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二祖摩拏羅者 那提國常自在王之子也 年三十遇婆修祖師出家傳法 至西印度 彼國王名得度 卽瞿曇種族 歸依佛乘勤行精進 一日於行道處現一小塔 欲取供養衆莫能擧 王卽大會梵行禪觀呪術等三衆 欲問所疑 時尊者亦赴此會 是三衆皆莫能辯 尊者卽爲王廣說塔之所因〈阿育王造塔 此不繁錄〉今之出現王福力之所致也 王聞是說乃曰 至聖難逢世樂非久 卽傳位太子投祖出家 七日而證四果 尊者深加慰誨曰 汝居此國善自度人 今異域有大法器 吾當化令得度 曰師應迹十方動念當至 寧勞往邪 尊者曰 然 於是焚香遙語月氏國鶴勒那比丘曰 汝在彼國敎導鶴衆 道果將證宜自知之 時鶴勒那爲彼國王寶印說修多羅偈 忽覩異香成穗 王曰 是何祥也 曰此是西印度傳佛心印祖師摩拏羅將至 先降信香耳 曰此師神力何如 答曰 此師遠承佛記 當於此土廣宣玄化 時王與鶴勒那俱遙作禮 尊者知已 卽辭得度比丘 往月氏國 受王與鶴勒那供養 後鶴勒那問尊者曰 我止林間已經九白〈印度以一年爲一白〉 有弟子龍子者 幼而聰慧 我於三世推窮莫知其本 尊者曰 此子於第五劫中 生妙喜國婆羅門家 曾以旃檀施於佛宇 作槌撞鐘 受報聰敏爲衆欽仰 又問 我有何緣而感鶴衆 尊者曰 汝第四劫中嘗爲比丘 當赴會龍宮 汝諸弟子咸欲隨從 汝觀五百衆中 無有一人堪任妙供 時諸子曰 師常說法 於食等者於法亦等 今旣不然何聖之有 汝卽令赴會 自汝捨生趣生轉化諸國 其五百弟子以福微德薄生於羽族 今感汝之惠故爲鶴衆相隨 鶴勒那聞語曰 以何方便令彼解脫 尊者曰 我有無上法寶 汝當聽受化未來際 而說偈曰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復無憂 時鶴衆聞偈飛鳴而去 尊者跏趺寂然奄化 鶴勒那與寶印王起塔 當後漢桓帝十九年乙巳歲也
●阿育王; <梵> aśoka 又作阿輸迦 阿輸伽 阿恕伽 阿戍笴 阿儵 此翻爲無憂王 爲中印度摩揭陀國孔雀王朝第三世王 西元前三世紀前後出世 統一全印度 大保護佛敎 其祖父創立孔雀王朝之旃陀掘多大王 其父爲賓頭沙羅王 詳見雜阿含經二十三 釋迦譜五 阿育王經
●心印; 禪之本意 不立文字 不依言語 直以心爲印 故曰心印 心者佛心 印者印可印定之義 此印能印可或印定佛法之實義也
제22조 마나라(摩拏羅)란 자는 나제국(那提國) 상자재왕(常自在王)의 아들이다. 나이 30에 바수(婆修; 婆修盤頭) 조사(祖師)를 만나 출가하고 전법(傳法)했다. 서인도(西印度)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 왕은 이름이 득도(得度)였으니 곧 구담(瞿曇) 종족(種族)이었고 불승(佛乘)에 귀의(歸依)하여 근행(勤行)하며 정진(精進)했다. 어느 날 행도(行道)하는 곳에 1소탑(小塔)이 나타났는데 취하여 공양하려 했으나 대중이 능히 들지 못했다. 왕이 곧 범행(梵行)ㆍ선관(禪觀)ㆍ주술(呪術) 등 3중(衆)을 대회(大會)하여 의심하던 바를 물으려고 했다. 때에 존자도 또한 이 회(會)에 다다랐다. 이 3중(衆)이 모두 능히 분변(分辨; 辯)하지 못하자 존자가 곧 왕을 위해 탑의 소인(所因)을 광설(廣說)했다〈阿育王이 造塔했는데 여기에선 緊要히 기록하지 않았다〉. 지금의 출현은 왕의 복력(福力)의 소치(所致)입니다. 왕이 이 말씀을 듣자 이에 가로되 지성(至聖)은 만나기 어렵고 세락(非久)은 오래지 않습니다. 곧 태자에게 전위(傳位)하고 조사에게 투신하여 출가했는데 7일 만에 4과(四果; 제4과 阿羅漢果)를 증득했다. 존자가 깊이 위회(慰誨; 慰撫하며 敎誨함)를 가하고 가로되 너는 이 나라에게 거주하며 잘 스스로 사람들을 화도(化度)하라. 지금 이역(異域)에 대법기(大法器)가 있어 내가 마땅히 교화하여 득도(得度)케 하겠다. 가로되 스님은 시방에 응적(應迹)하여 동념(動念)하면 마땅히 이르거늘 어찌 노고롭게 가시겠습니까. 존자가 가로되 그렇구나. 이에 분향(焚香)하고 월지국(月氏國) 학륵나(鶴勒那) 비구에게 멀리서 말해 가로되 너는 그 나라에 있으면서 학중(鶴衆)을 교도(敎導)하라. 도과(道果)를 장차 증득하면 의당 스스로 이를 알 것이다. 때에 학륵나가 그 나라 왕 보인(寶印)을 위해 수다라게(修多羅偈)를 설했는데 홀연히 이향(異香)이 이삭(穗)을 이룬 것을 보았다. 