鄂州茱萸山和尙
初住隨州護國 上堂 擎起一橛竹曰 還有人虛空裏釘得橛麽 時有靈虛上座出衆曰 虛空是橛 師擲下竹 便下座 趙州到雲居 居曰 老老大大 何不覔箇住處 曰 甚麽處住得 居曰 山前有箇古寺基 州曰 和尙自住取 後到師處 師曰 老老大大 何不覔箇住處 州曰 向甚處住 師曰 老老大大 住處也不知 州曰 三十年弄馬騎 今日却被驢撲〈雲居錫云 甚麽處是趙州被驢撲處〉 衆僧侍立次 師曰 祇恁麽白立 無箇說處 一場氣悶 僧擬問 師便打曰 爲衆竭力 便入方丈 有行者參 師曰 會去看趙州麽 曰 和尙敢道否 師曰 非但茱萸 一切人道不得 曰 和尙放某甲過 師曰 這裏從前不通人情 曰 要且慈悲心在 師便打曰 醒後來爲汝
●老老大大; 對年老者的譏刺語 隱含恁麽年老 猶不明悟之義
●白立; 沒有成就徒勞而立
●氣悶; 憂鬱煩悶 又因空氣不流通 或呼吸受阻 感到憋氣
악주(鄂州) 수유산(茱萸山; 저본에 菜萸山으로 지었음) 화상(和尙)
처음 수주(隨州) 호국(護國)에 주(住)했다. 상당(上堂) 한 말뚝의 대(一橛竹)를 경기(擎起)하고 가로되 도리어 허공 속에 말뚝을 박을(釘得) 사람이 있느냐. 때에 영허(靈虛) 상좌가 있어 대중에서 나와 가로되 허공이 이 말뚝입니다. 스님이 대를 던져 떨어뜨리고 바로 하좌했다. 조주(趙州; 從諗)가 운거(雲居)에 이르자 거왈(居曰) 노로대대(老老大大)가 왜 저(箇) 주처(住處)를 찾지 못하느냐. 가로되 어느 곳에 주득(住得)해야 하는가. 거왈(居曰) 산 앞에 저(箇) 고사(古寺)의 터(基)가 있다. 주왈(州曰) 화상이나 스스로 주취(住取)하라. 후에 스님의 처소에 이르자 사왈(師曰) 노로대대(老老大大)가 왜 저(箇) 주처(住處)를 찾지 못하느냐. 주왈(州曰) 어느 곳을 향해 주(住)해야 하는가. 사왈 노로대대가 주처(住處)도 알지 못하느냐. 주왈(州曰) 30년 동안 마기(馬騎; 멀타기)를 희롱했더니 금일 도리어 나귀에게 차임(撲)을 입었다〈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조주가 나귀에게 차임을 입은 곳인가〉. 중승(衆僧)이 시립(侍立)한 차에 사왈 다만 이렇게 백립(白立)하기만 하고 저(箇) 설한 곳이 없으니 한바탕의 기민(氣悶)이다. 중이 물으려고 하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대중을 위해 힘을 다했다(竭力). 바로 방장으로 들어갔다. 어떤 행자가 참(參)했다. 사왈 마침(會) 가서 조주를 보았느냐. 가로되 화상이 감히 말씀하시겠습니까. 사왈 단지 수유(茱萸)만이 아니라 일체인이 말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화상이 모갑의 허물을 방면(放免)하십시오. 사왈 이 속(遮裏)에선 종전(從前; 이제까지)에 인정(人情)이 통하지 않는다. 가로되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자비심이 있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깬 후(醒後)에 오면 너를 위하겠다.
●老老大大; 연로한 자에 대한 기자어(譏刺語: 헐뜯고 비꼬아서 하는 말). 이렇게 연로하면서 오히려 밝게 깨치지 못했는가 하는 뜻을 은함(隱含)하였음.
●白立; 성취한 게 있지 않고 헛수고하며 섰음.
●氣悶; 우울(憂鬱)하면서 번민함. 또 공기가 유통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혹 호흡이 막힘을 받아 별기(憋氣; 심정이 화창하지 못함)를 감도(感到; 感受)함임.
衢州子湖巖利蹤禪師
澶州人也 姓周氏 幽州開元寺出家 依年受具 後入南泉之室 乃抵于衢州之馬蹄山 結茅宴居 唐開元二年 邑人翁遷貴施山下子湖創院 師於門下立牌曰 子湖有一隻狗 上取人頭 中取人心 下取人足 擬議卽喪身失命 臨濟會下二僧參 方揭簾 師喝曰 看狗 僧回顧 師便歸方丈 與勝光和尙鉏園次 驀按钁 回視光曰 事卽不無 擬心卽差 光便問 如何是事 被師攔胷踏倒 從此有省
●衢州; 今浙江省衢州
●澶州; 今河南濮陽
●擬議; 思慮 遲疑 說文 擬 度也 說文 議 語也 ▲易繫辭上傳 言天下之至賾 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 而不可亂也 擬之而後言 議之而後動 擬議以成其變化
●攔胷; 攔 表示方式方向 相當于當 對著 用同劈
구주(衢州) 자호암(子湖巖) 이종선사(利蹤禪師)
단주(澶州) 사람이며 성이 주씨(周氏)다. 유주(幽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출가했고 나이에 의해 수구(受具)했다. 후에 남천(南泉)의 실(室)에 들었고 이에 구주(衢州)의 마제산(馬蹄山)에 다다라 띳집을 엮어(結茅) 연거(宴居)했다. 당 개원(開元; 傳燈에 開成으로 지었음) 2년(714) 읍인(邑人) 옹천귀(翁遷貴)가 산 아래 자호(子湖)를 보시해 창원(創院)했다. 스님이 문 아래 입패(立牌)하여 가로되 자호(子湖)에 1척(隻)의 개가 있는데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취하고 중간은 사람의 심장을 취하고 아래론 사람의 발을 취하나니 의의(擬議)하면 곧 상신실명(喪身失命)한다. 임제회하(臨濟會下)의 2승이 참(參)했다. 바야흐로 발을 높이 드는데(揭簾) 스님이 할(喝)하고 가로되 개를 보아라. 중이 돌아보았다(回顧).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승광화상(勝光和尙)과 더불어 채원(菜園)을 매는(鉏) 차에 갑자기(驀) 괭이(钁)를 누르고(按) 승광을 돌아보며(回視) 가로되 사(事)는 곧 없지 않으나 의심(擬心; 思慮. 猶豫)하면 곧 어긋난다. 승광이 바로 묻되 무엇이 이 사(事)입니까 했다가 스님이 가슴에(攔胷) 밟아 넘어짐을 입었다. 이로 좇아 살핌이 있었다.
●衢州; 지금의 절강성 구주(衢州).
●澶州; 지금의 하남 복양(濮陽).
●擬議; 사려. 지의(遲疑; 주저하며 의심함). 설문 의(擬) 탁(度; 헤아리다)이다. 설문 의(議) 어(語)다. ▲역 계사상(繫辭上) 전(傳). 천하의 지색(至賾; 가장 精微한 奥理)을 말해도 가히 악(惡; 過錯)하지 않고 천하의 지동(至動; 가장 細致한 변화)을 말해도 가히 난(亂; 혼란)하지 않는다. 이를 의(擬)한 후에 말하고 이를 의(議)한 후에 동(動)하나니 의의(擬議)하여 그 변화를 이룬다.
●攔胷; 란(攔)은 방식과 방향을 표시함. 당(當)ㆍ대착(對著)에 상당함. 용이 벽(劈)과 같음.
尼到參 師曰 汝莫是劉鐵磨否 曰 不敢 師曰 左轉右轉 曰 和尙莫顚倒 師便打 師一夜於僧堂前呌曰 有賊 衆皆驚動 有一僧在堂內出 師把住曰 維那 捉得也 捉得也 曰 不是某甲 師曰 是卽是 祇是汝不肯承當 有偈示衆曰 三十年來住子湖 二時齋粥氣力麤 無事上山行一轉 借問時人會也無 廣明中 無疾歸寂 塔于本山
니(尼; 비구니)가 도참(到參)했다. 사왈(師曰) 너는 이 유철마(劉鐵磨)가 아니냐. 가로되 불감(不敢)입니다. 사왈 좌로 도느냐, 우로 도느냐. 가로되 화상은 전도(顚倒)하지 마시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어느 날 밤 승당(僧堂) 앞에서 부르짖으며 가로되 도적이 있다. 대중이 모두 경동(驚動)했다. 어떤 1승이 당내(堂內)에 있다가 나오자 스님이 파주(把住)하고 가로되 유나(維那)야, 착득(捉得)했다, 착득했다. 가로되 옳지 않습니다(不是). 모갑입니다. 사왈 옳기는(是) 곧 옳지만 다만 이 네가 승당(承當)함을 불긍(不肯)하는구나. 게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30년 래에 자호(子湖)에 주(住)하나니/ 이시(二時)의 재죽(齋粥)에 기력이 크다(麤)/ 무사(無事)하여 산에 올라 1전(轉; 回) 다니나니/ 시인(時人)에게 차문(借問)하노라, 아느냐 또는 아니냐. 광명(880-881) 중 질병 없이 귀적(歸寂; 저본에 歸究로 지었음)했다. 본산에 탑을 세웠다(塔于本山).
荊南白馬曇照禪師
常曰 快活快活 及臨終時呌 苦苦 又曰 閻羅王來取我也 院主問曰 和尙當時被節度使拋向水中 神色不動 如今何得恁麽地 師擧枕子曰 汝道當時是 如今是 院主無對〈法眼代云 此時但掩耳出去〉
형남(荊南) 백마(白馬; 白馬寺) 담조선사(曇照禪師)
늘 이르되 쾌활(快活)하구나, 쾌활하구나. 임종 시에 이르러 부르짖되 괴롭다(苦), 괴롭다. 또 가로되 염라왕(閻羅王)이 와서 나를 취하는구나. 원주(院主)가 문왈(問曰) 화상이 당시에 절도사(節度使)가 수중(水中)을 향해 던짐을 입었어도 신색(神色; 態度)이 부동(不動)했거늘 여금엔 어찌하여 이러함(恁麽地; 地는 조사)을 얻습니까. 스님이 침자(枕子; 베개. 子는 조사)를 들고 가로되 네가 말하라, 당시가 옳으냐(是), 여금이 옳으냐. 원주가 대답이 없었다〈法眼이 代云 이때에 단지 귀를 막고 나갔겠다〉.
終南山雲際師祖禪師
初參南泉問 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裏親收得 如何是藏 泉曰 與汝往來者是 師曰 不往來者如何 泉曰 亦是 曰 如何是珠 泉召師祖 師應諾 泉曰 去 汝不會我語 師從此信入
종남산(終南山) 운제(雲際; 雲際寺) 사조선사(師祖禪師)
남천(南泉)을 초참(初參)하여 묻되 마니주(摩尼珠)를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여래장(如來藏) 속에서 친히 수득(收得)했다(증도가의 글) 하니 무엇이 이 장(藏)입니까. 천왈(泉曰) 너와 더불어 왕래하는 것이 이것이다. 사왈 왕래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如何). 천왈(泉曰) 역시(亦是)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珠)입니까. 남천이 부르되 사조(師祖)야. 스님이 응낙했다. 천왈(泉曰) 가거라, 너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하는구나. 스님이 이로 좇아 신입(信入)했다.
鄧州香嚴下堂義端禪師
上堂 兄弟 彼此未了 有甚麽事相共商量 我三五日卽發去也 如今學者 須了却今時 莫愛他向上人無事 兄弟 縱學得種種差別義路 終不代得自己見解 畢竟著力始得 空記持他巧妙章句 卽轉加煩亂去 汝若欲相應 但恭恭地盡 莫停留纖毫 直似虛空 方有少分 以虛空無鎻閉 無壁落 無形段 無心眼 時有僧問 古人相見時如何 師曰 老僧不曾見古人 曰 今時血脉不斷處 如何仰羨 師曰 有甚麽仰羨處 問 某甲不問閑事 請和尙答話 師曰 更從我覔甚麽 曰 不爲閑事 師曰 汝敎我道 乃曰 兄弟 佛是塵 法是塵 終日馳求 有甚麽休歇 但時中不用挂情 情不挂物 無善可取 無惡可棄 莫敎他籠罩著 始是學處也 問 某甲曾辭一老宿 宿曰 去則親良朋 附善友 某今辭和尙 未審有何指示 師曰 禮拜著 僧禮拜 師曰 禮拜一任禮拜 不得認奴作郞
●鄧州; 今河南省鄧縣
●向上人; 與向上機同義 堪能徹底體得諸佛境界之人
●籠罩; 槪括 統攝
등주(鄧州) 향엄하당(香嚴下堂) 의단선사(義端禪師)
상당(上堂) 형제(兄弟)여, 피차 깨닫지(了) 못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 서로 함께 상량(商量)하겠는가. 내가 삼오일(三五日)이면 곧 떠날 것이다(發去也). 여금의 학자는 모름지기 금시(今時)를 요각(了却)하고 저 향상인(向上人)의 무사(無事)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리라. 형제가 설령(縱) 갖가지 차별의 의로(義路)를 학득(學得)하더라도 마침내 자기의 견해를 대득(代得)하지 못하나니 필경 착력(著力)해야 비로소 옳다(得). 공연히(空) 저 교묘한 장구(章句)를 기지(記持)한다면 곧 더욱(轉) 번란(煩亂)을 더하여 간다. 너희가 만약 상응하려고 한다면 단지 공공지(恭恭地; 공경하는 모양) 다하고(盡) 섬호(纖毫)도 정류(停留)하지 말아라. 바로(直) 허공과 같아야 비로소 소분(少分)이 있나니 허공은 쇄폐(鎻閉; 자물쇠로 잠금)도 없고 벽락(壁落; 壁籬)도 없고 형단(形段)도 없고 심안(心眼)도 없기 때문이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고인(古人)이 상견할 땐 어떻습니까. 사왈 노승은 일찍이 고인을 보지 못했다. 가로되 금시에 혈맥이 끊어지지 않는 곳을 어떻게 앙선(仰羨; 仰慕)합니까. 사왈 무슨 앙선할 곳이 있는가. 묻되 모갑은 한사(閑事)를 묻지 않습니다. 청컨대 화상이 답화(答話)하십시오. 사왈 다시 나로 좇아 무엇(甚麽)을 찾느냐. 가로되 한사(閑事)를 위함이 아닙니다. 사왈 네가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구나. 이에 가로되 형제여, 불(佛)이 이 티끌이며 법도 이 티끌이거늘 종일 치구(馳求)하니 무슨 휴헐(休歇)함이 있으리오. 단지 시중(時中)에 괘정(挂情; 정을 걸다)함을 쓰지 않고 정에 괘물(挂物; 사물을 걸다)하지 않으면 가히 취할 선이 없고 가히 버릴 악이 없다. 그에 농조(籠罩)되게 하지 말아야 비로소 이 학처(學處)다. 묻되 모갑이 일찍이 1노숙(老宿)에게 고별하자 노숙이 가로되 가거든 곧 양붕(良朋)을 친근(親近)하고 선우(善友)에게 의탁(依託; 附)하라. 모(某)가 이제 화상에게 고별합니다. 미심하오니 어던 지시가 있습니까. 사왈 예배하거라(禮拜著). 중이 예배했다. 사왈 예배는 예배하는 대로 일임하지만 인노작랑(認奴作郞)함을 얻지 말아라.
●鄧州; 지금의 하남성 등현(鄧縣).
●向上人; 향상기(向上機)와 같은 뜻. 감내하며 능히 철저하게 제불의 경계를 체득할 사람.
●籠罩; 개괄(槪括). 통섭(統攝).
上堂 僧問 如何是直截根源 師乃擲下拄杖 便歸方丈 上堂 語是謗 寂是誑 語寂向上有路在 老僧口門窄 不能與汝說得 便下座 上堂 問 正因爲甚麽無事 師曰 我不曾停留 乃曰 假饒重重剝得 淨盡無停留 權時施設 亦是方便接人 若是那邊事 無有是處
●口門; 卽口 門 形狀或作用象門的 如爐門 閘門 又特指人身的孔竅 如産門 肛門 口門
●正因; 對緣因而言 正生法之因種曰正因 資助之力曰緣因
●那邊; 一代詞 指示比較遠的人和事物 這的相對 二隱指超越塵俗 超越空間的禪悟境界 此指二
상당(上堂) 승문(僧問) 무엇이 이 근원을 직절함입니까(直截根源). 스님이 이에 주장자를 던져 떨어뜨리고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상당(上堂) 어(語)는 이 방(謗)이며 적(寂)은 이 광(誑; 속이다)이니 어적(語寂)의 향상(向上)에 길이 있다. 노승은 구문(口門)이 좁아서(窄) 능히 너희에게 설득(說得; 得은 조사)하여 주지 못한다. 바로 하좌(下座)했다. 상당(上堂) 묻되 정인(正因)엔 무엇 때문에 무사(無事)합니까. 사왈 나는 일찍이 정류(停留)하지 않았다. 이에 가로되 가요(假饒; 가령. 假使) 거듭거듭(重重) 박득(剝得; 벗기다)하여 깨끗이 없애 정류(停留)가 없더라도 권시(權時; 暫時)의 시설(施設)이며 역시 방편으로 접인(接人)함이니 만약 이 나변사(那邊事)일진대 옳은 곳이 있지 않다.
●口門; 곧 입. 문(門)은 형상이나 혹은 작용이 문을 형상하는 것이니 예컨대(如) 노문(爐門)ㆍ갑문(閘門). 또 특별히 사람 몸의 공규(孔竅; 구멍)를 가리킴이니 예컨대(如) 산문(産門)ㆍ항문(肛門)ㆍ구문(口門).
●正因; 연인(緣因)에 상대해 말함이니 바르게 법을 내는 인종(因種)을 가로되 정인이며 자조(資助)의 힘을 가로되 연인임.
●那邊; 1. 대사(代詞). 먼 사람과 사물을 지시하며 비교함. 저(這; 이것)의 상대. 2. 진속(塵俗)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 선오(禪悟)의 경계를 은유로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池州靈鷲閑禪師
上堂 是汝諸人本分事 若敎老僧道 卽是與蛇畫足 時有僧問 與蛇畫足卽不問 如何是本分事 師曰 闍黎試道看 僧擬再問 師曰 畫足作麽 明水和尙問 如何是頓獲法身 師曰 一透龍門雲外望 莫作黃河點額魚 仰山問 寂寂無言 如何視聽 師曰 無縫塔前多雨水 僧問 二彼無言時如何 師曰 是常 曰 還有過常者無 師曰 有 曰 請師唱起 師曰 玄珠自朗耀 何須壁外光 問 今日供養西川無染大師 未審還來否 師曰 本自無所至 今豈隨風轉 曰 恁麽則供養何用 師曰 功力有爲 不換義相涉
●與蛇畫足; 祖庭事苑八 爲蛇畫足 戰國策(策齊二)曰 昭陽適楚(疑魏 昭陽爲楚伐魏 覆軍殺將 得八城 移兵而攻齊)伐齊 齊王使陳軫見昭陽 曰 臣切譬 楚王有祀者 賜其舍人酒一巵 舍人相謂曰 數人飮之不足 一人飮之有餘 請畫蛇 蛇先成者飮 有一人先成 引酒且飮 乃右手持杯曰 吾能爲之足 未成者奪其巵曰 蛇固無足 今伐齊 乃爲蛇畫足耳
●點額; 傳說每年三月間 黃河龍門有成群鯉魚跳渡 跳過者成爲龍 未跳過者 額頭被點上記號而退回 一般詩文中 常以點額 喩指科場考試落第 禪錄中則以點額 喩指未能契悟禪機 ▲祖庭事苑三 點額 水經云 鱣鮪出鞏穴 三月則上度龍門 得度爲龍矣 否則點額而還 鱣 張連切 鮪 羽軌切 二魚名
지주(池州) 영취한(靈鷲閑) 선사
상당(上堂) 이 너희 제인의 본분사(本分事)를 만약 노승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즉시(卽是) 뱀에게 발을 그려 줌이다(與蛇畫足).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여사화족(與蛇畫足)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본분사입니까. 사왈 사리(闍黎)가 시험 삼아 말해보아라. 중이 재문(再問)하려 하자 사왈 발을 그려(畫足) 무엇하려느냐. 명수화상(明水和尙)이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을 돈획(頓獲)함입니까. 사왈 용문(龍門)을 한 번 투과해 운외(雲外)에서 바라보고 황하(黃河)의 점액어(點額魚)가 되지 말아라. 앙산(仰山)이 묻되 적적(寂寂)하여 말이 없거늘 어떻게(如何) 시청(視聽)합니까. 사왈 무봉탑(無縫塔) 앞에 빗물(雨水)이 많다. 승문(僧問) 이피(二彼; 彼此)가 말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상(常)이다. 가로되 도리어 상(常)을 초과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스님의 창기(唱起)를 청합니다. 사왈 현주(玄珠)가 스스로 낭요(朗耀)하거늘 어찌 벽 밖의 빛을 쓰겠는가(須). 묻되 금일 서천(西川)의 무염대사(無染大師)에게 공양하거니와 미심하오니 도리어 옵니까. 사왈 본래 스스로 이르는 곳이 없거늘 여금에 어찌 바람 따라 구르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공양하여 무엇에 쓰겠습니까. 사왈 공력(功力)이 유위(有爲)지만 환의(換義; 뜻을 교환)하여 상섭(相涉)하지 않는다.
