗣佛覺 [五燈會元續略二下 五燈全書一百十九]
●鄧峯永庵主; 指積翠永菴主 宋代僧 居黃檗積翠 嗣黃龍慧南 [五燈會元十七 續傳燈錄十六]
●藏主; 寺院職事僧 主管佛經圖書 亦稱知藏
●積翠南; 宋代臨濟宗黃龍派之祖慧南 曾住黃檗積翠庵
●普賢; 梵名邲輸跋陀 又作三曼多跋陀羅 或譯曰普賢 或作遍吉 主一切諸佛之理德定德行德 與文殊之智德證德相對 卽理智一雙 行證一雙 三昧般若一雙也 故以爲釋迦如來之二脅士 文殊駕師子侍佛之左方 普賢乘白象 侍佛之右方(今反智右理左之說者 示理智融通之義 又胎藏界之次第右蓮左金也) 此理智相卽 行證相應 三昧與般若全者 卽毘盧舍那法身佛也 華嚴一經之所明 歸於此一佛二菩薩之法門 故稱爲華嚴三聖 [法華義疏十二 探玄記二 大日經疏一]
●出身; 省悟 徹悟
●保寧勇; 保寧仁勇 宋代楊岐派僧 俗姓竺 四明人 幼年出家 初習天台敎典 能通前人旨意 往謁雪竇重顯 重顯譏之爲央庠座主 仁勇憤悱而去 往潭州(今湖南長沙)雲蓋山 參楊岐方會 一語未了 頓悟禪旨 而嗣其法 楊岐寂後 與同參白雲守端雲遊四方 硏討玄奥 後住持金陵(今江蘇南京)保寧寺 有保寧仁勇禪師語錄一卷行世 [五燈會元九 普燈錄四]
●到了; 終了 終極
●瓦解氷消; 瓦解爲泥 氷消爲水 形容解疑或失本形
스님이 이르되 지난날 앙산(仰山)이 중읍(*中邑)에 이르러 사계(*謝戒)했다. 중읍이 선상 위에서 박수(拍手)하고 이르되 아야(*阿㖿; 㖿는 假借하여 耶音으로 지음) 아야(阿㖿). 앙산이 서쪽으로 좇아 동쪽에 이르고 동쪽으로 좇아 서쪽에 이르렀다가 다시 중심을 향해 선 연후에 사계했다. 중읍이 이르되 어느 곳에서 이 삼매를 얻었는가. 앙산이 이르되 조계(*曹溪)에서 인자(印子)를 탈출해 배워 왔습니다. 중읍이 이르되 네가 말하라, 조계가 삼매로 어떤 사람을 접인(接引)했는가. 앙산이 이르되 일숙각(*一宿覺)을 접인했습니다. 앙산이 다시 묻되 화상은 어느 곳에서 이 삼매를 얻었습니까. 중읍이 이르되 마대사(馬大師)의 처소에서 이 삼매를 얻었다. 포주(蒲州) 마곡(麻谷) 보철선사(寶徹禪師)가 영가가 6조를 초견(*永嘉初見六祖)함과 흡여(恰如; 흡사)하게 석장을 가지고 장경(章敬)에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떨치고 탁연(卓然)히 섰으니 또한 조계에서 인자(印子)를 탈출해 배워 온 것과 같다. 이 이름이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니 일체의 삼매가 모두 이것으로 좇아 생겨난다. 장경이 말하되 옳다, 옳다(是是). 만송이 말하노니 무슨 불가(不可)함이 있으리오. 승묵광(*勝默光) 화상이 말하되 시(是)가 가히 시(是)가 없고 비(非)가 진비(眞非)가 없나니 시비(是非)가 주(主)가 없으며 만선(萬善)이 동귀(同歸)한다. 올빼미와 닭이 주야(晝夜)로 도연(徒然)히 스스로 지리(支離)하나니 나는 삼촌(*三寸)이 없어 자라를 거북이라고 부름을 얻는다. 가섭이 불긍(不肯)하니 찬미(*攢眉)하는 대로 일임한다. 만송이 말하노니 수심이 많으면 일찍 늙는다. 마곡이 제방의 감험(勘驗)과 더불어 동일함을 요하였다. 마곡이 또 일찍이 충국사(*忠*國師)의 처소에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떨치고 서자 국사가 이르되 이미 능히 이와 같거늘 왜 다시 빈도(貧道)를 상견함을 쓰느냐. 마곡이 또 석장을 떨쳤다. 국사가 이르되 이 야호정(*野狐精)아 나가거라. 저 빈주(賓主)의 상견을 보건대 유조유용(有照有用)하고 유수유미(有首有尾)하니 참으로(良) 익힌 곳은 잊기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습관으로 그 편의를 얻었다. 