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10 장사경잠(長沙景岑) 09

태화당 2023. 4. 5. 08:14

僧問 南泉云 貍奴白牯却知有 三世諸佛不知有 爲什麽三世諸佛不知有 師曰 未入鹿苑時猶較些子 僧曰 貍奴白牯爲什麽却知有 師曰 汝爭怪得伊 僧問 和尙繼嗣何人 師曰 我無人得繼嗣 僧曰 還參學也無 師曰 我自參學 僧曰 師意如何 師有偈曰 虛空問萬象 萬象答虛空 誰人親得聞 木叉丱角

貍奴白牯; 貍奴 亦作狸奴黧奴 猫的別稱 白牯 白牛也 玉篇 牯 牝牛 正字通 牯 俗稱牡牛曰牯

鹿苑; 鹿野苑 爲釋尊成道後初轉法輪之地 卽今之沙爾那斯 位於今北印度瓦拉那西市以北約六公里處 又譯作仙人鹿野苑 鹿野園 鹿野 鹿苑 仙苑 仙人園 關於地名之由來 諸說紛異 出曜經十四以此地乃諸神仙及得道五通之學者遊止之所 非凡夫所居 故稱之爲仙人住處 又謂昔有婆羅奈國王遊獵至此 網鹿千頭 經鹿王哀求以日送一鹿供王食用 王始放群鹿 故地名鹿野苑 大毘婆沙論一八三博採衆說 以佛過去世爲最勝仙人 嘗於此地初轉法輪 故稱仙人論處 以佛未出世或出世時 恆有諸神仙住此不絶 故稱仙人住處 以昔有五百仙人飛行空中 至此處見王之婇女 發欲心而失神通 墮墜於此 故稱仙人墮處 此外 大唐西域記七以鹿王爲代有孕之母鹿捨身就死 因而感動梵達多國王 使王釋放鹿群 竝布施樹林 而稱之爲施鹿林 鹿野苑自阿育王起 卽備受景仰崇拜 八世紀初 玄奘西遊時 此地層軒重閣 連垣周堵 垣中有高二百尺之精舍 其西南有阿育王所建高七十餘尺之石柱 石含玉潤 鑒照映徹 僧徒千餘衆 爲最隆盛之時代 逮至十三世紀頃 先後遭回敎徒與印度敎徒之蹂躪 盡成廢墟 今僅存周壁鏤刻右旋卍字之二層圓塔一座 及以鐵欄圍護之半截阿育王石柱等 [雜阿含經二十三 同三十九 三卷本大般涅槃經中 賢愚經五 四分律三十二 大智度論十六 阿育王傳二 高僧法顯傳 慧琳音義一]

木叉; 猶木杈 杈 叉狀的用具 頭部有分杈 用來刺物取物

丱角; 又作丫角 指古時兒童束髮成兩角的樣子

 

승문(僧問) 남천(南泉)이 이르되 이노백고(貍奴白牯)는 도리어 지유(知有)하지만 삼세제불은 지유하지 않는다(不知有). 무엇 때문에 삼세제불이 지유하지 않습니까. 사왈(師曰) 녹원(鹿苑)에 들지 아니했을 때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승왈(僧曰) 이노백고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지유(知有)합니까. 사왈 네가 어찌 그()를 괴이히 여김을 얻는가. 승문(僧問) 화상은 어떤 사람을 계사(繼嗣)했습니까. 사왈 나는 계사(繼嗣)를 얻은 사람이 없다. 승왈(僧曰) 도리어 참학(參學)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나는 스스로 참학한다. 승왈 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如何). 스님 게가 있어 가로되 허공이 만상()에게 묻고/ 만상이 허공에게 답한다/ 어떤 사람(誰人)이 친히 득문(得聞)하는가/ 목차(木叉)의 아각동(丱角)이다.

貍奴白牯; 이노(貍奴)는 또한 이노(狸奴)ㆍ이노(黧奴)로 지음. (; 고양이)의 별칭임. 백고(白牯)는 흰 소임. 옥편 고() 빈우(牝牛; 암소). 정자통 고() 속칭 모우(牡牛; 수소)를 가로되 고().