●與蛇畫足; 조정사원8. 위사화족(爲蛇畫足) 전국책(策齊2)에 가로되 소양(昭陽)이 초(楚; 魏로 의심됨 昭陽이 초를 위해 魏를 정벌했는데 군사를 돌려 장수를 죽이고 8城을 얻고 군병을 이동해 齊를 공격하려고 했음)에 갔다가 제(齊)를 치려고 했다. 제왕(齊王)이 진진(陳軫; 전국시대의 뛰어난 遊說客)을 시켜 소양을 보게 했다. 가로되 신(臣)이 간절히 비유하겠습니다. 초왕(楚王)이 제사(祭祀)하는 자가 있자 그 집 사람에게 술 한 잔(巵는 잔 치)을 하사했습니다. 집 사람들이 서로 일러 가로되 몇 사람이 이를 마시기엔 부족하고 한 사람이 이를 마시기엔 남음이 있으니 청컨대 뱀을 그려 뱀을 먼저 이루는 자가 마시자. 한 사람이 있어 먼저 이루었으므로 술을 당겨 다만 마시려 하면서 이에 오른손으로 잔을 가지고 가로되 내가 능히 발을 만들었다. 이루지 못한 자가 그 잔을 뺏으며 가로되 뱀은 진실로 발이 없다. 지금 제(齊)를 치려고 함은 곧 뱀을 위해 발을 그릴 뿐입니다.
●點額; 전설에 매년 3월 사이 황하의 용문에 무리를 이룬 이어(鯉魚; 잉어)가 있어 도약해 건너는데 도약해 지난 자는 용이 되고 도약해 건너지 못한 자는 액두(額頭; 이마)에 기호가 점 찍힘을 입고 퇴회(退回)함. 일반의 시문 중 늘 점액으로써 과장고시(科場考試)에 낙제함을 비유로 가리키며 선록 중에는 곧 점액으로써 능히 선기(禪機)에 계오(契悟)하지 못함을 비유로 가리킴. ▲조정사원3. 점액(點額) 수경(水經)에 이르되 전유(鱣鮪; 鱣은 드렁허리. 鮪는 다랑어)가 공혈(鞏穴; 鞏은 굳을 공)에서 나와 3월이면 곧 올라 용문을 건너는데 건넘을 얻으면 용이 되지만 아니면 곧 이마에 점찍혀(點額) 돌아온다. 전(鱣)은 장련절(張連切; 젼)이며 유(鮪)는 우궤절(羽軌切)이니 두 물고기의 이름임.
洛京嵩山和尙
僧問 古路坦然時如何 師曰 不前 曰 爲甚麽不前 師曰 無遮障處 問 如何是嵩山境 師曰 日從東出 月向西頹 曰 學人不會 師曰 東西也不會 問 六識俱生時如何 師曰 異 曰 爲甚麽如此 師曰 同
낙경(洛京) 숭산화상(嵩山和尙)
승문(僧問) 고로(古路)가 탄연(坦然)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전진하지 말아라(不前). 가로되 무엇 때문에 전진하지 말아야 합니까. 사왈 차장처(遮障處)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숭산경(嵩山境)입니까. 사왈 해가 동쪽으로 좇아나오고 달이 서쪽을 향해 기운다(頹).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동서(東西)도 알지 못하느냐. 묻되 6식(識)이 다(俱) 생할 땐 어떻습니까. 사왈 다르다(異). 승왈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같다(同).
日子和尙
因亞谿來參 師作起勢 谿曰 這老山鬼 猶見某甲在 師曰 罪過 罪過 適來失祗對 谿欲進語 師便喝 谿曰 大陣當前 不妨難禦 師曰 是 是 谿曰 不是 不是〈趙州云 可憐兩箇漢 不識轉身句〉
일자화상(日子和尙)
아계(亞谿)가 내참(來參)하자 스님이 일어나는 자세를 지었다. 계왈(谿曰) 이 늙은 산귀(山鬼)가 오히려 모갑을 보는구나. 사왈(師曰) 죄과(罪過)로다, 죄과로다. 아까 지대(祗對; 응대)를 잃었다. 아계가 말을 진행하려는데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계왈(谿曰) 대진(大陣)을 앞에 당해 방어하기 어려움에 방애(妨礙)되지 않는구나. 사왈 그렇다(是), 그렇다. 계왈(谿曰) 그렇지 않다(不是), 그렇지 않다〈趙州가 이르되 可憐하게도 兩箇漢이 轉身句를 알지 못하는구나〉.
蘇州西禪和尙
僧問 三乘十二分敎則不問 如何是祖師西來的的意 師擧拂子示之 其僧不禮拜 竟參雪峯 峯問 甚麽處來 曰 浙中來 峯曰 今夏甚麽處 曰 西禪 峯曰 和尙安否 曰 來時萬福 峯曰 何不且在彼從容 曰 佛法不明 峯曰 有甚麽事 僧擧前話 峯曰 汝作麽生不肯伊 曰 是境 峯曰 汝見蘇州城裏人家男女否 曰 見 峯曰 汝見路上林木池沼否 曰 見 峯曰 凡覩人家男女 大地林沼 總是境 汝還肯否 曰 肯 峯曰 祇如擧起拂子 汝作麽生不肯 僧乃禮拜曰 學人取次發言 乞師慈悲 峯曰 盡乾坤是箇眼 汝向甚麽處蹲坐 僧無語
●浙中; 浙江 今浙江省
●取次; 一次 通恣 放縱也 取次 草率 容易 漫浪之義 二次第 此指一
소주(蘇州) 서선화상(西禪和尙)
승문(僧問)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조사서래(祖師西來)의 적적(的的; 명백)한 뜻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들어 보였다. 그 중이 예배하지 않고 마침내 설봉(雪峯)을 참했다. 설봉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절중(浙中)에서 옵니다. 봉왈(峯曰) 금년 여름은 어느 곳이냐. 가로되 서선(西禪)입니다. 봉왈(峯曰) 화상은 안녕하신가. 가로되 올 때 만복(萬福)했습니다. 봉왈(峯曰) 왜 다만(且) 거기에 있으면서 종용(從容)하지 않았는가. 가로되 불법이 밝지 않았습니다. 봉왈(峯曰) 무슨 일이 있었느냐. 중이 전화(前話)를 들었다. 봉왈 네가 어찌하여(作麽生) 그(伊)를 불긍(不肯)했는가. 가로되 이는 경(境; 경계)이었습니다. 봉왈 네가 소주성(蘇州城) 속의 인가(人家)의 남녀를 보았느냐. 가로되 보았습니다. 봉왈 네가 노상(路上)의 임목(林木)과 지소(池沼)를 보았느냐. 가로되 보았습니다. 봉왈 무릇 보이는(覩) 인가ㆍ남녀ㆍ대지ㆍ임소(林沼)가 모두(總) 이 경(境)이다. 네가 도리어 긍정하느냐. 가로되 긍정합니다. 봉왈 지여(祇如) 불자를 거기(擧起)함을 네가 어찌하여(作麽生) 불긍하느냐. 중이 이에 예배하고 가로되 학인이 취차(取次)로 발언했으니 스님의 자비를 구걸합니다. 봉왈 온(盡) 건곤이 이(是箇) 눈이다. 네가 어느 곳을 향해 준좌(蹲坐; 쭈그리고 앉다)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浙中; 절강(浙江)이니 지금의 절강성.
●取次; 1. 차(次)는 자(恣)와 통하며 방종(放縱)임. 취차(取次)는 초솔(草率; 절실하거나 정밀하지 못한 모양)ㆍ용이ㆍ만랑(漫浪)의 뜻. 2. 차제(次第).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宣州刺史陸亘大夫
問南泉 古人甁中養一鵝 鵝漸長大 出甁不得 如今不得毀甁 不得損鵝 和尙作麽生出得 泉召大夫 陸應諾 泉曰 出也 陸從此開解 卽禮謝 暨南泉圓寂 院主問曰 大夫何不哭先師 陸曰 院主道得卽哭 院主無對〈長慶代云 合哭不合哭〉
선주자사(宣州刺史) 육긍대부(陸亘大夫)
남천(南泉)에게 묻되 고인이 병중(甁中)에 1아(鵝; 거위)를 길렀는데 거위가 점차 장대(長大)하여 병에서 나옴을 얻지 못합니다. 여금에 병을 훼손함을 얻지 않고 거위를 손상함을 얻지 않고 화상이 어떻게(作麽生) 나오게 함을 얻겠습니까(出得). 남천이 대부(大夫)를 불렀다. 육긍이 응낙했다. 남천이 가로되 나왔다(出也). 육긍이 이로 좇아 개해(開解)했고 곧 예사(禮謝)했다. 남천이 원적(圓寂)함에 이르러(暨) 원주(院主)가 물어 가로되 대부는 왜 선사(先師)를 곡(哭)하지 않습니까. 육긍이 가로되 원주가 말함을 얻으면 곧 곡하겠습니다. 원주가 대답이 없었다〈長慶이 代云 哭함이 합당합니까, 哭함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池州甘贄行者
一日入南泉設齋 黃檗爲首座 行者請施財 座曰 財法二施 等無差別 甘曰 恁麽道 爭消得某甲䞋 便將出去 須臾復入曰 請施財 座曰 財法二施 等無差別 甘乃行䞋 又一日 入寺設粥 仍請南泉念誦 泉乃白椎曰 請大衆爲貍奴白牯念摩訶般若波羅蜜 甘拂袖便出 泉粥後問典座 行者在甚處 座曰 當時便去也 泉便打破鍋子 甘常接待往來 有僧問曰 行者接待不易 甘曰 譬如餧驢餧馬 僧休去 有住庵僧緣化什物 甘曰 有一問 若道得卽施 乃書心字 問 是甚麽字 曰 心字 又問妻 甚麽字 妻曰 心字 甘曰 某甲山妻亦合住庵 其僧無語 甘亦無施 又問一僧 甚麽處來 曰 潙山來 甘曰 曾有僧問潙山 如何是西來意 潙山擧起拂子 上座作麽生會潙山意 曰 借事明心 附物顯理 甘曰 且歸潙山去好〈保福聞之 乃仰手覆手〉
●䞋; 字彙 䞋 施也 玉篇 䞋 䞋錢 ▲慧琳音義九十 文字集略云 䞋 施也 或從口作嚫
●山妻; 山 謙辭 唐代薛逢鑷白曲 況兼職祿霜峨峨 山妻稚女悉迎到
지주(池州) 감지행자(甘贄行者)
어느 날 남천(南泉)에 들어가 재(齋)를 베풀었는데 황벽(黃檗)이 수좌(首座)가 되었다. 행자가 시재(施財)를 청하자 수좌가 가로되 재법(財法; 財施와 法施) 2시(施)는 동등(同等)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감왈(甘曰) 이렇게(恁麽) 말한다면 어찌 모갑의 친(䞋)을 소득(消得; 消費하다)하겠습니까. 바로 가지고 나갔다. 수유(須臾)에 다시 들어가 가로되 시재(施財)를 청합니다. 수좌가 가로되 재법(財法) 2시(施)는 동등(同等)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감지가 이에 행친(行䞋)했다. 또 어느 날 입사(入寺)하여 죽(粥)을 베풀었다. 인하여(仍) 남천에게 염송(念誦)을 청했다. 남천이 이에 백추(白椎)하고 가로되 청컨대 대중은 이노백고(狸奴白牯)를 위해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시오(念). 감지가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남천이 죽후(粥後)에 전좌(典座)에게 묻되 행자가 어느 곳에 있느냐. 전좌가 가로되 당시에 바로 갔습니다. 남천이 바로 과자(鍋子; 솥. 子는 조사)를 타파했다. 감지가 늘 왕래(往來; 왕래인)를 접대(接待)했는데 어떤 중이 물어 가로되 행자는 접대함이 쉽지 않겠습니다. 감왈(甘曰) 비유컨대 나귀를 먹이고 말을 먹임(餧驢餧馬)과 같습니다. 중이 쉬러 갔다. 어떤 주암승(住庵僧)이 집물(什物)을 연화(緣化; 勸化)하자 감왈(甘曰) 1문(問)이 있는데 만약 도득(道得; 말함을 얻다)하면 곧 보시하겠습니다. 이에 심자(心字)를 쓰고 묻되 이 무슨 자입니까. 가로되 심자(心字)입니다. 또 처(妻)에게 묻되 무슨 자입니까. 처가 가로되 심자입니다. 감왈(甘曰) 모갑의 산처(山妻)도 또한 합당히 주암(住庵)하겠습니다. 그 중이 말이 없었다. 감지도 또한 보시하지 않았다. 또 1승(僧)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셨습니까. 가로되 위산(潙山)에서 왔습니다. 감왈(甘曰) 일찍이 어떤 승인이 위산에게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위산이 불자를 거기(擧起)하셨습니다. 상좌가 어떻게(作麽生) 위산의 뜻을 이회(理會)합니까. 가로되 사(事)를 빌려 심(心)을 밝히고(借事明心) 물(物)에 붙어 리(理)를 나타내었습니다(附物顯理). 감왈(甘曰) 다만(且) 위산으로 돌아가심이 좋습니다〈保福(從展)이 이를 듣고 이에 仰手하고 覆手했다〉.
●䞋; 字彙 자휘 친(䞋) 시(施)다. 옥편 친(䞋) 친전(䞋錢)이다. ▲혜림음의90. 문자집략에 이르되 친(䞋) 시(施)다. 혹 구(口)를 좇아 친(嚫)으로 짓는다.
●山妻; 산(山)은 겸사(謙辭)임. 당대 설봉(薛逢) 섭백곡(鑷白曲). 하물며 직록(職祿; 관직과 俸祿)을 겸해 서리처럼 아아(峨峨; 위엄이 있고 盛한 모양)한데 산처(山妻)와 어린 딸이 모두 맞이해 이르다.
鹽官安國師法嗣
襄州關南道常禪師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擧拄杖曰 會麽 曰 不會 師便打 師每見僧來參禮 多以拄杖打趂 或曰 遲一刻 或曰 打動關南鼓 而時輩鮮有唱和者
●襄州; 今湖北省襄樊 荷澤神會 大梅法常出生地 西北地域有雲門宗洞山守初道場
양주(襄州) 관남(關南) 도상선사(道常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매양 중이 와서 참례함을 보면 다분히 주장자로써 때려 쫓았다. 혹은 가로되 1각(刻)이 더디다. 혹은 가로되 관남고(關南鼓)를 타동(打動)하는구나. 시배(時輩)가 창화(唱和)하는 자가 드물게 있었다.
●襄州; 지금의 호북성 양번(襄樊)이니 하택신회와 대매법상의 출생지며 서북지역에 운문종 동산수초의 도량이 있음.
洪州雙嶺玄眞禪師
初問道吾 無神通菩薩 爲甚麽足迹難尋 吾曰 同道者方知 師曰 和尙還知否 吾曰 不知 師曰 何故不知 吾曰 去 你不識我語 師後於鹽官處悟旨焉
홍주(洪州) 쌍령(雙嶺) 현진선사(玄眞禪師)
처음 도오(道吾)에게 묻되 신통이 없는 보살을 무엇 때문에 족적(足迹)을 찾기 어렵습니까. 오왈(吾曰) 동도자(同道者)라야 바야흐로 안다. 사왈(師曰) 화상은 도리어 압니까. 오왈(吾曰) 알지 못한다. 사왈 무슨 연고로 알지 못합니까. 오왈 가거라, 너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하는구나. 스님이 후에 염관(鹽官)의 처소에서 지취를 깨쳤다.
杭州徑山鑒宗禪師
湖州錢氏子 依本州開元寺大德高閑出家 學通淨名思益經 後往鹽官決擇疑滯 唐咸通三年 住徑山 有小師洪諲以講論自矜〈諲卽法濟大師〉 師謂之曰 佛祖正法 直截亡詮 汝筭海沙 於理何益 但能莫存知見 泯絕外緣 離一切心 卽汝眞性 諲茫然 遂禮辭 遊方至潙山 方悟玄旨 乃嗣潙山師 咸通七年示滅 諡無上大師
●湖州; 位於浙江省北太湖南 有移忠寺 大雲寺 仁王院 法華寺等
●淨名; 淨名經 維摩經之異名 維摩經有三譯 一吳支謙譯 題爲維摩詰經 二卷 二秦羅什譯 題爲維摩詰所說經 三卷 三唐玄奘譯 題爲說無垢稱經 六卷 三譯中流行盛者羅什譯維摩經 皆收於大正藏第十四冊
●思益經; 思益梵天所問經之略名 四卷 秦羅什譯 思益者梵天之名 說大乘之實義而破小乘之偏小 收於大正藏第十五冊
●決擇; 祛除疑惑 究明道法
항주(杭州) 경산(徑山) 감종선사(鑒宗禪師)
호주(湖州) 전씨(錢氏)의 아들이다. 본주(本州) 개원사(開元寺) 대덕 고한(高閑)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정명(淨名)과 사익경(思益經)을 학습해 통달했다. 후에 염관(鹽官)으로 가서 의체(疑滯)를 결택(決擇)했고 당 함통(咸通) 3년(862) 경산(徑山)에 거주했다. 소사(小師) 홍인(洪諲)이 있어 경론으로써 자긍(自矜)하자〈諲은 곧 徑山 第三世 法濟大師다〉 스님이 일러 가로되 불조의 정법은 직절(直截)하여 언전(言詮)이 망(亡)해야 한다. 네가 해사(海沙)를 계산하니 이치에 무슨 이익이리오. 단지 능히 지견(知見)을 두지 말고 외연(外緣)을 민절(泯絕)하고 일체의 마음을 여의어야 곧 너의 진성(眞性)이다. 홍인이 망연(茫然)했다. 드디어 예사(禮辭)하고 유방(遊方)하다가 위산(潙山; 靈祐)에 이르러 비로소 현지(玄旨)를 깨달았고 이에 위산 스님을 이었다(嗣). 함통 7년(866) 시멸(示滅)했고 시(諡)가 무상대사(無上大師)다.
●湖州; 절강성 북쪽의 태호의 남쪽에 위치함. 이충사ㆍ대운사ㆍ인왕원ㆍ법화사 등이 있음.
●淨名; 정명경(淨名經)이니 유마경의 다른 이름. 유마경은 3역(譯)이 있음. 1. 오(吳) 지겸(支謙)이 번역했으니 경제(經題)가 유마힐경(維摩詰經)이 되며 2권. 2. 진(秦) 라집(羅什)이 번역했으니 경제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 되며 3권. 3. 당(唐) 현장(玄奘)이 번역했으니 경제가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이 되며 6권. 3역 중 유행이 왕성한 것은 라집이 번역한 유마경이며 모두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음.
●思益經; 사익범천소문경의 약명. 4권. 진(秦) 라집(羅什)이 번역했음. 사익이란 것은 범천의 이름임. 대승의 실의(實義)를 설하여 소승의 편소(偏小)를 깨뜨렸음. 대정장 제15책에 수록되었음.
●決擇; 의혹을 거제(祛除; 제거)하고 도법을 구명(究明)함.
歸宗常禪師法嗣
福州芙蓉山靈訓禪師
初參歸宗問 如何是佛 宗曰 我向汝道 汝還信否 曰 和尙誠言 安敢不信 宗曰 卽汝便是 師曰 如何保任 宗曰 一翳在眼 空華亂墜〈法眼云 若無後語 有甚麽歸宗也〉 師辭 宗問 甚麽處去 師曰 歸嶺中去 宗曰 子在此多年 裝束了却來 爲子說一上佛法 師結束了上去 宗曰 近前來 師乃近前 宗曰 時寒途中善爲 師聆此言 頓忘前解 歸寂 諡弘照大師
●嶺中; 嶺南 嶺表 廣東廣西兩廣之地
●裝束; 整理行装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영훈선사(靈訓禪師)
귀종(歸宗)을 초참(初參)하여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종왈(宗曰) 내가 너를 향해 말하면 네가 도리어 믿겠느냐. 가로되 화상의 성언(誠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종왈(宗曰) 곧 네가 바로 이것이다. 사왈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종왈(宗曰) 1예(翳)가 눈에 있으면 공화(空華)가 어지럽게 떨어진다〈法眼이 이르되 만약 後語가 없었따면 무슨 귀종이 있겠는가〉. 스님이 고별하자 귀종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는가. 사왈 영중(嶺中)으로 돌아갑니다. 종왈(宗曰) 자네가 여기에 있은 지 여러 해니 장속(裝束)하고 나서 돌아온다면(却來) 자네를 위해 1상(一上; 一番. 上은 조사)의 불법을 설하겠다. 스님이 결속(結束)하고 나서 올라가자 종왈(宗曰) 앞으로 다가오너라. 스님이 이에 앞으로 다가갔다. 종왈 때가 추우니 도중(途中)에서 잘 하게나(善爲). 스님이 이 말씀을 듣자 문득 전해(前解)를 잊었다. 귀적(歸寂)하자 시(諡)가 홍조대사(弘照大師)다.
●嶺中; 영남, 영표(嶺表)니 광동ㆍ광서 양광(兩廣)의 지역.
●裝束; 행장(行装)을 정리(整理)함.
漢南高亭和尙
有僧自夾山來禮拜 師便打 僧曰 特來禮拜 何得打某甲 僧再禮拜 師又打趂 僧回擧似夾山 山曰 汝會也無 曰 不會 山曰 賴汝不會 若會卽夾山口瘂
한남(漢南) 고정화상(高亭和尙)
어떤 중이 협산(夾山)으로부터 와서 예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승왈(僧曰) 특별히 와서 예배하는데 어찌하여 모갑을 때림을 얻습니까. 중이 다시 예배하자 스님이 또 때리고 쫓아내었다. 중이 돌아가 협산(夾山)에게 들어 보이자 산왈(山曰) 네가 아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산왈(山曰) 다행히(賴) 네가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더라면 곧 협산의 입이 벙어리(瘂)였을 것이다.
新羅大茅和尙
上堂 欲識諸佛師 向無明心內識取 欲識常住不凋性 向萬物遷變處識取 僧問 如何是大茅境 師曰 不露鋒 曰 爲甚麽不露鋒 師曰 無當者
신라(新羅) 대모화상(大茅和尙)
상당(上堂) 제불의 스승을 알고자 한다면 무명심(無明心) 안을 향해 식취(識取)하고 상주(常住)하여 시들지(彫) 않는 자성(自性)을 알고자 한다면 만물이 천변(遷變; 변천)하는 곳을 향해 식취(識取)하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대모경(大茅境)입니까. 사왈 봉(鋒; 鋒鋩)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봉(鋒)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사왈 당할 자가 없다.