또 남천에 이르러 선상을 돌고 석장을 떨치고 의전(依前)히 서자 남천이 도리어 말하되 옳지 않다, 옳지 않다(不是不是) 했으니 곧 일찍이 장경과 더불어 서로 계회(*計會)하여 옴과 흡사하다. 대위철(大潙喆)이 이르되 장경이 옳다고 말한 것은 마곡의 구중(彀中; 사정거리 속)에 떨어져 있고 남천이 옳지 않다고 한 것도 또한 마곡의 구중(彀中)에 떨어져 있다. 대위(大潙)는 곧 그렇지 않나니 홀연히 어떤 사람이 석장을 가지고 선상을 세 바퀴 돌고 탁연(卓然)히 선다면 단지 그를 향해 말하되 이 속에 이르지 아니한 전에 좋게 30방 주겠다. 만송이 말한다. 입으로 인사(*人事)를 행함은 옿지 않나니 곧 때렸겠다. 마곡이 이르되 장경은 옳다고 말했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가 하니 의착(疑著)함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남천이 이르되 장경은 곧 옳지만 이 너는 옳지 않다 하니 견기(見機)하여 지었고 임험(臨險)하여 남에게 미루었다(推). 원통선국사(*圓通善國師)가 말하되 마곡은 곧 옳지만 남천은 옳지 않다 했으니 이 말은 정여(正如; 예를 듦) 등봉영암주(*鄧峯永庵主)가 승(僧) 심기(審奇)에게 묻되 너는 오래 보이지 않았는데 한 바가 무엇인가. 심기가 가로되 요사이 위장주(偉*藏主)를 뵙고 저(安樂處) 안락처(安樂處)가 있었습니다. 영(永)이 가로되 시험 삼아 나에게 거사(擧似)하라. 심기가 인하여 그 얻은 바를 서술했다. 영이 가로되 너는 옳지만 위(偉)는 옳지 않다. 심기가 막측(莫測)하고 돌아가 위(偉)에게 말하자 위가 크게 웃고 가로되 너는 그르고 영(永)은 그르지 않다. 심기가 달려가 적취남(*積翠南) 선사에게 질문하자 남(南)도 또한 크게 웃었다. 영(永)이 이를 듣고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명암이 상참(相參)하는 살활기(殺活機)며/ 대인(大人)의 경계라 보현(*普賢)이 안다/ 동조생(同條生)이며 동조사(同條死)가 아니니/ 암중(庵中)의 노고추(老古錐)를 웃겨 넘어뜨렸다. 각범(覺範)이 이르되 그 어언(語言)을 관(觀)하고 당시를 상견(想見; 상상해 보다)하건대 법희(法喜)로 유희(游戲)한 일운(逸韻; 뛰어난 韻致)이다. 만송이 말하노니 마곡ㆍ장경ㆍ남천도 이 흥(興)이 또한 얕지 않다. 만약 이것은 이 풍력에 굴리는 바라 마침내 패괴(敗壞)를 이룬다 함을 듣는다면 다시 이 호소(好笑; 좋은 웃음거리)다. 이 왕노사(王老師)는 오직 건곤을 파정(把定)할 뿐만 아니라 겸하여 출신지로(*出身之路)가 있다. 보녕용(*保寧勇) 화상이 송운(頌云)하되 안색과 규모는 진(眞)과 흡사하여/ 사람들 앞에서 염롱(拈弄)하매 뛰어난 빛이 참신(斬新)하다/ 불에 넣어 거듭 팽련(烹鍊)함에 이르러선/ 도료(*到了) 마침내 이 가짜 은으로 돌아간다. 마곡이 여기에 이르러 와해빙소(*瓦解氷消)했거니와 만약 빙하(氷河)가 발염(發焰)하고 철수(鐵樹)에 화개(花開)함을 요한다면 모름지기 천동이 따로 1전어(轉語)를 내림을 얻어야 하리라. 송운(頌云)하되
●中邑; 중읍홍은(中邑洪恩)이니 당대승.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사사(師事)해 그 밀전(密傳)을 얻었음. 출세해 낭주(지금의 호남 상덕) 중읍에 거주했고 사람들이 호칭하기를 중읍홍은(中邑洪恩)이라 했음. 매번 중이 옴을 보면 입을 두드리며 화화성(和和聲)을 지었음 [오등회원3. 전등록6].