鹿苑; 녹야원(鹿野苑; Mrgadava.)이니 석존이 성도한 후에 처음 법륜을 굴린 땅이 됨. 즉금의 사이나사(沙爾那斯; Sārnāth)니 지금의 북인도 와랍나서시(瓦拉那西市; Benares) 이북(以北) 6의 곳에 위치함. 또 번역해 선인녹야원(仙人鹿野苑)ㆍ녹야원(鹿野園)ㆍ녹야(鹿野)ㆍ녹원(鹿苑)ㆍ선원(仙苑)ㆍ선인원(仙人園)으로 지음. 지명의 유래에 관하여선 여러 설이 분이(紛異). 출요경14에선 이 땅은 곧 여러 신선 및 득도한 5()의 학자가 유지(遊止)하는 곳이며 범부가 거주할 곳이 아닌지라 고로 이를 호칭하여 선인주처(仙人住處)라 했음. 또 이르기를 옛적에 바라나국왕(婆羅奈國王)이 있어 유렵(遊獵)하다가 여기에 이르러 그물로 사슴 천 마리를 잡았는데 녹왕(鹿王)이 애구(哀求)하며 날마다 한 마리의 사슴을 왕의 식용(食用)으로 보내 공급하겠다 하자 왕이 비로소 군록(群鹿)을 놓아줌을 겪은지라 고로 지명이 녹야원(鹿野苑). 대비바사론183에선 많은 설을 널리 채집했음. 불타가 과거세에 최승선인(最勝仙人)이 되었으며 일찍이 이 땅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린지라 고로 명칭이 선인논처(仙人論處). 불타가 출세하지 아니했거나 혹 출세한 때 항상 여러 신선이 있어 여기에 머물면서 단절되지 않은지라 고로 명칭이 선인주처(仙人住處). 옛적에 5백의 선인이 있어 공중을 비행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왕의 채녀(婇女; 궁녀)를 보고선 욕심이 발동하여 신통을 잃었고 여기에 떨어진지라 고로 명칭이 선인타처(仙人墮處). 이 밖에 대당서역기7에선 녹왕이 잉태(孕胎)함이 있는 어미 사슴을 대체하여 몸을 버려 죽음으로 나아가자 이로 인해 범달다국왕(梵達多國王)을 감동시켜 왕으로 하여금 군록을 석방하게 하고 아울러 수림을 보시한지라 이를 일컬어 시록림(施鹿林)이라 했음. 녹야원은 아육왕(阿育王)으로부터 일어났으니 경앙과 숭배를 비수(備受)했음. 8세기 초 현장이 서유(西遊)할 때 이 땅엔 층헌중각(層軒重閣)이 연원주도(連垣周堵; 담장을 잇고 두름)했으며 담장 중에 높이 200척의 정사가 있었음. 그 서남에 아육왕이 세운 바 높이 70여 척의 석주(石柱)가 있었음. 석주는 옥윤(玉潤; 옥의 윤택)을 머금었고 감조(鑒照)하면 영철(映徹; 비추어 통함)했으며 승도(僧徒)1천여 대중이었으니 가장 융성한 시대였음. 13세기 경에 이르러 선후로 회교도와 인도교도(印度敎徒)의 유린을 만나 모두 폐허가 되었음. 지금은 겨우 벽을 두르며 새긴 우선(右旋)의 만자(卍字)2층 원탑(圓塔) 1() 및 철란(鐵欄; 쇠로 만든 난간)으로 위호(圍護)하는 반절(半截)의 아육왕석주 등이 남았음 [잡아함경23, 39. 3권본대반열반경중. 현우경5. 사분율32. 대지도론16. 아육왕전2. 고승법현전. 혜림음의1].

木叉; 목차(木杈)와 같음. ()는 차상(叉狀; 갈라진 형상. 작살 형상)의 용구. 머리 부분에 분차(分杈; 분리된 가지)가 있고 사용하여 물건을 찌르고 물건을 취함.

丱角; 또 아각(丫角)으로 지음. 고시에 아동이 머리카락을 묶어 양각(兩角)을 이룬 양자(樣子)를 가리킴.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pyungsims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