五臺山智通禪師〈自稱大禪佛〉
初在歸宗會下 忽一夜連呌曰 我大悟也 衆駭之 明日上堂衆集 宗曰 昨夜大悟底僧出來 師出曰 某甲 宗曰 汝見甚麽道理 便言大悟 試說看 師曰 師姑元是女人作 宗異之 師便辭去 宗門送 與提笠子 師接得笠子 戴頭上便行 更不回顧 後居臺山法華寺 臨終有偈曰 擧手攀南斗 回身倚北辰 出頭天外看 誰是我般人
●師姑; 指年高德重之尼師 於宋元明淸間 師姑乃爲一般民間對尼師之泛稱
●南斗; 南斗六星 二十八宿之一 共有六顆星 形狀像斗 故稱
●北辰; 涅槃玄義發源機要三 北辰者 荊州星占曰 北辰一名天關 一名北極 北極者 紫宮天座也 論語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拱之 ▲四分律刪補隨機羯磨疏濟緣記二之一 北辰者 爾雅釋天云 北極謂之北辰 郭璞曰 北極 天之中 以正四時 然則極 中也 辰 時也 以其居天之中 故曰北極 以正四時 故曰北辰
오대산(五臺山) 지통선사(智通禪師)〈自稱이 大禪佛〉
처음 귀종회하(歸宗會下)에 있었다. 홀연히 일야(一夜; 某夜)에 연거푸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대오(大悟)했다. 대중이 놀랐다(駭之). 다음날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귀종(歸宗)이 가로되 어젯밤 대오한 중은 나오너라. 스님이 나와 가로되 모갑(某甲)입니다. 귀종이 가로되 네가 무슨(甚麽) 도리를 보았기에 바로 대오했다고 말했는가. 시험 삼아 설해 보아라. 사왈 사고(師姑)는 원래 이 여인이 짓습니다. 귀종이 이를 이상(異常)하게 여겼다. 스님이 바로 고별하고 떠나자 귀종이 문송(門送)하며 삿갓(笠子)을 집어 주었다. 스님이 삿갓을 접득(接得)하자 두상에 이고 바로 갔는데 다시 돌아보지(迴顧) 않았다. 후에 오대산 법화사(法華寺)에 거주했고 임종에 게가 있어 가로되 손을 들어 남두(南斗)를 잡고(攀)/ 몸을 돌려 북신(北辰)에 기댔다/ 출두하여 하늘 밖에서 보아라/ 누가 이 나와 같은(般) 사람인가.
●師姑; 나이가 높고 덕이 무거운 니사(尼師)를 가리킴. 송ㆍ원ㆍ명ㆍ청 사이에선 사고는 곧 일반 민간에서 니사(尼師)에 대한 범칭(泛稱)이 되었음.
●南斗; 남두 6성(星)이니 28수(宿)의 하나. 공히 6알의 별이 있으며 형상이 두(斗; 말 두니 자루가 있음)를 형상하므로 고로 일컬음.
●北辰; 열반현의발원기요3. 북신(北辰)이란 것은 형주성점(荊州星占)에 가로되 북신(北辰)은 일명이 천관(天關)이며 일명이 북극(北極)이다. 북극이란 것은 자궁천좌(紫宮天座)다. 논어 덕으로 정치를 함이란 비유컨대 북신이 그 자리에 거처하매 뭇 별이 그에 공수(拱手)함과 같다.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제연기2지1. 북신(北辰)이란 것은 이아 석천(釋天)에 이르되 북극(北極)을 일컬어 북신이라 한다. 곽박이 가로되 북극은 하늘의 중심이며 사시(四時)를 바르게 한다. 그러한 즉 극(極)은 중(中)이며 신(辰)은 시(時)니 그것이 하늘의 중심에 거처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북극이며 사시를 바르게 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북신임.
大梅常禪師法嗣
新羅國迦智禪師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待汝裏頭來 卽與汝道 問 如何是大梅的旨 師曰 酪本一時拋
신라국(新羅國) 가지선사(迦智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네가 이두(裏頭; 裏邊)에 옴을 기다렸다가 곧 너에게 말해 주겠다. 묻되 무엇이 이 대매(大梅)의 적지(的旨; 的實한 意旨)입니까. 사왈 낙본(酪本)을 일시에 포기(抛棄)하라.
杭州天龍和尙
上堂 大衆莫待老僧上來便上來 下去便下去 各有華藏性海 具足功德 無礙光明 各各參取 珍重 僧問 如何得出三界去 師曰 汝卽今在甚麽處
●華藏性海; 指眞如法性 華藏海 華嚴經所說之華藏莊嚴世界海 又作蓮華藏莊嚴世界海 華藏世界海 華藏世界 華藏界等 禪錄用例常指眞如法界 亦指禪法道場
항주(杭州) 천룡화상(天龍和尙)
상당(上堂) 대중이여, 노승이 올라옴을 기다렸다가 바로 올라오고 내려가면 바로 내려가지 말아라. 각자 화장성해(華藏性海)가 있어 공덕을 구족한 무애(無礙)의 광명이니 각각 참취(參取)하라. 진중(珍重). 승문(僧問) 어찌해야 3계(界)를 벗어남을 얻겠습니까. 사왈 네가 즉금 어느 곳에 있느냐.
●華藏性海; 진여법성(眞如法性)을 가리킴. 화장해(華藏海)는 화엄경에서 설하는 바의 화장장엄세계해니 또 연화장장엄세계해ㆍ화장세계해ㆍ화장세계ㆍ화장계 등으로 지음. 선록의 용례는 늘 진여의 법계를 가리키며 또 선법의 도량을 가리킴.
佛光滿禪師法嗣
杭州刺史白居易
字樂天 久參佛光得心法 兼稟大乘金剛寶戒 元和中造于京兆興善法堂 致四問〈語見興善章〉 十五年 牧杭州 訪鳥窠和尙 有問答語句〈見鳥窠章〉 甞致書于濟法師 以佛無上大慧演出敎理 安有狥機高下 應病不同 與平等一味之說相反 援引維摩及金剛三昧等六經 闢二義而難之 又以五蘊十二緣說名色 前後不類 立理而徵之 竝鉤深索隱 通幽洞微 然未覩法師醻對 後來亦鮮有代答者 復受東都凝禪師八漸之目 各廣一言而爲一偈 釋其旨趣 自淺之深 猶貫珠焉 凡守任處多訪祖道 學無常師 後爲賓客 分司東都 罄己俸修龍門香山寺 寺成自撰記 凡爲文動關敎化 無不贊美佛乘 見于本集 其歷官次第歸全代祀 卽史傳存焉
●金剛寶戒; 梵網經所說之大乘戒也
●金剛三昧; 金剛三昧經 二卷 失譯人名 佛於靈山入金剛三昧 說一乘眞實之法 收於大正藏第九冊
●十二緣; 十二因緣 新作十二緣起 舊作十二因緣 又單名因緣觀 支佛觀 是爲辟支佛之觀門 說衆生涉三世而輪迴六道之次第緣起也 一無明 二行 三識 四名色 五六處 六處卽六根 六觸 七受 八愛 九取 十有 十一生 十二老死
●鉤深索隱; 謂探求內在的深奥隱密之意
●通幽洞微; 通曉幽深意思 洞察微細道理
●賓客; 一客人 二官名 太子賓客的簡稱 唐代始置 爲太子東宮屬官 掌侍從規諫等 宋元明因之 多以他官兼任 淸不立太子 不設 新唐書百官志四上 太子賓客四人 正三品 掌侍從規諫 贊相禮儀 宴會則上齒 [百度百科] 此指二
항주자사(杭州刺史) 백거이(白居易; 772-846)
자는 낙천(樂天)이며 불광(佛光)을 오래 참(參)해 심법(心法)을 얻었고 겸하여 대승금강보계(大乘金剛寶戒)를 품수(稟受)했다. 원화(元和; 806-820) 중 경조(京兆) 흥선법당(興善法堂)으로 나아가(造) 4문(問)을 이루었다(致)〈語는 興善(興善寺惟寬)章을 보라〉. 15년(820) 항주(杭州)를 목(牧; 다스리다)하며 조과화상(鳥窠和尙)을 심방(尋訪)했고 문답한 어구(語句)가 있다〈鳥窠章을 보라〉. 일찍이 제법사(濟法師)에게 치서(致書; 寄信)하여 불타가 위없는 대혜(大慧)로써 교리를 연출(演出)하였거늘 어찌하여(安) 근기(根機)의 고하를 따라(徇) 응병(應病)함이 부동(不同)하여 평등일미(平等一味)의 설과 상반됨이 있는가 하였다. 유마(維摩; 유마경) 및 금강삼매(金剛三昧) 등 6경(經)을 원인(援引)하여 2의(義)를 열어(闢) 그것을 힐난했다. 또 5온(蘊)과 십이연(十二緣)으로써 명색(名色)을 설했는데 전후가 유사(類似)하지 않아 이치를 세워 그것을 징험(徵驗; 증명)했고. 아울러 구심색은(鉤深索隱)하고 통유통미(通幽洞微)했다. 그러나 법사의 수대(醻對)를 보지 못했고 후래에도 또한 대답(代答)하는 자가 드물게(鮮) 있었다. 다시 동도(東都) 응선사(凝禪師)의 팔점지목(八漸之目)을 받아 1언(言)을 각기 넓혀(廣) 1게(偈)를 지어(爲) 그 지취를 해석했는데 천(淺)으로부터 심(深)으로 가며(之) 관주(貫珠)와 같았다(猶). 무릇 수임(守任. 職任을 遵守)하는 곳에서 조도(祖道)를 많이 심방(尋訪)했고 학문에 상사(常師; 固定的인 스승)가 없었다. 후에 빈객(賓客)이 되어 동도(東都)를 분사(分司)했는데 자기의 녹봉(祿俸)을 다하여(罄) 용문(龍門) 향산사(香山寺)를 수축(修築)했고 사원이 이루어지자 스스로 찬기(撰記)했다. 무릇 문장을 지으면(爲) 동관(動關)하며 교화했고 불승(佛乘)을 찬미(贊美)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본집(本集)을 보라. 그 역관(歷官)의 차제(次第)ㆍ귀전(歸全)ㆍ대사(代祀)는 곧 사전(史傳)에 존재한다.
●金剛寶戒; 범망경에서 설한 바 대승계임.
●金剛三昧; 금강삼매경이니 2권. 번역한 사람의 이름을 잃었음. 불타가 영산에서 금강삼매에 들어가 1승(乘)의 진실한 법을 연설했음. 대정장 제9책에 수록되었음.
●十二緣; 십이인연(十二因緣)이니 신역으론 12연기(緣起)로 짓고 구역으론 12인연으로 지음. 또 단명(單名)이 인연관(因緣觀)ㆍ지불관(支佛觀)이니 이는 벽지불(辟支佛)의 관문(觀門)이 됨. 중생이 3세(世)에 건너 6도(道)에 윤회하는 차제의 연기(緣起)를 설함. 1은 무명(無明)이며 2는 행(行)이며 3은 식(識)이며 4는 명색(名色)이며 5는 6처(處)니 6처는 곧 6근이며 6은 촉(觸)이며 7은 수(受)며 8은 애(愛)며 9는 취(取)며 10은 유(有)며 11은 생(生)이며 12는 노사(老死).
●鉤深索隱; 이르자면 내재한 심오하고 은밀한 뜻을 탐구함.
●通幽洞微; 유심(幽深)한 의사를 통효(通曉)하고 미세한 도리를 통찰(洞察)함.
●賓客; 1. 객인(客人). 2. 관명(官名)이니 태자빈객(太子賓客)의 간칭(簡稱). 당대()唐代 처음 설치했고 태자 동궁의 속관(屬官)이며 시종(侍從)과 규간(規諫) 등을 관장했음. 송ㆍ원ㆍ명도 이를 따랐고 다분히 다른 관직을 겸임했음. 청은 태자를 세우지 않았으므로 설치하지 않았음. 신당서 백관지4상. 태자빈객은 4인이며 정3품이다. 시종(侍從)과 규간(規諫), 예의의 찬상(贊相)을 관장했고 연회(宴會)엔 곧 상치(上齒; 높은 자리)였다 [백도백과].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五洩默禪師法嗣
福州龜山正元禪師
宣州蔡氏子 甞述偈示徒 一曰 滄溟幾度變桑田 唯有虛空獨湛然 已到岸人休戀筏 未曾度者要須船 二曰 尋師認得本心源 兩岸俱玄一不全 是佛不須更覔佛 祇因如此便忘緣 咸通十年終于本山 諡性空大師
●滄溟; 祖庭事苑二 滄溟 東海之別名也 後言四溟 謂四海也
복주(福州) 귀산(龜山) 정원선사(正元禪師)
선주(宣州) 채씨(蔡氏)의 아들이다. 일찍이 게를 지어(述) 도중(徒衆)에게 보였으니 일왈(一曰) 창명(滄溟)이 몇 차례(幾度)나 상전(桑田)으로 변했으나/ 오직 허공이 있어 홀로 담연(湛然)하다/ 이미 언덕에 이른 사람은 벌(筏; 배. 떼)을 연모함을 그치고(休)/ 일찍이 건너지(度) 못한 자는 배를 요수(要須; 需要)한다. 이왈(二曰) 심사(尋師)하여 본래의 심원(心源)을 인득(認得)하더라도/ 양안(兩岸)이 모두(俱) 가물거려(玄) 하나도 온전하지 않다/ 이 부처가 다시 부처를 찾음이 쓰이지(須) 않나니/ 다만 여차(如此)함으로 인해 바로 망연(忘緣)한다. 함통(咸通) 10년(869) 본산에서 마쳤고 시(諡)가 성공대사(性空大師)다.
●滄溟; 조정사원2. 창명(滄溟) 동해의 별명임. 후에 사명(四溟)이라고 말함. 이르자면 사해(四海)임.
蘇溪和尙
僧問 如何是定光佛 師曰 鴨呑螺師 曰 還許學人轉身也無 師曰 眼睛突出
●定光; 音譯提和竭羅 提洹竭 出現於過去世 曾爲釋尊授記之佛 又作錠光 然燈 普光 燈光 釋迦佛嘗稱爲儒童 此佛出世之時 買五莖之蓮奉佛 因而得未來成佛之記別 [增一阿含經三十八 同四十 智度論九 玄應音義一]
소계화상(蘇溪和尙)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정광불(定光佛)입니까. 사왈 오리가 나사(螺師; 바르게는 螺螄로 지어야 함. 우렁이)를 삼켰다. 가로되 도리어 학인의 전신(轉身)을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눈동자가 돌출(突出)했다.
●定光; 음역으론 제화갈라(提和竭羅)ㆍ제원갈(提洹竭)이니 과거세에 출현했고 일찍이 석존에게 수기(授記)한 불타임. 또 정광(錠光)ㆍ연등(然燈; 梵 Dipamkara)ㆍ보광(普光)ㆍ등광(燈光)으로 지음. 석가불을 일찍이 유동(儒童)이라 호칭했는데 이 부처가 출세한 때 다섯 줄기의 연꽃을 사서 봉불했고 이로 인해 미래에 성불하는 기별(記別)을 얻었음 [증일아함경38, 동40. 지도론9. 현응음의1].
盤山積禪師法嗣
鎭州普化和尙者
不知何許人也 師事盤山 密受眞訣 而徉狂出言無度 暨盤山順世 乃於北地行化 或城市 或塚間 振一鐸曰 明頭來 明頭打 暗頭來 暗頭打 四方八面來 旋風打 虛空來 連架打 一日臨濟令僧捉住曰 總不恁麽來時如何 師拓開曰 來日大悲院裏有齋 僧回擧似濟 濟曰 我從來疑着這漢 凡見人無高下 皆振鐸一聲 時號普化和尙 或將鐸就人耳邊振之 或附其背 有回顧者 卽展手曰 乞我一錢 非時遇食亦喫 甞暮入臨濟院喫生菜 濟曰 這漢大似一頭驢 師便作驢鳴 濟謂直歲曰 細抹草料著 師曰 少室人不識 金陵又再來 臨濟一隻眼 到處爲人開
●何許; 指什麽 哪裏
●連架; 祖庭事苑二 連架打 架當作枷(架與枷通) 音加 拂也 說文 擊禾連枷 如僧問普化 明暗俱來時如何 曰 連枷打 拂 音弗 方言曰 連枷 打穀者也
●拓開; 用手推開
●非時; 不按規定的時間 在規定時間以外
●臨濟院; 臨濟寺 位于河北省正定縣 原名臨濟院 創建于東魏興和二年(540) 唐大中(847-859)年間 義玄住此寺 大揚禪風 創臨濟宗 四方學僧雲集 寺原在正定城外臨濟村 咸通八年(867) 義玄入寂 弟子于正定城內建塔藏其衣鉢 稱臨濟禪師塔 寺亦遷入城內 金元之世 多次重修 寺後毁 現已修復一新
●直歲; 直 當直之義 禪宗寺院中 稱一年之間 擔任幹事之職務者爲直歲 乃禪宗六知事之一 本爲負責接待客僧之職稱 但在禪林中則爲掌管一切雜事者之稱 爲一重要職務 原値一年之務 故稱直歲 後意變爲一月半月或一日任其職 乃至不定其期限 [百丈淸規四東序知事條]
진주(鎭州) 보화화상(普化和尙)이란 자는
어떤(何許)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반산(盤山)을 사사(師事)하여 진결(眞訣)을 밀수(密受)했다. 미친 척했고(佯狂) 출언(出言)에 정도(程度)가 없었다. 반산이 순세(順世)함에 이르러 이에 북지(北地)에서 행화(行化)했다. 혹은 성시(城市)며 혹은 총간(塚間)이었는데 1탁(鐸; 방울)을 떨치며 가로되 명두(明頭)가 오면 명두로 때리고 암두(暗頭)가 오면 암두로 때리고 사방팔면이 오면 선풍(旋風)으로 때리고 허공이 오면 도리깨(連架)로 때린다 어느 날 임제가 중을 시켜 착주(捉住)하고 가로되 모두 이렇게 오지 않을 때 어떠한가 하게 했다. 스님이 탁개(拓開; 밀어젖히다)하며 가로되 내일 대비원(大悲院) 속에 재(齋)가 있다. 중이 돌아가 임제에게 들어 보이자 임제가 가로되 내가 종래(從來)로 저한(這漢)을 의심했었다(疑着). 무릇 사람을 보면 고하가 없이 모두 1성(聲) 진탁(振鐸)했으니 당시에 호칭하기를 보화화상(普化和尙)이라 했다. 혹은 방울을 가지고 사람의 귓가로 나아가 떨치고 혹은 그의 등에 붙였다(附). 돌아보는 자가 있으면 곧 손을 펴고 가로되 나에게 1전(錢)을 급여(給與; 乞)하라. 비시(非時)에 음식을 만나도 또한 먹었다. 일찍이 저녁에 임제원(臨濟院)에 들어가 생채(生菜)를 먹었다. 임제가 가로되 저한(這漢; 이 자)이 한 마리 나귀와 대사(大似; 매우 흡사)하구나. 스님이 바로 나귀 울음을 지었다. 임제가 직세(直歲)에게 일러 가로되 초료(草料)를 잘게 가루로 만들어라. 사왈(師曰) 소실(少室)을 사람이 알지 못하고/ 금릉(金陵)에 또 재래(再來)하였다/ 임제의 일척안(一隻眼)이/ 도처(到處)에서 위인(爲人)하여 열렸다.
●何許; 십마(什麽; 무엇. 어떤). 나리(哪裏; 어느 속)를 가리킴.
●連架; 조정사원2. 연가타(連架打) 가(架)는 마땅히 가(枷; 도리깨 가. 횟대 가)로 지어야 하나니(架는 枷와 통함) 음이 가며 불(拂; 떨치다)임. 설문 벼를 치면서 연가(連枷; 도리깨니 곧 도리깨질)하다. 예컨대(如) 중이 보화(普化)에게 묻되 명암이 함께 올 때는 어떻습니까. 가로되 연가(連枷)로 때린다. 불(拂)은 음이 불임. 방언(方言; 12篇 漢代 揚雄 지음)에 가로되 연가(連枷)는 곡식을 때리는 것이다.
●拓開; 손을 사용하여 밀어 엶.
●非時; 규정의 시간을 살피지 않고 규정의 시간 이외에 있음임.
●臨濟院; 임제사(臨濟寺)니 하북성 정정현(正定縣)에 위치하며 원래 이름은 임제원(臨濟院)이었음. 동위(東魏) 흥화 2년(540)에 창건했고 당 대중(847- 859)년 간 의현이 이 절에 거주하며 선풍을 크게 날리며 임제종을 창설했으며 사방의 학승이 운집했음. 절이 원래 정정성(正定城) 밖의 임제촌(臨濟村)에 있었는데 함통 8년(867)에 의현이 입적(入寂)하자 제자들이 정정성 안에 탑을 세우고 그의 의발(衣鉢)을 저장하고 임제선사탑이라 일컬었음. 절도 또한 옮겨 성내에 들였음. 금원(金元)의 시대에 여러 차례 중수했지만 절이 뒤에 훼손(毁損)되었고 현재는 이미 수복(修復)하여 일신(一新)했음.
●直歲; 직(直)은 당직(當直)의 뜻임. 선종 사원 중 1년의 기간에 간사(幹事)의 직무를 담임(擔任)하는 자를 일컬어 직세라 함. 곧 선종 6지사(知事)의 하나임. 본래 객승을 부책(負責)하여 접대(接待)하는 직칭(職稱)이 됨. 다만 선림 중에 있어선 곧 일체의 잡사(雜事)를 장관(掌管)하는 자의 명칭이 되므로 하나의 중요한 직무가 됨. 원래(原來)는 1년의 직무에 당(當; 値)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직세(直歲)지만 후에 뜻이 변해 한 달ㆍ반 달ㆍ하루에 그 직무를 담임하며 내지 그 기한을 정하지 않음 [백장청규4 동서지사조].