●謝戒; 사미가 득도(得度)하여 수계한 후에 계사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감사하는 예의니 사계라고 일컬음. ▲백장청규5 사미득도. 사계사(謝戒詞)에 이르되 모(某) 등이 계품(戒品)에 오름을 얻어 외람되이 승려의 무리에 섞였으니 감싸고 덮어주심을 우러러 받들고자(荷는 承受임) 특별히 이에 예배하며 감사합니다. 답해 이르되 옛적에 불타의 수기를 받들어 승계(僧戒)를 원만성취했으니 굳게 참으며 수지하여 힘껏 종교를 부지(扶持)하라.
●阿㖿; 또한 아야(阿耶), 아야(阿邪), 아나(阿哪)로 지음. 병환자의 신음 소리며 통증을 호소하는 소리임.
●曹溪; ①소주(韶州; 지금의 광동 曲江縣 동남)의 강하(江河)에 위치함. 구이령(狗耳嶺)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진수(溱水)와 합함. 조후총(曹侯塚)을 경유하는 연고로써 또 호칭이 조후계(曹侯溪)임. 양(梁) 천감원년(天監元年; 502) 천축 바라문삼장(婆羅門三藏)인 지약(智藥)이 조계의 입구에 이르러 그 물을 마시고는 이 근원이 승지(勝地)가 됨을 알았음. 이에 촌인(村人)에게 권해 사원을 세우게 하고 다시 그 땅이 서국(西國)의 보림산(寶林山)과 흡사하다 하여 고로 보림사(寶林寺)로 호칭했음. 지약이 예언해 말하되 170년 후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있어 여기에서 무상법문(無上法門)을 개연(開演)할 것이며 득도(得道)하는 자가 숲과 같으리라. 당(唐) 의봉2년(儀鳳二年; 677) 봄에 이르자 6조 혜능(慧能)이 홍인(弘忍)을 좇아 법을 얻은 후 인종(印宗)을 좇아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고는 보림사(寶林寺)로 돌아가 법화(法化)를 크게 홍포(弘布)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조계법문(曹溪法門)이라 일컬음. ②6조 혜능(慧能)을 가리킴. 혜능이 조계 보림사(寶林寺)를 중심으로 삼아 교화활동을 개전(開展)하였으므로 세인이 존칭하여 조계고불(曹溪古佛)ㆍ조계고조(曹溪高祖)라 함.
●印子; 도장(圖章)이니 마음으로써 마음에 인(印)을 찍음을 전승(傳承)으로 삼는 방식의 선법을 비유로 가리킴.
●一宿覺; 당대 승인(僧人) 현각(玄覺)이 조계에 다다라 6조 혜능을 참알하여 초차(初次; 제1차) 견면(見面; 대면하여 상견)하고 응대하면서 선지에 계합하매 6조가 칭탄하여 선재선재라 했음. 소류(少留)하여 1숙(宿)하고 사별(辭別)했는데 당시에 호칭하기를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오등회원2. 육조단경. 전등록5].
●永嘉初見六祖; 선종송고연주통집8. 영가 진각 현각선사(6조를 이었음)는 천태지관(天台止觀)의 원묘법문(圓妙法門)에 정통했고 4위의(威儀) 중에 늘 선관(禪觀)에 잠겼다(冥). 후에 좌계랑(左溪朗)의 격려로 인해 동양책(東陽策)과 함께 조계로 나아갔다. 처음 이르자 석장(錫杖)을 떨치고 병을 가지고 조(祖; 6조)를 세 번 돌았다. 조(祖)가 가로되 무릇 사문(沙門)이란 자는 3천 위의(威儀)와 8만 세행(細行)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는가. 스님이 가로되 생사(生死)의 일이 크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합니다. 조가 가로되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취(體取; 體得)하고 무속(無速)을 요득(了得)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체취하니 곧 무생이며 요득하니 본래 신속(迅速)이 없더이다. 조가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때에 대중이 놀라지 않는 이 없었다. 스님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참례(參禮)하고 수유(須臾)에 고별을 고했다. 조가 가로되 도리어 너무 신속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니거늘 어찌 신속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누가 움직이지 않음임을 아는가. 스님이 가로되 인자(仁者; 상대방의 경칭)가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조가 가로되 네가 심(甚)히 무생(無生)의 뜻을 얻었다. 스님이 가로되 무생이거늘 어찌 뜻(意)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무의(無意)이거늘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스님이 가로되 분별하여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조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 선재로다. 머물러 일숙(一宿)한지라 당시에 이르기를 일숙각(一宿覺)이라 했다.
