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3 무업선사(無業禪師)-거사 방온(龐蘊)

태화당 2025. 10. 6. 10:26

汾州無業禪師

商州上洛杜氏子 母李氏聞空中言 寄居得否 乃覺有娠 誕生之夕 神光滿室 甫及丱歲 行必直視 坐卽跏趺 九歲依開元寺志本禪師受大乘經 五行俱下 諷誦無遺 十二落髮 二十受具戒於襄州幽律師 習四分律疏 纔終便能敷演 每爲衆僧講涅槃大部 冬夏無廢 後聞馬大師禪門鼎盛 特往瞻禮 祖覩其狀貌奇偉 語音如鐘 乃曰 巍巍佛堂 其中無佛 師禮跪而問曰 三乘文學 粗窮其旨 常聞禪門卽心是佛 實未能了 祖曰 祇未了底心卽是 更無別物 師曰 如何是祖師西來密傳心印 祖曰 大德正閙在 且去 別時來 師纔出 祖召曰 大德 師回首 祖曰 是甚麽 師便領悟 乃禮拜 祖曰 這鈍漢禮拜作麽雲居錫云 甚麽處是汾州正閙 自得旨後 詣曹溪禮祖塔 及廬嶽天台 徧尋聖迹 後住開元精舍 學者致問 多答之曰 莫妄想 唐憲宗屢召 師皆辭疾不赴 暨穆宗卽位 思一瞻禮 乃命兩街僧錄靈阜等齎詔迎請 至彼作禮曰 皇上此度恩旨 不同常時 願和尙且順天心 不可言疾也 師微笑曰 貧道何德 累煩世王 且請前行 吾從別道去矣 乃澡身剃髮 至中夜告弟子惠愔等曰 汝等見聞覺知之性 與太虛同壽 不生不滅 一切境界 本自空寂 無一法可得 迷者不了 卽爲境惑 一爲境惑 流轉不窮 汝等當知 心性本自有之 非因造作 猶如金剛不可破壞 一切諸法 如影如響 無有實者 經云 唯此一事實 餘二則非眞 常了一切空 無一物當情 是諸佛用心處 汝等勤而行之 言訖跏趺而逝 荼毗日 祥雲五色 異香四徹 所獲舍利璨若珠玉 弟子等貯以金缾 塟于石塔 當長慶三年 諡大達國師

汾州; 今山西省汾陽

商州; 今陝西商縣

四分律; 四律之一 六十卷 五部中曇無德部之律藏也 姚秦佛陀耶舍 竺佛念共譯 收於大正藏第二十二冊 佛滅後百年 法正尊者(又曰法護尊者 梵名曇無德)於上座部之律藏中契同己見者 采集成文 隨說所止 而爲一分 四度完結 故稱爲四分律 蓋四分之名 非依義而判段章之名 乃四度結集之 分之爲四夾 故名四分也 初分二十卷 二分十五卷 三分十四卷 四分十一卷

鼎盛; 正當興旺發達或强壯 鼎 相當于正 正當

辭疾; 猶辭病 以身體有病爲由 辭讓不就某種職務或不做某件事

僧錄; 掌理登錄僧尼名籍與僧官補任等事宜之僧職 推行此類職務之官署則稱僧錄司 大宋僧史略中 至文宗開成(836-840)中 始立左右街僧錄 尋其人卽端甫法師也 …… 由此觀之 僧錄之起 自端甫也 甫公文宗開成中卒 開成後則雲端爲僧錄也 …… 所言錄者 有晉宋錄 錄其經法傍敎傳翻譯人物等事 故魏詔曰 近得錄公等表 錄公乃是僧曹總錄 猶言錄事也 僞秦始立僧正 則以法欽慧斌二人 掌僧錄也

 

분주(汾州) 무업선사(無業禪師)

상주(商州) 상락(上洛) 두씨(杜氏)의 아들이다. 모친 이씨가 공중에서 말하되 기거(寄居)함을 얻겠습니까 함을 들었고 이에 깨자(; 음이 교) 임신(妊娠)이 있었다. 탄생하던 저녁에 신광(神光)이 만실(滿室)했고 겨우() 관세(丱歲; 童年)에 이르자 다니면() 반드시 직시(直視)하고 앉으면() 곧 가부(跏趺)했다. 9세에 개원사(開元寺) 지본선사(志本禪師)에게 의지해 대승경을 수업(受業; )했는데 5()함께 내리읽었고(俱下) 풍송(諷誦)하면서 유실(遺失)함이 없었다. 12에 낙발(落髮)하고 20에 양주(襄州) 유율사(幽律師)에게서 구계(具戒)를 받았고 사분율소(四分律)를 학습했는데 겨우 마치자 바로 능히 부연(敷演)했다. 매번 중승(衆僧)을 위해 열반대부(涅槃大部)를 강설했고 동하(冬夏)에 폐()함이 없었다. 후에 마대사(馬大師)의 선문(禪門)이 정성(鼎盛)함을 듣고 특별히 가서 첨례(瞻禮)했다. 마조가 그의 상모(狀貌)를 보매() 기위(奇偉; 奇特하고 怪異)하고 어음(語音)이 종()과 같았다. 이에 가로되 외외(巍巍)한 불당(佛堂)이지만 그 가운데 부처가 없구나. 스님이 예궤(禮跪)하고 물어 가로되 3()의 문학(文學)은 대강() 그 지취(旨趣)를 궁구했습니다만 늘 듣건대 선문에선 곧 마음이 이 부처(卽心是佛)라고 하니 실로 능히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마조가 가로되(祖曰) 다만 깨닫지 못한다는 마음이 곧 이것이라 다시 다른 물건이 없다. 사왈 무엇이 이 조사가 서래(西來)하여 밀전(密傳)한 심인(心印)입니까. 조왈(祖曰) 대덕(大德)이 정요(正鬧; 바로 시끄럽다)하여 있으니 다만 가고 다른 때 오너라. 스님이 겨우 나가자 마조가 불러 가로되 대덕(大德). 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조왈(祖曰) 이 뭣고(是甚麽). 스님이 바로 영오(領悟)하고 이에 예배했다. 조왈(祖曰) () 둔한(鈍漢)아 예배하여 무엇하리오(作麽)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汾州(無業)正閙인가. 득지(得旨)함으로부터 조계(曹谿)로 나아가() 조탑(祖塔)에 예배하고 여악(廬嶽; 廬山)과 천태(天台)에 이르러() 성적(聖迹)을 두루 찾았다. 후에 개원정사(開元精舍)에 주()했다. 학자가 치문(致問; 질문하다)하면 다분히 그에 답해 가로되 망상하지 말아라(莫妄想). 당헌종(唐憲宗)이 여러번() 불렀으나 스님이 모두 사질(辭疾)하며 다다르지 않았다. 목종(穆宗)이 즉위함에 이르러() 한 번 첨례(瞻禮)함을 사유하고 이에 양가승록(兩街僧錄) 영부(靈阜) 등에게 명()하여 조서를 가지고(齎詔) 영청(迎請)하게 했다. 거기에 이르러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황상(皇上)이 이번(此度)엔 은지(恩旨)가 상시(常時)와 같지 않습니다. 원컨대 화상이 다만() 천심(天心; 천자의 마음)에 순()하고 가히 질병을 말하지 마십시오. 스님이 미소하며 가로되 빈도(貧道)가 무슨 덕으로 세주(世主; 國君)를 여러번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차청(且請)하노니 먼저 가신다면 내가 다른 길로 좇아 가겠습니다. 이에 몸을 씻고 머리카락을 깎고 중야(中夜)에 이르러 제자 혜음(惠愔) 등에게 고해 가로되 너희 등의 견문각지지성(見聞覺知之性)은 태허(太虛; 허공)와 더불어 동수(同壽)라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일체의 경계가 본래 스스로 공적(空寂)하여 1법도 가히 얻음이 없다. 미자(迷者)가 깨닫지 못해(不了) 곧 경계에 미혹하나니 한번() 경계에 미혹하면 유전(流轉)하며 다하지() 않는다. 너희 등이 당지(當知)하라, 심성(心性)은 본래 스스로 그것을 가진지라 조작을 인하지 않나니 마치 금강과 같아서 가히 파괴되지 않는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이 영상(影像) 같고 음향 같아서 실다운 것이 있지 않나니 경(법화경)에 이르되 오직 이() 일사만 실이며 나머지 둘은 곧 진이 아니다(唯此一事實 餘二卽非眞). 늘 일체공(一切空)을 깨달으면 1()도 당정(當情)함이 없나니 이것이 제불의 용심처(用心處). 너희 등은 부지런히 이를 행하라. 말을 마치자 가부(跏趺)하고 떠났다(). 다비일(荼毗日)에 상운(祥雲)이 오색(五色)이며 이향(異香)이 사방으로 사무쳤다(四徹). 획득한 바 사리(舍利)는 빛남()이 주옥(珠玉)와 같았고 제자 등이 금병(金缾)을 써서() 저장(貯藏)했다가 석탑(石塔)에 안장(安塟)했다. 장경(長慶) 3(823)에 당()했고 시()가 대달국사(大達國師).

汾州; 지금의 산서성 분양(汾陽).

商州; 지금의 섬서(陝西) 상현(商縣).

四分律; 4()의 하나. 60. 5() 중 담무덕부(曇無德部)의 율장임. 요진(姚秦)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념(竺佛念)이 공역(共譯)했으며 대정장 제22책에 수록되었음. 불멸후 백 년에 법정존자(法正尊者; 또 가로되 法護尊者梵名曇無德)가 상좌부의 율장 중에서 자기의 견해와 계합하여 같은 것을 채집하여 문서를 이루었는데 수설(隨說)하여 그치는 바로 1()을 삼았고 4차례에 완결한지라 고로 명칭이 사분율이 됨. 대개 사분의 이름은 뜻에 의해 단장(段章)을 판단한 이름이 아니라 곧 4차례 그것을 결집해 그것을 나누어 4(; 夾子)으로 삼은지라 고로 이름이 사분임. 초분은 20권이며 2분은 15권이며 3분은 14권이며 4분은 11권임.

鼎盛; 바로() 흥왕(興旺)하여 발달하거나 혹 강장(强壯)함에 당(). ()은 정()ㆍ정당(正當; 어떤 시기나 계급에 처해 있음)에 상당함.

辭疾; 사병(辭病)과 같음. 신체에 질병이 있음을 사유로 삼아 사양(辭讓)하며 모종(某種)의 직무에 나아가지 않거나 혹 모건(某件)의 일을 짓지 않음.

僧錄; 승니의 명적(名籍)을 등록함과 승관(僧官)의 보임(補任) 등 사의(事宜)를 장리(掌理; 관장하여 관리)하는 승직. 이런 종류의 직무를 추행(推行; 추진하며 실행)한 관서를 곧 일컬어 승록사(僧錄司)라 했음. 대송승사략중 문종 개성(836-840) 중에 이르러 비로소 좌우승록사(左右街僧錄)를 세웠다. 그 사람을 심멱(尋覓)하니 곧 단보법사(端甫法師)였다 …… 이로 말미암아 관찰하니 승록의 일어남은 단보로부터이다. 보공(甫公)은 문종 개성(開成) 중에 졸()했다. 개성 후는 곧 운단(雲端)이 승록이 되었다 …… 말한 바 록()이란 것은 진송록(晉宋錄)이 있으니 그 경법(經法)의 방교(傍敎)와 전번역(傳翻譯)한 인물 등의 일을 기록함이다. 고로 위조(魏詔)에 가로되 최근에 녹공(錄公) 등의 표를 얻었다 했는데 녹공은 곧 이 승조(僧曹)의 총록(總錄)이니 녹사(錄事)라고 말함과 같다. 위진(僞秦)에서 처음으로 승정(僧正)을 세웠으며 곧 법흠(法欽)과 혜빈(慧斌) 2인이 승록을 관장했다.

 

澧州大同廣澄禪師

僧問 如何得六根滅去 師曰 輪劒擲空 無傷於物 問 如何是本來人 師曰 共坐不相識 曰 恁麽則學人禮謝去也 師曰 暗寫愁腸寄與誰

輪劒; 傳說爲大禹所用 其形如梭 劍端鋒利無比 劍柄左右各有一輪 象徵日月 此神器於山海經 月經與日經(合稱日月經)中皆有記載 [百度百科]

本來人; 與本來身本來面目同義 指吾人本來淸淨之自性

 

예주(澧州) 대동광징(大同廣澄) 선사

승문(僧問) 어찌해야 6()이 없어짐()을 얻습니까. 사왈 윤검(輪劒)을 허공()에 던지면 물건을 손상함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본래인(本來人)입니까. 사왈 함께 앉았어도 서로 알지 못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학인이 예사(禮謝)하고 가겠습니다. 사왈 몰래() 수장(愁腸)을 서사(書寫)해 누구에게 기여(寄與)해야 하나.

輪劒; 전설에 대우(大禹)가 썼던 것이라 함. 그 형상(形狀)은 사(; )와 같으며 검단(劍端)의 봉망(鋒鋩)의 예리함이 비할 게 없으며 검병(劍柄) 좌우에 각기 1()이 있어 일월(日月)을 상징함. 이 신기(神器)는 산해경(山海經)ㆍ월경(月經)과 일경(日經)(合稱日月經) 중에 모두 기재(記載)가 있음 [백도백과].

本來人; 본래신(本來身)ㆍ본래면목과 같은 뜻. 우리 사람의 본래 청정한 자성을 가리킴.