師見馬步使出喝道 師亦喝道作相撲勢 馬步使令人打五棒 師曰 似卽似 是卽不是 師甞於闤闠間搖鐸唱曰 覔箇去處不可得 時道吾遇之 把住問曰 汝擬去甚麽處 師曰 汝從甚麽處來 吾無語 師掣手便去 臨濟一日與河陽木塔長老同在僧堂內坐 正說師每日在街市掣風掣顚 知他是凡是聖 師忽入來 濟便問 汝是凡是聖 師曰 汝且道我是凡是聖 濟便喝 師以手指曰 河陽新婦子 木塔老婆禪 臨濟小廝兒 却具一隻眼 濟曰 這賊 師曰 賊賊 便出去
●馬步使; 古代侍衛馬步軍之指揮使
●喝道; 官員出行 手下人吆喝開道
●掣風掣顚; 瘋瘋顚顚 形容言語行動不合狀態 掣 拽也 拉也 拔也 風 顚狂病 又狂疾 後作瘋
스님이 마보사(馬步使)가 외출하여 갈도(喝道)함을 보고 스님도 또한 갈도(喝道)하고 상박세(相撲勢)를 지었다. 마보사가 사람을 시켜 5방(棒)을 때렸다. 사왈(師曰) 비슷하기야 곧 비슷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못하다. 스님이 일찍이 환궤(闤闠; 市街. 거리) 사이에서 방울을 흔들며 창(唱)해 가로되 저(箇) 거처(去處)를 찾아도 불가득이다. 때에 도오(道吾)가 이를 만나 파주(把住)하고 문왈(問曰) 네가 어느 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사왈 너는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도오가 말이 없었다. 스님이 손을 끌어당기고(掣) 바로 갔다. 임제가 어느 날 하양(河陽)ㆍ목탑장로(木塔長老)와 함께 승당(僧堂) 안에 있으면서 앉아 바로 설하기를 스님이 매일 가시(街市)에 있으면서 체풍체전(掣風掣顚)하니 그가 이 범부인지 이 성인인지 알겠는가. 스님이 홀연히 들어오자 임제가 바로 묻되 너는 이 범부인가 이 성인인가. 사왈 네가 그래 말하라 내가 이 범부인가 이 성인인가. 임제가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손으로써 가리키며 가로되 하양(河陽) 신부자(新婦子; 子는 조사)와 목탑(木塔) 노파선(老婆禪)과 임제(臨濟) 소시아(小廝兒)가 도리어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 임제가 가로되 이 도적아. 사왈 도적아, 도적아. 바로 나갔다.
●馬步使; 고대 시위(侍衛)하는 마보군(馬步軍)의 지휘사(指揮使).
●喝道; 관원이 출행하매 수하인(手下人)이 요할(吆喝; 크게 부름)하며 길을 엶임.
●掣風掣顚; 풍풍전전(瘋瘋顚顚; 미쳐서 지랄함)이니 언어와 행동이 적합하지 않는 상태를 형용함. 체(掣)는 끎임(拽). 끎임(拉). 뽑음임(拔). 풍(風)은 전광병(顚狂病; 미쳐 지랄하는 병)임. 또 광질(狂疾)임. 후에 풍(瘋)으로 지었음.
唐咸通初 將示滅 乃入市謂人曰 乞我一箇直裰 人或與披襖 或與布裘 皆不受 振鐸而去 臨濟令人送與一棺 師笑曰 臨濟廝兒饒舌 便受之 乃辭衆曰 普化明日去東門死也 郡人相率送出城 師厲聲曰 今日葬不合靑烏 乃曰 明日南門遷化 人亦隨之 又曰 明日出西門方吉 人出漸稀 出已還返 人意稍怠 第四日 自擎棺出北門外 振鐸入棺而逝 郡人奔走出城 揭棺視之 已不見 唯聞空中鐸聲漸遠 莫測其由
●直裰; 偏衫與裙子之裰合者 廣韻 裰 補綴破衣也 集韻 裰 補也
●披襖; 穿在外面的上衣
●布裘; 布制的綿衣
●饒舌; 多言之貌
●靑烏; 風水也稱靑烏 靑囊
당 함통(咸通; 860-873) 초 장차 시멸(示滅)하려고 이에 시가(市街)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일러 가로되 나에게 1개의 직철(直裰)을 급여(給與; 乞)하시오. 사람들이 혹 피오(披襖)를 주기도 하고 혹 포구(布裘)를 주기도 했으나 다 받지 않았고 방울을 떨치며 갔다. 임제가 사람을 시켜 1관(棺)을 보내어 주자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임제 시아(廝兒)가 요설(饒舌)이다. 바로 그것을 받았고 이에 중인(衆人)에게 고별해 가로되 보화가 명일(明日) 동문(東門)으로 가서 죽으리라. 군인(郡人)이 상솔(相率)하며 송별하려고 성을 나섰다. 스님이 높은(厲) 소리로 가로되 금일 장사(葬事)가 청오(靑烏)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에 가로되 명일 남문에서 천화(遷化)하리라. 사람들이 또한 그를 따랐다. 또 가로되 명일 서문으로 나가야 바야흐로 길합니다. 사람들의 출송(出送)이 점차 드물었고 나갔다가 도리어 돌아갔다(還返). 사람들의 뜻이 조금(稍) 태만(怠慢)하자 넷째 날에 스스로 관(棺)을 받들고(擎) 북문 밖으로 나가 방울을 떨치며 관에 들어가 서거했다. 군인(郡人)이 분주(奔走)히 출성(出城)하여 관을 높이 들어 그것을 보매 이미 보이지 않았고 오직 공중에 방울 소리만 점차 멀어짐을 들었는데 그 사유를 헤아리지 못했다.
●直裰; 편삼(偏衫)과 군자(裙子)를 기워서 합한 것임. 광운 철(裰) 해진 옷을 보철(補綴)함이다. 집운 철(裰) 보(補)다.
●披襖; 외면에 입혀 두는 상의(上衣).
●布裘; 베로 만든 면의(綿衣).
●饒舌; 말이 많은 모양.
●靑烏; 풍수를 또한 일컬어 청오(靑烏)ㆍ청낭(靑囊)이라 함.
麻谷徹禪師法嗣
壽州良遂禪師
參麻谷 谷見來 便將鉏頭去鉏草 師到鉏草處 谷殊不顧 便歸方丈 閉却門 師次日復去 谷又閉門 師乃敲門 谷問 阿誰 師曰 良遂 纔稱名 忽然契悟曰 和尙莫謾良遂 良遂若不來禮拜和尙 洎被經論賺過一生 谷便開門相見 及歸講肆 謂衆曰 諸人知處 良遂總知 良遂知處 諸人不知
수주(壽州) 양수선사(良遂禪師)
마곡(麻谷)을 참(參)하자 마곡이 오는 것을 보고 바로 호미(鉏頭)를 가지고 가서 풀을 매었다(鉏). 스님이 풀을 매는 곳에 이르렀으나 마곡이 달리(殊) 돌아보지 않고 바로 방장으로 돌아가 문을 닫아버렸다. 스님이 다음날 다시 갔는데 마곡이 또 문을 닫았다. 스님이 이에 문을 두드리자 마곡이 묻되 누구인가(阿誰). 사왈 양수(良遂)입니다, 겨우 칭명(稱名)하다가 홀연히 계오(契悟)하고 가로되 화상은 양수를 속이지 마십시오. 양수가 만약 와서 화상에게 예배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경론에 일생을 속아 지냄을 입을 뻔했습니다. 마곡이 곧 문을 열고 상견했다. 그리고 강사(講肆)로 돌아가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제인이 아는 곳은 양수가 모두 알지만 양수가 아는 곳은 제인이 알지 못한다.
東寺會禪師法嗣
吉州薯山慧超禪師
洞山來禮拜次 師曰 汝已住一方 又來這裏作麽 曰 良价無柰疑何 特來見和尙 師召良价 价應諾 師曰 是甚麽 价無語 師曰 好箇佛 祇是無光𦦨
길주(吉州) 서산(薯山) 혜초선사(慧超禪師)
동산(洞山)이 와서 예배하던 차에 사왈(師曰) 너는 이미 일방(一方)에 주(住)하거늘 또 이 속에 와서 무엇하리오(作麽). 가로되 양개(良价)가 의심을 어찌하지 못해 특별히 와서 화상을 뵙습니다. 스님이 부르되 양개야. 양개가 응낙했다. 사왈 이 뭣고(是甚麽). 양개가 말이 없었다. 사왈 호개(好箇)의 부처가 다만 이, 광염(光焰)이 없구나.
西堂藏禪師法嗣
䖍州處微禪師
僧問 三乘十二分敎體理得妙 與祖意是同是別 師曰 須向六句外鑒 不得隨聲色轉 曰 如何是六句 師曰 語底默底 不語不默 總是總不是 汝合作麽生 僧無對 問仰山 汝名甚麽 山曰 慧寂 師曰 那箇是慧 那箇是寂 山曰 祇在目前 師曰 猶有前後在 山曰 前後且置 和尙見箇甚麽 師曰 喫茶去
건주(䖍州; 䖍은 虔의 異體字) 처미선사(處微禪師)
승문(僧問)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는 이치를 체지(體知)하고 득묘(得妙)했습니다. 조의(祖意)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모름지기 6구(句) 밖을 향해 감별(鑒別)하고 성색(聲色)을 따라 구름(轉)을 얻지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6구입니까. 사왈(師曰) 어하는 것(語底)ㆍ묵하는 것(默底)ㆍ불어(不語)ㆍ불묵(不默)ㆍ총시(總是)ㆍ총불시(總不是)니 네가 합당히 무엇이라 하겠는가(作麽生). 중이 대답이 없었다. 앙산(仰山)에게 묻되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산왈(山曰) 혜적(慧寂)입니다. 사왈 나개(那箇)가 이 혜(慧)며 나개가 이 적(寂)인가. 산왈(山曰) 다만 목전에 있습니다. 사왈 오히려 전후(前後)가 있다. 산왈(山曰) 전후는 그래 두고 화상은 저(箇) 무엇(甚麽)을 봅니까. 사왈 차 먹고 가게(喫茶去).
章敬腪禪師法嗣
京兆大薦福寺弘辯禪師
唐宣宗問 禪宗何有南北之名 對曰 禪門本無南北 昔如來以正法眼付大迦葉 展轉相傳 至二十八祖菩提達磨 來遊此方爲初祖 暨第五祖弘忍大師在蘄州東山開法 時有二弟子 一名慧能 受衣法 居嶺南爲六祖 一名神秀 在北揚化 其後神秀門人普寂者 立秀 爲第六祖 而自稱七祖 其所得法雖一 而開導發悟有頓漸之異 故曰南頓北漸 非禪宗本有南北之號也 帝曰 云何名戒 對曰 防非止惡謂之戒 帝曰 云何爲定 對曰 六根涉境 心不隨緣名定 帝曰 云何爲慧 對曰 心境俱空 照鑒無惑名慧 帝曰 何爲方便 對曰 方便者 隱實覆相權巧之門也 被接中下 曲施誘迪謂之方便 設 爲上根 言捨方便 但說無上道者 斯亦方便之譚 乃至祖師玄言 忘功絕謂 亦無出方便之迹 帝曰 何爲佛心 對曰 佛者西天之語 唐言覺 謂人有智慧覺照爲佛心 心者佛之別名 有百千異號 體唯其一 無形狀 非靑黃赤白男女等相 在天非天 在人非人 而現天現人 能男能女 非始非終 無生無滅 故號靈覺之性 如陛下日應萬機 卽是陛下佛心 假使千佛共傳 而不念別有所得也 帝曰 如今有人念佛如何 對曰 如來出世 爲天人師善知識 隨根器而說法 爲上根者開最上乘頓悟至理 中下者未能頓曉 是以佛爲韋提希權開十六觀門 令念佛生於極樂 故經云 是心是佛 是心作佛 心外無佛 佛外無心 帝曰 有人持經念佛持呪求佛如何 對曰 如來種種開讚 皆爲最上一乘 如百川衆流 莫不朝宗于海 如是差別諸數 皆歸薩婆若海 帝曰 祖師旣契會心印 金剛經云無所得法如何 對曰 佛之一化 實無一法與人 但示衆人 各各自性 同一法藏 當時然燈如來但印釋迦本法而無所得 方契然燈本意 故經云 無我無人 無衆生 無壽者 是法平等 修一切善法 不住於相 帝曰 禪師旣會祖意 還禮佛轉經否 對曰 沙門釋子 禮佛轉經 蓋是住持常法 有四報焉 然依佛戒修身 參尋知識 漸修梵行 履踐如來所行之迹 帝曰 何爲頓見 何爲漸修 對曰 頓明自性 與佛同儔 然有無始染習 故假漸修對治 令順性起用 如人喫飯 不一口便飽 師是日辯對七刻 賜紫方袍 號圓智禪師 仍勑修天下祖塔 各令守護
●權巧; 如來之權謀 巧協於時機也
●韋提希; 印度摩竭提國的國王頻婆娑羅的王后 他們的兒子名阿闍世
●十六觀門; 又作十六觀 卽十六種觀法 出自觀無量壽經 念佛行者由憶念彌陀之身與淨土 得以往生西方 總其觀行有十六種 日想觀 水想觀 地想觀 寶樹觀 寶池觀 寶樓觀 華座觀 像觀 眞身觀 觀觀音 勢至觀 普觀 雜想觀 上輩觀 中輩觀 下輩觀
●極樂; 極樂世界 卽指阿彌陀佛之淨土 又稱極樂淨土 極樂國土 西方淨土 安養世界 安樂國 自此世間向西而去 經過十萬億佛土之彼方 卽爲極樂淨土 [無量壽經上 阿彌陀經疏(窺基) 無量壽經義疏(慧遠)]
●朝宗; 禪家轉義契合禪宗旨意 朝 訪也 見也 一臣見君 二下屬見上官 三子媳向父母 宗 諸侯夏天朝見天子之禮 周禮 春見曰朝 夏見曰宗
●薩婆若; <梵> sarvajña 祖庭事苑七 薩婆若 此云一切智
●一化; 指如來一代之敎化而言
●轉經; 讀誦經典 與諷經同 轉 誦經 念呪
●住持; 安住於世而保持法也
●四報; 四恩四報 佛敎講報四重恩 一報父母師長恩 二報衆生恩 三報國家恩 四報三寶恩 [百度]
●染習; 浸染惡氣 熏習於他
●七刻; 刻 量詞 計時單位 一古代以漏壺計時 一晝夜分爲百刻 二今用鐘表計時 十五分鐘爲一刻
●方袍; 比丘之法衣(袈裟)皆爲方形 故稱方袍 又稱方服 [方服圖記]
경조(京兆) 대천복사(大薦福寺) 홍변선사(弘辯禪師)
당 선종(宣宗)이 묻되 선종에 어찌하여(何) 남북(南北)의 이름이 있습니까. 대왈(對曰) 선문(禪門)에 본래 남북이 없었습니다. 옛적에 여래가 정법안(正法眼)을 대가섭에게 부촉하셨고 전전(展轉)히 상전(相傳)하여 28조 보리달마에 이르자 차방(此方)에 내유(來遊)하여 초조(初祖)가 되었습니다. 제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에 이르러(暨) 기주(蘄州) 동산(東山)에 있으면서 개법(開法)했는데 당시에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름이 혜능(慧能)이니 의법(衣法)을 전수(傳受)해 영남(嶺南)에 거주하며 6조가 되었고 하나는 이름이 신수(神秀)니 재북(在北)하며 양화(揚化)했습니다. 그 후 신수의 문인(門人) 보적(普寂)이란 자가 신수를 세워 제6조로 삼았고 자칭이 7조였습니다. 그 얻은 바 법은 비록 하나이지만 개도(開導)하고 발오(發悟)함에 돈점(頓漸)의 다름이 있은지라 고로 가로되 남돈북점(南頓北漸)이거니와 선종에 본래 남북의 호가 있은 게 아닙니다. 제왈(帝曰) 어찌하여(云何) 이름이 계(戒)입니까. 스님이 대왈(對曰) 방비지악(防非止惡)을 일러 계라 합니다. 제왈(帝曰) 무엇을 정(定)이라 합니까. 대왈(對曰) 6근(根)이 경계(境界)에 건너지만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음을 이름해 정(定)입니다. 제왈(帝曰) 무엇을 혜(慧)라 합니까. 대왈(對曰) 심경(心境)이 구공(俱空; 모두 공하다)하여 조람(照覽; 明察)하여 무혹(無惑)을 이름해 혜(慧)입니다. 제왈(帝曰) 무엇을 방편이라 합니까. 대왈(對曰) 방편이란 것은 진실을 숨기고 형상을 덮는(隱實覆相) 권교(權巧)의 문입니다. 중하(中下)를 피접(被接; 受接)하여 유적(誘迪; 가르치고 이끌다)을 곡시(曲施; 위곡히 베풀다)함을 일러 방편이라 합니다. 설령 상근(上根)을 위해 언사(言詞)에 방편을 버리고 단지 무상도(無上道)를 설하는 것, 이것(斯) 또한 방편의 말씀(譚)입니다. 내지 조사의 현언(玄言)에 망공(忘功)하고 절위(絕謂)하더라도 또한 방편의 자취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왈(帝曰) 무엇을 불심(佛心)이라 합니까. 대왈 불(佛)이란 것은 서천(西天)의 말이며 당언(唐言)으론 각(覺)입니다. 이르자면 사람이 지혜가 있어 각조(覺照)함을 불심이라 합니다. 심(心)이란 것은 불(佛)의 별명이니 백천(百千)의 이호(異號)가 있지만 체(體)는 오직 그 하나입니다. 본래 형상(形狀)이 없고 청황적백(靑黃赤白)과 남녀 등의 상(相)이 아닙니다. 재천(在天)해도 천(天)이 아니며 재인(在人)해도 인(人)이 아니면서 천을 나타내고 인을 나타냅니다. 능남능녀(能男能女; 능히 남자며 능히 여자)며 비시비종(非始非終)이며 무생무멸(無生無滅)인지라 고로 호가 영각지성(靈覺之性)입니다. 예컨대(如) 폐하(陛下)가 날마다 만기(萬機)에 응하심이 즉시(卽是) 폐하의 불심입니다. 가사(假使) 천불(千佛)이 공전(共傳)하더라도 달리 소득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왈 여금에 어떤 사람이 염불(念佛)하면 어떻습니까. 대왈 여래가 출세하여 천인사(天人師)며 선지식이 되어 근기(根器) 따라 설법하셨으니 상근자(上根者)를 위해 최상승(最上乘)의 돈오(頓悟)의 지리(至理)를 여셨고 중하자(中下者)는 능히 돈효(頓曉; 頓悟)하지 못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불(佛)이 위제희(韋提希)를 위해 잠시(權) 16관문(十六觀門)을 열어 염불해 극락(極樂)에 출생하게 하셨습니다. 고로 경에 이르되 이 마음이 이 부처며 이 마음이 부처를 짓나니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다. 제왈 어떤 사람이 지경(持經)ㆍ염불(念佛)ㆍ지주(持呪)하여 구불(求佛)하면 어떻습니까. 대왈 여래가 갖가지로 개찬(開讚)함은 모두 최상의 일승(一乘)을 위함입니다. 백천(百川)의 중류(衆流)가 바다를 조종(朝宗)하지 않음이 없음과 같나니 이와 같이 차별의 제수(諸數)가 모두 살바야해(薩婆若海)로 돌아갑니다. 제왈 조사가 이미 심인(心印)에 계회(契會)했지만 금강경에 이르되 얻은 바 법이 없다 함은 어떻습니까(如何). 대왈 부처의 일화(一化)는 실로 1법도 사람에게 줌이 없고 단지 중인(衆人)의 각각의 자성이 동일한 법보장(法寶藏)임을 보였습니다. 당시에 연등여래(然燈如來)가 단지 석가의 본법(本法)에 인(印)을 쳤고 소득이 없어 바야흐로 연등의 본의(本意)에 계합했습니다. 고로 경운(經云) 무아(無我)ㆍ무인(無人)ㆍ무중생(無衆生)ㆍ무수자(無壽者)니 이 법이 평등하여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되 상(相)에 머물지 않는다 했습니다. 제왈 선사(禪師)가 이미 조의(祖意)를 영회(領會)했지만 도리어 예불하고 전경(轉經)합니까. 대왈 사문석자(沙門釋子)가 예불하고 전경함은 대개 이 주지(住持)의 상법(常法)이니 4보(四報)가 있습니다. 그러하여 불계(佛戒)에 의해 수신(修身)하고 지식을 참심(參尋)하여 점차 범행(梵行)을 닦고 여래의 소행지적(所行之迹)을 이천(履踐)합니다. 제왈 무엇을 돈견(頓見)이라 하고 무엇을 점수(漸修)라 합니까. 대왈 자성을 돈명(頓明)하면 부처와 같은 짝(儔)이지만 그러나 무시(無始)의 염습(染習)이 있는지라 고로 점수(漸修)를 빌려 대치(對治)하여 자성에 순하여 용(用)을 일으키게 합니다. 마치 사람이 끽반(喫飯)하매 한입에 바로 배부르지 않음과 같습니다. 이날 홍변이 7각(七刻)을 대화(對話)했다. 자방포(紫方袍)를 주고 호를 원지선사(圓智禪師)라 했고 인하여(仍) 칙령으로 천하의 조탑(祖塔)을 수리(修理)하고 각기 수호하게 했다.
●權巧; 여래의 권모(權謀)는 시기(時機)에 교묘히 알맞음.
●韋提希; 인도 마갈제국(摩竭提國)의 국왕 빈바사라(頻婆娑羅)의 왕후니 그들의 아들 이름이 아사세(阿闍世)임.
●十六觀門; 또 16관(觀)으로 지음. 곧 16종 관법이니 관무량수경으로부터 나옴. 염불행자가 미타의 몸과 정토를 억념함으로 말미암아 서방에 왕생함을 얻는데 그 관행을 총합하면 16종이 있음. 일상관ㆍ수상관ㆍ지상관ㆍ보수관ㆍ보지관ㆍ보루관ㆍ화좌관ㆍ상관ㆍ진신관ㆍ관관음ㆍ세지관ㆍ보관ㆍ잡상관ㆍ상배관ㆍ중배관ㆍ하배관.
●極樂; 극락세계니 곧 아미타불의 정토를 가리킴. 또 명칭이 극락정토ㆍ극락국토ㆍ서방정토ㆍ안양세계ㆍ안락국. 이 세간으로부터 서방으로 향하여 가서 십만억 불토를 경과한 그 지방이 곧 극락정토가 됨 [무량수경상. 아미타경소(규기). 무량수경의소(혜원)].
