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汎重溟凡三周寒暑達于南海 實梁普通八年丁未歲九月二十一日也 廣州刺史蕭昂具主禮迎接 表聞武帝 帝覽奏遣使齎詔迎請 十月一日至金陵〈嵩禪師以梁僧寶唱續法記爲據作正宗記言 達磨以梁武普通元年庚子歲至此土 其年乃後魏明帝正光元年也 若如此則與後入滅啓壙等年皆相合 若據此稱 普通八年丁未歲九月二十一日至南海 十月一日至金陵則甚誤也 蓋普通八年三月已改爲大通元年 則九月不應尙稱普通八年也 南海者今廣州也 去金陵數千里 刺史奏聞而武帝詔迎 豈可十日之間便至金陵耶 又按南史蕭昂本傳 不言昂爲廣州刺史 但王茂傳末有廣州長史蕭昂 然不知何年在任 今止可云 ○達于南海實梁普通元年 廣州刺史具主禮迎接 表聞武帝 帝覽奏遣使齎詔迎請 十月一日至金陵〉 帝問曰 朕卽位已來 造寺寫經度僧不可勝紀 有何功德 師曰 竝無功德 帝曰 何以無功德 師曰 此但人天小果有漏之因 如影隨形雖有非實 帝曰 如何是眞功德 答曰 淨智妙圓體自空寂 如是功德不以世求 帝又問 如何是聖諦第一義 師曰 廓然無聖 帝曰 對朕者誰 師曰 不識 帝不領悟 師知機不契 是月十九日潛迴〈廣燈迴作過字〉江北 十一月二十三日屆于洛陽 當後魏孝明太和十年也〈當云後魏孝明正光元年也 若據太和十年乃後魏文帝時 是年卽南齊武帝永明四年丙寅歲也〉 寓止于嵩山少林寺 面壁而坐終日默然 人莫之測 謂之壁觀婆羅門
●刺史; 官名 自漢設立 本爲監察郡縣的官員 隋唐以後沿用爲一州長官的別稱 屬官有長史司馬等 [百度漢語] ▲事文外集十一諸州刺史歷代沿革曰 漢有丞相分遣刺史州 (中略)唐至德二載(757) 罷郡爲州 復以太守爲刺史 上州刺史一員從三品 中州一員正四品 下州一員正四品下
●表聞; 上表申聞於上
●嵩; 契嵩(1007-1072) 宋代雲門宗僧 藤州鐔津(今廣西藤縣)人 俗姓李 字仲靈 自號潛子 七歲出家 十三歲得度剃髮 十九歲遊方 常頂戴觀音像 日誦其名號十萬聲 後得法於洞山曉聰禪師 師遍通內外典籍 善爲文 著有原敎 孝論等輔敎篇 此外 關於禪宗之法脈 撰有傳法正宗定祖圖 傳法正宗記等書 仁宗賜紫方袍與明敎大師之號 熙寧五年於杭州靈隱寺示寂 享壽六十六 門人收其著作 輯成鐔津文集二十卷 因契嵩居錢塘佛日山 故又稱佛日禪師 以師曾止於永安山之精舍 後人遂以永安稱之 [傳法正宗記一 續傳燈錄五 鐔津明敎大師行業記]
●寶唱; 南朝齊梁時期僧人 俗姓岑 吳郡(江蘇吳縣)人 師事僧祐
●朕; 一代詞 表示第一人稱 爾雅 朕 我也 郭璞注 古者貴賤皆自稱朕 又朕 身也 郭璞注 今人亦自呼爲身 邢昺疏 身 卽我也 二皇帝的自稱 自秦始皇始
●度僧; 度者 出世俗 離生死 卽擧行一定之儀式 令俗人出家爲僧
●有漏; 無漏之對稱 漏者煩惱之異名 含有煩惱之事物 謂之有漏 ▲大乘義章五 一切煩惱流注不絶 其猶瘡漏 故名爲漏
●聖諦; 爲聖者所見之諦理 故名聖諦 又聖者正也 爲正眞之諦理 故名聖諦 涅槃經十二曰 苦集滅道 是名四聖諦
●洛陽; 又稱洛邑 洛京 位於河南省開封府西黃河南岸 洛水流於其南 故有此稱 東漢西晉後魏之都邑 白馬寺在此地 按洛陽伽藍記 佛敎盛行時期 洛陽城內有寺院一五六七所
●嵩山; 又作崇山 嵩嶽 嵩高山 崇高山 外方山 位於河南登封縣北五六公里之處 又作中嶽 與東嶽泰山(山東) 西嶽華山(陝西) 南嶽衡山(湖南) 北嶽恆山(山西) 合稱五嶽 全山以太室少室二山爲中心 東爲太室山 西爲少室山 其他另有大小三十餘峰 唐代則天武后特稱爲神嶽 少室山北麓之少林寺 禪宗初祖達磨 於此面壁九年 而遠近馳名
●少林寺; 位于河南省登封縣城之北十五公里少室山五乳峰下 北魏太和十九年(495) 孝文帝爲天竺僧佛陀禪師所建 正光元年(520) 一說孝昌三年(527) 菩提達摩來寺面壁九年 傳法慧可 開創中國禪宗 故稱達摩爲初祖 少林寺爲祖庭 唐初少林寺僧衆 佐唐太宗開國有功 從此僧衆常習拳術 禪宗和少林拳術 廣爲流傳 高宗武后均甚崇敬 整修寺宇 其後歷經唐末五代之亂 寺漸衰微 宋淳祐二年(1242) 雪庭福裕及其法嗣靈隱文泰 古巖普就 息庵義讓 淳拙文才諸師 相繼住持此寺 各振禪風 傳曹洞正脉 少林寺於晩唐五代之際 爲臨濟宗僧所住 金元以來 成爲曹洞宗道場 淸初因少林寺成爲反淸復明的基地而遭焚燒 淸雍正十三年(1735)重修 規模宏大 [續高僧傳四 同十六 傳燈錄三 同四 釋氏稽古略二 少林寺志 魏書一一四]