 

信州鵝湖大義禪師

衢州須江徐氏子 唐憲宗嘗詔入內 於麟德殿論義 有法師問 如何是四諦 師曰 聖上一帝 三帝何在 又問 欲界無禪 禪居色界 此土憑何而立禪 師曰 法師祇知欲界無禪 不知禪界無欲 曰 如何是禪 師以手點空 法師無對 帝曰 法師講無窮經論 祇這一點 尙不柰何 師却問諸碩德曰 行住坐臥 畢竟以何爲道 有對 知者是道 師曰 不可以智知 不可以識識 安得知者是乎 有對 無分別者是 師曰 善能分別諸法相 於第一義而不動 安得無分別是乎 有對 四禪八定是 師曰 佛身無爲 不墮諸數 安在四禪八定邪 衆皆杜口 師却擧 順宗問尸利禪師 大地衆生如何得見性成佛 利曰 佛性猶如水中月 可見不可取 因謂帝曰 佛性非見必見 水中月如何攫取 帝乃問 何者是佛性 師對曰 不離陛下所問 帝默契眞宗 益加欽重 有一僧乞置塔 李翱尙書問曰 敎中不許將屍塔下過 又作麽生 僧無對 僧卻問師 師曰 他得大闡提 元和十三年歸寂 諡慧覺禪師

麟德殿; 大明宮的國宴廳也 是大明宮中最主要的宮殿之一 建於唐高宗麟德年間(664-665) 毀於唐僖宗光啓年間(886) [百度百科]

四禪八定; 四禪 又作四靜慮 色界定 卽色界天之四禪 色界天之四禪與無色界天之四無色定 合之而成八定 故知八定包含四禪 四與八竝擧者 蓋色界與無色界相對 則在色界爲禪 在無色界爲定 [瑜伽師地論十一 摩訶止觀九]

 

신주(信州) 아호대의(鵝湖大義) 선사

구주(衢州; 지금의 절강성 衢州) 수강(須江) 서씨(徐氏)의 아들이다. 당헌종(唐憲宗)이 일찍이 불러() 대내(大內)에 들어 인덕전(麟德殿)에서 논의(論議)하게 했다. 법사(法師)가 있어 묻되 무엇이 이 4()입니까. 사왈 성상(聖上)1()시니 3()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 묻되 욕계(欲界)엔 선()이 없고 선은 색계(色界)에 거처합니다. 차토(此土)에서 무엇에 의빙해 선()을 세웁니까. 사왈 법사는 다만 욕계에 선()이 없는 줄 만 알고 선계(禪界)에 욕()이 없는 줄 알지 못합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선입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허공에 점 찍었다. 법사가 대답이 없었다. 제왈(帝曰) 법사는 무궁한 경론을 강설하거늘 다만 이() 1점도 오히려 어찌하지 못합니까(不奈何). 스님이 도리어 여러 석덕(碩德)에게 물어 가로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필경 무엇으로써 도를 삼습니까. 어떤 이가 대답하되 아는 것(知者)이 이 도입니다. 사왈(師曰) 가히 지()로써 알지() 못하고 가히 식()으로써 알지() 못하거늘 어찌 아는 것이 이것이라 함을 얻으리오. 어떤 이가 대답하되 분별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왈 잘 능히 모든 법상(法相)을 분별하더라도 제1()엔 움직이지 않거늘 어찌 분별 없음이 이것이라 함을 얻으리오. 어떤 이가 대답하되 사선팔정(四禪八定)이 이 것입니다. 사왈 불신(佛身)은 무위(無爲)라 제수(諸數)에 떨어지지 않거늘 어찌 사선팔정에 있겠습니까. 대중이 입을 닫았다(杜口). 스님이 도리어 들되 순종(順宗)이 시리선사(尸利禪師)에게 묻되 대지(大地)의 중생이 어찌해야 견성성불(見性成佛)함을 얻겠습니까. 시리(尸利)가 가로되 불성은 마치 수중(水中)의 달과 같아서 가히 보기는 하지만 가히 취하지 못합니다. 인하여 황제에게 일러 가로되 불성은 보지 못하지만 반드시() 보거니와 수중의 달을 어떻게 확취(攫取; 움켜 취하다)합니까. 황제가 이에 묻되 어느 것(何者)이 이 불성입니까. 스님이 대답해 가로되 폐하(陛下)의 묻는 바를 여의지 않습니다. 황제가 진종(眞宗)에 묵계(默契)했고 더욱() 흠중(欽重)을 더했다. 1()이 있어 치탑(置塔; 탑을 설치하다)을 구걸하자 이고(李翱) 상서(尙書)가 물어 가로되 교중(敎中)에 시체를 가지고 탑 아래로 지나감을 허락하지 않았음은 또 어떻습니까. 중이 대답이 없었다. 중이 도리어 스님에게 묻자 사왈 그는 대천제(大闡提)를 얻었다. 원화(元和) 13(818) 귀적(歸寂)했고 시()가 혜각선사(慧覺禪師).

麟德殿; 대명궁(大明宮)의 국연청(國宴廳). 이는 대명궁 중 가장 주요한 궁전의 하나. 당 고종 인덕년 간(664-665)에 건립했고 당 희종 광계년 간(886)에 헐어졌음 [백도백과].

四禪八定; 4()은 또 4정려(靜慮)ㆍ색계정(色界定)으로 지음. 곧 색계천의 4선이니 색계천의 4선과 무색계천의 4무색정(無色定)을 합하면 8()을 이루는지라 고로 8정은 4선을 포함하며 48을 함께 든 것임을 앎. 대개 색계와 무색계가 상대하나니 곧 색계에 있으면 선()이 되고 무색계에 있으면 정()이 됨 [유가사지론11. 마하지관9].

 

伊闕伏牛山自在禪師

吳興李氏子 初依國一禪師受具 後參馬祖發明心地 祖令送書與忠國師 國師曰 馬大師以何法示徒 曰 卽心卽佛 國師曰 是甚麽語話 良久又問曰 此外更有何言敎 師曰 非心非佛 或曰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國師曰 猶較些子 師曰 馬大師卽恁麽 未審和尙此間如何 國師曰 三點如流水 曲似刈禾鎌 師後居伏牛山 上堂曰 卽心卽佛 是無病求藥句 非心非佛 是藥病對治句 僧問 如何是脫灑底句 師曰 伏牛山下古今傳 示滅於隨州開元寺

三點如流水下; 佛果擊節錄上第二十九則 國師云 三點如流水 曲似刈禾鎌 俱是心

脫灑; 指文章高超 淸逸 二超脫 灑脫 此指一

隨州; 今湖北隨縣 又稱隋州 隨與隋通

 

이궐(伊闕) 복우산(伏牛山) 자재선사(自在禪師)

오흥(吳興)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처음에 국일선사(國一禪師) 에게 의지해 수구(受具)했고 후에 마조(馬祖)를 참()해 심지(心地)를 발명(發明; 明悟)했다. 마조가 송서(送書)해 충국사(忠國師)에게 주게 했다. 국사가 가로되 마대사(馬大師)가 어떤 법으로써 도중(徒衆)에게 보이는가. 가로되 곧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 합니다. 국사가 가로되 이 무슨(甚麽) 어화(語話)인가. 양구(良久)에 또 문왈(問曰) 이 밖에 다시 어떤() 언교(言敎)가 있는가. 사왈(師曰)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혹은 가로되 이 마음도 아니고 이 부처도 아니고 이 물건도 아니다. 국사가 가로되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사왈 마대사는 곧 이러합니다(恁麽)만 미심하오니 화상의 차간(此間)은 어떻습니까. 국사가 가로되 삼점이 유수와 같고(三點如流水) 굽기가 벼를 베는 낫과 같다(曲似刈禾鎌). 스님이 후에 복우산에 거주했다. 상당(上堂)해 가로되 곧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는 이 무병(無病)에 약을 구하는 구()며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님(非心非佛)은 이 약병(藥病)이 대치(對治)하는 구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탈쇄(脫灑)한 구입니까. 사왈 복우산 아래 고금(古今)에 전한다. 수주(隨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시멸(示滅)했다.

三點如流水下; 불과격절록상 제29. 국사가 이르되 3점은 유수와 같고(三點如流水) 굽기는 벼를 베는 낫과 같다(曲似刈禾鎌). 모두 이 심()이다.

脫灑; 1. 문장이 고초(高超)하고 청일(淸逸)함을 가리킴. 2. 초탈. 쇄탈(灑脫).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隨州; 지금의 호북 수현(隨縣). 또 명칭이 수주(隋州)니 수()와 수()는 통함.

 

京兆興善寺惟寬禪師

衢州信安祝氏子 年十三 見殺生者 衋然不忍食 乃求出家 初習毗尼 修止觀 後參大寂 乃得心要 唐貞元六年 始行化於吳越間 八年至鄱陽 山神求受八戒 十三年 止嵩山少林寺 僧問 如何是道 師曰 大好山 曰 學人問道 師何言好山 師曰 汝秖識好山 何曾達道 問 狗子還有佛性否 師曰 有 曰 和尙還有否 師曰 我無 曰 一切衆生皆有佛性 和尙因何獨無 師曰 我非一切衆生 曰 旣非衆生 莫是佛否 師曰 不是佛 曰 究竟是何物 師曰 亦不是物 曰 可見可思否 師曰 思之不及 議之不得 故曰不可思議 元和四年憲宗詔至闕下 侍郞白居易嘗問曰 旣曰禪師 何以說法 師曰 無上菩提者 被於身爲律 說於口爲法 行於心爲禪 應用者三 其致一也 譬如江湖淮漢 在處立名 名雖不一 水性無二 律卽是法 法不離禪 云何於中妄起分別 曰 旣無分別 何以修心 師曰 心本無損傷 云何要修理 無論垢與淨 一切勿念起 曰 垢卽不可念 淨無念可乎 師曰 如人眼睛上 一物不可住 金屑雖珍寶 在眼亦爲病 曰 無修無念 又何異凡夫邪 師曰 凡夫無明 二乘執著 離此二病 是曰眞修 眞修者不得勤 不得忘 勤卽近執著 忘卽落無明 此爲心要云爾 僧問 道在何處 師曰 祇在目前 曰 我何不見 師曰 汝有我故 所以不見 曰 我有我故卽不見 和尙還見否 師曰 有汝有我 展轉不見 曰 無我無汝還見否 師曰 無汝無我 阿誰求見 元和十二年二月晦日 陞堂說法訖 就化 諡大徹禪師

八戒; 又作八戒齋 八齋戒 八關齋 八支齋 一不殺生 二不偸盜 三不婬 四不妄語 五不飮酒 六不以華鬘裝飾自身 不歌舞觀聽 七不坐臥高廣華麗床座 八不非時食

 

경조(京兆) 흥선사(興善寺) 유관선사(惟寬禪師)

구주(衢州) 신안(信安) 축씨(祝氏)의 아들이다. 나이 13에 살생하는 자를 보고 혁연(衋然; 哀痛히 여기다)하여 차마 먹지를 못했고 이에 출가를 구했다. 처음에 비니(毗尼; )를 학습했고 지관(止觀)을 수습(修習)했다. 후에 대적(大寂)을 참()해 곧() 심요(心要)를 얻었다. 당 정원(貞元) 6(790) 비로소 오월(吳越) 사이에서 행화(行化)했고 8(792) 파양(鄱陽)에 이르렀는데 산신()8(八戒)를 구수(求受; 받기를 구하다)했고 13(797) 숭산 소림사에 머물렀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大好山). 가로되 학인이 도를 물었거늘 스님이 왜 호산(好山)을 말하십니까. 사왈 너는 다만 호산(好山)인 줄 아니 어찌 일찍이 달도(達道)하겠는가. 묻되 구자(狗子; . 는 조사)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화상은 도리어 있습니까. 사왈 나는 없다. 가로되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거늘 화상은 무엇으로 인해 홀로 없습니까. 사왈 나는 일체중생이 아니다. 가로되 이미 중생이 아니면 이 부처가 아니겠습니까. 사왈 이 부처가 아니다. 가로되 구경(究竟)에 이 무슨 물건입니까. 사왈 또한 이 물건이 아니다. 가로되 가히 보고 가히 사유합니까. 사왈 이를 사유하면 미치지 못하고 이를 의논하면 얻지 못하나니 고로 가로되 불가사의다. 원화(元和) 4(809) 헌종(憲宗)이 불러() 궐하(闕下)에 이르렀다. 시랑(侍郞) 백거이(白居易)가 일찍이 문왈(問曰) 이미 가로되 선사(禪師)니 무엇으로써(何以) 설법합니까. 사왈 무상보리(無上菩提)란 것은 몸에 미치면() ()이 되고 입에서 설하면 법이 되고 마음에서 행하면 선()이 되나니 응용하는 것은 셋이지만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비유컨대 강호(江湖)와 회한(淮漢; 淮河漢水)이 재처(在處)에 이름을 세움과 같습니다. 이름은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수성(水性)은 둘이 없습니다. 율이 즉시(卽是) 법이며 법이 선()을 여의지 않거늘 어찌하여(云何) 어중(於中)에 분별을 망기(妄起)하겠습니까. 가로되 이미 분별이 없다면 무엇으로써(何以) 수심(修心)합니까. 사왈 마음은 본디 손상(損傷)이 없거늘 어찌하여(云何) 수리(修理)를 요하겠습니까. ()와 정()을 논하지 말고() 일체에 사념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가로되 구()는 곧 가히 사념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정()을 사념하지 않음이 옳겠습니까(可乎). 사왈 사람의 눈동자(眼睛) 위에 1()도 가히 머물지 못함과 같나니 금가루(金屑)가 비록 진보(珍寶)지만 눈에 있다면 또한 병이 됩니다. 가로되 무수무념(無修無念)은 또 어찌 범부와 다르겠습니까. 사왈 범부는 무명(無明)이며 이승(二乘)은 집착(執著)하나니 이 2()을 여의어야 이를 가로되 진수(眞修)입니다. 진수란 것은 근고(勤苦)를 얻지 못하고 망각을 얻지 못하나니 근고는 곧 집착에 가깝고 망각은 곧 무명에 떨어집니다. 이것이 심요(心要)가 될 뿐입니다. 중이 묻되 도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다만 목전에 있다. 가로되 나는 왜 보지 못합니까. 사왈 너는 아()가 있는 연고니 소이로 보지 못한다. 가로되 나는 아()가 있는 고로 곧 보지 못하거니와 화상은 도리어 봅니까. 사왈 여()가 있고 아()가 있으면 전전(展轉)히 보지 못한다. 가로되 무아무여(無我無汝)면 도리어 봅니까. 사왈 무여무아(無汝無我)거늘 누가(阿誰) 봄을 구하겠는가. 원화(元和) 12(817) 2월 회일(晦日) 승당(升堂)하여 설법을 마치자 취화(就化; 遷化로 나아가다)했다. ()가 대철선사(大徹禪師).

八戒; 또 팔계재(八戒齋)ㆍ팔재계(八齋戒)ㆍ팔관재(八關齋)ㆍ팔지재(八支齋)로 지음. 1은 불살생이며 2는 불투도(不偸盜)3은 불음(不婬)이며 4는 불망어며 5는 불음주며 6은 화만(華鬘)으로 자신을 장식하지 않고 가무하거나 관청(觀聽)하지 않음이며 7은 고광(高廣)하고 화려한 상좌(床座)에 좌와(坐臥)하지 않음이며 8은 비시(非時)에 먹지 않음임.

