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有二師 一名佛大先 一名佛大勝多 本與師同學佛陀跋陀小乘禪觀 佛大先旣遇般若多羅尊者 捨小趣大與師竝化 時號二甘露門矣 而佛大勝多更分途而爲六宗 第一有相宗 第二無相宗 第三定慧宗 第四戒行宗 第五無得宗 第六寂靜宗 各封己解別展化源 聚落崢嶸徒衆甚盛 大師喟然而歎曰 彼之一師已陷牛迹 況復支離繁盛而分六宗 我若不除永纏邪見 言已 微現神力至第一有相宗所 問曰 一切諸法何名實相 彼衆中有一尊長薩婆羅 答曰 於諸相中不互諸相 是名實相 師曰 一切諸相而不互者 若名實相當何定耶 彼曰 於諸相中實無有定 若定諸相何名爲實 師曰 諸相不定便名實相 汝今不定當何得之 彼曰 我言不定不說諸相 當說諸相其義亦然 師曰 汝言不定當爲實相 定不定故卽非實相 彼曰 定旣不定卽非實相 知我非故不定不變 師曰 汝今不變何名實相 已變已往其義亦然 彼曰 不變當在 在不在故 故變實相以定其義 師曰 實相不變 變卽非實 於有無中何名實相 薩婆羅心知聖師懸解潛達 卽以手指虛空曰 此是世間有相 亦能空故 當我此身得似否 師曰 若解實相卽見非相 若了非相其色亦然 當於色中不失色體 於非相中不礙有故 若能是解此名實相 彼衆聞已 心意朗然欽禮信受 師又瞥然匿跡 至第二無相宗所 問曰 汝言無相當何證之 彼衆中有智者波羅提 答曰 我明無相心不現故 師曰 汝心不現當何明之 彼曰 我明無相心不取捨 當於明時亦無當者 師曰 於諸有無心不取捨 又無當者諸明無故 彼曰 入佛三昧尙無所得 何況無相而欲知之 師曰 相旣不知誰云有無 尙無所得何名三昧 彼曰 我說不證證無所證 非三昧故我說三昧 師曰 非三昧者何當名之 汝旣不證非證何證 波羅提聞師辯析卽悟本心 禮謝於師懺悔往謬 師記曰 汝當得果不久證之 此國有魔非久降之 言已忽然不現 至第三定慧宗所 問曰 汝學定慧爲一爲二 彼衆中有婆蘭陀者 答曰 我此定慧非一非二 師曰 旣非一二何名定慧 彼曰 在定非定處慧非慧 一卽非一二亦不二 師曰 當一不一當二不二 旣非定慧約何定慧 彼曰 不一不二定慧能知 非定非慧亦復然矣 師曰 慧非定故然何知哉 不一不二誰定誰慧 婆蘭陀聞之疑心氷釋 至第四戒行宗所 問曰 何者名戒 云何名行 當此戒行爲一爲二 彼衆中有一賢者 答曰 一二二一皆彼所生 依敎無染此名戒行 師曰 汝言依敎卽是有染 一二俱破 何言依敎 此二違背不及於行 內外非明何名爲戒 彼曰 我有內外彼己知竟〈淅本己字作已依廣燈也 邵本作無字依寶林也 洪舊本作已字 正宗記作以字 未詳孰是〉 旣得通達便是戒行 若說違背俱是俱非 言及淸淨卽戒卽行 師曰 俱是俱非何言淸淨 旣得通故何談內外 賢者聞之卽自慚服 至第五無得宗所 問曰 汝云無得無得何得 旣無所得亦無得得 彼衆中有寶靜者 答曰 我說無得非無得得 當說得得無得是得 師曰 得旣不得 得亦非得旣云得得 得得何得 彼曰 見得非得 非得是得 若見不得名爲得得 師曰 得旣非得 得得無得 旣無所得 當何得得 寶靜聞之頓除疑網 至第六寂靜宗所 問曰 何名寂靜 於此法中誰靜誰寂 彼有尊者 答曰 此心不動是名爲寂 於法無染名之爲靜 師曰 本心不寂要假寂靜 本來寂故何用寂靜 彼曰 諸法本空以空空故 於彼空空故名寂靜 師曰 空空已空諸法亦爾 寂靜無相何靜何寂 彼尊者聞師指誨豁然開悟 旣而六衆咸誓歸依 由是化被南天聲馳五印 遠近學者靡然嚮風 經六十餘載度無量衆
●五印; 五印度之略 以印度區畫東西南北中之五處
●靡然; 向一邊倒的樣子
●嚮風; 謂仰慕其人之品德或學問