스님이 중명(重溟; 바다)에 떠서 무릇 한서(寒暑)를 3주(周)하고서야 남해(南海)에 도달했으니 실로 양(梁) 보통(普通) 8년 정미세(丁未歲; 527) 9월 21일이다.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蕭昂)이 주례(主禮)를 갖추어 영접(迎接)했고 무제(武帝)에게 표문(表聞)했다. 무제가 주문(奏文)을 보고(覽)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서(詔書)를 가져가서(齎) 영청(迎請)했고 10월 1일에 금릉(金陵; 江蘇)에 이르렀다〈嵩禪師가 梁僧 寶唱의 續法記를 근거로 삼아 正宗記를 지어 말하되 달마는 梁武 普通元年 庚子歲(520)에 此土에 이르렀다. 그 해는 곧 後魏 明帝 正光元年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곧 후에 入滅하고 啓壙한 등의 해와 더불어 모두 相合한다. 만약 여기의 일컬음에 의거할진대 普通八年 丁未歲 9월 21일에 南海에 이르렀고 10월 1일에 금릉에 이르렀다 함은 곧 심한 오류다. 大蓋 普通八年 三月에 이미 改元해 大通元年으로 삼았으니 곧 9월엔 응당 아직 普通八年으로 일컫지 말아야 한다. 南海란 것은 지금의 廣州니 金陵과의 거리가 數千里다. 刺史가 奏聞하여 武帝가 詔迎했다 하니 어찌 가히 10일 사이에 바로 금릉에 이르렀겠는가. 또 南史 蕭昂本傳을 按驗컨대 소앙이 광주자사가 되었음을 말하지 않고 단지 王茂傳 末에 廣州長史 蕭昂이 있다. 그러나 어떤 해에 在任했는지 알지 못한다. 여금에 다만 가히 이르되 ○南海에 도달했으니 梁 普通元年이다. 廣州刺史가 主禮를 갖추어 迎接했고 武帝에게 表聞했다. 무제가 奏文을 보고 사자를 보내 조서를 가져가서 迎請했고 10월 1일에 금릉에 이르렀다〉. 무제가 문왈(問曰) 짐(朕)이 즉위한 이래로 조사(造寺)하고 사경(寫經)하고 도승(度僧)한 것을 가히 모두(勝) 기록(紀)하지 못합니다. 어떤 공덕(功德)이 있습니까. 사왈(師曰) 모두(竝) 공덕이 없습니다. 제왈(帝曰) 무슨 까닭으로 공덕이 없습니까. 사왈 이것은 단지 인천(人天)의 소과(小果)며 유루(有漏)의 인(因)이니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아서 비록 있더라도 진실이 아닙니다. 제왈(帝曰) 무엇이 이 참 공덕입니까. 답왈 정지(淨智)가 묘원(妙圓)하여 체(體)가 스스로 공적(空寂)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간(世間)으로써 구하지 못합니다(不以世求). 무제가 또 묻되 무엇이 이 성제(聖諦)의 제1의(第一義)입니까. 사왈 확연(廓然)하여 성(聖)이 없습니다. 제왈(帝曰) 짐(朕)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사왈 알지 못합니다(不識). 무제가 영오(領悟)하지 못했다. 스님이 기(機)가 계합하지 못한 줄 알았다. 이 달 19일에 몰래(潛) 강북(江北)으로 돌아갔다(迴)〈廣燈에 迴를 過字로 지었다〉. 11월 23일 낙양(洛陽)에 이르렀으니(屆) 후위(後魏) 효명(孝明) 태화(太和) 10년에 상당한다〈마땅히 이르되 後魏 孝明 正光元年(520)이라 해야 한다. 만약 太和十年에 의거할진대 곧 後魏 文帝 때니 이 해는 곧 南齊 武帝 永明四年 丙寅歲(486)다〉.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우지(寓止; 寄宿. 留住)하면서 면벽(面壁)하고 앉아 종일 묵연(默然)했다.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해 그를 일러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했다.