 

鄂州無等禪師

尉氏人也 出家於龔公山 密受心要 出住隨州土門 一日謁州牧王常侍 辭退將出門 牧召曰 和尙 師回顧 牧敲柱三下 師以手作圓相 復三撥之 便行 後住武昌大寂寺 一日大衆晩參 師見人人上來師前道不審 廼謂衆曰 大衆 適來聲向甚麽處去也 有一僧竪起指頭 師曰 珍重 其僧至來朝上參 師乃轉身面壁而臥 佯作呻吟聲曰 老僧三兩日來 不多安樂 大德身邊有甚麽藥物 與老僧些 小 僧以手拍淨缾曰 這箇淨缾甚麽處得來 師曰 這箇是老僧底 大德底在甚麽處 曰 亦是和尙底 亦是某甲底

鄂州; 位於湖北省東南揚子江南岸 隋代廢武昌郡爲鄂州 民國稱壽昌縣 後改卾城縣 大陽警玄的出生地 城東南有淸平令遵道場平山安樂院 府城西南有巖頭全奯道場巖頭院 [大明一統志五十九 大淸一統志二五八 讀史方輿紀要七十六]

常侍; 中常侍或散騎常侍的簡稱 秦與西漢的中常侍 東漢以宦官充之 魏晉以下的散騎常侍 均由士人充當 [百度百科]

晩參; 朝參之對稱 指晩間之住持開示法要 參禪或念誦 禪林寶訓順硃三 小參卽是晩參也 凡集衆開示 皆謂之參 古人匡徒 使之朝夕咨扣 無時而不激揚此道 故每晩必參 則在晡時 或住持入院 或官員檀越入山 或受人請 或爲亡者開示 或四節臘 則移于昏鐘鳴 而謂之小參

不審; 未審 二比丘相見問訊之禮話 如不審尊候如何等語 此指二

 

악주(鄂州) 무등선사(無等禪師)

위지(尉氏) 사람이며 공공산(龔公山)에서 출가했고 심요(心要)를 밀수(密受)했고 나가서 수주(隨州) 토문(土門)에 거주했다. 어느 날 주목(州牧) 왕상시(常侍)를 예알(禮謁)하고 사퇴(辭退)하면서 거의() 출문(出門)하려는데 주목(州牧)이 불러 가로되되 화상. 스님이 돌아보자 주목이 기둥을 세 번(三下) 두드렸다(). 스님이 손으로써 원상(圓相)을 짓고 다시 세 번 그것을 제거하고() 바로 갔다. 후에 무창(武昌) 대적사(大寂寺)에 거주했다. 어느 날 대중이 만참(晩參)하는데 스님이 보매 사람마다 올라와 스님 앞에서 불심(不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대중이여, 적래(適來)의 소리가 어느 곳(什麽處)을 향해 갔느냐. 1승이 있어 손가락(指頭; 는 조사)을 세워 일으켰다. 사왈 진중(珍重). 그 중이 내조(來朝; 다음날 아침)에 이르러 올라와 참()하자 스님이 곧 몸을 돌려 면벽하고 누워 거짓으로() 신음(呻吟) 소리를 지으며 가로되 노승이 삼양일래(三兩日來)로 안락이 많지 않으니 대덕(大德)의 신변에 무슨(什麽) 약물(藥物)이 있거든 노승에게 조금(些少) 주거라. 중이 손으로써 정병(淨缾)을 두드리고() 가로되 이(這箇) 정병(淨缾)을 어느 곳(什麽處)에서 얻어 왔습니까. 사운 이것(這箇)은 이 노승의 것()이다, 대덕의 것은 어느(什麽) 곳에 있느냐. 가로되 역시(亦是) 화상의 것이며 역시 모갑의 것입니다.

鄂州; 호북성 동남 양자강 남안에 위치함. 수대(隋代) 무창군을 폐하고 악주로 삼았음. 민국에서 수창현으로 일컬었다가 후에 악성현으로 고쳤음. 대양경현의 출생지임. 성 동남에 청평영준의 도량 평산 안락원이 있고 부성(府城) 서남에 암두전활의 도량 암두원이 있음 [대명일통지59. 대청일통지258. 독사방여기요76].

常侍; 중상시(中常侍) 혹 산기상시(散騎常侍)의 간칭. ()과 서한의 중상시는 동한에선 환관으로 이에 충당했음. 위진(魏晉) 이하의 산기상시는 균일하게 사인(士人)으로 말미암아 충당했음 [백도백과].

晩參; 조참(朝參)의 대칭. 만간(晩間; 저녁 무렵)에 주지가 법요를 개시하거나 참선 혹 염송(念誦)함을 가리킴. 선림보훈순주3. 소참(小參)이 곧 이 만참(晩參)이다. 무릇 대중을 집합해 개시(開示)함을 다 참()이라고 이른다. 고인이 도중을 바로잡으려고 조석으로 묻게 하였는데 이 도를 격양(激揚)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고로 매일 저녁에 반드시 참했는데 곧 포시(晡時; 申時니 오후 3시에서 5시까지)에 있었다. 혹은 주지가 사원에 들거나 혹은 관원이나 단월이 산에 들거나 혹은 사람의 청탁을 받거나 혹은 망자를 위해 개시하거나 혹은 사절(四節; 선림에서 結夏解夏冬至年朝를 사절이라 일컬음)과 납일(臘日; 동지 뒤의 셋째 戌日)에 곧 어두워지면 종을 울리는데 이를 일러 소참이라 한다.

不審; 1. 미심(未審). 2. 비구가 상견하면서 문신(問訊)하는 예화(禮話)니 예컨대() 불심(不審)합니다 존후가 어떻습니까 등의 말.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潭州三角山總印禪師

僧問 如何是三寶 師曰 禾麥豆 曰 學人不會 師曰 大衆欣然奉持 上堂 若論此事 眨上眉毛 早已蹉過也 麻谷便問 眨上眉毛卽不問 如何是此事 師曰 蹉過也 谷乃掀倒禪牀 師便打長慶代云 悄然

潭州; 今湖南省長沙 此州有道吾山 唐代宗智禪師所住處

此事; 宗門一大事

眨上眉毛; 上 助詞 一禪家勸誡學人 振作精神 頓悟禪法的習語 二形容領會禪義 應接禪機 極爲快捷 此指二

蹉過; 同錯過 蹉 跌也

悄然; 與寂然同義 悄 寂靜無聲 字彙 悄 靜也

 

담주(潭州) 삼각산(三角山) 총인선사(總印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삼보(三寶)입니까. 사왈(師曰) 벼ㆍ보리ㆍ콩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대중은 흔연(欣然)히 봉지(奉持)하라. 상당(上堂)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눈썹을 깜작하면(眨上眉毛) 벌써 이미 차과(蹉過)했다. 마곡(麻谷)이 바로 묻되 눈썹을 깜작임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차사(此事)입니까. 사왈 차과(蹉過)했다. 마곡이 이에 선상을 번쩍 들어 엎었다(掀倒). 스님이 바로 때렸다長慶(慧稜)代云 초연(悄然)합니다.

潭州; 지금의 호남성 장사(長沙)니 이 주에 도오산이 있으며 당대 종지선사(宗智禪師)가 거주하던 바의 곳임.

此事; 종문의 일대사.

眨上眉毛; ()은 조사. 1. 선가에서 학인에게 권계(勸誡)하여 정신을 진작하고 선법을 돈오하라는 습어(習語). 선의 뜻을 영회(領會)하고 선기(禪機)에 응접함이 극히 쾌첩(快捷)함을 형용.

蹉過; 착과(錯過; 놓침)와 같음. ()는 질(; 지나치다).

悄然; 적연(寂然)과 같은 뜻. ()는 적정하고 소리가 없음임. 자휘(字彙) () ()이다.

 

池州魯祖山寶雲禪師

僧問 如何是諸佛師 師曰 頭上有寶冠者不是 曰 如何卽是 師曰 頭上無寶冠 洞山來參 禮拜起侍立 少頃而出 却再入來 師曰 祇恁麽 祇恁麽 所以如此 山曰 大有人不肯 師曰 作麽取汝口辯 山便禮拜 僧問 如何是不言言 師曰 汝口在甚麽處 曰 無口 師曰 將甚麽喫飯 僧無對洞山代云 他不飢 喫甚麽飯 師尋常見僧來 便面壁 南泉聞曰 我尋常向師僧道 向佛未出世時會取 尙不得一箇半箇 他恁麽驢年玄覺云 爲復唱和語 不肯語 保福問長慶 祇如魯祖節文在甚麽處 被南泉恁麽道 長慶云 退己讓於人 萬中無一箇 羅山云 陳老師當時若見 背上與五火抄 何故 爲伊解放不解收 玄沙云 我當時若見 也與五火抄 雲居錫云 羅山玄沙總恁麽道 爲復一般 別有道理 若擇得出 許上座佛法有去處 玄覺云 且道玄沙五火抄 打伊著不著

驢年; 謂其無期也 十二支中無驢名之年 故遂以譬無會期也

節文; 謂模範的法則條文 節 準則 法度 文 法令 條文

陳老師; 羅山道閑的自稱之詞 俗姓陳氏

火抄; 正作火杪 燒紅的木杪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 보운선사(寶雲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제불의 스승입니까. 사왈 두상(頭上)에 보관(寶冠)이 있는 자는 이것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如何) 곧 이것입니까. 사왈 두상에 보관이 없다. 동산(洞山; 良价)이 내참(來參)하여 예배하고 일어나 시립(侍立)한 지 잠시 만에(少頃; 片刻) 나갔다가 도리어 다시 들어왔다. 사왈 다만 이러하고(恁麽) 다만 이러한지라 소이로 이와 같다. 산왈(山曰) 대유인(大有人)은 긍정하지 않습니다. 사왈 어떻게(作麽) 너의 구변(口辯)을 취하겠는가. 동산이 바로 예배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말하지 않는 말입니까(不言言). 사왈 너의 입이 어느 곳(甚麽處)에 있느냐. 가로되 입이 없습니다. 사왈 무엇을 가져 밥을 먹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洞山代云 他는 배고프지 않거늘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스님은 심상(尋常)에 중이 옴을 보면 바로 면벽(面壁)했다. 남천(南泉)이 듣고 가르되 내가 심상(尋常)에 사승(師僧)을 향해 말하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은 때를 향해 회취(會取)하더라도 오히려 일개반개(一箇半箇)를 얻지 못한다 했거늘 그가 이러하다면(恁麽) 여년(驢年)이리라玄覺이 이르되 다시 唱和하는 가 되는가, 不肯하는 인가. 保福長慶에게 묻되 祇如 魯祖節文이 어느 곳에 있기에 남천이 이렇게 말함을 입었는가. 長慶이 이르되 자기를 물리고 남에게 양보함은 萬中一箇도 없다. 羅山(道閑)이 이르되 陳老師가 당시에 만약 보았다면 背上火抄를 주었겠다. 무슨 연고냐. 그가 놓을 줄 만 알고 거둘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玄沙가 이르되 내가 당시에 만약 보았다면 또한 五火抄를 주었겠다. 雲居錫이 이르되 나산과 현사가 모두 이렇게 말하니 다시 一般이 되는가 달리 도리가 있는가. 만약 간택해 냄을 얻는다면 上座에게 佛法去處가 있다고 허락하겠다. 玄覺(行言)이 이르되 且道하라, 현사의 五火抄는 그를 때림을 이루었나(), 이루지 못했는가.

驢年; 이르자면 그 기한이 없음. 12() 중에 여명(驢名)의 해가 없는지라 고로 드디어 알 기약이 없음에 비유함.

節文; 이르자면 모범적인 법칙의 조문(條文)이니 절()은 준칙ㆍ법도. ()은 법령ㆍ조문.

陳老師; 나산도한(羅山道閑)의 자칭지사(自稱之詞)니 속성이 진씨(陳氏).

火抄; 바르게는 화초(火杪; 불꼬챙이)로 지음. 타서 붉은 목초(木杪; 나무의 끝 부분).

 

常州芙蓉山太毓禪師

金陵范氏子 因行食到龐居士前 士擬接 師乃縮手曰 生心受施 淨名早訶 去此一機 居士還甘否 士曰 當時善現豈不作家 師曰 非關他事 士曰 食到口邊 被他奪却 師乃下食 士曰 不消一句 士又問 馬大師著實爲人處 還分付吾師否 師曰 某甲尙未見他 作麽生知他著實處 士曰 祇此見知 也無討處 師曰 居士也不得一向言說 士曰 一向言說 師又失宗 若作兩向三向 師還開得口否 師曰 直是開口不得 可謂實也 士撫掌而出 寶曆中 歸齊雲入滅 諡大寶禪師

常州; 今江蘇常州 地處長江之南太湖之濱

行食; 配分飮食

生心受施; 祖庭事苑七 生心受施 維摩詰經 佛告須菩提 汝行詣彼問疾 曰 我不堪任 憶念我昔入其舍從乞食 時維摩詰 取我鉢盛滿飯 謂我言 唯須菩提 若能於食等者 諸法亦等 諸法等者 於食亦等 如是行乞 乃可取食 汝得無諍三昧 一切衆生亦得是定 其施汝者 不名福田 供養汝者 墮三惡道 與諸衆魔及諸塵勞 等無有異 於一切衆生而有怨心 謗諸佛 毁於法 不入衆數 終不得滅度 汝若如是 乃可取食 維摩詰 此言淨名

善現; 梵語須菩提的譯語 祖庭事苑三 空生 梵云須菩提 又云蘇補底迦 此有三義飜譯 一曰空生 謂初生之時 家室盡空 以表解空之相 二曰善現 謂生時種種善瑞顯現 三曰善吉 謂生已 相師占之云 此子唯善唯吉 西域記云 本東方靑龍陀佛 影化釋迦會下 今爲禪者之通稱 謂參玄解空之士也

 

상주(常州) 부용산(芙蓉山) 태육선사(太毓禪師)

금릉(金陵) 범씨(范氏)의 아들이다. 행식(行食)함으로 인해 방거사(龐居士) 앞에 이르자 거사가 접수하려고 했다. 스님이 이에 손을 옴츠리며() 가로되 마음을 내어 보시를 받음(生心受施)은 정명(淨名)이 일찍이() 꾸짖었습니다. 1()와 떨어져서() 거사는 도리어 달게 여기겠습니까. 사왈(士曰) 당시에 선현(善現)이 어찌 작가(作家)가 아니겠습니까. 사왈(師曰) 그 일과 상관되지 않습니다. 사왈(士曰) 밥이 입가에 이르자 그에게 빼앗겨버림을 입었습니다. 스님이 이에 하식(下食)했다. 사왈(士曰) 1구도 쓰지 않았다. 거사가 또 묻되 마대사(馬大師)가 착실(著實)하게 위인(爲人; 사람을 위하다)한 곳을 도리어 오사(吾師)에게 분부(分付)했습니까. 사왈 모갑은 오히려 그를 보지도 못했거늘 어떻게(作麽生) 그의 착실한 곳을 알겠습니까. 사왈(士曰) 다만 이 견지(見知)도 또한 찾을() 곳이 없습니다. 사왈(師曰) 거사도 일향(一向) 언설함을 얻지 마시오. 사왈(士曰) 일향(一向) 언설함은 스님도 또 실종(失宗)했으니 만약 양향삼향(兩向三向)을 짓는다면 스님이 도리어 입을 개득(開得; 은 조사)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바로() 이 개구(開口)를 얻지 못한다면 가위(可謂) ()입니다. 거사가 손바닥을 두드리고(撫掌) 나갔다. 보력(寶曆; 825-827) 중 제운(齊雲)으로 돌아가 입멸했고 시()는 대보선사(大寶禪師).