●朝宗; 선가에서 전의(轉義)하여 선종의 지의(旨意)에 계합(契合)함. 조(朝)는 방(訪)임. 현(見)임. 1. 신(臣)이 군(君)을 뵘. 2. 하속(下屬)이 상관을 뵘. 3. 자식(子媳; 아들과 며느리)이 부모를 향함. 종(宗)은 제후가 하천(夏天; 여름철)에 천자를 조현(朝見)하는 예(禮). 주례 봄에 뵘을 가로되 조(朝)며 여름에 뵘을 가로되 종(宗)이다.
●薩婆若; <범> sarvajña. 조정사원7. 살바야(薩婆若) 여기에선 이르되 일체지(一切智)다.
●一化; 여래 일대(一代)의 교화를 가리켜 말함.
●轉經; 경전을 독송함. 풍경(諷經)과 같음. 전(轉)은 송경(誦經), 염주(念呪; 주문을 외움).
●住持; 세간에 안주하며 법을 보지(保持)함임.
●四報; 사은사보(四恩四報)니 불교에선 사중은(四重恩)에 보답함을 강설함. 1은 부모와 사장(師長)의 은혜에 보답함이며 2는 중생의 은혜에 보답함이며 3은 국가의 은혜에 보답함이며 4는 삼보의 은혜에 보답함임 [백도].
●染習; 악기(惡氣)에 침염(浸染)되고 그에 훈습(熏習)됨.
●七刻; 각(刻)은 양사니 계시단위(計時單位)임. 1. 고대 누호(漏壺)로 계시(計時)했는데 1주야(晝夜)를 나누어 백각(百刻)으로 삼았음. 2. 여금은 종을 써서 계시를 표함. 15분종(十五分鐘)이 1각이 됨.
●方袍; 비구의 법의(가사)가 모두 방형이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방포며 또 명칭이 방복임 [방복도기].
福州龜山智具禪師
揚州柳氏子 初謁章敬 敬問 何所而至 師曰 至無所至 來無所來 敬雖默然 師亦自悟 住後上堂 動容瞬目 無出當人一念淨心 本來是佛 仍說偈曰 心本絕塵何用洗 身中無病豈求醫 欲知是佛非身處 明鑑高懸未照時 後値武宗沙汰 有偈示衆曰 勑命如雷下翠微 風前垂淚脫禪衣 雲中有寺不容住 塵裏無家何處歸 明月分形處處新 白衣寧墜解空人 誰言在俗妨修道 金粟曾爲居士身 忍僊林下坐禪時 曾被歌王割截肢 况我聖朝無此事 祇令休道亦何悲 暨宣宗中興 乃不復披緇 咸通六年終于本山 諡歸寂禪師
●揚州; 今江蘇省揚州 李濟翁資暇錄曰 揚州者 以風俗輕揚故號其州
●動容; 動作容儀
●沙汰; 原意爲淘汰 謂淘汰米內所摻雜之沙 轉指揀別善惡而排除之 佛敎文獻中 此詞常指中國朝廷對于佛敎僧尼的限制和打擊 與禪宗關系較大的一次沙汰(又稱滅佛)發生 在唐武宗會昌(841-846)年間
●翠微; 靑翠隱的山色 借指靑山 又自山頂少分下來處
●白衣; 白衣觀音 又曰大白衣 又曰白處觀音 以此尊常著白衣 在白蓮中 故就其被服名爲白衣 以其住處名爲白處 白者 表淳淨之菩提心也 [大日經疏五]
●金粟; 祖庭事苑二 金粟 如十門辨惑論云 維摩是金粟如來 吉藏法師謂出思惟三昧經 自云 未見其本 今據諸經目錄 無此經名
●忍僊; 同忍仙 忍辱仙人也 佛往昔爲仙人行忍辱時 爲歌利王支分身體
●歌王; 歌利王 佛陀本生譚中出現之王名 又作哥利王 羯利王 迦梨王等 此翻爲鬥諍王 惡生王 惡世王 惡世無道王 佛陀於過去世爲忍辱仙人時 此王惡逆無道 一日 率宮人出遊 遇忍辱仙人於樹下坐禪 隨侍女見之 捨歌利王而至忍辱仙人處聽法 王見之生惡心 遂割截仙人之肢體 [賢愚經二 六度集經五 金剛經 大智度論十四]
●聖朝; 封建時代尊稱本朝
복주(福州) 귀산(龜山) 지구(智具; 傳燈에 智眞으로 지었음) 선사
양주(揚州) 유씨(柳氏)의 아들이다. 장경(章敬)을 초알(初謁)하자 장경이 묻되 어느 곳(何所)에서 이르렀는가. 사왈 이르러도 이른 바가 없고 와도 오는 바가 없습니다. 장경이 비록 묵연(默然)했지만 스님도 또한 자오(自悟)했다. 주후(住後)에 상당(上堂) 동용(動容)하고 순목(眴目; 눈을 깜작이다)함이 당인(當人)의 일념(一念) 정심(淨心)을 벗어나지 않나니 본래 이 부처다. 인하여(仍) 게를 설해 가로되 마음엔 본래 티끌이 끊겼거늘 어찌 씻음을 쓰며/ 신중(身中)에 병이 없거늘 어찌 의약(醫藥)을 구하겠는가/ 이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몸이 아닌 곳이니/ 밝은 거울(明鑑)을 높이 매달아(懸) 비추지 않을 때다. 후에 무종(武宗)의 사태(沙汰)를 만나(値) 게(偈)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칙명(勑命)이 우레와 같아 취미(翠微)에 내리니/ 풍전(風前)에 눈물 흘리며(垂淚) 선의(禪衣)를 벗었다/ 운중(雲中)에 사원(寺院)이 있으나 거주를 용납하지 않고/ 진리(塵裏)에 집이 없거늘 어느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명월이 형상을 나누어 곳곳마다 새롭나니/ 백의(白衣)가 어찌 해공인(解空人)에게 떨어지리오/ 세속에 있으면 수도에 방애(妨礙)된다고 누가 말하느냐/ 금속(金粟)이 일찍이 장자(長者)의 몸이 되었다. 인선(忍僊)이 임하(林下)에서 좌선할 때/ 일찍이 가왕(歌王)에게 할절지(割截肢; 肢體가 割截)됨을 입었다/ 하물며 우리의 성조(聖朝)에 이런 일이 없고/ 다만 도를 그만두게 하니 또한 어찌 슬프겠는가. 선종(宣宗)이 중흥(中興)함에 이르렀지만(暨) 이에 다시 피치(披緇)하지 않았고 함통(咸通) 6년(865) 본산에서 마쳤다. 시(諡)가 귀적선사(歸寂禪師)다.
●揚州; 지금의 강소성 양주. 이제옹 자가록(資暇錄)에 가로되 양주(揚州)란 것은 풍속이 경양(輕揚)하는 고로 그 주(州)를 호했다.
●動容; 동작의 용의(容儀; 儀容).
●沙汰; 원래의 뜻은 도태(淘汰)가 됨. 이르자면 쌀 안에 참잡(摻雜; 혼잡)한 바의 모래를 도태함임. 전(轉)하여 선악을 간별하여 그것을 배제함을 가리킴. 불교의 문헌 중에 이 사(詞)는 늘 중국 조정에서 불교 승니에 대한 한제(限制)와 타격을 가리킴. 선종과 관계된 비교적 큰 1차 사태(또 명칭이 滅佛)의 발생은 당 무종 회창(會昌; 841-846)년 간임.
●翠微; 청취(靑翠)하면서 은밀한 산색. 가차(假借)하여 청산을 가리킴. 또 산꼭대기로부터 조금 내려온 곳.
●白衣; 백의관음이니 또 가로되 대백의(大白衣)며 또 가로되 백처관음(白處觀音)임. 이 존(尊)이 늘 백의를 입고 백련 중에 있는지라 고로 그 가 입은 의복으로 나아가 백의로 이름하고 그의 주처(住處)로써 이름해 백처(白處)라 함. 백(白)이란 것은 그 순정(淳淨)의 보리심을 표함 [대일경소5].
●金粟; 조정사원2. 금속(金粟) 예컨대(如) 십문변혹론에 이르되 유마는 이 금속여래라 하매 길장법사가 이르기를 사유삼매경에 나온다 하였고 스스로 이르되 그 본(本; 책)을 보지 못했으며 여금에 제경목록에 의거해도 이 경의 이름이 없다 했음.
●忍僊; 인선(忍仙)과 같음. 인욕선인(忍辱仙人)임. 불타가 지난 옛적에 선인이 되어 인욕을 행할 때 가리왕에게 신체가 지분(支分; 분해)되었음.
●歌王; 가리왕(歌利王; 梵 Kaliṅgarāja 或 Kalirāja)이니 불타의 본생담 속에 출현하는 왕의 이름. 또 가리왕(哥利王)ㆍ갈리왕(羯利王)ㆍ가리왕(迦梨王) 등으로 지음. 여기에선 투쟁왕ㆍ악생왕ㆍ악세왕ㆍ악세무도왕으로 번역함. 불타가 과거세에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되었을 때 이 왕이 악역무도(惡逆無道)하였음. 어느 날 궁인을 인솔하여 출유(出遊)하다가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는 인욕선인을 만났음. 수시(隨侍)하는 여자들이 이를 보고는 가리왕을 버리고 인욕선인의 처소에 이르러 청법(聽法)했는데 왕이 이를 보고 악심을 내어 드디어 선인의 지체(肢體)를 베고 잘랐음 [현우경2. 육도집경5. 금강경. 대지도론14].
●聖朝; 봉건시대 본조(本朝)의 존칭.
金州操禪師
請米和尙齋 不排坐位 米到展坐具禮拜 師下禪牀 米乃坐師位 師却席地而坐 齋訖米便去 侍者曰 和尙受一切人欽仰 今日坐位被人奪却 師曰 三日後若來卽受救在 米三日後果來曰 前日遭賊〈僧問鏡淸 古人道 前日遭賊 意旨如何 淸云 祇見錐頭利 不見鑿頭方〉
●金州; 今陝西安康
●席地; 原指在地上鋪了席(坐臥在上面) 後來泛指在地上(坐臥)
금주(金州) 조선사(操禪師)
미화상(米和尙)을 청해 재(齋)하면서 좌위(坐位)를 안배(按排)하지 않았다. 미(米)가 이르러 좌구를 펴(展) 예배했다. 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오자 미가 곧 스님의 자리에 앉았다. 스님이 도리어 석지(席地)에 앉았다. 재(齋)를 마치자 미가 바로 갔다. 시자가 가로되 화상은 일체인의 흠앙(欽仰)을 받거늘 금일 좌위(坐位)를 타인이 탈각(奪却)함을 입었습니다. 사왈(師曰) 3일 후에 만약 온다면 곧 구제를 받을 것이다. 미가 3일 후에 과연 와서 가로되 전날 도적을 만났습니다〈僧이 鏡淸(道怤)에게 묻되 고인이 말한 전날 도적을 만났다는 意旨가 무엇입니까. 경청이 이르되 다만 송곳(錐頭; 頭는 후철)의 예리함만 보고 끌(鑿頭)의 모남을 보지 못했다〉.
●金州; 지금의 섬서(陝西) 안강(安康).
●席地; 원래는 지상(地上)에 편 깔개를 가리킴(上面에 있으면서 坐臥함). 후래(後來)에 널리 지상에 있음을 가리켰음(坐臥함).
朗州古堤和尙
尋常見僧來但曰 去 汝無佛性 僧無對 或有對者 莫契其旨 仰山到參 師曰 去 汝無佛性 山叉手近前三步應喏 師笑曰 子甚麽處得此三昧來 山曰 我從耽源處得名 潙山處得地 師曰 莫是潙山的子麽 山曰 世諦卽不無 佛法卽不敢 山却問 和尙從甚處得此三昧 師曰 我從章敬處得此三昧 山嘆曰 不可思議 來者難爲湊泊
●的子; 的嗣 直系法嗣 嫡嗣
낭주(朗州) 고제화상(古堤和尙)
심상(尋常)에 중이 옴을 보면 단지 가로되 가거라, 너는 불성이 없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 혹 대답하는 자가 있더라도 그 지취에 계합하지 못했다. 앙산(仰山)이 이르러 참(參)했다. 사왈 가거라, 너는 불성이 없다. 앙산이 차수(叉手)하고 3보(步) 근전(近前)하여 응낙(應諾)했다.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자네는 어느 곳에서 이 삼매를 얻어 왔느냐. 산왈(山曰) 나는 탐원(耽源)의 처소로 좇아 명(名)을 얻었고 위산(潙山)의 처소에서 지(地)를 얻었습니다. 사왈 이 위산의 적자(的子)가 아닌가. 산왈(山曰) 세제(世諦)에는 곧 없지 않으나 불법에는 곧 감당하지 못합니다. 앙산이 도리어 묻되 화상은 어느 곳으로 좇아 이 삼매를 얻었습니까. 사왈 나는 장경(章敬)의 처소로 좇아 이 삼매를 얻었다. 앙산이 감탄하며 가로되 불가사의합니다. 내자(來者)가 주박(湊泊; 머물다)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的子; 적사(的嗣)니 직계의 법사(法嗣), 적사(嫡嗣).
河中府公畿和尙
僧問 如何是道 如何是禪 師以偈示之曰 有名非大道 是非俱不禪 欲識箇中意 黃葉止啼錢
●黃葉止啼; 乃譬喩如來爲度衆生所作之方便行 如來見衆生欲造諸惡時 卽爲彼等說三十三天之常樂我淨 使聞者心生喜樂而勤作善業 斷止其惡 然此實乃生死 屬無常無樂無我無淨 言常樂我淨者 是如來爲度衆生之方便言說 此如嬰兒啼哭時 父母以楊樹之黃葉爲金 與小兒以止其啼哭 然黃葉實非眞金 乃父母之權便引設 又禪宗以經論家之說法 皆爲空拳黃葉之方便說 僅得以誑欺愚鈍者 ▲涅槃經二十 又嬰兒行者 如彼嬰兒 啼哭之時 父母卽以楊樹黃葉 而語之言 莫啼 莫啼 我與汝金 嬰兒見已 生眞金想 便止不啼
하중부(河中府) 공기화상(公畿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며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스님이 게로써 보여 가로되 이름이 있으면 대도가 아니며/ 시비는 모두(俱) 선이 아니다/ 이 가운데의 뜻을 알려고 한다면/ 황엽은 울음을 그치게 하는 돈이다(黃葉止啼錢).
●黃葉止啼; 곧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짓는 바의 방편행에 비유함. 여래가, 중생이 제악(諸惡)을 지으려고 함을 보았을 때 곧 그들 등을 위해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설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희락(喜樂)을 내어 선업(善業)을 부지런히 짓고 그 악을 단지(斷止) 하게 함. 그러나 이는 실로 곧 생사인지라 무상무락무아무정(無常無樂無我無淨)에 속함. 말한 상락아정이란 것은 이것은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의 언설임. 이것은 예컨대(如) 영아(嬰兒)가 제곡(啼哭)할 때 부모가 버드나무의 황엽(黃葉)을 금으로 삼아 소아에게 주어서 그 제곡을 그치게 하지만 그러나 황엽은 실로 진금이 아니라 곧 부모가 권편(權便)으로 인설(引設)하였음. 또 선종에선 경론가의 설법을 모두 공권(空拳)과 황엽의 방편설이라 하며 겨우 얻어 우둔한 자를 광기(誑欺; 속임)한다 함. ▲열반경20. 또 영아행(嬰兒行)이란 것은 예컨대(如) 저 영아가 울 때 부모가 곧 버드나무 누런 잎(黃葉)을 써 말하되 울지마라, 울지마라. 내가 너에게 금을 준다. 영아가 보고 나서 진금이란 생각을 내어 곧 그쳐서 울지 않는다.
永泰湍禪師法嗣
湖南上林戒靈禪師
初參潙山 山曰 大德作甚麽來 師曰 介冑全具 山曰 盡卸了來 與大德相見 師曰 卸了也 山咄曰 賊尙未打 卸作甚麽 師無對 仰山代曰 請和尙屛却左右 潙山以手揖曰 喏喏 師後參永泰 方諭其旨
●介冑; 廣雅 介 鎧也 玉篇 介 甲也
호남(湖南) 상림(上林) 계령선사(戒靈禪師)
위산(潙山)을 초참(初參)했더니 산왈(山曰) 대덕은 무엇하러(作甚麽) 왔느냐. 사왈(師曰) 개주(介冑)를 전부 갖추었습니다. 산왈(山曰) 모두 내려놓고(卸了) 오면 대덕과 상견하겠다. 사왈 내려놓았습니다. 위산이 꾸짖으며(咄) 가로되 도적도 아직 치지(打) 못했거늘 내려놓아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앙산이 대왈(代曰) 청컨대 화상은 좌우를 물리치십시오(屛却). 위산이 손으로써 읍(揖)하고 이르되 낙낙(喏喏; 예, 예). 스님이 후에 영태(永泰)를 참(參)해 비로소 그 지취(旨趣)를 깨우쳤다(諭).
●介冑; 광아 개(介) 갑옷이다(鎧). 옥편 개(介) 갑옷이다(甲).
五臺山祕魔巖和尙
常持一木叉 每見僧來禮拜 卽叉却頸曰 那箇魔魅敎汝出家 那箇魔魅敎汝行脚 道得也叉下死 道不得也叉下死 速道速道 學徒鮮有對者〈法眼代云 乞命 法燈代 但引頸示之 玄覺代云 老兒家放下叉子得也〉 霍山通和尙訪師 纔見不禮拜 便攛入懷裏 師拊通背三下 通起拍手曰 師兄三千里外賺我來 三千里外賺我來 便回
●木叉; 猶木杈 杈 叉狀的用具 頭部有分杈 用來刺物取物
●魔魅; 一魔鬼 魅 鬼怪 二蠱惑 此指一
●老兒家; 老漢
●叉子; 杈子 卽杈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
늘 하나의 목차(木叉; 木杈와 같음. 나무 작살)를 가지고서 매번 중이 와서 예배함을 보면 곧 목에 어긋매끼고(叉却) 가로되 어떤(那箇) 마매(魔魅)가 너로 하여금 출가하게 했는가, 어떤 마매가 너로 하여금 행각하게 했는가. 말함을 얻으면 작살 아래 죽고 말함을 얻지 못하더라도 작살 아래 죽는다.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학도(學徒)가 대답하는 자가 드물게 있었다〈法眼이 代云 목숨을 구걸합니다. 法燈(泰欽)이 代하되 단지 목을 늘어뜨려 보이겠다. 玄覺(行言)이 代云 老兒家야, 차자(叉子)를 내려놓아야 옳다〉. 곽산통(霍山通; 景通) 화상이 스님을 방문하여 겨우 보자 예배하지 않고 바로 품 속으로 던져 들어갔다. 스님이 경통(景通)의 등을 세 번(三下) 두드렸다(拊). 경통이 일어나 박수(拍手)하고 가로되 사형(師兄)이 3천 리 밖에서 나를 속였습니다. 3천 리 밖에서 나를 속였습니다. 바로 돌아갔다.
●木叉; 목차(木杈)와 같음. 차(杈)는 차상(叉狀; 갈라진 형상. 작살 형상)의 용구. 머리 부분에 분차(分杈; 분리된 가지)가 있고 사용하여 물건을 찌르고 물건을 취함.
●魔魅; 1. 마귀(魔鬼). 매(魅)는 귀괴(鬼怪). 2. 고혹(蠱惑).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老兒家; 노한(老漢).
●叉子; 차자(杈子)니 곧 차(杈).
湖南祇林和尙
每叱文殊普賢皆爲精魅 手持木劒 自謂降魔 纔見僧來參 便曰 魔來也 魔來也 以劒亂揮歸方丈 如是十二年 後置劒無言 僧問 十二年前 爲甚麽降魔 師曰 賊不打貧兒家 曰 十二年後 爲甚麽不降魔 師曰 賊不打貧兒家
●精魅; 精靈魑魅 精 靈 神靈 鬼怪 魅 魑魅 ▲法華文句記六 魑魅者 物之精也 通俗文云 山澤之怪謂之魑也 西京賦云 山神虎形曰魑 宅神豬頭人形曰魅
호남(湖南) 기림화상(祇林和尙)
매양 문수와 보현을 꾸짖으며 모두 정매(精魅)라 했고 손에 목검을 가지고 스스로 이르기를 항마(降魔)라 했다. 겨우(纔) 중이 내참(來參)함을 보면 바로 가로되 마(魔)가 왔다. 마가 왔다. 검을 어지럽게 휘두르고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음이 12년이었는데 후에 검을 방치하고 말이 없었다. 승문(僧問) 12년 전엔 무엇 때문에 항마했습니까. 사왈 도적이 가난한 자(貧兒; 貧者. 兒는 後綴)의 집을 털지 않는다(賊不打貧兒家). 가로되 12년 후엔 무엇 때문에 항마하지 않습니까. 사왈 도적이 가난한 자의 집을 털지 않는다.
●精魅; 정령이매(精靈魑魅)니 정(精)은 령(靈)이며 신령이며 귀괴(鬼怪)며 매(魅)는 이매(魑魅)임. ▲법화문구기6. 이매(魑魅)란 것은 물건의 정(精)이다. 통속문에 이르되 산택(山澤)의 괴물을 리(魑)라고 일컫는다. 서경부(西京賦; 후한 張衡의 시)에 이르되 산신이면서 범의 형상을 가로되 리(魑)며 택신(宅神)이면서 돼지머리에 사람의 형상을 가로되 매(魅)다.