●刺史; 벼슬 이름. 한(漢)으로부터 설립했으며 본래 군현(郡縣)을 감찰하는 관원이었음. 수ㆍ당 이후에 연용(沿用)하여 1주(州)의 장관의 별칭이 되었음. 속관(屬官)에 장사(長史)ㆍ사마(司馬) 등이 있음 [백도한어]. ▲사문외집11 제주자사 역대연혁에 가로되 한(漢)에 승상의 분견(分遣)인 자사주(刺史州)가 있었다 (중략) 당 지덕 2재(757) 군(郡)을 파하고 주(州)로 삼았고 다시 태수를 자사로 삼았다. 상주(上州)는 자사 1원(員)이며 종3품, 중주(中州)는 1원이며 정4품, 하주(下州)는 1원이며 정4품하다.
●表聞; 표문(表文)을 올려 주상(主上)에게 신문(申聞; 아뢰다)함.
●嵩; 계숭(契嵩; 1007-1072)이니 송대 운문종승. 등주 심진(鐔津; 지금의 광서 등현) 사람. 속성은 이(李)며 자는 중령이며 자호가 잠자(潛子). 7세에 출가하고 13세에 득도하여 머리 깎고 19세에 유방했음. 늘 관음상을 정수리에 이고서 날마다 그 명호 10만 성(聲)을 외었음. 후에 동산효총선사(洞山曉聰禪師)에게서 득법했음. 스님은 내외의 전적을 두루 통달했으며 글을 잘 지었음. 저서에 원교ㆍ효론 등 보교편(輔敎篇)이 있으며 이 밖에 선종의 법맥에 관해서는 저서에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ㆍ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 등의 서책이 있음. 인종이 자방포와 명교대사(明敎大師)의 호를 주었음. 희녕 5년 항주 영은사에서 시적했고 향수(享壽; 향년)는 66. 문인이 그의 저작을 거두어 심진문집(鐔津文集) 20권을 집성했음. 계숭이 전당 불일산에 거주했음으로 인해 고로 또 명칭이 불일선사(佛日禪師)며 스님이 일찍이 영안산(永安山)의 정사에 머물렀기 때문에 후인이 드디어 영안으로써 그를 호칭했음 [전법정종기1. 속전등록5. 심진명교대사행업기].
●寶唱; 남조(南朝) 제량(齊梁) 시기의 승인(僧人). 속성은 잠(岑)이며 오군(吳郡; 江蘇 吳縣) 사람. 승우(僧祐)를 사사(師事)했음.
●朕; 1 대사(代詞)니 제1인칭을 표시함. 이아(爾雅) 짐(朕) 아(我)다. 곽박(郭璞)의 주(注) 옛적에 귀천(貴賤)이 다 자칭 짐(朕)이라 했다. 또 짐(朕)은 신(身)임. 곽박의 주(注) 금인(今人)이 또한 스스로 호칭해 신(身)이라 한다. 형병(邢昺)의 소(疏) 신(身)은 곧 아(我)다. 2 황제(皇帝)의 자칭이니 진시황(秦始皇)으로부터 비롯했음.
●度僧; 도(度)란 것은 세속을 벗어나서 생사를 여읨임. 곧 일정한 의식을 거행하여 속인으로 하여금 출가하여 승인이 되게 함.