常州; 지금의 강소 상주. 땅이 장강의 남쪽ㆍ태호의 끝에 처했음.

行食; 음식을 배분(配分).

生心受施; 조정사원7. 생심수시(生心受施) 유마힐경 불타가 수보리에게 고하시되 네가 그에게 행예(行詣; 가서 이름)하여 문질(問疾)하라. 가로되 나는 감임(堪任; 堪當)치 못합니다. 억념(憶念)컨대 내가 지난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좇아 걸식하였는데 때에 유마힐이 나의 발우를 취해 밥을 가득 담고는 나에게 일러 말하되 예(應答하는 소리임. 尊長에 대해 공경을 표시하는 데에 쓰임) 수보리여, 만약 능히 식()에 평등한 자는 제법에도 또한 평등하며 제법에 평등한 자는 식()에도 또한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걸식을 행해야 이에 가히 취식(取食)한다. 네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또한 이 정()을 얻었으며 그 너에게 보시하는 자는 복전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너에게 공양한 자는 3악도(惡道)에 떨어진다. 모든 뭇 마() 및 모든 진로(塵勞; 번뇌)와 평등하여 다름이 있지 않으며 일체중생에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며 제불을 비방하고 법을 헐뜯고 대중의 수()에 들지 않으며 마침내 멸도(滅度)를 얻지 말아야 하나니 네가 만약 이와 같다면 이에 가히 취식(取食)하리라. 유마힐은 여기 말로는 정명(淨名).

善現; 범어 수보리(須菩提; Subhuti)의 역어(譯語). 조정사원3. 공생(空生) 범어로 이르되 수보리며 또 이르되 소보지가(蘇補底迦)니 이는 세 뜻으로 번역함이 있음. 1은 가로되 공생(空生)이니 이르자면 처음 태어날 때 가실(家室)이 다 비었으니 해공(解空)의 상()으로 표함. 2는 가로되 선현(善現)이니 이르자면 태어날 때 갖가지 선서(善瑞)가 현현(顯現)하였음. 3은 가로되 선길(善吉)이니 이르자면 태어난 다음 상사(相師)가 그를 점쳐 가로되 이 자(; 남자의 通稱)는 오직 선()하고 오직 길()하다. 서역기에 이르되 본디 동방의 청룡타불(靑龍陀佛)인데 석가회하(釋迦會下)에 그림자로 화()했다(金剛略疏에 이런 말이 있으며 서역기를 인용했음). 지금은 선자(禪者)의 통칭이 되나니 이르자면 참현(參玄)하여 해공(解空)하는 대사(大士).

 

唐州紫玉山道通禪師

盧江何氏子 隨父守官泉南 因而出家 詣建陽 謁馬祖 祖尋遷龔公山 師亦隨之 祖將歸寂 謂師曰 夫玉石潤山秀麗 益汝道業 遇可居之 師不曉其言 是秋遊洛 回至唐州 西見一山 四面懸絕 峯巒秀異 因詢鄕人 曰紫玉山 師乃陟山頂 見石方正 瑩然紫色 歎曰 此其紫玉也 先師之言懸記耳 遂剪茅構舍而居焉 後學徒四集 僧問 如何出得三界去 師曰 汝在裏許 得多少時也 曰 如何出離 師曰 靑山不礙白雲飛

守官; 恪守官職

懸絕; 險峻峭絕

裏許; 內裏 裏邊 許 表示處所

 

당주(唐州) 자옥산(紫玉山) 도통선사(道通禪師)

여강(廬江) 하씨(何氏)의 아들이다. 천남(泉南)으로 수관(守官)하는 아버지를 따랐다가 인하여 출가했고 건양(建陽)으로 나아가() 마조(馬祖)를 참알했다. 마조가 이윽고 공공산(龔公山)으로 옮기자 스님이 또한 그를 따랐다. 마조가 장차 귀적(歸寂)하려 하면서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무릇 옥석(玉石)이 윤택하고 산이 수려(秀麗)하면 너의 도업(道業)을 더하리니() 만나거든 가히 거주하라. 스님이 그 말을 깨닫지() 못했다. 이 가을 유락(遊洛; 洛陽을 유람)하고 돌아오다 당주(唐州)에 이르러 서쪽으로 1()을 보매 사면이 현절(懸絕)했고 봉만(峯巒)이 수이(秀異)했다. 인하여 마을 사람(鄕人)에게 물으니() 가로되 자옥산(紫玉山)입니다. 스님이 이에 산정에 올라() 보매 암석이 방정(方正)하고 영연(瑩然; 밝은 모양)히 자색(紫色)이었다. 감탄해 가로되 이것이 그 자옥(紫玉)이로구나. 선사(先師)의 말씀이 현기(懸記; 예언)였다. 드디어 띠()를 베고 집을 얽어 거주했고 후에 학도(學徒)가 사방에서 모였다(四集). 승문(僧問) 어찌해야 3()를 벗어남을 얻겠습니까. 사왈 네가 이허(裏許)에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을 지났느냐(). 가로되 어떻게 출리(出離)합니까. 사왈 청산이 백운의 낢을 방애(妨礙)하지 않는다.

守官; 관직을 각수(恪守; 삼가 지키다).

懸絕; 험준하고 초절(峭絕; 산봉우리가 썩 높음).

裏許; 내리(內裏). 이변(裏邊). 허는 처소를 표시함.

 

于頔相公問 如何是黑風吹其船舫 漂墮羅刹鬼國 師曰 于頔客作漢 問恁麽事作麽 于公失色 師乃指曰 這箇便是漂墮羅刹鬼國 公又問 如何是佛 師喚相公 公應諾 師曰 更莫別求藥山聞曰 噫 可惜于家漢生埋向紫玉山中 公聞 乃謁見藥山 山問曰 聞相公在紫玉山中大作佛事 是否 公曰 不敢 乃曰 承聞有語相救 今日特來 山曰 有疑但問 公曰 如何是佛 山召于頔 公應諾 山曰 是甚麽 公於此有省 元和八年 弟子金藏參百丈回 師曰 汝其來矣 此山有主也 於是囑付訖 筞杖徑去襄州 道俗迎之 至七月十五日 無疾而終

于頔; (?-818) 唐代居士 字允元 洛陽(今屬河南)人 貞元十四年(798) 拜山南東道節度使 升襄州大都督 封燕國公 與襄陽龐居士相得甚歡 一日詣居士問疾 居士曰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又問紫玉禪師 如何是黑風吹墮羅刹鬼國 玉曰 于頔這客作漢 問恁麽事作麽 頔現色 玉云 這便是漂墮羅刹鬼國也 憲宗時以罪貶 卒謚曰厲 [五燈全書八 名公法喜志二]

相公; 宰相的尊稱 又曰相君 又泛稱官吏

黑風; 法華經三大部補注十 黑風者 請觀音云黑風洄波 仁王經有黑靑赤天地火六種風 風加以黑 怖之甚也 舊人謂風無黑色 吹黑沙黑雲耳

船舫; 法華經三大部補注十云 船舫者 並兩船也

羅刹; <> Rakṣas 乃印度神話中之惡魔 又作羅刹娑 此譯爲可畏 速疾鬼 護者 女則稱羅刹女 羅叉私 相傳原爲印度土著民族之名稱 雅利安人征服印度後 遂成爲惡人之代名詞 演變爲惡鬼之總名 男羅刹爲黑身 朱髮 綠眼 女羅刹則如絶美婦人 富有魅人之力 專食人之血肉 相傳在楞伽島(卽錫蘭)中 卽有羅刹女國 又羅刹具神通力 可於空際疾飛 或速行地面 爲暴惡可畏之鬼 [佛本行集經四十九 有部毘奈耶四十七 玄應音義二十四 慧琳音義七]

客作漢; 本義爲傭夫 禪家常用作斥責之語 含有不見自心佛性 盲目隨逐外物之義 亦作客作兒

 

우적상공(于頔相公)이 묻되 무엇이 이 흑풍(黑風)이 그 선방(船舫)을 불어 라찰귀국(羅刹鬼國)에 표타(漂墮)함입니까. 사왈 우적 객작한(客作漢), 이러한 일을 물어 무엇하려는가. 우공(于公)이 실색(失色)했다. 스님이 이에 가리키며 가로되 이것(這箇)이 이 라찰귀국에 표타함입니다. ()이 또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상공(相公)을 불렀다. ()이 응낙(應諾)하자 사왈 다시 달리 구하지 마시오藥山이 듣고 가로되 희(; 한숨 쉬다), 可惜하구나 于家漢이 자옥산 가운데를 향해 산 채로 埋葬되었다. 이 듣고 이에 약산을 알현(謁見)했다. 약산이 물어 가로되 듣건대 相公紫玉山 가운데 있으면서 大作佛事했다는데 그렇습니까. 公曰 不敢입니다. 이에 가로되 承聞하건대 相救한다는 말씀이 있어 금일 특별히 왔습니다. 山曰 의심이 있다면 단지 물으시오. 公曰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약산이 우적을 불렀다. 應諾했다. 山曰 이 뭣고. 이 이에서 성찰이 있었다. 원화(元和) 8(813) 제자 금장(金藏)이 백장(百丈)을 참()하고 돌아왔다. 사왈 네가 그래 왔구나. 이 산에 주인이 있다. 이에 촉부(囑付)해 마치고 지팡이를 짚고(策杖) 양주(襄州)로 질러 가니 도속(道俗)이 영접했다. 715일에 이르러 질병 없이 마쳤으다.

于頔; (?-818) 당대 거사. 자는 윤원이며 낙양(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 정원 14(798) 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에 배관(拜官; 任官)되었고 양주대도독(襄州大都督)으로 승진하였으며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졌음. 양양(襄陽)의 방거사(龐居士)와 서로 심환(甚歡)함을 얻었는데 어느 날 거사에게 나아가 문질(問疾)했더니 거사가 가로되 단지 모든 소유가 공하기를 원하고 삼가 모든 소무(所無)를 실답다 하지 말라. 또 자옥선사(紫玉禪師; 紫玉道通이니 마조의 法嗣)에게 묻되 무엇이 이 흑풍(黑風)이 불어 라찰귀국(羅刹鬼國)으로 떨어짐입니까. 자옥이 가로되 우적, 이 객작한(客作漢; 날품팔이꾼), 이러한 일을 물어 무엇하려느냐. 우적이 낯빛을 나타내자 자옥이 이르되 이것이 곧 라찰귀국에 표타(漂墮)함입니다. 헌종 때 죄 때문에 폄강(貶降)했음. 죽어서의 시호는 가로되 여() [오등전서8. 명공법희지2].

相公; 재상의 존칭이니 또 가로되 상군(相君)이며 또 관리의 범칭(泛稱).

黑風; 법화경삼대부보주10. 흑풍이란 것은 청관음(請觀音)에 이르되 흑풍이 회파(洄波; 파도를 빙빙 돌리다)한다. 인왕경에 흑청적천지화(黑靑赤天地火)6종 바람이 있다. 바람에 흑을 가하면 공포가 심하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바람은 흑색이 없고 흑사(黑沙)와 흑운(黑雲)을 불 뿐이다.

船舫; 법화경삼대부보주10에 이르되 선방(船舫)이란 것은 두 배를 병(; 並合)함이다.

羅刹; <> Rakṣas. 곧 인도 신화 중의 악마. 또 라찰사(羅刹娑)로 지음. 여기에선 가외(可畏)ㆍ속질귀(速疾鬼)ㆍ호자(護者)로 번역함. 여자는 곧 라찰녀ㆍ라차사(羅叉私; rākṣasī)로 일컬음. 서로 전하기를 원래는 인도 토착민족의 명칭이라 함. 아리안(雅利安; Aryan) 사람들이 인도를 정복한 후 드디어 악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연변(演變; 변화하여 발전함)하여 악귀의 총명(總名)이 되었음. 남자 라찰은 흑신(黑身)ㆍ붉은 머리카락ㆍ푸른 눈이 되고 여자 라찰은 곧 절미(絶美; 비할 데 없이 매우 아름다움)의 부인과 같음. 부유하고 사람을 매혹하는 힘이 있으며 오로지 사람의 혈육(血肉)을 먹음. 서로 전하기를 릉가도(楞伽島; 錫蘭; Ceylon) 가운데 있다 하는데 곧 라찰녀국이 있음. 또 라찰은 신통력을 갖췄으며 가히 허공 가를 질비(疾飛)하고 혹 지면을 속히 달리는 포악하고 가외(可畏)의 귀()가 됨 [불본행집경49. 유부비나야47. 현응음의24. 혜림음의7].

客作漢; 본래 뜻은 용부(傭夫; 고용살이 하는 남자)가 되지만 선가에선 척책(斥責; 責罵)하는 말로 상용함. 자심의 불성을 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외물을 따라 쫓아감의 뜻을 함유했음. 또 객작아(客作兒)로 지음.