華嚴藏禪師法嗣
黃州齊安禪師
上堂 言不落句 佛祖徒施 玄韻不墜 誰人知得 僧問 如何識得自己佛 師曰 一葉明時消不盡 松風韻罷怨無人 曰 如何是自己佛 師曰 草前駿馬實難窮 妙盡還須畜生行 有人問 師年多少 師曰 五六四三不得類 豈同一二實難窮 師有偈曰 猛熾𦦨中人有路 旋風頂上屹然棲 鎭常歷劫誰差互 杲日無言運照齊
●黃州; 今湖北省黃岡
●差互; 交錯
●杲日; 杲 明亮 ▲緇門警訓註上 杲日 日在木下曰杳 日在木中曰東 日在木上曰杲
황주(黃州) 제안선사(齊安禪師)
상당(上堂) 언(言)이 구(句)에 떨어지지 않으면 불조가 도연(徒然)히 시위(施爲)함이며 현운(玄韻)이 추락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誰人)이 지득(知得)하겠는가. 승문(僧問) 어찌해야 자기불(自己佛)을 식득(識得)합니까. 사왈(師曰) 1엽(葉)이 밝을 때 사라져 없어지지 않고(消不盡) 송풍(松風)이 운(韻)을 마치자 사람이 없음을 원망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자기불(自己佛)입니까. 사왈 초전(草前)의 준마(駿馬)는 실로 궁구하기 어렵나니 묘(妙)를 다하려면 도리어 축생행(畜生行)을 써야(須) 한다. 어떤 사람이 묻되 스님은 나이가 얼마입니까. 사왈 오육사삼(五六四三)으론 유사(類似)함을 얻지 못하거늘 어찌 일이(一二)와 한가지라서 실로 궁구하기 어렵겠는가.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맹렬히 타는 화염 속의 사람에게 길이 있고/ 선풍(旋風)의 정상(頂上)에 흘연(屹然)히 쉰다(棲)/ 진상(鎭常; 平常. 日常)의 역겁(歷劫)에 누가 차호(差互)하는가/ 고일(杲日)이 말없이 비춤을 운행해 가지런하다.
●黃州; 지금의 호북성 황강(黃岡)
●差互; 교착(交錯; 서로 뒤섞여서 얼크러짐).
●杲日; 고(杲)는 명량(明亮; 환히 밝음). ▲치문경훈주상. 고일(杲日) 해가 나무 아래 있음을 가로되 묘(杳)며 해가 나무의 가운데 있음을 가로되 동(東)이며 해가 나무 위에 있음을 가로되 고(杲)다.
南嶽下四世
黃檗運禪師法嗣
睦州陳尊宿
諱道明 江南陳氏之後也 生時紅光滿室 祥雲葢空 旬日方散 目有重瞳 面列七星 形相奇特 與衆奪倫 因往開元寺禮佛 見僧如故知 歸白父母 願求出家 父母聽許爲僧 後持戒精嚴 學通三藏 遊方契旨於黃檗 後爲四衆請住觀音院 常百餘衆 經數十載 學者叩激 隨問遽答 詞語峻險 旣非循轍 故淺機之流 往往嗤之 唯玄學性敏者欽伏 由是諸方歸慕 咸以尊宿稱 後歸開元〈今改兜率〉 居房織蒲鞋以養母 故有陳蒲鞋之號 巢宼入境 師標大草屨於城門 巢欲棄之 竭力不能擧 歎曰 睦州有大聖人 舍城而去 遂免擾攘
●睦州; 在今浙江建德東 唐代僧道明 住浙江睦州開元寺 故稱睦州
●尊宿; 德尊年長者 ▲觀無量壽佛經疏二 德高曰尊 耆年曰宿
●奪倫; 失其倫次
●叩激; 叩問 詰問
●擾攘; 騷亂 紛亂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
휘(諱)가 도명(道明)이며 강남(江南) 진씨(陳氏)의 후예(後裔)다. 출생할 때 홍광(紅光)이 만실(滿室)했고 상운(祥雲)이 허공을 덮었는데 열흘 만에 비로소 흩어졌다. 눈에 중동(重瞳; 겹으로 된 눈동자)이 있었고 얼굴에 7성(星)이 나열했고 형상(形相)이 기특(奇特)했고 무리와 탈륜(奪倫)했다. 개원사(開元寺)에 가서 예불함으로 인해 승인(僧人)을 보니 고지(故知; 故友)과 같은지라 돌아와 부모에게 사뢰고(白) 출가를 원구(願求)하자 부모가 청허(聽許; 허락)하여 승인이 되었다. 후에 지계(持戒)가 정엄(精嚴)했고 학문이 3장(藏)을 통달했다. 유방(遊方)하다가 황벽(黃檗)에게 계지(契旨)했고 후에 4중(衆)이 청하여 관음원에 거주했는데 늘 백여(百餘) 대중이었다. 수십 재(載)를 경과하며 학자가 고격(叩激)하면 물음 따라 급히 답했는데 사어(詞語)가 준험(峻險)했고 이미 궤철(軌轍)을 따르지(循) 않은지라 고로 천기지류(淺機之流)가 왕왕(往往) 비웃었고(嗤之) 오직 현학(玄學)의 성품이 민첩한 자가 흠복(欽伏)한지라 이로 말미암아 제방에서 귀모(歸慕)했고 모두 존숙(尊宿)으로써 호칭했다. 후에 개원(開元)〈지금 兜率로 改名했다〉으로 돌아가 거방(居房)하면서 포혜(蒲鞋)를 짜서 양모(養母; 모친을 奉養)한지라 고로 진포혜(陳蒲鞋)의 호칭이 있다. 소구(巢宼; 黃巢의 도적떼)가 입경(入境)하자 스님이 큰 짚신(大草屨)을 성문(城門)에 표(標)했는데 소구(巢宼)가 이를 버리려고 하여 힘을 다해도 능히 들지 못했다. 감탄해 가로되 목주(睦州)에 대성인(大聖人)이 있다. 성을 버리고 떠났고 드리어 요양(擾攘)을 면했다.
●睦州; 지금의 절강 건덕 동쪽에 있음. 당대승 도명이 절강 목주 개원사에 거주한지라 고로 목주로 일컬었음.
●尊宿; 덕이 높은 연장자. ▲관무량수불경소2. 덕고(德高)를 가로되 존(尊)이며 기년(耆年)을 가로되 숙(宿)이다.
●奪倫; 그 윤차(倫次; 신분의 차례)를 잃음.
●叩激; 고문(叩問). 힐문(詰問).
●擾攘; 소란(騷亂). 분란(紛亂).
一日晩參 謂衆曰 汝等諸人還得箇入頭處也未 若未得箇入頭處 須覔箇入頭處 若得箇入頭處 已後不得孤負老僧 時有僧出禮拜 曰 某甲終不敢孤負和尙 師曰 早是孤負我了也 又曰 明明向你道 尙自不會 何況葢覆將來 又曰 老僧在此住持 不曾見箇無事人到來 汝等何不近前 時有一僧方近前 師曰 維那不在 汝自領去三門外 與二十棒 曰 某甲過在甚麽處 師曰 枷上更著杻 師尋常見衲僧來 卽閉門 或見講僧 乃召曰 座主 主應諾 師曰 擔板漢 或曰 這裏有桶 與我取水 一日在廊階上立 僧問 陳尊宿房在何處 師脫草屨驀頭打 僧便走 師召 大德 僧回首 師指曰 却從那邊去
●入頭; 省悟 悟入
●枷上更著杻; 頸上已戴枷鎖 手上再加手銬 喩指先後兩次作略皆不契機 錯上加錯 罰上加罰 杻 古代手銬
●驀頭; 忽然 突然 頭 助詞
어느 날 만참(晩參)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 제인(諸人)이 도리어 저(箇) 입두처(入頭處)를 얻었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저(箇) 입두처(入頭處)를 얻지 못했다면 모름지기 저(箇) 입두처를 찾아야 하고 만약 저 입두처를 얻었다면 이후(已後)에 노승을 저버림(孤負)을 얻지 말아야 한다.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하고 가로되 모갑은 마침내 감히 화상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사왈(師曰) 벌써 이는 나를 저버렸다. 또 가로되 노승이 여기에 있으면서 주지(住持)하지만 일찍이 저(箇) 무사인(無事人)이 도래(到來)함을 보지 못했다. 너희 등이 왜 근전(近前)하지 않느냐. 때에 1승(僧)이 있어 바야흐로 근전(近前)하자 사왈 유나(維那)가 있지 않으니 네가 스스로 영회(領會; 領)하고 삼문(三門) 밖으로 나간다면 20방(棒) 주겠다. 가로되 모갑의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가상에 다시 착뉴하는구나(枷上更著杻). 스님이 심상(尋常)에 혹 납승(衲僧)이 옴을 보면 곧 폐문(閉門)했고 혹 강승(講僧)을 보면 이에 불러 가로되 좌주(座主). 좌주가 응낙(應諾)하자 사왈 담판한(擔板漢)아. 혹은 가로되 이 속에 통(桶)이 있으니 나를 위해(與) 취수(取水)하라. 어느 날 행랑(行廊)의 섬돌 위에 섰는데 승문(僧問) 진존숙(陳尊宿)의 방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스님이 초구(草屨; 짚신)를 벗어 갑자기(驀頭) 때렸다. 중이 바로 달아나자 스님이 부르되 대덕(大德), 중이 회수(迴首)하자 스님이 가리키며 가로되 도리어 나변(那邊)으로 좇아가거라.
●入頭; 성오(省悟). 오입(悟入).
●枷上更著杻; 목 위에 이미 가쇄(枷鎖)를 이었고(戴) 손 위에 다시 수고(手銬; 수갑)를 더함이니 선후 양차의 작략이 다 선기(禪機)에 계합하지 못함을 비유로 가리킴. 착상(錯上)에 착을 더함이며 벌상(罰上)에 벌을 더함임. 뉴(杻)는 고대의 수고(手銬).
●驀頭; 홀연. 돌연. 두(頭)는 조사.
天使問 三門俱開 從那門入 師喚尙書 使應諾 師曰 從信門入 使又見畫壁 問曰 二尊者對譚何事 師摑露柱曰 三身中那箇不說法 座主參 師問 莫是講唯識論否 曰 不敢 師曰 朝去西天 暮歸唐土 會麽 曰 不會 師曰 吽吽 五戒不持 師問一長老 了卽毛端呑巨海 始知大地一微塵 長老作麽生 曰 問阿誰 師曰 問長老 曰 何不領話 師曰 汝不領話 我不領話 問座主 講甚麽經 曰 講涅槃經 師曰 問一段義得麽 曰 得 師以脚踢空 吹一吹曰 是甚麽義 曰 經中無此義 師曰 脫空謾語漢 五百力士揭石義 却道無
●信門入; 信 任凭 隨意 如信手拈來
●吽吽; 吽 同吼 牛之吼聲
●五戒; 一不殺生戒 不殺生物也 二不偸盜戒 不取不與也 三不邪婬戒 不犯有看守者也 四不妄語戒 不爲無實之言也 五不飮酒戒 不飮酒也 此五者在家之人所持 男子謂之優婆塞 女子謂之優婆夷 大毘婆娑論名爲五學處 大莊嚴經名曰五大施 俱舍論名曰近事律儀 又指持五戒之優婆塞而云五戒 如趙五戒 智擧五戒等 仁王經上曰 有千萬億五戒賢者
●脫空謾語漢; 常用作眞參實悟者之反義語 脫空 虛脫空虛 謂內心無實 向外誇張也
●五百力士揭石義; 南本涅槃經十四 我欲涅槃始初發足向拘尸那城 有五百力士於其中路平治掃灑 中有一石衆欲擧棄盡力不能 我時憐愍卽起慈心 彼諸力士尋卽見我 以足母指擧此大石 擲置虛空還以手接 安置右掌吹令碎末復還聚合 令彼力士貢高心息
천사(天使)가 묻되 3문(門)이 모두 열렸습니다. 어느 문으로 좇아 들어가야 합니까. 스님이 상서(尙書)를 불렀다. 천사가 응낙했다. 사왈 신문을 좇아 들어가시오(從信門入). 천사가 또 벽화를 보고 물어 가로되 2존자가 무슨 일을 대담(對譚; 對談)합니까. 스님이 노주(露柱)를 후려갈기고 가로되 3신(身) 중에 어느 것(那箇)이 설법하지 않습니까. 좌주(座主)가 참(參)하자 스님이 묻되 이, 유식론(唯識論)을 강설(講說)하지 않느냐. 가로되 불감(不敢)입니다. 사왈 아침에 서천(西天)에 갔다가 저녁에 당토(唐土)로 돌아온다.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후후(吽吽) 5계(五戒)도 가지지 않느냐. 스님이 1장로에게 묻되 깨달으면(了) 곧 모단(毛端)이 거해(巨海)를 삼키나니 비로소 대지가 1미진(微塵)임을 안다. 장로는 어떠한가. 가로되 누구에게 묻습니까. 사왈 장로에게 물었다. 가로되 왜 말을 영회(領會)하지 못합니까. 사왈 네가 말을 영회하지 못하느냐, 내가 말을 영회하지 못하느냐. 좌주에게 묻되 무슨 경을 강설하는가. 가로되 열반경을 강설합니다. 사왈 1단(段)의 뜻을 물으려 하는데 얻겠는가. 가로되 얻으십시오. 스님이 발로 허공을 차고 불어서 한 번 불고는 가로되 이 무슨 뜻인가. 가로되 경중에 이런 뜻이 없습니다. 사왈 탈공만어한(脫空謾語漢)아, 5백 역사(力士)의 게석(揭石; 돌을 높이 들다)의 뜻(五百力士揭石義)이거늘 도리어 없다고 말하느냐.
●信門入; 신(信)은 임빙(任凭; 마음대로 하게 하다). 수의(隨意). 신수염래(信手拈來)와 같은 것.
●吽吽; 후(吽)는 후(吼)와 같으며 소의 울부짖는 소리.
●五戒; 1. 불살생계 생물을 죽이지 않음임. 2. 불투도계(不偸盜戒)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음임. 3. 불사음계(不邪婬戒) 간수하는 자가 있는 것을 범하지 않음임. 4. 불망어계 진실이 없는 말을 하지 않음임. 5. 불음주계 음주하지 않음임. 이 5자는 재가의 사람이 소지하며 남자는 이를 일러 우바새(優婆塞)라 하고 여자는 이를 일러 우바이(優婆夷)라 함. 대비바사론에선 이름하여 5학처(學處)라 했고 대장엄경에선 이름해 가로되 5대시(大施)라 했고 구사론에선 이름해 가로되 근사율의(近事律儀)라 했음. 또 5계를 수지하는 우바새를 가리켜 이르되 5계니 예컨대(如) 조오계(趙五戒)ㆍ지거오계(智擧五戒) 등임. 인왕경상에 가로되 천만억 오계현자(五戒賢者)가 있었다.
●脫空謾語漢; 늘 진참실오자(眞參實悟者)의 반의어(反義語)에 사용함. 탈공(脫空)은 허탈하고 공허함이니 이르자면 내심으론 실다움이 없으면서 밖을 향해 과장함임.
●五百力士揭石義; 남본열반경14. 내가 열반하려고 시초(始初)에 발족(發足)하여 구시나성(拘尸那城)을 향했다. 5백 역사(力士)가 있어 그 중로(中路)에서 평치(平治)하고 소쇄(掃灑)하는데 가운데 1석(石)이 있어 무리가 거기(擧棄)하려고 힘을 다했으나 불능(不能)이었다. 내가 때에 연민(憐愍)하여 곧 자심(慈心)을 일으켰는데 그 모든 역사가 이윽고 곧 내가 엄지발가락으로 이 대석(大石)을 들어 허공에 던져 안치하고 도리어 손으로 접수해 우장(右掌)에 안치하고 불어서 깨뜨려 가루가 되게 했다가 다시 도리어 취합(聚合)함을 보았다. 그 역사들로 하여금 공고심(貢高心)을 쉬게 했다.
師見僧乃曰 見成公案 放汝三十棒 曰 某甲如是 師曰 三門頭金剛 爲甚麽擧拳 曰 金剛尙乃如是 師便打 問 如何是向上一路 師曰 要道有甚麽難 曰 請師道 師曰 初三十一 中九下七 問 以一重去一重卽不問 不以一重去一重時如何 師曰 昨朝栽茄子 今日種冬瓜 問 如何是曹谿的的意 師曰 老僧愛嗔不愛喜 曰 爲甚麽如是 師曰 路逢劒客須呈劒 不是詩人莫說詩 問僧 甚處來 曰 瀏陽 師曰 彼中老宿祇對佛法大意道甚麽 曰 徧地無行路 師曰 老宿實有此語否 曰 實有 師拈拄杖打曰 這念言語漢
●見成公案; 同現成公案 不借造作安排現成就之公案也
●三門頭金剛; 謂三門前金剛力士等護法神將
●冬瓜; 一年生草本植物 瓜形狀如枕 又稱枕瓜 生産於夏季 因爲瓜熟之際 表面上有一層白粉狀的物質 是冬天所結的白霜 故名冬瓜 又稱白瓜 有些地方 又名爲東瓜
스님이 중을 보고 이에 가로되 현성공안(見成公案)이니 너에게 30방(棒) 놓는다. 가로되 모갑은 이와 같습니다. 사왈 삼문두금강(三門頭金剛)이 무엇 때문에 주먹을 들었느냐. 가로되 금강이 오히려 곧 이와 같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향상일로(向上一路)입니까. 사왈 말함을 요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가로되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초(初)는 31이며 중(中)은 9며 하(下)는 7이다. 묻되 일중(一重)으로써 일중(一重)을 제거함은 곧 묻지 않습니다. 일중(一重)으로써 일중을 제거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사왈 작조(昨朝)에 가자(茄子; 가지)를 심었고(栽) 금일 동과(冬瓜)를 심었다(種). 묻되 무엇이 이 조계(曹谿; 6조)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사왈 노승은 성냄을 좋아하고 기쁨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모름지기 검을 주고 이 시인(詩人)이 아니면 시를 설하지 않는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유양(瀏陽)입니다. 사왈 그 가운데의 노숙은 불법대의(佛法大意)에 지대(祇對)하면서 무어라고 말하느냐. 가로되 온 땅(徧地)에 다닐 길이 없다 합니다. 사왈 노숙이 실로 이 말이 있었느냐. 가로되 실로 있었습니다. 스님이 주장자를 집어 때리고 가로되 이(這) 언어를 외우는(念) 자야.
●見成公案; 현성공안(現成公案)과 같음. 조작과 안배를 빌리지 않는 현재 성취한 공안.
●三門頭金剛; 이르자면 3문 앞의 금강역사 등 호법신장.
●冬瓜; 일년생 초본식물. 과(瓜)의 형상이 베개와 같은지라 또 명칭이 침과(枕瓜)임. 여름철에 생산되며 과가 익을 즈음에 표면 위에 1층의 흰 가루 형상의 물질이 있으며 이는 겨울철에 맺힌 바의 흰 서리가 됨으로 인해 고로 이름이 동과(冬瓜)임. 또 명칭이 백과(白瓜)니 어떤 지방에선 또 이름하여 동과(東瓜)라 하기도 함.
師問一長老 若有兄弟來 將何祇對 曰 待他來 師曰 何不道 曰 和尙欠少甚麽 師曰 請不煩葛藤 僧參 師曰 汝豈不是行脚僧 曰 是 師曰 禮佛也未 曰 禮那土堆作麽 師曰 自領出去 問 某甲講兼行脚 不會敎意時如何 師曰 灼然實語當懺悔 曰 乞師指示 師曰 汝若不問 老僧卽緘口無言 汝旣問 老僧不可緘口去也 曰 請師便道 師曰 心不負人 面無慙色 問 一句道盡時如何 師曰 義墮也 曰 甚麽處是學人義墮處 師曰 三十棒敎誰喫 問 高揖釋迦 不拜彌勒時如何 師曰 昨日有人問 趂出了也 曰 和尙恐某甲不實邪 師曰 拄杖不在 苕帚柄聊與三十 上堂 我見百丈不識好惡 大衆纔集 以拄杖一時打下 復召大衆 衆回首 乃云 是甚麽 有甚共語處 又黃檗和尙亦然 復召大衆 衆回首 乃云 月似彎弓 少雨多風 猶較些子 問僧 近離甚處 僧便喝 師曰 老僧被你一喝 僧又喝 師曰 三喝四喝後作麽生 僧無語 師便打曰 這掠虛漢
●葛藤; 指文字言語 一如葛藤之蔓延交錯 又指公案中難以理解之語句 更轉義作問答工夫 玩弄無用之語句 稱爲閒葛藤 執著於文字言語 而不得眞義之禪 稱爲文字禪 或葛藤禪
●高揖; 緇門警訓註上 長揖者 擧兩手而揖 高揖者 但擧一手而揖 謂踞傲也
●釋迦; <梵> śākya <巴> sakya 此云能仁 釋迦牟尼所屬種族之名稱 爲佛陀五姓之一 又釋迦牟尼之簡稱 釋迦族爲古印度民族之一 屬武士階級 爲雅利安民族中日種系 甘蔗王之後裔 佛陀出身於此族 因而稱爲釋迦牟尼(卽釋迦族之聖者)
●彌勒; <梵> Maitreya <巴> Mette yya 科註妙法蓮華經一 彌勒者 此云慈氏 思益云 若衆生見者 卽得慈心三昧 故名以慈氏 是菩薩現居知足內院 當來出興于堪忍 補釋迦之處 號彌勒世尊 於華林園內龍華樹下 而成正覺 智論三十四云 龍華初會度九十九億聲聞 第二會度九十六億聲聞 第三會度九十三億聲聞 ▲玄應音義二十二 波羅延 謂西域邑落名也 阿氏多 彌勒字也 或作阿嗜多 此云無勝 謂無人能勝也 舊言阿逸多訛也 ▲玄應音義二十五 梅怛麗藥 此云慈 卽舊云慈氏者也 慈有二因緣 一値慈佛發心 二初得慈心三昧 因以名焉 言彌勒或云梅任梨竝訛也
●打下; 下 表示動作的完成或結果
●掠虛漢; 又作掠虛頭漢 掠 卽掠取之意 虛 卽虛妄不實 掠虛 卽指僅模倣他人言語之表面行動
스님이 1장로에게 묻되 만약 형제가 옴이 있으면 무엇을 가져 지대(祇對)하는가. 가로되 그의 옴을 기다립니다. 사왈 왜 말하지 않는가. 가로되 화상은 무엇이 흠소(欠少)합니까. 사왈 청컨대 번거롭게 갈등(葛藤)하지 말아라. 중이 참(參)했다. 사왈 너는 어찌 이 행각승이 아니겠는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사왈 예불했는가 아닌가. 가로되 저(那) 토퇴(土堆)에 예배해 무엇하겠습니까. 사왈 스스로 영회(領會)하고 나가거라. 묻되 모갑이 강설(講說)하고 겸해 행각하지만 교의(敎意)를 알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작연(灼然; 明白)히 실어(實語)라면 마땅히 참회(懺悔)하라. 가로되 스님의 지시를 걸구(乞求)합니다. 사왈 네가 만약 묻지 않는다면 노승은 곧 함구(緘口)하고 말하지 않겠지만 네가 이미 물었으니 노승이 함구(緘口)하여 감은 옳지 못하다. 가로되 청컨대 스님이 바로 말씀하십시오. 사왈 마음이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색이 없다. 묻되 1구로 말해 다할 땐 어떻습니까. 사왈 의타(義墮)했다. 가로되 어느 곳이 이 학인이 의타한 곳입니가. 사왈 30방(棒)을 누구를 시켜 먹이게 하나. 묻되 석가(釋迦)에게 고읍(高揖)하고 미륵(彌勒)에게 불배(不拜)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제 어떤 사람이 물었는데 쫓아내었다. 가로되 화상은 모갑이 실답지 않다고 염려하십니까. 사왈 주장자가 있지 않으니 초추병(苕帚柄; 빗자루)으로 애오라지 서른 번 주겠다. 상당(上堂) 내가 보건대 백장(百丈)은 호오(好惡)를 알지 못한다. 대중이 겨우 모이자 주장자로써 일시에 때렸다(打下). 다시 대중을 부르고 대중이 머리를 돌리자 이에 이르되 이 뭣고. 무슨 함께 말할 곳이 있으랴. 또 황벽화상(黃檗和尙)도 또한 그러하나니 다시 대중을 부르고 대중이 머리를 돌리자 이에 이르되 달이 만궁(彎弓; 당긴 활)과 같으면 비가 적고 바람이 많다. 오히려 교사자(較些子; 조금 상당하다)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중이 바로 할(喝)했다. 사왈 노승이 너의 1할(喝)을 입었다. 중이 또 할했다. 사왈 3할(喝), 4할 후엔 어떻게 하겠는가.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이(這) 약허한(掠虛漢)아.