당시에 2사(師)가 있었으니 1은 이름이 불대선(佛大先)이며 1은 이름이 불대승다(佛大勝多)였는데 본디 스님과 더불어 불타발타(佛陀跋陀)의 소승선관(小乘禪觀)을 동학(同學)했다. 불대선은 이미 반야다라 존자를 만나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취향(趣向)하여 스님과 더불어 병화(竝化)했으며 당시에 2감로문(甘露門)이라 호(號)했고 불대승다는 다시 분도(分途)하여 6종(宗)이 되었으니 제1은 유상종(有相宗)이며 제2는 무상종(無相宗)이며 제3은 정혜종(定慧宗)이며 제4는 계행종(戒行宗)이며 제5는 무득종(無得宗)이며 체6은 적정종(寂靜宗)이었다. 각자 자기의 견해(見解)를 봉(封)하여 화원(化源)을 따로 펼쳤는데(展) 취락(聚落)이 쟁영(崢嶸)하고 도중(徒衆)이 심히 성(盛)했다. 대사(大師)가 위연(喟然; 歎息하는 모양)히 탄식하며 가로되 거기의 1사(師)가 이미 우적(牛迹)에 빠졌거늘(陷) 하물며 다시 지리(支離)하여 번성(繁盛)하면서 6종으로 나뉘었구나. 내가 만약 제거하지 않으면 길이 사견(邪見)에 얽히리라(纏). 말하고 나서 조금(微) 신력(神力)을 나타내어 제1 유상종(有相宗)의 처소에 이르렀다. 문왈(問曰) 일체제법(一切諸法)에 무엇을 실상(實相)이라고 이름하는가. 그 중중(衆中)에 살바라(薩婆羅)란 1존장(尊長)이 있어 답왈(答曰) 제상(諸相) 중에 제상과 호환(互換; 互)하지 않으면 이 이름이 실상(實相)입니다. 사왈(師曰) 일체제상에 호환하지 않는 자를 만약 이름해 실상이라 한다면 마땅히 어떻게 정(定)하는가. 그가 가로되 제상 중에 실로 정(定)함이 있지 않나니 만약 제상을 정하면 무엇을 이름하여 실(實)이라 하겠습니까. 사왈 제상(諸相)을 정하지 않음을 바로 이름해 실상이라 한다면 네가 여금에 정하지 않거늘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얻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말하는 정하지 않음이란 제상을 설하지 않음이니 제상을 설함에 당해서도 그 뜻이 또한 그러합니다. 사왈 네가 말하되 정하지 않음이 마땅히 실상이라 한다면 정하지 않음을 정함이라 곧 실상이 아니다. 그가 가로되 정이 이미 정이 아니니 곧 실상이 아니며 아비(我非)를 아는 연고로 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사왈 네가 여금에 변하지 않는다 하니 무엇을 이름해 실상이라 하는가, 이미 변하고 이미 갔음(往)도 그 뜻이 또한 그러하다. 그가 가로되 변하지 않음은 마땅히 재(在)하나니 재(在)해도 재(在)가 아닌 연고며 고로 변하는 실상으로 그 뜻을 정합니다. 사왈 실상은 변하지 않나니 변하면 곧 실상이 아니거늘 유무(有無) 중에 무엇을 이름해 실상이라 하는가. 살바라(薩婆羅)가 마음에 성사(聖師)의 현해(懸解; 了悟)가 잠달(潛達; 몰래 통달)한 줄 알았다. 곧 손으로써 허공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것은 이 세간(世間)의 유상(有相)이니 또한 능히 공(空)한 연고입니다. 마땅히 나의 이 몸이 흡사함을 얻겠습니까. 사왈 만약 실상을 안다면(解) 곧 비상(非相)을 보고 만약 비상(非相)을 안다면(了) 그 색(色)도 또한 그러하여 마땅히 색중(色中)에서 색체(色體)를 잃지 않나니 비상(非相) 중에서 유(有)에 막히지 않는 연고이다. 만약 능히 이를 이해하면 이 이름이 실상이다. 거기의 대중이 듣고 나서 심의(心意)가 낭연(朗然)했고 흠례(欽禮)하고 신수(信受)했다. 스님이 또 갑자기(瞥然) 자취를 숨기고 제2 무상종(無相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問曰) 너희가 말하되 무상(無相)이라 하니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증명하는가. 