●三昧王三昧; 또 이름이 왕삼매(王三昧)며 또 가로되 삼매왕(三昧王)이니 삼매 중의 최승자(最勝者).
●勝默光; 송대 조동종승. 왕산체(王山體)에게서 득법했고 순천(順天; 북경시) 경수사에 주(住)했음 [속등존고11].
●三寸; 세 치의 혀. ▲사기76. 세 치의 혀로 백만의 군사(軍師)에 강(彊; 當임)하다.
●攢眉; 눈썹을 찌푸림. 유쾌하지 않음을 표시.
●忠國師; 혜충국사(慧忠國師). 혜충(慧忠; ?-775) 또 혜충(惠忠)으로 지음. 당대승. 절강(浙江) 제기(諸曁)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염(冉). 어릴 적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처음엔 계율을 학습하고 장성(長成)하자 경론(經論)을 통달했음.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의 명성(名聲)을 듣고 곧 재를 넘어 고알(叩謁)하여 그의 심인(心印)을 얻었음. 남양(南陽)의 백애산(白崖山) 당자곡(黨子谷; 白草谷)에 들어가 정좌(靜坐)하며 장양(長養)했는데 40여 년 동안 발이 산을 벗어나지 않았음. 학자들이 그에게 나아갔는데 늘 백천(百千)을 넘었음. 개원년(開元年) 중에 현종(玄宗)이 그의 도예(道譽)를 흠모(欽慕)하여 맞이해 경사(京師)에 다다랐으며 칙명(勅命)으로 용흥사(龍興寺)에 주(住)했음. 오래지 않아 안사(安史)의 난(亂)을 만나 스님이 이에 둔귀(遁歸; 달아나 회귀)했음.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761) 다시 불러 경사(京師)에 다다랐고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에 주(住)했음. 공경(公卿)과 사서(士庶)가 참고(參叩)하며 구법(求法)했는데 주야를 놓치지 않았음. 대종(代宗)이 계위(繼位)하자 우례(優禮)를 더함이 있었으며 광택사(光宅寺)로 천주(遷住)했음. 후에 남양(南陽)으로 돌아갔다가 대력(大曆) 10년 당자곡(黨子谷)에 있으면서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응당 80 이상(以上)에 있음. 시호(諡號)는 대증선사(大證禪師)며 세칭이 남양혜충(南陽慧忠)ㆍ남양국사(南陽國師) [송고승전9. 전등록5. 전법정종기7].
●國師; 조정사원7. 국사(國師) 서역의 법은 그 사람을 추중(推重; 추대하여 존중)하되 외내가 같은 바며 사정(邪正)을 다 가졌으면 거국(擧國; 전국)이 귀의하므로 이에 이 호가 현창(顯彰; 환히 나타남)했다. 성교(聲敎)가 동점(東漸; 東進)하여 오직 북제의 고승 법상(法常)을 제주(齊主; 文宣帝)가 높여 국사로 삼았으니 국사의 호는 상공(常公)으로부터 비롯했다. 진(陳)ㆍ수(隋)의 시대엔 천태지의(天台智顗)가 진 선제와 수 양제의 보살계사가 되므로 고로 때에 국사로 호했고 당 측천조(則天朝)에 신수(神秀)를 경사에 불러 들였으며 및 중종ㆍ예종ㆍ현종, 무릇 4조(朝)에 다 국사로 호했으며 뒤에 혜충(慧忠)이 있어 숙종과 대종, 2조(朝)에 금중에 들어가 설법했으며 또한 국사로 호했다. 원화 중에 칙령해 지현(知玄)을 임명(署)해 오달국사로 호했다. 만약 편패(偏覇; 偏國의 覇者)의 나라라면 곧 촉후주가 우가승록(右街僧錄) 광업(光業)에게 주어 우성국사로 삼았으며 오월(吳越)에선 덕소(德韶)를 일컬어 국사라 했다 [대송승사략권중].
●野狐精; 원래 야호의 정매(精魅)가 능히 변환(變幻)을 지어 타인을 기광(欺誑; 속임)함을 가리킴. 선록 중에 다분히 써서 선법에 맞지 않는 자에 대한 책매어(責罵語)로 지음. 혹 기어(機語)를 문답할 때 상대방을 조학(嘲謔; 조롱하고 놀림)하는 가척어(呵斥語)임.
●計會; 회계(會計). 계산. 인신(引申; 轉意)하여 계려(計慮), 상량(商量)의 됨.