●葛藤; 문자와 언어를 가리킴이니 갈등의, 만연(蔓延)하여 교착(交錯)함과 똑 같음. 또 공안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를 가리킴. 다시 전의(轉義)하여 문답의 공부가 됨. 무용한 어구를 완롱(玩弄)함을 일컬어 한갈등(閒葛藤)이라 하며 문자와 언어에 집착하여 참 뜻의 선을 얻지 못함을 일컬어 문자선, 혹은 갈등선이라 함.
●高揖; 치문경훈주상. 장읍(長揖)이란 것은 두 손을 들어 읍함이며 고읍(高揖)이란 것은 단지 한 손만 들어 읍함이니 이르자면 거오(踞傲; 倨傲와 같음. 거만하고 오만함)임.
●釋迦; <범> śākya. <파> sakya. 여기에선 이르되 능인(能仁)이니 석가모니가 소속된 종족의 명칭임. 불타 5성(姓)의 하나가 됨. 또 석가모니의 간칭임. 석가족은 고인도 민족의 하나며 무사 계급에 속함. 아리안(雅利安) 민족 중의 일종계(日種系)가 되며 감자왕(甘蔗王)의 후예니 불타의 출신이 이 종족이므로 인하여 명칭이 석가모니(釋迦牟尼; 곧 석가족의 聖者)가 됨.
●彌勒; <범> Maitreya. <파> Metteyya. 과주묘법연화경1. 미륵이란 것은 여기에선 이르되 자씨(慈氏)이다. 사익경에 이르되 이에 중생이 보는 자는 곧 자심삼매(慈心三昧)를 얻는다. 고로 자씨로 이름했다. 이 보살은 현재 지족천(知足天; 도솔천) 내원(內院)에 거처한다. 당래에 감인(堪忍; 娑婆)에 출흥하여 석가의 처소를 보좌하며 호가 미륵세존이다.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다. 지론34에 이르되 용화의 초회(初會)에 99억 성문(聲聞)을 제도하고 제2회에 96억 성문을 제도하고 제3회에 93억 성문을 제도한다. ▲현응음의22. 바라연(波羅延) 이르자면 서역의 고을 취락 이름이다. 아지다(阿氏多; 梵 aji ta) 미륵의 자(字)다. 혹은 아기다(阿嗜多)로 짓는다. 여기에선 이르되 무승(無勝)이니 이르자면 능히 이길 사람이 없음이다. 예전에 말한 아일다(阿逸多)는 그르다. ▲현응음의25. 매달리약(梅怛麗藥; 梵 Maitreya) 여기에선 이르되 자(慈)니 곧 예전에 이른 자씨(慈氏)란 것이다. 자(慈)에 두 인연이 있다. 1은 자불(慈佛)을 만나 발심함이며 2는 처음으로 자심삼매(慈心三昧)를 얻었음이니 인하여 이름했다. 미륵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매임리(梅任梨)라 이름(云)은 다 잘못이다.
●打下; 하(下)는 동작의 완성 혹 결과를 표시함.
●掠虛漢; 또 약허두한(掠虛頭漢)으로 지음. 략(掠)은 곧 약취(掠取)의 뜻이며 허(虛; 虛의 俗字)는 곧 허망하여 실답지 못함. 약허(掠虛)는 곧 겨우 타인의 언어의 표면의 행동을 모방함을 가리킴.
秀才訪師 稱會二十四家書 師以拄杖空中點一點曰 會麽 秀才罔措 師曰 又道會二十四家書 永字八法也不識 上堂 裂開也在我 揑聚也在我 時有僧問 如何是裂開 師曰 三九二十七 菩提涅槃 眞如解脫 卽心卽佛 我且與麽道 你又作麽生 曰 某甲不與麽道 師曰 盞子撲落地 碟子成七片 曰 如何是揑聚 師乃斂手而坐 問 敎意祖意是同是別 師曰 靑山自靑山 白雲自白雲 曰 如何是靑山 師曰 還我一滴雨來 曰 道不得 請師道 師曰 法華鋒前陣 涅槃句後收 問僧 今夏在甚麽處 曰 待和尙有住處卽說 師曰 狐非師子類 燈非日月明 問僧 甚處來 僧瞪目視之 師曰 驢前馬後漢 曰 請師鑒 師曰 驢前馬後漢 道將一句來 僧無對
●永字八法; 以永字一字 習得運筆八種法(側 勒 努 趯 策 掠 啄 磔)也 ▲祖庭事苑一 禁經云 八法起於隸字之始 自崔 張 鐘 王 傳授所用 墨道之最 不可不明也 隋僧智永 發其旨趣於虞世南 自茲傳授彰厥存焉 李陽冰云 昔逸少工書 遂歷多載 十五年中偏工永字 以其八法之勢 能通一切字也 八法者 永字八畫矣 一點爲側 二橫爲勒 三竪爲弩 四挑爲趯 五左上爲策 六下爲掠 七右上爲啄 八下爲磔
●撲落; 撲 傾覆 倒下
●碟子; 盛食物的小盤
●驢前馬後漢; 謂隨逐於驢馬前後之奴隸 禪宗用以指斥追從他人言行 而無自己獨特之機用者
수재(秀才)가 스님을 방문하여 일컫기를 이십사가서(二十四家書)를 안다 하였다. 스님이 주장자로써 공중에 1점을 점찍고 가로되 아느냐. 수재가 망조(罔措)했다. 사왈 또 이십사가서를 안다고 말해라, 영자팔법(永字八法)도 알지 못하는구나. 상당(上堂) 찢어 엶(裂開)도 나에게 있고 주워 모음(揑聚; 揑은 捏과 통함)도 나에게 있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찢어 엶입니까. 사왈 삼구는 이십칠이다. 보리와 열반이다. 진여와 해탈이다. 곧 마음이 곧 부처다. 나는 다만 이렇게(與麽) 말한다. 너는 또 어떠한가. 가로되 모갑은 이렇게(與麽)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왈 잔자(盞子; 잔. 자는 조사)가 땅에 거꾸로 떨어지매(撲落) 설자(碟子; 소반. 자는 조사)가 일곱 조각을 이룬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워 모음입니까. 스님이 이에 손을 거두고(斂手) 앉았다. 묻되 교의(敎意)와 조의(祖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청산은 스스로 청산이며 백운은 스스로 백운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청산입니까. 사왈 나에게 한 방울의 비(一滴雨)를 보내어 오너라. 가로되 말함을 얻지 못하니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법화(法華)는 봉전(鋒前)의 진(陣)이며 열반(涅槃)은 구후(句後)에 거둔다. 중에게 묻되 금년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가로되 화상이 주처(住處)가 있음을 기다렸다가 곧 말하겠습니다. 사왈 여우는 사자의 무리가 아니며 등(燈)은 일월(日月)의 밝음이 아니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중이 눈을 똑바로 뜨고(瞪目) 보았다. 사왈 여전마후한(驢前馬後漢)이로구나. 가로되 스님의 감별(鑒別)을 청합니다. 사왈 여전마후한아, 1구를 말해 가져오너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
●永字八法; 영자(永字) 1자로 운필의 8종법(側ㆍ勒ㆍ努ㆍ趯ㆍ策ㆍ掠ㆍ啄ㆍ磔)을 습득함. ▲조정사원1. 금경(禁經)에 이르되 8법(法)이 예자(隸字; 隸는 隸書 례)에서 일어나 시작되었나니 최(崔)ㆍ장(張)ㆍ종(鐘)ㆍ왕(王)으로부터 전수(傳授)하여 쓰이는 바며 묵도(墨道)의 으뜸인지라 밝히지 않음은 옳지 못하다. 수승(隋僧) 지영(智永; 왕희지의 7세손이라 함. 서예에 뛰어나 楷書 草書의 千字文이 전해 옴)이 우세남(虞世南)에게서 그 지취(旨趣)를 발명(發明)하여 이로부터 전수해 그것을 밝혀 현존한다. 이양빙(李陽冰; 唐의 서예가)이 이르되 옛적에 일소(逸少)가 서법(書法)을 공부(工夫)했는데 드디어 여러 해를 지났고 15년 중에 오로지 영자(永字)만 공부했다. 그 8법의 세력이 능히 일체 글자에 통하기 때문이다. 8법이란 것은 영자(永字)의 8획(畫)이다. 1은 점(點)이니 측(側)이 되고 2는 횡(橫)이니 늑(勒; 굴레 륵)이 되고 3은 수(竪)니 노(弩; 쇠뇌 노)가 되고 4는 도(挑; 돋울 도)니 적(趯; 뛸 적)이 되고 5는 좌상(左上)이니 책(策; 채찍 책. 지팡이 책)이 되고 6은 하(下)니 약(掠; 벨 략. 매질할 략)이 되고 7은 우상(右上)이니 탁(啄; 쪼을 탁)이 되고 8은 하(下)니 책(磔; 찢을 책. 가를 책)이 된다.
●撲落; 박(撲)은 경복(傾覆; 기울어져 엎어짐). 도하(倒下).
●碟子; 음식물을 담는 소반(小盤).
●驢前馬後漢; 이르자면 나귀나 말의 전후를 따라 쫓는 노예임. 선종에서 인용하여 타인의 언행을 추종하고 자기의 독특한 기용이 없는 자를 가리킴.
師看經次 陳操尙書問 和尙看甚麽經 師曰 金剛經 書曰 六朝翻譯 此當第幾 師擧起經曰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看經次 僧問 和尙看甚麽經 師曰 涅槃經 茶毗品最在後 問僧 今夏在甚處 曰 徑山 曰 這喫夜飯漢 曰 尊宿叢林 何言喫夜飯 師以棒趂出 師聞一老宿難親近 躬往相訪 纔入方丈 宿便喝 師側掌曰 兩重公案 宿曰 過在甚麽處 師曰 這野狐精 便退 問僧 近離甚處 曰 江西 師曰 踏破多少草鞋 僧無對 與講僧喫茶次 師曰 我救汝不得也 曰 某甲不曉 乞師垂示 師拈油餠曰 這箇是甚麽 曰 色法 師曰 這入鑊湯漢
●六朝翻譯; 朝 稱一姓帝王世代相繼的統治時代 亦稱某一個皇帝統治的時期 金剛經六朝翻譯
●喫夜飯漢; 形容無用之人
●兩重公案; 兩重 與二重二回同 於同一公案重新詮釋 又於一公案 再度提示某公案 若至三重 卽稱三重公案
스님이 간경(看經)하던 차에 진조상서(陳操尙書)가 묻되 화상은 무슨 경을 보십니까. 사왈 금강경이다. 상서가 가로되 육조번역(六朝翻譯)에 이것은 몇째(第幾)에 해당(該當; 當)합니까. 스님이 경을 들어 일으키고 가로되 일체의 유위법은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다. 간경(看經)하던 차에 승문(僧問) 화상은 무슨 경을 보십니까. 사왈 열반경이니 다비품(茶毗品)은 가장 뒤에 있다. 중에게 묻되 금년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가로되 경산(徑山)입니다. 가로되 이(這) 야반을 먹는 자야(喫夜飯漢). 가로되 존숙의 총림인데 왜 야반을 먹는다고 말씀합니까. 스님이 방으로 때리고(以棒) 쫓아내었다. 스님이, 1노숙이 친근하기 어렵다 함을 듣고 몸소 가서 상방(相訪)했다. 겨우 방장에 들어가자 노숙이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측장(側掌; 拳法의 掌型의 하나)하고 가로되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노숙이 가로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가. 사왈 이 야호정(野狐精)아, 바로 물러났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강서(江西)입니다. 사왈 다소(多少)의 짚신을 답파(踏破)했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강승(講僧)과 더불어 끽다(喫茶)하던 차에 사왈 내가 너를 구제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모갑이 깨닫지(曉) 못하오니 스님의 수시(垂示)를 걸구합니다. 스님이 유병(油餠)을 집으면서 가로되 이것이 이 무엇인가. 가로되 색법(色法)입니다. 사왈 이(這) 확탕(鑊湯)에 들어가는 자야.
●六朝翻譯; 조(朝)는 1성(姓) 제왕의 세대가 상계(相繼)하여 통치한 시대를 일컬음이며 또 모(某) 1개 황제가 통치한 시기를 일컬음. 금강경을 6조(朝)에서 번역했음.
●喫夜飯漢; 쓸모없는 사람을 형용함.
●兩重公案; 양중(兩重)은 2중(重)ㆍ2회(回)와 같음. 동일한 공안을 거듭 새로 전석(詮釋)함. 또 한 공안에 재도(再度; 재차) 어떤 공안을 제시함. 만약 3중에 이른다면 곧 명칭이 삼중공안.
紫衣大德到禮拜 師拈帽子帶問曰 這箇喚作甚麽 曰 朝天帽 師曰 恁麽則老僧不卸也 復問 所習何業 曰 唯識 師曰 作麽生說 曰 三界唯心 萬法唯識 師指門扇曰 這箇是甚麽 曰 是色法 師曰 簾前賜紫 對御譚經 何得不持五戒 德無對 問 某甲乍入叢林 乞師指示 師曰 你不解問 曰 和尙作麽生 師曰 放汝三十棒 自領出去 問 敎意請師提綱 師曰 但問將來 與你道 曰 請和尙道 師曰 佛殿裏燒香 三門頭合掌 問 如何是展演之言 師曰 量才補職 曰 如何是不展演之言 師曰 伏惟尙饗
●賜紫; 賜紫衣之略稱 古代朝廷敕賜臣下服章以朱紫爲貴 及於唐朝 乃仿此制 由朝廷敕賜紫袈裟授有功德之僧 以表榮貴 案大宋僧史略下 唐武則天時 法朗等重譯大雲經 陳符命之言 謂武則天乃彌勒下生 爲閻浮提主 唐氏合微 武則天爲此封法朗薛懷義等九人爲縣公 竝敕賜紫袈裟 此乃賜僧紫衣之始
●乍入; 乍 初也 纔也
●提綱; 亦曰提要 提唱 擧宗旨之要文而說明意義者
●三門頭; 三門邊 頭 後綴
●展演; 展開演暢
●伏惟尙饗; 尙 表示希冀 饗 接受酒食 歆饗
자의대덕(紫衣大德)이 이르러 예배했다. 스님이 모자대(帽子帶)를 집어 물어 가로되 이것(這箇)을 무엇이라고 불러 짓는가. 가로되 조천모(朝天帽)입니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노승이 내려놓지(卸) 않겠다. 다시 묻되 익힌 바는 무슨 업인가. 가로되 유식(唯識)입니다. 사왈 어떻게 설하는가. 가로되 삼계(三界)가 유심(唯心)이며 만법이 유식(唯識)입니다. 스님이 문선(門扇; 문짝)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것은(這箇) 이 무엇인가. 가로되 이 색법(色法)입니다. 사왈 염전(簾前)에서 사자(賜紫)하고 대어(對御)하여 담경(譚經)하면서 어찌 5계(戒)도 가지지 못함을 얻는가. 대덕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모갑은 총림에 사입(乍入)했습니다.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네가 물을 줄 알지 못하는구나.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너에게 30방 놓나니 스스로 영회(領會)하고 나가거라. 묻되 교의(敎意)를, 스님의 제강(提綱)을 청합니다. 사왈 단지 물어 가지고 오너라, 너에게 말해 주겠다. 가로되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불전 속에서 소향(燒香)하고 삼문두(三門頭)에서 합장한다. 묻되 무엇이 이 전연지언(展演之言)입니까. 사왈 재능을 헤아려 보직한다(量才補職). 가로되 무엇이 이 전연(展演)하지 않는 말입니까. 사왈 복유상향(伏惟尙饗).
●賜紫; 사자의(賜紫衣)의 약칭. 고대 조정에서 신하의 복장(服章)을 칙사(敕賜)하면서 주자(朱紫)를 존귀함으로 삼았음. 당조(唐朝)에 이르러 이에 이 제도를 본떠 조정을 말미암아 자가사(紫袈裟)를 칙사(敕賜)하여 공덕이 있는 승인에게 수여하여 영귀(榮貴)를 표시했음. 대송승사략하를 안험컨대 당 무측천(武則天) 때 법랑(法朗) 등이 대운경(大雲經)을 중역(重譯)하자 부명(符命; 하늘에서 제왕이 될 만한 사람에게 주는 상서로운 징조)의 말을 진술하되 이르기를 무측천은 곧 미륵이 하생하였으며 염부제(閻浮提)의 주(主)가 될 것이며 당씨(唐氏)는 합당히 미소(微小)하리라. 무측천이 이 때문에 법랑과 설회의 등 9인을 봉(封)해 현공(縣公)으로 삼고 아울러 자가사(紫袈裟)를 칙사했으니 이것이 곧 승인에게 자의(紫衣)를 줌의 시작이었음.
●乍入; 사(乍)는 초(初)임. 재(纔)임.
●提綱; 또한 가로되 제요(提要)ㆍ제창이니 종지의 요문(要文)을 들어 의의를 설명하는 것.
●三門頭; 삼문변(三門邊). 두는 후철.
●展演; 전개하여 연창(演暢)함.
●伏惟尙饗; 상(尙)은 희기(希冀; 바라다)를 표시함. 향(饗)은 주식(酒食)을 접수함임. 흠향(歆饗; 神明이 제물을 받음)임.