거기의 중중(衆中)에 바라제(波羅提)란 지자(智者)가 있어 답왈(答曰) 나는 무상(無相)을 밝혔나니 마음은 나타나지 않는 연고입니다. 사왈(師曰) 너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거늘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밝히는가. 그가 가로되 내가 무상을 밝힘은 마음이 취사(取捨)하지 않음이니 밝힐 때를 당(當)해 또한 당(當)하는 자가 없습니다. 사왈 모든 유무(有無)에 마음이 취사(取捨)하지 않고 또 당(當)하는 자가 없음은 제명(諸明)도 없는 연고이다. 그가 가로되 불삼매(佛三昧)에 들어도 오히려 소득(所得)이 없거늘 어찌 하물며 무상(無相)인데 그것을 알려고 하겠습니까. 사왈 상(相)을 이미 알지 못하거늘 누가 유무(有無)를 이르며(云) 오히려 소득이 없거늘 무엇을 이름해 삼매라고 하겠는가. 그가 가로되 나는 부증(不證)을 설하나니 증(證)해도 증할 바가 없으며 삼매가 아닌 연고로 내가 삼매를 설합니다. 사왈 삼매가 아닌 것을 어떻게 마땅히 그것을 이름하며 네가 이미 부증(不證)이거늘 비증(非證)을 어떻게 증하느냐. 바라제(波羅提)가 스님의 변석(辯析)을 듣고 곧 본심(本心)을 깨달았다. 스님에게 예사(禮謝)하고 지난 잘못(謬)을 참회했다. 스님이 수기(授記)해 가로되 너는 마땅히 득과(得果)할 것이며 오래지 않아 그것을 증득하리라. 이 나라에 마(魔)가 있으니 오래지 않아 그를 항복시키리라. 말하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現) 않더니 제3 정혜종(定慧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問曰) 너희가 정혜를 배운다 하니 하나가 되느냐 둘이 되느냐. 거기의 중중(衆中)에 바란타(婆蘭陀)란 자가 있어 답왈(答曰) 나의 이 정혜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사왈(師曰) 이미 하나와 둘이 아니라면 무엇을 이름해 정혜라 하느냐. 그가 가로되 정(定)에 있어도 정이 아니며 혜(慧)에 처해도 혜가 아니며 하나가 곧 하나가 아니며 둘도 또한 둘이 아닙니다. 사왈 하나에 당해 하나가 아니며 둘에 당해 둘이 아니면 이미 정혜가 아니거늘 무엇을 대약(大約)하여 정혜라 하는가. 그가 가로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을 정혜가 능히 알고 정(定)도 아니고 혜(慧)도 아님도 또한 다시 그러합니다. 사왈 혜가 정이 아닌 연고로 그렇다면 어떻게 알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면 누가 정(定)이며 누가 혜(慧)인가. 바란타(婆蘭陀)가 이를 듣고 의심이 얼음 풀리 듯했다. 제4 계행종(戒行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 무엇(何者)을 이름해 계(戒)며 무엇(云何)을 이름해 행(行)인가. 이 계행에 당해 하나(一)가 되는가 둘(二)이 되는가. 거기의 중중(衆中)에 1현자(賢者)가 있어 답왈(答曰) 일이(一二)와 이일(二一)이 모두 그의 소생(所生)입니다. 교(敎)에 의해 오염(汚染)이 없으니 이 이름이 계행입니다. 사왈(師曰) 네가 말하되 교에 의한다 하니 즉시(卽是) 오염이 있음이며 일이(一二)를 모두(俱) 타파(打破)하거늘 어찌 교에 의한다고 말하느냐. 