●有漏; 무루(無漏)의 대칭(對稱)임. 누(漏)란 것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니 번뇌의 사물을 함유하였으며 이를 일러 유루라 함. ▲대승의장5. 일체 번뇌가 유주(流注)하여 단절하지 않나니 그것이 마치 종기가 새는 것 같으므로 고로 이름하여 누(漏)다.
●聖諦; 성자가 보는 바의 체리(諦理)가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성제(聖諦)임. 또 성(聖)이란 것은 정(正)이니 정진(正眞)의 체리가 되는지라 고로 이름이 성제임. 열반경12에 가로되 고ㆍ집ㆍ멸ㆍ도 이 이름이 4성제(聖諦)다.
●洛陽; 또 명칭이 낙읍(洛邑)ㆍ낙경(洛京)이니 하남성 개봉부 서쪽 황하의 남안(南岸)에 위치함. 낙수(洛水)가 그 남쪽에 흐르는지라 고로 이 명칭이 있음. 동한(東漢)ㆍ서진(西晉)ㆍ후위(後魏)의 도읍이었음. 백마사가 이 땅에 있음. 낙양가람기를 안험컨대 불교가 성행할 시기에 낙양성 안에 사원이 1,567소(所)가 있었음.
●嵩山; 또 숭산(崇山)ㆍ숭악(嵩嶽)ㆍ숭고산(嵩高山)ㆍ숭고산(崇高山)ㆍ외방산(外方山)으로 지음. 하남(河南) 등봉현(登封縣) 북쪽 5, 6㎞의 곳에 위치함. 또 중악(中嶽)으로 지음. 동악태산(東嶽泰山; 山東)ㆍ서악화산(西嶽華山; 陝西)ㆍ남악형산(南嶽衡山; 湖南)ㆍ북악항산(北嶽恆山; 山西)과 더불어 합칭이 5악(嶽)임. 온 산이 태실(太室)과 소실(少室) 두 산을 중심으로 삼음. 동(東)은 태실산(太室山)이 되며 서(西)는 소실산(少室山)이 됨. 기타 따로 크고 작은 30여 봉(峰)이 있음. 당대 측천무후가 특칭(特稱)하여 신악(神嶽)이라 했음. 소실산 북록(北麓)의 소림사(少林寺)는 선종 초조인 달마가 여기에서 9년 동안 면벽(面壁)한지라 원근에 치명(馳名; 이름을 날리다)함.
●少林寺; 하남성 등봉현성(登封縣城)의 북쪽 12㎞의 소실산(少室山) 오유봉(五乳峰) 아래에 위치함. 북위(北魏) 태화 19년(495) 효문제(孝文帝)가 천축승 불타선사(佛陀禪師)를 위해 건립한 것임. 정광 원년(520), 일설(一說)엔 효창 3년(527) 보리달마가 사원에 와서 면벽구년(面壁九年)하였고 혜가(慧可)에게 전법(傳法)하여 중국선종을 개창(開創)했음. 고로 달마를 일컬어 초조(初祖)라 하고 소림사를 조정(祖庭)이라 함. 당초(唐初)에 소림사의 승중(僧衆)이 당태종을 도와 개국(開國)에 공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승중이 늘 권술(拳術)을 익히게 되었고 선종과 소림의 권술이 널리 유전(流傳)되었음. 당 고종과 무후(武后)가 균일하게 매우 숭경(崇敬)했고 사우(寺宇)를 정수(整修)했음. 그 후에 당말오대의 난을 역경(歷經)하면서 사원이 점차 쇠미해졌음. 송 순우 2년(124 2) 설정복유(雪庭福裕) 및 그 법사(法嗣)인 영은문태ㆍ고암보취ㆍ식암의양ㆍ순졸문재 여러 스님이 상계(相繼)하며 이 사원에 주지했고 각기 선풍을 진작했으며 조동정맥(曹洞正脉)을 전했음. 소림사는 만당(晩唐)과 오대의 즈음에 임제종의 승인이 거주한 곳이 되었는데 금ㆍ원 이래로 조동종 도량이 되었음. 청초에 소림사는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지(基地)가 됨으로 인해 분소(焚燒)를 만났음. 청 옹정 13년(1735) 중수했고 규모가 굉대(宏大)함 [속고승전4, 동16. 전등록3, 동4. 석씨계고략2. 소림사지. 위서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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