焦山借斧頭次 師呼童子取斧來 童取斧至曰 未有繩墨且斫麤 師便喝 又問童曰 作麽生是你斧頭 童遂作斫勢 師曰 斫你老爺頭不得 師問秀才 先輩治甚經 才曰 治易 師曰 易中道 百姓日用而不知 且道不知箇甚麽 才曰 不知其道 師曰 作麽生是道 才無對 僧問 一氣還轉得一大藏敎也無 師曰 有甚饆羅䭔子 快下將來 問 如何是一代時敎 師曰 上大人丘乙己 問 如何是禪 師曰 猛火著油煎 僧參 師曰 汝是新到否 曰 是 師曰 且放下葛藤 會麽 曰 不會 師曰 擔枷陳狀 自領出去 僧便出 師曰 來來 我實問你甚處來 曰 江西 師曰 泐潭和尙在汝背後 怕你亂道 見麽 僧無對 問 寺門前金剛 拓卽乾坤大地 不拓卽絲髮不逢時如何 師曰 吽吽 我不曾見此 師却問 先跳三千 倒退八百 你合作麽生 曰 諾 師曰 先責一紙罪狀好 便打 其僧擬出 師曰 來 我共你葛藤 拓卽乾坤大地 你且道洞庭湖水深多少 曰 不曾量度 師曰 洞庭湖又作麽生 曰 祇爲今時 師曰 祇這葛藤尙不會 便打
●繩墨; 匠人以繩墨治彼衆材 去曲留直 喩指法度準則
●易; 卽易經 又稱周易 相傳是周文王姬昌所作 內容包括經和傳兩個部分 經主要是六十四卦和三百八十四爻 卦和爻各有說明 卽卦辭和爻辭 作爲占卜之用 周易沒有提出陰陽與太極等槪念 講陰陽與太極的是被道家與陰陽家所影響的易傳 傳包含解釋卦辭和爻辭的七種文辭共十篇 統稱十翼 [百度百科]
●日用而不知; 易繫辭上 仁者見之謂之仁 知者見之謂之知 百姓日用而不知 故君子之道鮮矣
●饆羅䭔子; 又作饆饠䭔子; 饆 饆饠 古代的一種餠類食品 䭔 餠類食品 蜀人號烝餠爲䭔 子 助詞 饆饠䭔子 卽餠名
●上大人丘乙己; 具云 上大人丘乙己 化三千七十士 爾小生八九子 佳作仁可知禮也 現今解意紛紜 未有確信的定說 大慧書栲栳珠云 此孔子上其父書也 上大人(上 上書大人 謂叔梁紇) 丘(聖人名) 乙己化三千七十士爾(乙 一通 言一身所化士如許) 小生八九子佳(八九七十二也 言弟子三千中 七十二人更佳) 作仁(作猶爲也) 可知禮也(仁禮相爲用 言七十子善爲仁 其於禮可知)
●洞庭湖; 位於湖南省北部 中國最大湖水
초산(焦山)이 도끼(斧頭; 頭는 조사)를 빌리던 차에 스님이 동자(童子)를 불러 도끼를 취해 오라 했다. 동자가 도끼를 취해 이르러 가로되 승묵(繩墨)이 있지 않으면 또(且) 쪼갬(斫)이 거칠(麤) 것입니다. 스님이 바로 할(喝)하고 또 동자에게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너의 도끼(斧頭)인가. 동자가 드디어 쪼개는 자세를 지었다. 사왈 너의 노야(老爺; 父)의 머리를 쪼갬을 얻지 못했다. 스님이 수재(秀才)에게 묻되 선배(先輩)는 무슨 경(甚經)을 익혔는가(治). 수재가 가로되 역(易)을 익혔습니다. 사왈 역중(易中)에 말하되 백성이 일용하면서 알지 못한다(日用而不知). 그래 말하라, 저(箇) 무엇을 알지 못하느냐. 수재가 가로되 그 도를 알지 못합니다. 사왈 무엇이 이 도인가. 수재가 대답이 없었다. 중이 묻되 1기(氣)로 도리어 일대장교(一大藏敎)를 전득(轉得)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무슨 필라퇴자(饆羅鎚子)가 있느냐, 쾌하게 내려 가지고 오너라. 묻되 무엇이 이 일대시교(一代時敎)입니까. 사왈 상대인구을기(上大人丘乙己). 묻되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맹화(猛火)에 기름을 놓아 끓인다(著油煎). 중이 참(參)했다. 사왈 너는 이 신도(新到)인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사왈 다만(且) 갈등(葛藤)을 방하(放下)하라,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운 칼을 지고 백상(白狀)을 진술하고(擔枷陳狀) 스스로 영회(領會)하고 나가거라. 중이 바로 나가자 사왈 오너라, 오너라, 내가 실로 너에게 묻노니 어느 곳에서 왔느냐. 가로되 강서(江西)입니다. 사왈 늑담화상(泐潭和尙)이 너의 등 뒤에 있으면서 네가 어지럽게 말함을 두려워하나니 보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사원 문 앞의 금강(金剛; 금강신)이 받치면(拓) 곧 건곤대지(乾坤大地)지만 받치지 않으면 곧 사발(絲髮)도 만나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사운 후후(吽吽; 소의 울음) 내가 일찍이 이를 보지 못했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먼저 3천(三千; 3천 리)을 뛰고(跳) 거꾸로 8백을 물러나겠다. 네가 합당히 어떠한가. 가로되 낙(諾). 사왈 먼저 일지(一紙)의 죄상(罪狀)을 문책(問責)함이 좋겠다. 바로 때렸다. 그 중이 나가려고 하자 사왈 오너라 내가 너와 함께 갈등(葛藤)하겠다. 받치면(拓; 托起. 擧) 곧 건곤대지(乾坤大地)라 하니 네가 그래 말하라, 동정호(洞庭湖)의 물의 깊이가 얼마인가. 가로되 일찍이 양도(量度; 재다)하지 않았습니다. 사왈 동정호는 또 어떠한가. 가로되 다만(祇) 금시(今時)를 위합니다. 사왈 다만 이(這) 갈등도 오히려 알지 못하느냐. 바로 때렸다.
●繩墨; 장인(匠人)이 승묵(繩墨; 먹줄)으로 저 중재(衆材)를 다스려 굽은 것을 제거하고 곧은 것을 남김. 법도와 준칙(準則)을 비유로 가리킴.
●易; 곧 역경(易經)이니 또 명칭이 주역(周易)임. 서로 전하기를 이는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이 지은 것이라 함. 내용은 경(經)과 전(傳) 두 개 부분을 포괄함. 경의 주요(主要)는 이 64괘(卦)와 384효(爻)며 괘와 효에 각기 설명이 있으니 곧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며 점복(占卜)의 용도로 작성했음. 주역은 음양(陰陽)과 태극(太極) 등의 개념을 제출함이 있지 않음. 음양과 태극을 강설하는 것은 이는 도가(道家)와 음양가(陰陽家)의 처소에서 영향을 입은 역전(易傳)임. 전(傳)은 괘사와 효사를 해석한 7종의 문사(文辭)를 포함하여 공히 10편(篇)이니 통칭이 십익(十翼)임 [백도백과].
●日用而不知; 역 계사상(繫辭上) 인자(仁者)가 이를 보면 인(仁)이라고 이르고 지자(知者)가 이를보면 지(知)라고 이르나니 백성이 일용하면서 알지 못하므로(日用而不知) 고로 군자의 도가 적다.
●饆羅䭔子; 또 필라퇴자(饆饠䭔子)로 지음. 필(饆)은 필라(饆饠)니 고대의 일종의 떡 종류의 식품. 퇴(䭔)는 떡 종류의 식품이니 촉 사람은 증병(烝餠)을 호해 퇴라 함. 자는 조사. 필라퇴자는 곧 떡의 이름.
●上大人丘乙己; 갖추어 이르자면 상대인구을기(上大人丘乙己) 화삼천칠십사(化三千七十士) 이소생팔구자(爾小生八九子) 가작인가지례야(佳作仁可知禮也)임. 현금에 해의(解意)가 분운(紛紜)하여 확신적인 정설(定說)이 있지 않음. 대혜서고로주(大慧書栲栳珠; 일본 無著道忠 著)에 이르되 이는 공자가 그 아버지에게 올린 글이다. 상대인(上大人; 上은 대인에게 글을 올림이니 이르자면 叔梁紇임)하오니 구(丘; 聖人의 이름)가 을기화삼천칠십사이(乙己化三千七十士爾; 乙은 一과 통함. 말하자면 一身으로 교화한 바의 사내가 이와 같음)니다. 소생팔구자가(小生八九子佳; 八九는 七十二니 말하자면 제자 3천 중에 72인이 다시 아름답다)니 작인(作仁; 作은 爲와 같음)하여 가지례야(可知禮也; 仁과 禮를 서로 씀이 됨이니 말하자면 70의 제자가 잘 仁을 지어 그 禮를 가히 안다)이다.
●洞庭湖; 호남성 북부에 위치하는 중국 최대의 호수.
問 如何是觸途無滯底句 師曰 我不恁麽道 曰 師作麽生道 師曰 箭過西天十萬里 却向大唐國裏等候 看華嚴經次 僧問 看甚麽經 師曰 大光明雲 靑色光明雲 紫色光明雲 却指面前曰 那邊是甚麽雲 曰 南邊是黑雲 師曰 今日須有雨 問 以字不成 八字不是 是何章句 師彈指一聲曰 會麽 曰 不會 師曰 上來講讚無限勝因 蝦蟇𨁝跳上天 蚯蚓驀過東海 問僧 近離甚處 曰 河北 師曰 彼中有趙州和尙 你曾到否 曰 某甲近離彼中 師曰 趙州有何言句示徒 僧擧喫茶話 師乃呵呵大笑曰 慚愧 却問 趙州意作麽生 曰 祇是一期方便 師曰 苦哉 趙州被你將一杓屎潑了也 便打 師却問沙彌 你作麽生會 彌便設拜 師亦打 其僧往沙彌處問 適來和尙打你作甚麽 彌曰 若不是我 和尙不打某甲 新到參 方禮拜 師叱曰 闍黎因何偸常住果子喫 曰 學人纔到 和尙爲甚麽道偸果子 師曰 贓物見在 問僧 近離甚處 曰 仰山 師曰 五戒也不持 曰 某甲甚麽處是妄語 師曰 這裏不著沙彌 師臨終召門人曰 此處緣息 吾當逝矣 乃跏趺而寂 郡人以香薪焚之 舍利如雨 乃收靈骨 塑像于寺 壽九十八 臘七十六
●等候; 等待 字彙 等 候待也
●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又稱雜華經 有三種 (一)六十華嚴 凡六十卷 東晉佛馱跋陀羅譯 又稱舊華嚴 晉經 總成七處八會三十四品 據出三藏記集九 華嚴經探玄記一等所擧 華嚴經之梵本 原有十萬偈 由東晉支法領從于闐國攜入三萬六千偈 自安帝義熙十四年(418)三月 由佛馱跋陀羅譯成六十卷 稱爲六十華嚴 此卽第一譯 然六十華嚴中之入法界品尙有缺文 直至唐永隆元年(680) 始補譯之 (二)八十華嚴 凡八十卷 唐代實叉難陀譯 又稱新華嚴 唐經 總成七處九會三十九品 爲六十華嚴之異譯 八十華嚴之梵本 乃實叉難陀應武則天之請 從于闐國攜入中華 自唐武則天證聖元年(695)三月 於遍空寺內始譯 武后親臨譯場 揮毫首題品名 至聖曆二年(699)十月功畢 此卽第二譯 本經之西藏譯本 總成四十五品 其中 前四十四品相當於本經之前三十八品 第四十五品相當於本經第三十九入法界品 (三)四十華嚴 凡四十卷 唐代般若譯 全稱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略稱普賢行願品 又稱貞元經 爲新舊兩譯華嚴經入法界品之別譯 唐德宗貞元十一年(795)十一月 由南天竺烏荼國師子王派使者進貢其所親寫華嚴經之梵本 翌年六月 於長安崇福寺 由罽賓般若三藏譯之 澄觀及圓照鑑虛等諸師詳定 至貞元十四年二月譯畢 共四十卷 此卽四十華嚴 ▲宗統編年五 祖(十四祖龍樹) 入龍宮看藏見華嚴經有三本 上本 十三世界微塵數偈 一四天下微塵數品 中本四十九萬八千八百偈 一千二百品 下本十萬偈 四十八品 上本非佛不能知 中本惟住地菩薩乃能知之 遂記下本回歸西土 傳至東震 僅八十卷三十九品 乃前分三萬六千偈 尙有六萬四千偈九品在西土
●以字不成; 祖庭事苑一 以字 以字不成 其說有三 一謂是嘔啊二字 二謂是音字不譯 三謂是梵書心字 竝指經籤題上以字也 嘔啊者 淸凉疏主云 經首立如是 謂異外道故 外道經首皆立嘔啊 或云阿優 以爲吉 阿之言無 優之言有 萬法雖衆 不出有無 此則斷常之計 今如卽眞如是 卽妙有對破邪宗 以彰中道 一代時敎 不出如是二字 高僧傳有譯經新意六例 一譯字譯音例 內分四 一譯字不譯音 謂陀羅尼 二譯音不譯字 謂佛胸前卍字 三音字俱譯 謂經律論 四音字俱不譯 謂經題以字 所謂嘔啊 經首如是我聞 卽不在經外籤題之上 所謂音字俱不譯 未詳起自於誰 考其二說 似乎無稽 或者妄指爲梵書心字 梵本且無此說 尤謬 愚嘗過興國之傳法院 竊取西竺貝葉眞書 考之其未譯之書 經題尙且未立 何有以字之文 蓋自古習謬 妄爲其說 先聖法門不在斯焉 或問經首以形自何而得 蓋當時傭書者 運筆以覆經題 固無疑矣 然宗匠假此以接來學 豈知識擬議哉
●講讚; 講演讚嘆
●常住; 一長久存在 永恒 二寺院 寺廟 此指二
묻되 무엇이 이 촉도(觸途)하여 막힘(滯)이 없는 구(句)입니까. 사왈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다. 가로되 스님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사왈 화살이 서천(西天)을 지나 10만 리더니 도리어 대당국 속을 향해 등후(等候)한다. 화엄경(華嚴經)을 보던 차에 승문(僧問) 무슨 경을 보십니까. 사왈 대광명운(大光明雲), 청색광명운(靑色光明雲), 자색광명운(紫色光明雲)이다. 도리어 면전(面前)을 가리키며 가로되 나변(那邊; 저쪽 가)은 이 무슨 구름인가. 가로되 남변(南邊)은 이 흑운(黑雲)입니다. 사왈 금일 꼭 비가 있겠다. 묻되 이자를 이루지 못하고(以字不成) 팔자도 이것이 아니니(八字不是) 이 무슨 장구(章句)입니까. 스님이 1성(聲)을 탄지(彈指)하고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상래(上來; 방금. 以上)의 강찬(講讚)은 무한한 승인(勝因)이다. 하마(蝦蟇; 두꺼비)는 펄쩍 뛰어(𨁝跳) 하늘에 오르고 구인(蚯蚓; 지렁이)은 갑자기 동해를 지나간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하북(河北)입니다. 사왈 그 가운데 조주화상(趙州和尙)이 있는데 네가 일찍이 이르렀는가. 가로되 모갑이 요사이 그 가운데를 떠났습니다. 사왈 조주화상이 어떤 언구가 있어 도중(徒衆)에게 보이던가. 중이 끽다화(喫茶話)를 들었다. 스님이 이에 하하(呵呵)하며 대소(大笑)하고 가로되 부끄럽구나(慚愧). 도리어 묻되 조주의 뜻이 무엇인가. 가로되 다만 이 일기(一期)의 방편입니다. 사왈 괴롭구나(苦哉), 조주가, 네가 한 구기(杓)의 똥을 가져다 뿌려버림(潑了)을 입었다. 바로 때렸다. 스님이 도리어 사미(沙彌)에게 묻되 너는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사미가 바로 예배를 베풀었다. 스님이 또한 때렸다. 그 중이 사미의 처소로 가서 묻되 아까 화상이 너를 때린 것은 무엇을 지은 것인가. 사미가 가로되 만약 이 내가 아니었다면 화상이 모갑을 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도(新到)가 참(參)하여 바야흐로 예배하는데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사리(闍黎)는 무엇 때문에 상주(常住)의 과자(果子)를 훔쳐 먹었는가. 가로되 학인이 겨우 이르렀거늘 화상이 무엇 때문에 과자를 훔쳤다고 말합니까. 사왈 장물(贓物)이 현재(見在)한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가로되 앙산(仰山)입니다. 사왈 5계(戒)도 가지지 못하느냐. 가로되 모갑의 어느 곳이 이 망어(妄語)입니까. 사왈 이 속에선 사미(沙彌)를 붙이지 않는다. 스님이 임종(臨終)에 문인(門人)을 불러 가로되 이곳의 인연을 쉬고 내가 마땅히 가겠다(逝矣). 이에 가부(跏趺)하고 적(寂; 입적)했다. 군인(郡人)이 향신(香薪)으로써 태웠는데 사리(舍利)가 비 내리 듯하였다. 이에 영골(靈骨)을 거두어 사원에 소상(塑像)했다. 나이는 98이며 납은 76이다.
●等候; 등대(等待). 자휘 등(等) 후대(候待)다.
●華嚴經; 대방광불화엄경이니 또 명칭이 잡화경(雜華經)임. 3종이 있음. (1). 육십화엄(六十華嚴) 무릇 60권이며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구화엄(舊華嚴)ㆍ진경(晉經)이니 총(總) 7처8회(七處八會) 34품(品)으로 이루어졌음. 출삼장기집9ㆍ화엄경탐현기1 등에서 든 바에 의거하면 화엄경의 범본(梵本)은 원래 10만 게가 있고 동진 지법령(支法領)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3만6천 게를 휴입(攜入)함으로 말미암아 안제(安帝) 의희(義熙) 14년(418) 3월로부터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60권을 역성(譯成)했기 때문에 일컬어 60화엄(華嚴)이라 했으니 이것이 곧 제1역(譯)임. 그러나 60화엄 중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오히려 결문(缺文)이 있었고 바로 당 영륭(永隆) 원년(680)에 이르러 비로소 보역(補譯)했음. (2). 팔십화엄(八十華嚴) 무릇 80권이며 당대(唐代)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신화엄(新華嚴)ㆍ당경(唐經)이며 총(總) 7처9회(七處九會) 39품(品)으로 이루어졌으니 60화엄의 이역(異譯)이 됨. 80화엄의 범본은 곧 실타난타가 무측천(武則天)의 요청에 응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중화로 휴입(攜入)했음. 당 무측천 증성(證聖) 원년(695) 3월로부터 편공사(遍空寺) 안에서 처음 번역했고 무후(武后)가 역장(譯場)에 친림해 수제(首題)의 품명(品名)을 휘호(揮毫)했음. 성력 2년(699) 10월에 이르러 공(功)을 마쳤으니 이것이 곧 제2역(譯)임. 본경의 서장역본(西藏譯本)은 총(總) 45품으로 이루어졌고 그 중 전(前) 44품은 본경의 전 38품에 상당하고 제45품은 본경의 제39 입법계품에 상당함. (3). 사십화엄(四十華嚴) 무릇 40권이며 당대(唐代) 반야(般若)가 번역했음. 전칭(全稱)이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며 약칭이 보현행원품이며 또 명칭이 정원경(貞元經)임. 신구(新舊) 양역(兩譯) 화엄경의 입법계품의 별역(別譯)임. 당 덕종(德宗) 정원(貞元) 11년(795) 11월 남천축 오다국(烏荼國) 사자왕(師子王)이 사자를 파견해 그가 친사(親寫)한 바 화엄경의 범본을 진공(進貢)했기 때문에 다음해 6월 장안 숭복사(崇福寺)에서 계빈(罽賓; 계빈국) 반야삼장(般若三藏)이 그것을 번역함으로 말미암아 징관(澄觀) 및 원조감허(圓照鑑虛) 등 여러 스님이 상정(詳定)했고 정원(貞元) 14년 2월에 번역을 마쳤음. 공히 40권이며 이것이 곧 40화엄임. ▲종통편년5. 조(14조 龍樹)가 용궁에 들어가 장경을 보는데 화엄경(華嚴經)이 3본(本)이 있음을 보았다. 상본(上本)은 십삼세계(十三世界; 10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게(微塵數偈)며 1사천하(四天下)의 미진수품(微塵數品)이었고 중본(中本)은 49만8천8백 게며 1천2백 품(品)이었고 하본(下本)은 10만 게며 48품이었다. 상본은 부처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고 중본은 오직 주지보살(住地菩薩; 10地의 位에 住하는 보살)이라야 이에 능히 그것을 알겠는지라 드디어 하본을 기(記)하여 서토(西土)로 회귀했다. 전(傳)하여 동진(東震)에 이른 것은 겨우 80권 39품이니 곧 전분(前分)의 3만6천 게라, 오히려 6만4천 게 9품이 있어 서토에 있다.
●以字不成; 조정사원1. 이자(以字) 이자(以字)를 이루지 못함이란 그 설에 셋이 있다. 1은 이르자면 이 우아(嘔啊) 2자며 2는 이르자면 이 음자(音字)를 번역하지 않음이며 3은 이르자면 이 범서(梵書)의 심자(心字)니 모두 경첨제상(經籤題上; 籤은 찌 붙일 첨)의 이자(以字)를 가리킴이다. 우아(嘔啊)란 것은 청량소주(淸凉疏主; 澄觀)가 이르되 경수(經首)에 여시(如是)를 세움은 이르자면 외도와 다른 연고다. 외도의 경수엔 다 우아(嘔啊)를 세우거나 혹은 이르되 아우(阿優)라 하여 길(吉)로 삼는다. 아(阿)는 무(無)를 말함이며 우(優)는 유(有)를 말함이니 만법이 비록 많으나 유무를 벗어나지 않는다 함이니 이는 곧 단상(斷常)의 계교(計巧)다. 지금의 여(如)는 곧 진여(眞如)가 이것이니 곧 묘유(妙有)로 사종(邪宗)을 대파(對破)하고 중도를 밝힘이니 일대시교(一代時敎)가 여시(如是) 2자를 벗어나지 않는다(阿는 無를 말함이며 以下는 화엄경소4에 나옴). 고승전(高僧傳; 宋高僧傳) 역경(譯經)의 신의(新意)가 6례(例)가 있다. 1은 역자역음례(譯字譯音例)며 안에 넷으로 나눈다. 1은 자(字)를 번역하나 음(音)을 번역하지 않음이니 이르자면 다라니(陀羅尼)다. 2는 음을 번역하나 자를 번역하지 않음이니 이르자면 부처의 가슴 앞 만자(卍字)다. 3은 음과 자를 다 번역함이니 이르자면 경률론(經律論)이다. 4는 음과 자를 다 번역하지 않음이니 이르자면 경제(經題)의 이자(以字)다(譯經의 新意 以下의 文은 송고승전3에 나옴). 이른 바 우아(嘔啊)나 경수(經首)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곧 경 밖의 첨제(籤題)의 위에 있지 않거늘 이른 바 음과 자를 다 번역치 않는다 함은 누구로부터 일어났는지 상고(詳考)치 못했다. 그 2설을 고찰(考察)하건대 계고(稽考)가 없는 듯하다. 어떤 자는 망령되이 범서(梵書)의 심자(心字)를 가리킴이라 하거니와 범본(梵本)에 또 이 설이 없으니 더 오류다. 우(愚; 謙辭)가 일찍이 흥국(興國)의 전법원(傳法院)을 지나다가 가만히 서축(西竺)의 패엽(貝葉) 진서(眞書)를 취해 그 번역하지 않은 책을 고찰하니 경제(經題)도 오히려 세우지 않았거늘 어찌 이자(以字)의 글이 있으랴. 대개 자고로 오류를 익혀 망령되이 그 설을 지었으리니 선성(先聖)의 법문이 이에 있지 않다. 혹 묻되 경수(經首)의 이형(以形)을 어디로부터 얻었는가 한다면 대개 당시의 용서자(傭書者; 글을 쓰는 고용인)가 운필(運筆)하면서 경제(經題)에 덮어씌웠음이 진실로 의심 없다 하리라. 그러나 종장(宗匠)이 이를 가차(假借)하여 내학(來學)을 접인(接引)하매 어찌 지식(知識)으로 의의(擬議; 추측하여 의논함)하리오.
●講讚; 강연과 찬탄.
●常住; 1. 장구하게 존재함. 영항(永恒; 끝없이 오램). 2. 사원(寺院). 사묘(寺廟). 여기에선 2를 가리킴.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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