이 둘이 위배되어 행(行)에 미치지 못하고 내외가 밝지 않거늘 어찌 계(戒)라고 이름하겠는가. 그가 가로되 나는 내외가 있고 피기(彼己)가 알아 마쳤습니다〈淅本에 己字를 已로 지었음은 廣燈에 의했고 邵本에 無字로 지었음음 寶林에 의했다. 洪舊本에 已字로 지었고 正宗記에 以字로 지었다. 무엇이 옳은지 미상이다〉. 이미 통달(通達)을 얻었으니 바로 이 계행입니다. 만약 위배(違背)를 설한다면 구시구비(俱是俱非)며 청정을 언급(言及)하면 즉계즉행(卽戒卽行)입니다. 사왈 구시구비(俱是俱非)면 어찌 청정을 말할 것이며 이미 통함을 얻었다면 어찌 내외를 담설(談說)하겠는가. 현자(賢者)가 이를 듣자 곧 스스로 참복(慚服; 참회하며 복종)했다. 제5 무득종(無得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問曰) 너희가 무득(無得)을 이르니 무득을 어찌 얻으며(得) 이미 소득이 없으니 또한 득득(得得; 얻음을 얻다)도 없다. 거기의 중중(衆中)에 보정(寶靜)이란 자가 있어 답왈 내가 설하는 무득은 득득(得得)이 없음이 아니라 득득을 설함에 당해 무득(無得)이 이 득입니다. 사왈 득이 이미 부득(不得)이면 득도 또한 득이 아니며 이미 이르되 득득이라 했거늘 득득을 어찌 득하리오. 그가 가로되 득이 비득(非得)임을 보므로 비득이 이 득입니다. 만약 부득(不得)을 본다면 이름하여 득득입니다. 사왈 득이 이미 비득(非得)이며 득득(得得)이 무득(無得)이라 이미 소득이 없거늘 마땅히 어떻게 득득하겠는가. 보정(寶靜)이 이를 듣자 의망(疑網)이 문득 제거되었다. 제6 적정종(寂靜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 무엇을 이름해 적정(寂靜)이라 하는가. 이 법 중에서 누가 정(靜)하며 누가 적(寂)한가. 거기에 존자가 있어 답왈 이 마음은 동(動)하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적(寂)이며 법에 오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해 정(靜)이라 합니다. 사왈 본심(本心)은 적(寂)이 아니니 적정(寂靜)을 빌림을 요하며 본래 적(寂)인 연고로 어찌 적정(寂靜)을 쓰겠는가. 그가 가로되 제법(諸法)이 본공(本空)이니 공공(空空; 空도 空하다)을 쓰는(以) 연고며 그것(彼)이 공공인지라 고로 이름이 적정(寂靜)입니다. 사왈 공공(空空)이 이미 공(空)이라 제법도 또한 그러하나니 적정(寂靜)은 무상(無相)이거늘 무엇이 정(靜)이며 무엇이 적(寂)인가. 그 존자가 스님의 지회(指誨; 指導하며 가르침)를 듣자 활연(豁然)하여 개오(開悟)했다. 이미 그러고선 6중(衆)이 모두(咸) 귀의를 맹서(盟誓)했다. 이로 말미암아 교화가 남천(南天)에 미쳤고(被) 명성이 오인(五印)을 달렸으니(馳) 원근(遠近)의 학자가 미연(靡然)히 향풍(嚮風)했고 60여 재(載)를 경과하면서 무량중(無量衆)을 제도했다.
●五印; 5인도의 약칭이니 인도는 동ㆍ서ㆍ남ㆍ북ㆍ중의 5처로 구획되었었음.
●靡然; 1변(邊)을 향해 넘어지는 양자(樣子).
●嚮風; 이르자면 그 사람의 품덕(品德)이나 혹 학문을 앙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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