왕왈(王曰) 이 무슨 상서(祥瑞)입니까. 가로되 이것은 이 서인도(西印度)의, 부처의 심인(心印)을 전수(傳受)한 조사 마나라(摩拏羅)가 장차 이르려고 먼저 신향(信香)을 내렸을 따름입니다. 가로되 이 스님의 신력(神力)은 어떠합니까(何如). 답왈(答曰) 이 스님은 멀리 불기(佛記; 불타의 授記)를 승수(承受)했으며 마땅히 차토(此土)에서 현화(玄化)를 광선(廣宣)할 것입니다. 때에 왕이 학륵나와 더불어 모두 멀리서 작례(作禮)했다. 존자가 알고 나서 곧 득도비구(得度比丘)에게 고별하고 월지국으로 가서 왕과 학륵나의 공양을 받았다. 후에 학륵나가 존자에게 물어 가로되 내가 임간(林間)에 머문(止) 지 이미 9백(白)〈印度는 1년을 1백(白)으로 삼는다〉을 경과했습니다. 제자 용자(龍子)란 자가 있어 어리면서 총혜(聰慧)한데 내가 3세(世)에 추궁(推窮)해도 그 근본을 알지 못했습니다. 존자가 가로되 차자(此子; 子는 남자의 통칭)는 제5겁 중에 묘희국(妙喜國) 바라문가(婆羅門家)에 태어났는데 일찍이 전단(旃檀)을 불우(佛宇; 佛寺)에 보시하고 망치를 만들어 종을 두드린지라 수보(受報)로 총민(聰敏)하고 대중이 흠앙(欽仰)하는 바가 된다. 또 묻되 내가 무슨 사연(事緣)이 있어 학의 무리를 감응(感應)합니까. 존자가 가로되 너는 제4겁 중에 일찍이 비구가 되었는데 마땅히 용궁의 모임에 다다르게 되자 너의 여러 제자가 모두 수종(隨從)하고 싶어 했다. 네가 관찰하매 5백의 대중 가운데 묘공(妙供)을 감임(堪任)할 이가 한 사람도 있지 않았다. 때에 여러 제자가 가로되 스님이 늘 설법하시기를 식(食)에 평등한 자는 법에도 또한 평등하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이미 그렇지 않으시니 무슨 성인(聖人)이 있다 하겠습니까. 네가 곧 모임에 다다르게 했다. 네가 사생취생(捨生趣生)함으로부터 여러 나라를 전화(轉化)했지만 그 5백의 제자는 복이 미약하고 덕이 희박(稀薄)하므로 우족(羽族)에 태어났다. 이제 너의 은혜에 감응한지라 고로 학중(鶴衆)이 되어 서로 따른다. 학륵나가 말씀을 듣고 가로되 무슨 방편을 써야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겠습니까. 존자가 가로되 내가 무상법보(無上法寶)가 있나니 너는 마땅히 청수(聽受)하여 미래제(未來際)를 교화하라. 게를 설해 가로되 마음이 만경(萬境)을 따라 구르나니/ 구르는 곳이 실로 능히 그윽하다/ 흐름을 따라 자성을 알아 얻으면/ 기쁨도 없고 다시 근심도 없으리라. 때에 학중이 게를 듣더니 날아 울며 떠났다. 존자가 가부(跏趺)하고 적연(寂然)히 문득(奄) 화거(化去)했다. 학륵나가 보인왕(寶印王)과 더불어 기탑(起塔)했다. 후한 환제()桓帝 19년 을사세(乙巳歲; 165)에 상당한다.
●阿育王; <범> aśoka. 또 아수가(阿輸迦)ㆍ아수가(阿輸伽)ㆍ아서가(阿恕伽)ㆍ아수가(阿戍笴)ㆍ아숙(阿儵)으로 지음. 여기에선 무우왕(無憂王)으로 번역함. 중인도 마갈타국 공작왕조(孔雀王朝; 마우리아 왕조)의 제3세 왕이니 서원전 3세기 전후로 출세했으며 전인도를 통일했고 불교를 크게 보호했음. 그의 조부는 공작왕조를 창립한 전다굴다대왕(旃陀掘多大王)이며 그의 부친은 빈두사라왕(賓頭沙羅王)이 됨. 상세한 것은 잡아함경23ㆍ석가보5ㆍ아육왕경을 보라.
●心印; 선(禪)의 본의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 언어에 의하지 않고 바로 심(心)으로 인(印)을 삼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인임. 심이란 것은 불심이며 인이란 것은 인가인정(印可印定)의 뜻이니 이 인(印)이 불법의 실의(實義)를 능히 인가(印可)하거나 혹 인정(印定)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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