 

五臺山隱峯禪師

邵武軍鄧氏子時稱鄧隱峯 幼若不慧 父母聽其出家 初遊馬祖之門 而未能覩奧 復來往石頭 雖兩番不捷語見馬祖章 而後於馬祖言下相契 師問石頭 如何得合道去 頭曰 我亦不合道 師曰 畢竟如何 頭曰 汝被這箇得多少時邪 石頭剗草次 師在左側 叉手而立 頭飛剗子向師前剗一株草 師曰 和尙祇剗得這箇 不剗得那箇 頭提起剗子 師接得便作剗草勢 頭曰 汝祇剗得那箇 不解剗得這箇 師無對洞山云 還有堆阜麽 師一日推車次 馬祖展脚在路上坐 師曰 請師收足 祖曰 已展不縮 師曰 已進不退 乃推車碾損祖脚 祖歸法堂 執斧子曰 適來碾損老僧脚底出來 師便出於祖前引頸 祖乃置斧 師到南泉 覩衆僧參次 泉指淨甁曰 銅甁是境 甁中有水 不得動著境 與老僧將水來 師拈起淨甁 向泉面前瀉 泉便休 師後到潙山 便入堂於上板頭解放衣鉢 潙聞師叔到 先具威儀 下堂內相看 師見來便作臥勢 潙便歸方丈 師乃發去 少間潙山問侍者 師叔在否 曰 已去 潙曰 去時有甚麽語 曰 無語 潙曰 莫道無語 其聲如雷 師冬居衡嶽 夏止淸涼 唐元和中荐登五臺 路出淮西 屬吳元濟阻兵 違拒王命 官軍與賊軍交鋒 未決勝負 師曰 吾當去解其患 乃擲錫空中 飛身而過 兩軍將士仰觀 事符預夢 鬬心頓息 師旣顯神異 慮成惑衆 遂入五臺 於金剛窟前將示滅 先問衆曰 諸方遷化 坐去臥去 吾嘗見之 還有立化也無 曰 有 師曰 還有倒立者否 曰 未嘗見有 師乃倒立而化 亭亭然其衣順體 時衆議舁就茶毗 屹然不動 遠近瞻覩 驚歎無已 師有妹爲尼 時亦在彼 乃拊而咄曰 老兄 疇昔不循法律 死更熒惑於人 於是以手推之 僨然而踣 遂就闍維 收舍利建塔

剗子; 同鏟子

上板頭; 上間板頭也 僧堂內長連床最頭上的位置 對下板而言也

淮西; 淮右 爲一地域名稱 宋在蘇北和江淮設淮南東路和淮南西路 淮南東路又稱淮左 淮南西路稱淮右 淮右多山 淮左多水 一般指今江淮地區 [百度百科]

阻兵; 仗恃軍隊

亭亭; 亭 直也 又指筆直的物體

熒惑; 使人迷惑 炫惑

 

오대산(五臺山) 은봉선사(隱峯禪師)

소무군(邵武軍) 등씨(鄧氏)의 아들이다당시에 호칭이 鄧隱峯이다. 어릴 적에 지혜롭지 못한 것 같았고 부모가 그의 출가를 청허(聽許; 허락)했다. 처음에 마조지문(馬祖之門)에 노닐면서 능히 오의(奧義)를 보지() 못했다. 다시 석두(石頭; 希遷)로 내왕(來往)했는데 비록 두 번 민첩(敏捷)하지 못했지만馬祖章을 보라이후(而後; 以後)에 마대사(馬大師)의 언하에 상계(相契; 契合)했다. 스님이 석두(石頭)에게 묻되 어찌해야 합도(合道; 도에 합하다)함을 얻어 가겠습니까. 두왈(頭曰) 나도 또한 합도(合道)하지 못했다. 사왈 필경 어떻습니까. 두왈(頭曰) 너는 저개(這箇)를 입은() 지 다소의 시일을 지났느냐(). 석두가 풀을 깎던() 차에 스님이 좌측에 있으면서 차수(叉手)하고 섰다. 석두가 잔자(剗子; )를 스님의 면전을 향해 날려 한 포기()의 풀을 깎았다. 사왈 화상은 다만 저개(這箇; 이것)를 잔득(剗得; 은 조사)했고 나개(那箇; 저것)를 잔득(剗得)하지 못했습니다. 석두가 잔자(剗子)를 제기(提起)했다. 스님이 접득(接得)하여 바로 풀을 깎는 자세를 지었다. 석두가 가로되 너는 다만 나개(那箇)를 잔득(剗得)하고 저개(這箇)를 잔득할 줄 알지 못한다.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洞山이 이르되 堆阜(小丘)가 있습니까. 스님이 어느 날 수레()를 밀던 차에 마조가 다리를 펴고(展脚) 노상(路上)에 있으면서 앉았다. 사왈 청컨대 스님은 발을 거두십시오. 마조가 가로되 이미 폈으니 오그리지 못한다. 사왈 이미 나아갔으니 물러서지 못합니다. 곧 수레를 밀어 마조의 다리를 갈아 손상시켰다(碾損). 마조가 법당으로 돌아가 도끼(斧子; 는 조사)를 잡고 가로되 아까 노승의 다리를 갈아 손상(碾損)한 놈()은 나오너라. 스님이 바로 마조 앞에 나가 목을 늘어뜨렸다(引頸). 마조가 이에 도끼를 방치했다. 스님이 남천(南泉)에 이르러 보매 중승(衆僧)이 참차(參次)였다. 남천이 정병(淨缾)을 가리키며 가로되 동병(銅缾)은 이 경계(境界; )며 병 속에 물이 있다. 경계를 동착(動著; 은 조사)함을 얻지 않고 노승을 위해() 물을 가지고 오너라. 스님이 바로 정병을 집어 일으켜 남천의 면전을 향해 쏟았다. 남천이 바로 쉬었다. 스님이 후에 위산(潙山)에 이르러 바로 입당(入堂)해 상판두(上板頭)에 의발(衣鉢)을 풀어 놓았다(解放). 위산이 사숙(師叔)이 이르렀다 함을 듣고 먼저 위의를 갖추고 당내(堂內)로 내려가 상간(相看)했다. 스님이 옴을 보자 바로 눕는 자세를 지었다. 위산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스님은 곧 떠났다(發去). 소간(少間; 조금 후)에 위산이 시자에게 묻되 사숙이 계시는가. 가로되 이미 가셨습니다. 위왈(潙曰) 떠날 때 무슨 말씀이 있었는가. 가로되 말씀이 없었습니다. 위왈(潙曰) 말씀이 없다고 말하지 말지니 그 소리가 우레와 같다. 스님이 형악(衡嶽)에서 동거(冬居)하고 여름은 청량(淸涼)에 머물렀다(). 당 원화(元和; 806-820) 중 거듭() 오대(五臺)에 오르는데 길이 회서(淮西)로 났고(). 오원제(吳元濟)가 조병(阻兵)하며 왕명(王命)에 위거(違拒)함을 당했다(). 관군과 적군(賊軍)이 교봉(交鋒)하며 승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사왈(師曰) 내가 마땅히 가서 그 우환을 해결하리라. 이에 공중으로 석장(錫杖; 주장자)을 던지고 몸을 날려 지나가자 양군(兩軍)의 장사(將士)가 앙관(仰觀)했다. 일이 예몽(預夢)과 부합(符合)한지라 투심(鬪心)을 문득 쉬었다. 스님이 이미 신이(神異)를 나타내고는 혹중(惑衆)함을 이룰까 염려하면서 드디어 오대(五臺)에 들어갔다. 금강굴 앞에서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면서 먼저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제방에서 천화(遷化)하매 좌거(坐去; 앉아 죽음)하고 와거(臥去)함을 내가 일찍이 그것을 보았거니와 도리어 입화(立化; 서서 죽음)함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가로되 있습니다. 사왈 도리어 도립(倒立)한 자가 있느냐. 가로되 일찍이 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곧 도립해 천화(遷化)했는데 꼿꼿해(亭亭) 그 옷도 몸을 따랐다(). 당시에 대중이 의논해 마주들어 다비(荼毗)를 이루려고() 했으나 흘연(屹然; 위엄스레 우뚝 솟은 모양)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원근에서 첨시(瞻視)하며 경탄(驚歎)을 그치지 않았다(無已). 스님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니()가 되었다. 때에 또한 거기에 있다가 이에 두드리며() 돌왈(咄曰) 노형(老兄)이 주석(疇昔; 往昔. 以前)에도 법률을 따르지() 않더니 죽어서도 다시 사람들을 형혹(熒惑)합니까. 이에 손으로써 그것을 미니 분연(僨然; 넘어지듯)히 넘어졌다(). 드디어 사유(闍維)를 이루었고 사리를 거두어 건탑(建塔)했다.

剗子; 산자(鏟子; 대패. )와 같음.

上板頭; 상간판두(上間板頭). 승당 내 장련상(長連床)의 가장 두상(頭上)의 위치니 하판에 대해 말함임.

淮西; 곧 회우(淮右)니 한 지역의 명칭이 됨. ()에서 소북(蘇北)과 강회(江淮)에 회남동로(淮南東路)와 회남서로(淮南西路)를 설치했는데 회남동로는 또 명칭이 회좌(淮左)며 회남서로는 명칭이 회우(淮右)니 회우엔 산이 많고 회좌엔 물이 많음. 일반으로 지금의 강회지구(江淮地區)를 가리킴 [백도백과].

阻兵; 군대를 장시(仗恃; 倚仗. 依靠. ).

亭亭; ()은 직(). 또 붓처럼 곧은 물체를 가리킴.

熒惑; 사람으로 하여금 미혹하게 함. 현혹(炫惑).

 

潭州石霜亦作龍大善禪師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春日雞鳴 曰 學人不會 師曰 中秋犬吠 上堂 大衆出來出來 老漢有箇法要 百年後不累汝 衆曰 便請和尙說 師曰 不消一堆火

 

담주(潭州) 석상(石霜)또한 으로 짓는다대선선사(大善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춘일(春日)에 닭이 온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중추(中秋)에 개가 짖는다. 상당(上堂) 대중은 나오너라, 나오너라. 노한(老漢)이 저() 법요(法要)가 있나니 백 년 후에라도 너희에게 누()가 되지 않으리라. 대중이 가로되 바로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한 무더기의 불도 소비하지() 않는구나.

 

泉州龜洋無了禪師

本郡沈氏子 年七歲 父𢹂入白重院 視之如家 因而捨愛 至十八 剃度受具於靈巖寺 後參大寂 了達祖乘卽還 本院之北 樵采路絕 師一日筞杖披榛而行 遇六眸巨龜 斯須而失 乃庵此峯 因號龜洋 一日有虎逐鹿入庵 師以杖格虎 遂存鹿命 洎將示化 乃述偈曰 八十年來辨西東 如今不要白頭翁 非長非短非大小 還與諸人性相同 無來無去兼無住 了却本來自性空 偈畢 儼然告寂 瘞于正堂垂二十載 爲山泉淹沒 門人發塔 見全身水中而浮 閩王聞之 遣使舁入府庭供養 忽臭氣遠聞 王焚香祝之曰 可還龜洋舊址建塔 言訖異香普熏 傾城瞻禮 本道奏諡眞寂大師 塔曰靈覺 後弟子慧忠塟于塔左 今龜洋二眞身存焉 忠得法於草庵義和尙

斯須; 斯 卽也 須 須臾 片刻 斯須 卽須臾 暫時也

草庵義; 五代後梁曹洞宗僧法義 住華州草庵 曹山本寂法嗣

 

천주(泉州) 귀양(龜洋) 무료선사(無了禪師)

본군(本郡) 심씨(沈氏)의 아들이다. 나이 7세에 부친이 데리고 백중원(白重院)에 들어갔는데 이를 보매 집과 같은지라 인하여 사애(捨愛)했다. 18에 이르러 영암사(靈巖寺)에서 체도(剃度)하고 수구(受具)했다. 후에 대적(大寂; 마조의 시호)을 참()해 조승(祖乘; 祖師宗乘)을 요달(了達)하고 곧 돌아왔다. 본원(本院)의 북쪽은 초채로(樵采路; 땔나무를 채집하는 길)가 끊어졌는데 스님이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筞杖; 策杖과 같음) 덤불을 헤치고 가다가 6(; )의 거귀(巨龜)를 만났으나 사수(斯須)에 잃었다. 이에 이 봉우리에 암자를 엮었으니() 인하여 호가 귀양(龜洋)이다. 어느 날 어떤 범이 사슴을 쫓아 입암(入庵)하자 스님이 지팡이로써 범을 가로막아() 드디어 사슴의 생명을 살렸다(). 장차 시화(示化; 遷化를 보이다)에 미치자() 게를 진술해 가로되 팔십 년 래에 서동(西東)을 분변하다가/ 여금에 백두옹(白頭翁)을 요하지 않는다/ 비장비단(非長非短)이며 대소(大小)가 아니니/ 도리어 제인(諸人)과 더불어 성상(性相)이 한가지다/ 무래무거(無來無去)하고 겸해 무주(無住)/ 본래 자성이 공함을 요각(了却)했다. 게를 마치자 엄연(儼然)히 고적(告寂; 入寂을 고함)했다. 정당(正堂)에 묻은() 20()를 드리우자 산천(山泉)에 엄몰(淹沒; 침몰)했다. 문인(門人)이 탑을 열자(發塔) 전신이 수중에 부유(浮游)함을 보았다. 민왕(閩王)이 이를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마주들어 부정(府庭)에 들여 공양했다. 홀연히 취기(臭氣; 더러운 냄새)가 멀리 풍기는지라() 왕이 분향하고 축원해 가로되 가히 귀양(龜洋)의 구지(舊址)로 돌아가 건탑(建塔)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이향(異香)이 보훈(普熏)했고 경성(傾城; 全城. 滿城)이 첨례(瞻禮)했다. 본도(本道)에서 주청(奏請)하여 시()가 진적대사(眞寂大師)며 탑왈(塔曰) 영각(靈覺)이다. 후에 제자 혜충(慧忠)을 탑의 왼쪽에 안장(安塟)했고 여금에 귀양(龜洋)2진신(眞身)이 존재한다. 혜충은 초암의(草庵義) 화상에게서 득법했다.

斯須; ()는 즉()이며 수()는 수유(須臾), 편각(片刻; 잠시)이니 사수는 곧 수유, 잠시임.

草庵義; 오대(五代) 후량(後梁) 조동종승(曹洞宗僧) 법의(法義)니 화주(華州) 초암(草庵)에 거주했고 조산본적의 법사(法嗣).

