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眞淨住建康保寧 *舒王齋䞋素*縑 因問侍僧 此何物 對曰 紡絲羅 眞淨曰 何用 侍僧曰 堪做*袈裟 眞淨指所衣布*伽黎曰 我尋常披此 見者亦不甚嫌惡 卽令送庫司 *估賣供衆 其不*事服飾如此〈日涉記〉
●舒王; 宋徽宗 進荊公爲舒王也 荊公熈寧間拜爲相 作務新法病民 其子王雱爲崇正殿大學士 因父佐務新法必行 雱卒 父罷相 晏閑間如夢寐 見一鬼使 領雱荷鐵枷 泣於公前曰 因父務新法所致 公問使乞解 使曰 建寺飯僧可免 公遂於金陵田地 捨宅爲寺 賜額保寧 請眞淨主之
●縑; 音兼 絹也
●袈裟; 具云迦羅沙曳 此云不正色 亦名離塵服
●伽黎; 名雜碎衣 以條數多故 大衣分三品 九條十一條十三條名下品 十五條十七條十九條名中品 二十一條二十三條二十五條名上品
●估; 賣也價也
●事; 好也
【76】 진정(眞淨; 克文)이 건강(建康) 보녕(保寧; 보녕사)에 주지(住持; 住)했는데 서왕(*舒王)이 재(齋)하고 소겸(素*縑)을 보시(布施; 䞋; 施임)했다. 인하여 시승(侍僧)에게 묻되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 대왈(對曰) 방사라(紡絲羅; 紡織한 絲羅)입니다. 진정이 가로되 어디에 쓰는가. 시승이 가로되 가히(堪) 가사(*袈裟)를 지을까 합니다. 진정이 입은(衣) 바의 베 가리(*伽黎)를 가리키며 가로되 나는 심상(尋常)에 이것을 입는다. 보는 자가 또한 심히 혐오하지 않는다. 곧 고사(庫司)로 보내어 고매(*估賣)하여 공중(供衆)하게 했다. 그가 복식(服飾)을 좋아하지(*事) 않음이 이와 같았다. 〈日涉記〉.
●舒王; 송희종(宋徽宗; 1082-1135 재위 1100–1125)이 형공(荊公; 王安石)을 진급시켜 서왕(舒王)으로 삼았다. 형공(荊公)은 희녕(熈寧; 1068-1077) 간에 제배(除拜; 除授)하여 재상이 되었으며 신법(新法)을 작무(作務)하여 백성에게 병폐(病弊)가 되었다. 그 아들 왕방(王雱)은 숭정전대학사(崇正殿大學士)였는데 아버지를 도와 신법이 반드시 행하게 힘씀으로 인해 왕방이 죽었고 부친도 파상(罷相)되었다. 안한(晏閑)한 사이 몽매(夢寐)와 같았는데 한 귀사(鬼使)가 보였다. 철가(鐵枷)를 짊어진(荷) 왕방(王雱)을 거느렸는데(領) 공(公)의 앞에 읍(泣)하면서 가로되 아버지가 신법(新法)에 힘씀으로 인한 소치(所致)입니다. 공(公)이 귀사(鬼使)에게 물으며 걸해(乞解; 해방을 구걸)했다. 귀사가 가로되 건사(建寺)하고 반승(飯僧)하면 가히 면합니다. 공이 드디어 금릉(金陵)의 전지(田地)에서 사택(捨宅)하여 절로 삼았다. 사액(賜額)하여 보녕(保寧)이라 하고 진정(眞淨)을 청해 그것을 주지(主持)하게 했다.
●縑; 음이 겸(兼)이니 비단(絹)이다.
●袈裟; 구운(具云)하면 가라사예(迦羅沙曳)니 여기에선 이르되 부정색(不正色)이며 또한 이름이 이진복(離塵服)이다.
●伽黎; 이름이 잡쇄의(雜碎衣)니 조수(條數)가 많음을 쓰는(以) 연고다. 대의(大衣)는 3품으로 나눈다. 9조ㆍ11조ㆍ13조는 이름이 하품이며 15조ㆍ17조ㆍ19조는 이름이 중품이며 21조ㆍ23조ㆍ25조는 이름이 상품이다.
●估; 매(賣)다. 가(價)다.
●事; 호(好)다.
絲羅; 絲織物名 質地輕軟 經緯組織呈椒眼紋 透氣透光性能較好 [百度漢語]
방직물의 이름. 질지(質地; 바탕)가 경연(輕軟)하고 경위(經緯)의 조직이 초안(椒眼)의 무늬를 보이며 투기투광(透氣透光)하여 성능이 조금 좋음. [백도한어].
庫司; 一寺院之庫房 二指寺院中司會計之事的僧人
1. 사원의 고방(庫房). 2. 사원 중 회계의 일을 맡은 승인을 가리킴.
荊公; 王安石(1021-1086) 世稱王荊公 宋代居士 字介甫 臨川(今屬江西)人 皇祐(1049- 1053)進士 神宗朝拜相 變法圖强 多所建樹 一日訪蔣山元禪師 坐問談論 品藻古今 後茹素持名 參究心要 讀首楞嚴得旨 居金陵 由蔣山至其故宅 當半道 捨宅爲寺 因號半山 有王文公文集 臨川先生文集等 [名公法喜志三 普燈錄二十三]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세칭 왕형공(王荊公)이니 송대 거사. 자는 개보(介甫)며 임천(지금 강서에 속함) 사람. 황우(1049-1053)에 진사(進士)였고 신종조(神宗朝)에 배상(拜相)했음. 변법(變法)을 도모함이 강했고 많이 건수(建樹; 세우다)하는 바였음. 어느 날 장산원선사(蔣山元禪師)를 예방하여 좌문(坐問)하며 담론하면서 고금을 품조(品藻; 品評)했음. 후에 여소(茹素; 素食을 먹음)로 지명(持名)했고 심요를 참구했고 수릉엄을 읽고서 득지(得旨)했음. 금릉에 거주했는데 장산(蔣山)으로 말미암아 그의 고택(故宅)에 이르다가 반도(半道)에 당하여 고택을 희사해 사원으로 삼은지라 인하여 반산(半山)으로 호했음. 왕문공문집과 임천선생문집 등이 있음 [명공법희지3. 보등록23].
鬼使; 佛敎神話影響下的民間傳說 謂人將死時 地獄閻王卽派遣使者來勾取性命 此使者稱爲鬼使
불교 신화 영향 아래의 민간 전설에 이르기를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 지옥의 염왕이 곧 사자를 파견하여 성명(性命)을 잡아당기는데 이 사자를 일컬어 귀사라 함.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림보훈합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림보훈합주 078 (0) | 2022.10.02 |
---|---|
선림보훈합주 077 (0) | 2022.10.02 |
선림보훈합주 075 (0) | 2022.10.01 |
선림보훈합주 074 (0) | 2022.10.01 |
선림보훈합주 073 (0) | 2022.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