●人事; ①인간의 사무. 인간의 교왕(交往). ▲종문무고. 드디어 서원을 발했다. 휴목(休沐)을 만나면 사가(私宅)로 돌아가 인사(人事)를 병절(屛絶)하고 향을 피우고 예불하며 피를 찔러 내어 화엄경 1부를 서사했다. ②예배. 참배. ▲임제어록. 어떤 한 노숙이 스님을 참방했다. 일찍이 인사(人事)도 하지 않고 바로 묻되 예배함이 곧 옳습니까, 예배하지 않음이 곧 옳습니까. ▲앙산어록. 스님이 예배하고 나서 도리어 객위(客位)에 들어갔다가 위의를 갖추어 다시 올라가 인사(人事)했다. 동사(東寺)가 보고는 곧 이르되 이미 상견했다. ③봉송(奉送). 궤증(饋贈; 예물을 贈送함). ▲전등록12 보응. 사명화상이 서원(西院)에 거주하지 않았을 때 도참(到參)하고 예배한 후 사뢰어 가로되 달리 인사(人事)할 좋은 물건이 없습니다만 허주로부터 1구(口; 양사)의 강서 체도(剃刀)를 매득(買得)했으니 화상에게 바칩니다. ④적관(籍貫)을 표함. 인씨(人氏)와 같음. ▲연등회요15 보봉문준. 문(克文)이 이르되 어느 곳 인사(人事)인가. 스님이 이르되 흥원부입니다. 여기에선 ③을 가리킴.
●圓通善國師; 송대승. 법사가 미상이나 운문종으로 의심되며 불각(佛覺)을 이었음 [오등회원속략2하. 오등전서149].
●鄧峯永庵主; 적취영암주(積翠永菴主)를 가리킴. 송대승. 황벽 적취에 거주했고 황룡혜남을 이었음 [오등회원17. 속전등록16].
●藏主; 사원의 직사승(職事僧)이니 불경과 도서를 주관함. 또한 명칭이 지장(知藏)임.
●積翠南; 송대 임제종 황룡파의 개조 혜남이 일찍이 황벽 적취암(積翠庵)에 거주했음.
●普賢; 범명은 필수발타(邲輸跋陀; 梵 Viśvabhadra) 또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 梵 samantabhadra)로 지음. 혹 번역해 가로되 보현이며 혹 편길(遍吉)로 지음. 일체제불의 이덕(理德)ㆍ정덕(定德)ㆍ행덕(行德)을 주재함. 문수의 지덕(智德)ㆍ증덕(證德)과 상대됨. 곧 이지(理智)가 한 쌍이며 행증(行證)이 한 쌍이며 삼매와 반야가 한 쌍임. 고로 석가여래의 두 협사(脅士)로 삼음. 문수는 사자를 타고 불타의 좌방(左方)에 시립하고 보현은 백상을 타고 불타의 우방에 시립함은(여금에 반대로 智右理左를 설하는 것은 理智가 융통함의 뜻을 보임임. 또 胎藏界의 차제는 右蓮左金임) 이것은 이지(理智)가 상즉(相卽)하며 행증(行證)이 상응함임. 삼매와 반야가 전체인 것은 곧 비로사나 법신불임. 화엄 1경(經)에서 밝히는 바가 이 1불 2보살의 법문으로 귀납(歸納)하는지라 고로 호칭하여 화엄삼성(華嚴三聖)이라 함 [법화의소12. 탐현기2. 대일경소1].
●出身; 성오(省悟). 철오(徹悟).
●保寧勇; 보녕인용(保寧仁勇)이니 송대 양기파승. 속성은 축이며 사명 사람. 유년에 출가했고 처음은 천태교전을 학습했는데 능히 전인(前人)의 지의(旨意)를 통달했음. 설두중현을 왕알(往謁)했는데 중현이 그를 나무라며 앙상좌주(央庠座主)라 하자 인용이 분비(憤悱)하며 떠났음. 담주(지금의 호남 장사) 운개산에 가서 양기방회(楊岐方會)를 참하여 1어(語)를 마치지 아니한 전에 선지를 돈오하고 그의 법을 이었음. 양기가 적(寂)한 후에 동참 백운수단과 사방을 운유(雲遊)하며 현오(玄奥)를 연토(硏討)했음. 후에 금릉(지금의 강소 남경) 보녕사(保寧寺)에 주지했음. 보녕인용선사어록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오등회원9. 보등록4].
]●到了; 종료(終了). 종극(終極).
●瓦解氷消; 기와가 풀려 진흙이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됨이니 의심이 풀리거나 혹 본형을 잃음을 형용.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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