 

南嶽西園蘭若曇藏禪師

受心印於大寂 後謁石頭 瑩然明徹 出住西園 禪侶日盛 師一日自燒浴次 僧問 何不使沙彌 師撫掌三下僧擧似曹山 山云 一等是拍手撫掌 就中西園奇恠 俱胝一指頭禪 葢爲承當處不諦當 僧却問曹山 西園撫掌 豈不是奴兒婢子邊事 山云 是 云 向上更有事也無 山云 有 云 如何是向上事 山叱云 這奴兒婢子 師養一犬 常夜經行時 其犬銜師衣 師卽歸方丈 又常於門側伏守 忽一夜頻吠 奮身作猛噬之勢 詰旦東厨有一大蟒 長數丈 張口呀氣 毒𦦨熾然 侍者請避之 師曰 死可逃乎 彼以毒來 我以慈受 毒無實性 激發則强 慈苟無緣 冤親一揆 言訖其蟒按首徐行 倐然不見 復一夕有羣盜至 犬亦銜衣 師語盜曰 茅舍有可意物 一任將去 終無所吝 盜感其言 皆稽首而散

瑩然; 一形容光潔明亮的樣子 二形容通達 透徹 三猶熒然 光亮微弱貌

撫掌; 拍掌 撫 拍 輕擊

就中; 就 代詞 相當于此 其

諦當; 穩當 適合 禪林寶訓音義 諦當 審實曰諦 中正曰當

奴兒; 奴婢 奴僕 兒 後綴

婢子; 受奴役的女子

呀氣; 呀 吐()

熾然; 猛烈地燃燒 火盛貌

一揆; 謂同一道理 一個模樣

 

남악(南嶽) 서원란야(西園蘭若) 담장선사(曇藏禪師)

대적(大寂)에게서 심인(心印)을 받았고 후에 석두(石頭; 希遷)를 참알(參謁)해 영연(瑩然)히 명철(明徹)했다. 출세(出世; )해 서원(西園)에 주()했고 선려(禪侶; 禪僧)가 번성(繁盛)했다. 스님이 어느 날 스스로 소욕(燒浴; 목욕물을 끓임)하던 차에 중이 묻되 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스님이 세 번(三下) 무장(撫掌; 拍掌)했다중이 曹山에게 들어 보이자 山云 一等의 이 拍手撫掌이지만 취중(就中)西園이 기괴(奇恠)하다. 俱胝一指頭禪(아래 卷四 俱胝和尙을 보라)은 대개 承當處가 체당(諦當)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이 도리어 조산에게 묻되 西園撫掌은 어찌 이 奴兒婢子 가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山云 그렇다. 이르되 向上에 다시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山云 있다. 이르되 무엇이 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조산이 꾸짖고 이르되 이 노奴兒婢子. 스님이 1()을 길렀다. 일찍이(; 과 통함) 밤에 경행(經行)할 때 그 개가 스님의 옷을 물었고 스님이 곧 방장으로 돌아갔다. 또 일찍이() 문 곁에서 복수(伏守)했다. 홀연히 어느 날 밤 자주() 짖었고 몸을 떨치며(奮身) 사납게 무는() 자세를 지었다. 힐단(詰旦; 淸晨)에 동주(東厨; 동쪽 주방)1대망(大蟒; 이무기. 큰 구렁이)이 있었는데 길이가 몇 장()이었다. 입을 벌려 기를 토했고(呀氣) 독염(毒𦦨)이 치연(熾然)했다. 시자가 그것을 피하기를 청했다. 사왈(師曰) 죽음을 가히 도피하겠는가. 그가 독을 써서() 오지만 나는 자()로써 섭수(攝受)한다. 독은 실성(實性)이 없고 격발(激發)하면 곧 강()하지만 자()는 참으로() 무연(無緣)이며 원친(冤親; 怨親과 같음)이 일규(一揆). 말을 마치자 그 이무기가 머리를 누르고(按首) 서행(徐行)하더니 숙연(倏然; 갑자기)히 보이지 않았다. 다시 어느 날 저녁에 군도(羣盜)의 이름()이 있었는데 개가 또한 옷을 물었다. 스님이 도적에게 말해 가로되 모사(茅舍)에 뜻에 맞는(可意; 適意) 물건이 있거든 가지고 감에 일임(一任)한다. 마침내 아끼는 바가 없었다. 도적이 그 말에 감동해 모두 계수(稽首)하고 흩어졌다.

瑩然; 1. 빛이 맑고 명량(明亮)한 양자(樣子)를 형용. 2. 통달(通達), 투철(透徹)을 형용. 3. 형연(熒然)과 같음. 빛이 밝고 미약한 모양.

撫掌; 박장(拍掌; 손뼉을 치다). ()는 박()이니 가볍게 침.

就中; ()는 대사(代詞)니 차()ㆍ기()에 상당함.

諦當; 온당. 적합. 선림보훈음의. 체당(諦當) 심실(審實; 진실)을 가로되 체()며 중정(中正)을 가로되 당().

奴兒; 노비(奴婢). 노복(奴僕). ()는 후철(後綴).

婢子; 노역(奴役)을 받는 여자.

呀氣; ()는 기()를 토함().

熾然; 맹렬하게 연소(燃燒). 불이 성한 모양.

一揆; 이르자면 동일한 도리, 일개의 모양.

 

袁州楊岐山甄叔禪師

上堂 羣靈一源 假名爲佛 體竭形銷而不滅 金流朴散而常存 性海無風 金波自涌 心靈絕非 萬象齊照 體斯理者 不言而徧歷沙界 不用而功益玄化 如何背覺 反合塵勞 於陰界中 妄自囚執 禪月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呈起數珠 月罔措 師曰 會麽 曰 不會 師曰 某甲參見石頭來 曰 見石頭得何意旨 師指庭前鹿曰 會麽 曰 不會 師曰 渠儂得自由 唐元和十五年歸寂 茶毗獲舍利七百粒 於東峯下建塔

羣靈; 一人民 二生物

朴散; 本謂純眞之道分離變異 後亦謂淳朴之風消散

心靈; 心識靈妙 故曰心靈 楞嚴經一 汝之心靈 一切明了

囚執; 囚禁 擒獲

數珠; 卽念珠也 卽以線貫串一定數目之珠粒 於稱名念佛 或持咒時 用以記數之隨身法具 又稱珠數 誦珠 咒珠 佛珠

參見; 卽拜見 指學人拜見禪師或禪僧之間的互相拜見

渠儂; 他 第三人稱代詞 禪錄用例多指本來面目 眞如法身 渠 代詞 表示第三人稱 相當于他 儂 代詞 表示第一人稱 相當于我 表示第二人稱 相當于你

 

원주(袁州) 양기산(陽岐山) 견숙선사(甄叔禪師)

상당(上堂) 군령()이 일원(一源)이며 가명(假名)이 불()이 되나니 ()가 다하고() ()이 사라져도() 멸하지 않고 금()이 흐르고 박산(朴散)하여도 늘 존재한다. 성해(性海)에 바람이 없으나 금파(金波)가 스스로 솟고 심령(心靈)에 그름()끊겼으나 만상을 일제히 비춘다(). 이 이치(斯理)를 체득하는 자는 말하지 않아도 사계(沙界)를 편력(徧歷)하고 쓰지 않아도 공()이 현화(玄化)를 더하거늘() 어찌하여 배각(背覺)해 도리어 진로(塵勞; 번뇌)에 합하고 음계(陰界; 五陰十八界) 중에 허망하게 스스로 수집(囚執)되는가. 선월(禪月)이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수주(數珠)를 일으켜 보였다(). 선월이 망조(罔措)했다.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모갑(某甲)은 석두(石頭)를 참견(參見)하고 왔다. 가로되 석두를 참견하여 어떤 의지(意旨)를 얻었습니까. 스님이 뜰 앞의 사슴을 가리키며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거농(渠儂)은 자유(自由)를 얻었다. 당 원화(元和) 15(820) 정월 13일 귀적(歸寂)했다. 다비(荼毗)하여 사리 7백 립()을 획득했고 동봉(東峯) 아래에 건탑(建塔 )했다.

羣靈; 1. 인민. 2. 생물(生物).

朴散; 본래는 순진한 도가 분리되고 변이함을 말함이며 후에도 또한 순박한 풍속이 소산(消散)됨을 말했음.

心靈; 심식(心識)이 영묘(靈妙)한지라 고로 가로되 심령임. 릉엄경1. 너의 심령(心靈)이 일체에 명료하다.

囚執; 수금(囚禁). 금획(擒獲).

數珠; 곧 염주임. 곧 실로 일정한 수목(數目)을 관천(貫串; 꿰다)한 주립(珠粒; 구슬 알)이니 칭명(稱名)하며 염불하거나 혹 지주(持咒)할 때 기수(記數)에 사용하는 수신(隨身)의 법구(法具). 또 명칭이 주수(珠數)ㆍ송주(誦珠)ㆍ주주(咒珠)ㆍ불주(佛珠).

參見; 곧 배견(拜見)이니 학인이 선사를 배견하거나 혹 선승지간의 호상(互相) 배견을 가리킴.

渠儂; 그임. 3인칭대사임. 선록의 용례에 많이 본래면목ㆍ진여법신을 가리킴. () 대사(代詞)니 제3인칭을 표시함. ()에 상당함. () 대사(代詞)니 제1인칭을 표시함. ()에 상당함. 2인칭을 표시함. ()에 상당함.

 

磁州馬頭峯神藏禪師

上堂 知而無知 不是無知 而說無知 便下座南泉云 恁麽依師道 始道得一半 黃檗云 不是南泉駁他 要圓前話

磁州; 今河北磁縣

 

자주(磁州) 마두봉(馬頭峯) 신장선사(神藏禪師)

상당(上堂) 알고도() 무지(無知)함은 이 무지(無知)가 아니면서 무지(無知)라고 설한다. 바로 하좌했다南泉이 이르되 이렇게 스님의 말에 의해야 비로소 一半(折半) 말함을 얻는다. 黃檗이 이르되 이 남천이 그를 반박(反駁; )함이 아니라 前話를 원만히 하려고 했다.

磁州; 지금의 하북 자현(磁縣).

 

潭州華林善覺禪師

常持錫杖 夜出林麓間 七步一振錫 一稱觀音名號 夾山問 遠聞和尙念觀音 是否 師曰 然 山曰 騎却頭時如何 師曰 出頭卽從汝騎 不出頭騎甚麽 山無對 僧參方展坐具 師曰 緩緩 曰 和尙見甚麽 師曰 可惜許 磕破鐘樓 其僧從此悟入 觀察使裴休訪之 問曰 還有侍者否 師曰 有一兩箇 祇是不可見客 裴曰 在甚麽處 師乃喚大空小空 時二虎自庵後而出 裴覩之驚悸 師語二虎曰 有客且去 二虎哮吼而去 裴問曰 師作何行業 感得如斯 師乃良久曰 會麽 曰 不會 師曰 山僧常念觀音

行業; 指身口意所造作之行爲 又作作業

 

담주(潭州) 화림선각(華林善覺) 선사

늘 석장(錫杖)을 가지고 밤에 임록(林麓; 山林) 사이로 나가 일곱 걸음마다 한 번 석장을 떨치며 한 번 관음(觀音)의 명호(名號)를 일컬었다. 협산(夾山; 善會)이 묻되 멀리서 듣건대 화상이 관음을 외운다() 하니 그렇습니까. 사왈(師曰) 그렇다(). 협산이 가로되 머리()를 타버릴(騎却) 때 어떻습니까. 사왈 출두(出頭)하면 너의 타는 대로 좇겠지만 출두하지 않으면 무엇(什麽)을 타겠는가. 협산이 대답이 없었다. 중이 참()하여 바야흐로 좌구(坐具)를 펴는데 사왈 느릿느릿(緩緩)하라. 가로되 화상은 무엇(什麽)을 보십니까. 사왈(師曰) 가석하다(可惜許), 종루(鐘樓)를 부딪쳐(; ) 깨뜨렸다. 그 중이 이로 좇아 오입(悟入)했다. 관찰사(觀察使) 배휴(裴休)가 심방(尋訪)하여 문왈(問曰) 스님은 도리어 시자가 있습니까. 사왈 한두 개 있습니다만 다만 이 객()을 봄이 불가(不可)합니다. 배휴가 가로되 어느 곳(什麽處)에 있습니까. 스님이 이에 대공(大空), 소공(小空), 하고 부르자 때에 2()가 암자 뒤로부터 나왔다. 배휴가 이를 보고() 경계(驚悸; 놀라고 두려워하다)했다. 스님이 2()에게 말해 가로되 손님이 있으니 다만() 가거라. 2호가 효후(哮吼)하고 갔다. 배휴가 문왈(問曰) 스님은 어떤 행업(行業)을 지었기에 이와 같음(如斯)을 감득(感得)합니까. 스님이 이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압니까.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산승은 늘 관음을 외웁니다.

行業; 신구의(身口意)로 조작하는 바의 행위를 가리킴. 또 작업으로 지음.

 

汀州水塘和尙

問歸宗 甚麽人 宗曰 陳州人 師曰 年多少 宗曰 二十二 師曰 闍黎未生時 老僧去來 宗曰 和尙幾時生 師竪起拂子 宗曰 這箇豈有生邪 師曰 會得卽無生 曰 未會在 師無語

汀州; 今福建省長汀

陳州; 今河南省淮陽

 

정주(汀州) 수당화상(水塘和尙)

귀종(歸宗)에게 묻되 어디(甚麽) 사람인가. 종왈(宗曰) 진주(陳州) 사람입니다. 사왈 나이가 얼마인가(多少). 종왈(宗曰) 22입니다. 사왈 사리(闍黎)가 생()하지 아니한 때 노승이 거래(去來)했다. 종왈(宗曰) 화상은 어느 때(幾時) 생하셨습니까.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 종왈(宗曰) 이것(這箇)이 어찌 생이 있겠습니까. 사왈 회득(會得; 理會. 은 조사)하면 곧 무생(無生)이다. 가로되 이회(理會)하지 못했습니다(句尾助詞). 스님이 말이 없었다.

汀州; 지금의 복건성 장정(長汀).

陳州; 지금의 하남성 회양(淮陽).

 

濛谿和尙

僧問 一念不生時如何 師良久 僧便禮拜 師曰 汝作麽生會 曰 某甲終不敢無慙愧 師曰 汝却信得及 問 本分事如何體悉 師曰 汝何不問 曰 請師答話 師曰 汝却問得好 僧大笑而出 師曰 秖有這僧靈利 有僧從外來 師便喝 僧曰 好箇來由 師曰 猶要棒在 僧珍重便出 師曰 得能自在

體悉; 體得委悉

 

몽계화상(濛谿和尙)

승문(僧問) 일념도 생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중이 바로 예배했다. 사왈 네가 어떻게(作麽生) 이회(理會)하느냐. 가로되 모갑이 마침내 감히 참괴(慙愧; 부끄러움)가 없지 않습니다. 사왈 네가 도리어 믿어 미침을 얻었다. 묻되 본분사를 어떻게(如何) 체실(體悉)합니까. 사왈 네가 왜 묻지 않느냐.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사왈 네가 도리어 문득(問得; 은 조사)해야 좋으니라(). 중이 크게 웃고 나갔다. 사왈 다만 이() 중이 있어 영리(靈利)하다. 어떤 중이 밖으로부터 왔다. 스님이 곧 할()했다. 승왈(僧曰) 호개(好箇; 는 조사)의 내유(來由)입니다. 사왈 오히려 방()을 요청하는가. 중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바로 나갔다. 사왈 능히 자재함을 얻었다.

體悉; 체득하여 위실(委悉; 상세히 앎).

 

溫州佛㠗和尙

尋常見人來 以柱杖卓地曰 前佛也恁麽 後佛也恁麽 問 正恁麽時作麽生 師畫一圓相 僧作女人拜 師便打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賊也賊也 問 如何是異類 師敲椀曰 花奴花奴喫飯來

花奴; 禪門拈頌集第三二則 拈頌說話云 花奴 猫兒別名也

 

온주(溫州) 불오화상(佛㠗和尙)

심상(尋常)에 사람이 옴을 보면 주장자로써 땅을 치며() 가로되 전불(前佛)도 이러하고(恁麽) 후불(後佛)도 이러하다. 묻되 바로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1원상을 그렸다. 중이 여인배(女人拜)를 지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도적이다, 도적이다. 묻되 무엇이 이 이류(異類)입니까. 스님이 사발()을 두드리며 가로되 화노(花奴), 화노야, 밥 먹으러 오너라.

花奴; 선문염송집 제320. 염송설화에 이르되 화노(花奴) 묘아(猫兒; 고양이)의 별명임.

 

烏臼和尙

玄紹二上座參 師乃問 二禪客發足甚麽處 玄曰 江西 師便打 玄曰 久知和尙有此機要 師曰 汝旣不會 後面箇師僧祇對看 紹擬近前 師便打曰 信知同坑無異土 參堂去 問僧 近離甚處 曰 定州 師曰 定州法道何似這裏 曰 不別 師曰 若不別 更轉彼中去 便打 僧曰 棒頭有眼 不得草草打人 師曰 今日打著一箇也 又打三下 僧便出去 師曰 屈棒元來有人喫在 曰 爭柰杓柄在和尙手裏 師曰 汝若要 山僧回與汝 僧近前奪棒 打師三下 師曰 屈棒屈棒 曰 有人喫在 師曰 草草打著箇漢 僧禮拜 師曰 却與麽去也 僧大笑而出 師曰 消得恁麽 消得恁麽

機要; 機密的要點

參堂; 入僧堂參見首座大衆竝坐禪 又禪院住持僧同意接受行脚僧的習語

棒頭; 卽棒 棒上 頭 後綴

屈棒; 寃屈的棒 屈 寃屈 寃抑 寃枉

 

오구화상(烏臼和尙)

()ㆍ소() 두 상좌가 참()했다. 스님이 이에 묻되 두 선객(禪客)은 어느 곳(甚麽處)에서 발족(發足; 출발)했는가. 현왈(玄曰) 강서입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현왈(玄曰) 화상이 이런 기요(機要)가 있다 함을 오래 압니다. 사왈 너는 이미 알지 못했다. 후면(後面)의 저() 사승(師僧)이 지대(祇對)해 보아라. ()가 앞으로 다가서려 하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이 없는 줄 확실히 알겠다(信知).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甚處)을 떠났는가. 가로되 정주(定州)입니다. 사왈 정주의 법도(法道)가 이 속과 어떠한가(何似). 가로되 다르지 않습니다. 사왈 만약 다르지 않다면 다시 그 가운데로 돌아가거라 하고는 바로 때렸다. 승왈(棒頭) 방두(棒頭)에 눈이 있으니 초초(草草; 거친 모양)하게 사람을 때림을 얻지 마십시오. 사왈 금일 한 개를 타착(打著)했다. 또 세 번 때렸다. 중이 바로 나갔다. 사왈 굴방(屈棒)은 원래 어떤 사람이 받았다(). 가로되 작병(杓柄; 구기 자루)이 화상의 손안에 있음을 어찌하리오(爭柰). 사왈 네가 만약 요한다면 산승이 너에게 돌려주겠다. 중이 앞으로 접근하여 방()을 뺏아 스님을 세 번 때렸다. 사왈 굴방(屈棒), 굴방. 가로되 어떤 사람이 받았습니다(). 사왈 초초(草草)하게 개한(箇漢; 이 자)을 타착(打著)했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도리어 이러히(與麽) 가는가. 중이 크게 웃고 나갔다. 사왈 이러함(恁麽)을 소득(消得; 소비함)하는가 이러함을 소득하는가.

機要; 기밀(機密)의 요점(要點).

參堂; 승당에 들어가 수좌와 대중을 참견(參見)하고 아울러 좌선함. 또 선원의 주지승의 동의로 행각승을 접수한다는 습관적인 말임.

棒頭; 곧 방(). 방상(棒上). ()는 후철(後綴).

屈棒; 원굴(寃屈; 원통하고 억울함)의 방(). ()은 원굴, 원억(寃抑; 원통하고 억울함), 원왕(寃枉; 원통).

古寺和尙

丹霞來參 經宿 明旦粥熟 行者祇盛一鉢與師 又盛一椀自喫 殊不顧丹霞 霞亦自盛粥喫 者曰 五更侵早起 更有夜行人 霞問師何不敎訓行者 得恁麽無禮 師曰 淨地上不要點污人家男女 霞曰 幾不問過這老漢

經宿; 經過一夜的時間

侵早; 天漸明時 侵 到 臨近

點污; 點汙 汚點 污辱 同汙 汚

 

고사화상(古寺和尙)

단하(丹霞; 天然)가 내참(來參)해 경숙(經宿)하고 명일 아침(明旦) 죽이 익자 행자가 다만 1()에 가득 담아 스님에게 주고 또 한 사발에 가득 담아 자기가 먹고는 특수히 단하를 돌아보지 않았다. 단하가 또한 스스로 죽을 가득 담아 먹었다. 행자가 가로되 5()의 침조(侵早)에 일어났다 했더니 다시 밤에 다니는 사람이 있구나. 단하가 스님에게 묻되 왜 행자를 교훈(敎訓)하지 않아 이렇게(恁麽) 무례함을 얻습니까. 사왈 정지상(淨地上)에 인가(人家)의 남녀를 점오(點污)함이 필요치 않다. 단하가 가로되 거의 이 노한(老漢)을 문과(問過; 는 조사)하지 못할 뻔했다.

經宿; 하룻밤을 경과한 시간.

侵早; 하늘이 점차 밝아질 때. ()은 도(). 임근(臨近).

點污; 점오(點汙)와 같음. 오점(汚點), 오욕(污辱). ()는 오(), ()와 같음.

 

石臼和尙

初參馬祖 祖問 甚麽處來 師曰 烏臼來 祖曰 烏臼近日有何言句 師曰 幾人於此茫然 祖曰 茫然且置 悄然一句作麽生 師乃近前三步 祖曰 我有七棒寄打烏臼 你還甘否 師曰 和尙先喫 某甲後甘

 

석구화상(石臼和尙)

마조(馬祖)를 초참(初參)하자 마조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오구(烏臼)에서 옵니다. 조왈(祖曰) 오구가 근일 무슨 언구가 있었느냐. 사왈 몇 사람이나 여기에서 망연(茫然)하던가. 조왈(祖曰) 망연은 그래 두고 초연(悄然; 寂然)1구가 무엇인가(作麽生). 스님이 이에 3() 앞으로 다가갔다. 조왈(祖曰) 나에게 7()이 있어 맡겨 오구를 때리게 하나니 네가 도리어 달게 여기느냐. 사왈 화상이 먼저 먹고() 모갑은 뒤에 달게 여기겠습니다.

 

本谿和尙

因龐居士問 丹霞打侍者 意在何所 師曰 大老翁見人長短在 士曰 爲我與師同參 方敢借問 師曰 若恁麽從頭擧來 共你商量 士曰 大老翁不可共你說人是非 師曰 念翁年老 士曰 罪過罪過

丹霞打侍者; 疑國師打侍者 會元五丹霞天然章云 國師乃打侍者三十棒遣出

 

본계화상(本谿和尙)

방거사(龐居士)가 묻되 단하가 시자를 때린(丹霞打侍者) 뜻이 어느 곳(何所)에 있는가 함으로 인해 사왈 대노옹(大老翁)이 사람의 장단(長短)을 보고 있는가. 거사가 가로되 나와 스님이 동참(同參)이기 때문에 바야흐로 감히 차문(借問; 請問)했다. 사왈 만약 이러하다면(恁麽) 처음으로 좇아(從頭) 거래(擧來)하라, 너와 함께 상량(商量)하리라. 거사가 가로되 대노옹(大老翁)이 가히 너와 함께 사람의 시비를 설하지 않겠다. 사왈 늙은이()가 노년(老年)임을 염려한다. 거사가 가로되 죄과(罪過)로다, 죄과로다.

丹霞打侍者; 국사타시자(國師打侍者)로 의심됨. 회원(會元) 5 단하천연장(丹霞天然章)에 이르되 국사가 이에 시자를 30방 때리고 쫓아내었다.

 

石林和尙

見龐居士來 乃竪起拂子曰 不落丹霞機 試道一句子 士奪却拂子 却自竪起拳 師曰 正是丹霞機 士曰 與我不落看 師曰 丹霞患瘂 龐公患聾 士曰 恰是 師無語 士曰 向道偶爾 又一日問士 某甲有箇借問 居士莫惜言語 士曰 便請擧來 師曰 元來惜言語 士曰 這箇問訊 不覺落他便宜 師乃掩耳 士曰 作家作家

恰是; 恰 適當也 却也 禪門拈頌集第三一五則 拈頌說話云 恰是者 不是好心也

 

석림화상(石林和尙)

방거사(龐居士)가 옴을 보자 이에 불자(拂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단하(丹霞)의 기()에 떨어지지 않고 시험 삼아 1구자(句子; 는 조사)를 말하라. 거사가 불자를 뺏아버리고 도리어 스스로 주먹을 세워 일으켰다. 사왈 바로 이 단하의 기(). 거사가 가로되 나를 위해() 불락(不落)해보아라. 사왈 단하는 환아(患啞; 벙어리의 疾患)며 방공(龐公)은 환롱(患聾; 귀머거리의 질환)이다. 거사가 가로되 흡시(恰是). 스님이 말이 없었다. 거사가 가로되 향해 말하노니 우이(偶爾; 偶然). 또 어느 날 거사에게 묻되 모갑에게 저() 차문(借問; 請問)이 있는데 거사는 언어를 아끼지 말아라. 거사가 가로되 바로 청하노니 거래(擧來)하라. 사왈 원래 언어를 아꼈구나. 거사가 가로되 이(這箇) 문신(問訊)은 불각에 저() 편의(便宜)에 떨어졌다. 스님이 이에 귀를 막았다. 거사가 가로되 작가로다, 작가로다.

恰是; ()은 적당(適當). (; 도리어). 선문염송집 제315. 염송설화에 이르되 흡시(恰是)란 것은 이 호심(好心)이 아님이다.

 

亮座主

蜀人也 頗講經論 因參馬祖 祖問 見說座主大講得經論 是否 師曰 不敢 祖曰 將甚麽講 師曰 將心講 祖曰 心如工伎兒 意如和伎者 爭解講得 師抗聲曰 心旣講不得 虛空莫講得麽 祖曰 却是虛空講得 師不肯便出 將下堦 祖召曰 座主 師回首 祖曰 是甚麽 師豁然大悟 便禮拜 祖曰 這鈍根阿師 禮拜作麽 師曰 某甲所講經論 將謂無人及得 今日被大師一問 平生功業 一時氷釋 禮謝而退 乃隱于洪州西山 更無消息

工伎兒; 工巧之演藝者 兒 後綴 楞伽經四 心如工伎兒 意如和伎者 五識爲伴侶 妄想觀伎衆

 

양좌주(亮座主)

촉인(蜀人)이다. 경론 강의를 마치고() 마조(馬祖)를 참()함으로 인해 마조가 묻되 말함을 듣건대(見說; 聽說) 좌주(座主)가 크게 경론을 강득(講得)한다 하니 그런가. 사왈 불감(不敢)입니다. 조왈(祖曰) 무엇을 가지고 강설하는가. 사왈 마음을 가지고 강설합니다. 조왈(祖曰) 마음은 공교(工巧; 교묘)한 기아(工伎兒)와 같고 의()는 기예((技藝; 와 통함)에 화응하는 자와 같거늘 어찌 강득(講得)할 줄 알겠는가. 스님이 항성(抗聲)으로 가로되 마음이 이미 강설(講說)함을 얻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득(講得)함이 아니겠습니까. 조왈(祖曰) 도리어 이 허공이 강득한다. 스님이 불긍(不肯)하고 바로 나가 거의() 섬돌에 내리는데 마조가 불러 가로되 좌주(座主). 스님이 머리를 돌렸다(). 조왈(祖曰) 이 뭣고(是甚麽). 스님이 활연(豁然)히 대오하고 바로 예배했다. 조왈(祖曰) () 둔근(鈍根) 아사(阿師), 예배하여 무엇하리오. 사왈 모갑이 강하는 바 경론은 이에() 미침을 얻는 사람이 없다고 일렀더니() 금일 대사의 1()을 입자 평생의 공업(功業)이 일시에 얼음이 녹 듯했다(氷釋). 이에 홍주(洪州) 서산(西山)에 숨더니 다시 소식이 없었다.

工伎兒; 공교(工巧; 교묘)한 연예자(演藝者)니 아()는 후철. 릉가경4. 마음은 공기아(工伎兒)와 같고/ 뜻은 화기자(和伎者; 技藝에 화응하는 자. 와 통함)와 같고/ 5()은 반려가 되고/ 망상은 기예를 보는 관중이다.

 

黑眼和尙

僧問 如何是不出世師 師曰 善財拄杖子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十年賣炭漢 不知秤畔星

秤畔星; 星爲衡上之目 秤畔星爲秤起點之星

 

흑안화상(黑眼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출세(不出世)의 스승입니까. 사왈 선재(善財)의 주장자(拄杖子; 는 조사).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10년 동안 숯을 파는 자가 칭반성(秤畔星)을 알지 못한다.

秤畔星; ()은 저울대 위의 눈금()이 됨. 칭반성은 저울의 기점(起點)의 눈금이 됨.

 

米嶺和尙

僧問 如何是衲衣下事 師曰 醜陋任君嫌 不挂雲霞色 師將示滅 遺偈曰 祖祖不思議 不許常住世 大衆審思惟 畢竟祇這是 言訖而寂

衲衣下事; 與衲僧行脚事 衲僧本分事等同義 卽指生死解脫之大事

 

미령화상(米嶺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납의하사(衲衣下事)입니까. 사왈 추루(醜陋)함은 그대의 싫어함에 맡기나니 운하(雲霞)의 색을 걸치지 않는다. 스님이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면서 게를 남겨 가르되 조조(祖祖)가 부사의하나니/ 세상에 상주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중은 살펴서() 사유할지니/ 필경 다만 이것이() 이것이다.

衲衣下事; 납승행각사ㆍ납승본분사 등과 같은 뜻임. 곧 생사해탈의 대사를 가리킴.

 

齊峯和尙

龐居士來 師曰 俗人頻頻入僧院 討箇甚麽 士回顧兩邊曰 誰恁麽道 師乃咄之 士曰 在這裏 師曰 莫是當陽道麽 士曰 背後底聻 師回首曰 看看 士曰 草賊大敗 士却問 此去峯頂有幾里 師曰 甚麽處去來 士曰 可謂峻硬不得問者 師曰 是多少 士曰 一二三 師曰 四五六 士曰 何不道七 師曰 纔道七 便有八 士曰 住得也 師曰 一任添取 士喝便出去 師隨後亦喝

當陽; 又作當揚 一對著陽光 顯露明白 二當面 當場 當下 此指一

麽處去來; 一唐宋一般口語 向何處去從何處來之兩重詢問 二禪家機語 禪僧之間機語問答 如果一方猶豫遲鈍或執著於詞句槪念 另一方便以此語給予譏斥或喝斷 此指二

 

제봉화상(齊峯和尙)

방거사(龐居士)가 오자 사왈 속인이 자주자주 승원(僧院)에 들어와 저() 무엇을 찾느냐(). 거사가 양변(兩邊)을 돌아보고 가로되 누가 이렇게(恁麽) 말하느냐, 누가 이렇게 말하느냐. 스님이 이에 꾸짖었다(咄之). 거사가 가로되 이 속에 있었구나. 사왈 이 당양(當陽)하여 말한 게 아닌가. 거사가 가로되 배후의 것은(背後底聻), 스님이 머리를 돌리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看看). 거사가 가로되 초적(草賊; 草野의 도적)이 대패했다, 거사가 도리어 묻되 여기에서 봉정(峯頂)과의 거리(距離; )가 몇 리가 있는가. 사왈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什麽處去來). 거사가 가로되 가히 이르나니 준경(峻硬; 峻嚴하고 强硬)하여 묻는 자를 얻지 못한다 하겠네. 사왈 이는 얼마인가(多少). 거사가 가로되 일ㆍ이ㆍ삼. 사왈 사ㆍ오ㆍ육. 거사가 가로되 왜 칠을 말하지 않느냐. 사왈 겨우 칠을 말하면 바로 팔이 있다. 거사가 가로되 머묾을 얻었다(住得). 사왈 첨취(添取)하는 대로 일임한다. 거사가 할()하고 바로 나갔다. 스님이 뒤따라 또한 할했다.

當陽; 또 당양(當揚)으로 지음. 1. 햇빛을 대착(對著)하여 환히 드러나서 명백함. 2. 당면. 당장(當場). 당하(當下).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什麽處去來; 1. 당송 일반의 구어(口語)니 어느 곳을 향해 가느냐, 어느 곳을 좇아오느냐의 양중(兩重)의 순문(詢問). 2. 선가의 기어(機語)니 선승의 사이에 기어를 문답하면서 여과(如果; 만약) 일방이 유예하고 지둔(遲鈍)하거나 혹 사구(詞句)의 개념에 집착하면 나머지 일방이 곧 이 말로 기척(譏斥) 혹 할단(喝斷)을 급여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大陽和尙

因伊禪師相見 乃問 伊禪近日有一般知識 向目前指敎人了 取目前事 作這箇爲人 還會文彩未兆時也無 曰 擬向這裏致一問 不知可否 師曰 答汝已了 莫道可否 曰 還識得目前也未 師曰 若是目前 作麽生識 曰 要且遭人檢點 師曰 誰 曰 某甲 師便喝 伊退步而立 師曰 汝秖解瞻前 不解顧後 曰 雪上更加霜 師曰 彼此無便宜

便宜; 多謂上風 優勢 碧巖錄第六十六則種電鈔 商家得利謂得便宜也

 

대양화상(大陽和尙)

.이선사(伊禪師)와 상견함으로 인해 이에 묻되 이선(伊禪). 근일(近日) 일반(一般)의 지식(知識)이 있어 목전을 향해 가리키며 사람을 가르쳐 마치고는 목전사(目前事)를 취해 이것(這箇)을 지어 위인(爲人; 사람을 위하다)하니 도리어 문채(文彩)가 나타나지() 아니한 때를 아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이 속(這裏)을 향해 1()을 이루려 하는데 가부(可否)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너에게 답해 이미 마쳤으니 가부를 말하지 말아라. 가로되 도리어 목전을 식득(識得)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이에() 이 목전을 어떻게(作麽生) 아느냐. 가로되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사람의 검점(檢點)을 만났습니다. 사왈 누구인가. 가로되 모갑입니다. 스님이 바로 할()했다. ()가 퇴보(退步)하여 섰다. 사왈 너는 다만 앞을 볼 줄만 알고 뒤를 돌아볼 줄 알지 못한다. 가로되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했구나. 사왈 피차 편의(便宜)가 없다.

便宜; 다분히 상풍(上風)ㆍ우세를 말함. 벽암록 제66칙 종전초. 상가(商家)에서 득리(得利)하면 이르기를 편의(便宜)를 얻었다.

 

幽州紅螺山和尙

有頌示門人曰 紅螺山子近邊夷 度得之流半是奚 共語問醻都不會 可憐祇解那斯祁

邊夷; 邊境地區的少數民族

那斯祁; 指以言語所不知之事 或無分曉義

 

유주(幽州) 홍라산(紅螺山) 화상

()이 있어 문인(門人)에게 보여 가로되 홍라산자(紅螺山子; 後綴)는 변이(邊夷)에 가깝나니/ 건넌 무리(度得之流)는 반이 이 해(; . 하인)/ 함께 말하며 묻고 응대()하면서 온통() 알지 못하니/ 가련하다, 다만 나사기(那斯祁)만 아는구나.

邊夷; 변경지구의 소수민족.

那斯祁; 언어로써 알지 못할 바의 일을 가리킴. 혹 분효(分曉; 분명)함이 없음의 뜻.

 

百靈和尙

一日與龐居士路次相逢 問曰 南嶽得力句 還曾擧向人也無 士曰 曾擧來 師曰 擧向甚麽人 士以手自指曰 龐公 師曰 眞是妙德空生也讚歎不及 士却問 阿師得力句 是誰得知 師戴笠子便行 士曰 善爲道路 師更不回首

路次; 路途中間

妙德; 三藏法數七 梵語文殊師利 華言妙德 謂具不可思議種種微妙功德 故名妙德

空生; 祖庭事苑三 空生 梵云須菩提 又云蘇補底迦 此有三義飜譯 一曰空生 謂初生之時 家室盡空 以表解空之相 二曰善現 謂生時種種善瑞顯現 三曰善吉 謂生已 相師占之云 此子唯善唯吉 西域記云 本東方靑龍陀佛 影化釋迦會下 今爲禪者之通稱 謂參玄解空之士也

笠子; 箬笠 子後綴

 

백령화상(百靈和尙)

어느 날 방거사(龐居士)와 노차(路次)에서 상봉했다. 물어 가로되 남악(南嶽)에서 득의(得意)한 구()를 도리어 일찍이 사람을 향해 들었는가() 또는 아닌가(). 거사가 가로되 일찍이 들어 왔다(擧來). 사왈 어떤 사람(甚麽人)을 향해 들었는가(). 거사가 손으로써 자기를 가리키며 가로되 방공(龐公). 사왈 참으로 이 묘덕(妙德)과 공생(空生)일지라도 또한 찬탄이 미치지 못하리라. 거사가 도리어 묻되 아사(阿師; 는 조사)의 득력구(得力句)는 이 누가 아는가(得知). 스님이 입자(笠子)를 이고 바로 갔다. 거사가 가로되 도로에서 잘 하시오(善爲). 스님이 다시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路次; 노도(路途; 도로)의 중간.

妙德; 삼장법수7. 범어 문수사리는 화언으로 묘덕(妙德)이다.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갖가지 미묘한 공덕을 갖춘지라 고로 이름이 묘덕이다.

空生; 조정사원3. 공생(空生) 범어로 이르되 수보리(須菩提; sub hūti)는 또 이르되 소보지가(蘇補底迦)니 이는 세 뜻으로 번역함이 있음. 1은 가로되 공생(空生)이니 이르자면 처음 태어날 때 가실(家室)이 다 비었으니 해공(解空)의 모양으로 표함. 2는 가로되 선현(善現)이니 이르자면 태어날 때 갖가지 선서(善瑞)가 환희 나타났음. 3은 가로되 선길(善吉)이니 이르자면 태어난 다음 상사(相師)가 그를 점쳐 가로되 이 자(; 남자의 通稱)는 오직 선하고 오직 길하다 했음. 서역기에 이르되 본디 동방의 청룡타불(靑龍陀佛)인데 석가의 회하(會下)에 그림자로 화했다. 지금은 선자(禪者)의 통칭이 되니 이르자면 참현(參玄; 玄妙한 도리를 참구)하여 해공(解空)하는 대사(大士).

笠子; 약립(箬笠; 얼룩조릿대의 껍질과 잎으로 만든 삿갓). ()는 후철(後綴).

 

鎭州金牛和尙

每自做飯 供養衆僧 至齋時 舁飯桶到堂前作舞 呵呵大笑曰 菩薩子 喫飯來僧問長慶 古人撫掌喚僧喫飯 意旨如何 慶云 大似因齋慶讚 僧問大光 未審慶讚箇甚麽 光作舞 僧禮拜 光云 這野狐精 東禪齊云 古人自出手作飯 舞了喚人來喫 意作麽生 還會麽 祇如長慶與大光 是明古人意 別爲他分析 今問上座 每日持鉢掌盂時 迎來送去時 爲當與古人一般 別有道理 若道別 且作麽生得別來 若一般 恰到他舞 又被喚作野狐精 有會處麽 若未會 行脚眼在甚麽處

鎭州; 今河北省正定 大明一統志云 漢初置恒山郡 唐復置恒州 開元間改恒山郡 置大都督府 唐憲宗元和中改鎭州

菩薩子; 卽菩薩 子 後綴 菩薩 此爲對僧人的敬稱

慶讚; 慶祝讚嘆

出手; 謂示機應機的擧措作略

行脚眼; 法眼 禪悟者觀照事物眞相的智慧眼

 

진주(鎭州) 금우화상(金牛和尙)

매일 스스로 밥을 지어(做飯) 중승(衆僧)에게 공양했다. 재시(齋時)에 이르면 반통(飯桶)을 메고() 당전(堂前)에 이르러 춤추며 하하(呵呵) 대소(大笑)하고 가로되 보살자(菩薩子)야 끽반(喫飯)하러 오너라중이 長慶에게 묻되 古人撫掌(拍掌)하며 승중을 불러 끽반하라 한 意旨가 무엇입니까. 장경이 이르되 로 인해 慶讚함과 매우 흡사하다. 중이 大光(居誨)에게 묻되 未審하오니 저 무엇을 경찬했습니까. 대광이 춤추었다. 중이 곧 예배했다. 대광이 이르되 이 野狐精. 東禪齊(道齊)가 이르되 古人이 스스로 出手하여 밥을 짓고 춤추어 마치고 사람을 부르며 먹어라 한 뜻이 무엇인가. 도리어 아느냐. 祇如 長慶大光은 이, 고인의 뜻을 밝혔는가, 달리 그를 위해 分析했는가. 여금에 上座에게 묻노니 매일 持鉢掌盂(발우를 잡다)할 때 迎來送去할 때 마땅히 고인과 더불어 一般이 되는가, 달리 도리가 있느냐. 만약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래 어떻게 다름을 얻어 오느냐. 만약 一般이라면 바로() 그의 作舞함에 이르러 또 野狐精이라고 불러 지음을 입었으니 理會한 곳이 있느냐. 만약 이회하지 못했다면 行脚眼이 어느 곳에 있느냐.

鎭州; 지금의 하북성 정정(正定). 대명일통지에 이르되 한나라 초에 항산군(恒山郡)을 두었고 당나라가 다시 항주(恒州)를 두었으며 개원 간(713-741)에 항산군으로 개명하고 대도독부를 두었다. 당나라 헌종 원화(806-820) 중에 진주(鎭州)로 개명했다.

菩薩子; 즉 보살이니 자는 후철(後綴). 보살은 여기에선 승인(僧人)에 대한 경칭(敬稱)이 됨.

慶讚; 경축(慶祝)하며 찬탄.

出手; 이르자면 시기응기(示機應機)의 거조(擧措; 행동거지)와 작략(作略).

行脚眼; 법안(法眼)이니 선오자(禪悟者)가 사물의 진상을 관조(觀照)하는 지혜안임.

 

洛京黑㵎和尙

僧問 如何是密室 師曰 截耳臥街 曰 如何是密室中人 師乃換手槌胷

; 又作搥 悲恨之極 自毀其身也 [希麟音義四]

 

낙경(洛京) 흑간화상(黑㵎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밀실입니까. 사왈 귀를 자르고 가로에 누웠다. 가로되 무엇이 이 밀실 중의 사람입니까. 스님이 이에 손을 바꿔가며 가슴을 쳤다(槌胷).

; 또 추흉()으로 지음. 비한(悲恨)이 지극하여 스스로 그 몸을 무너뜨림임 [희린음의4].

 

利山和尙

僧問 衆色歸空 空歸何所 師曰 舌頭不出口 曰 爲甚麽不出口 師曰 內外一如故 問 不歷僧祇獲法身 請師直指 師曰 子承父業 曰 如何領會 師曰 貶剝不施 曰 恁麽則大衆有賴去也 師曰 大衆且置 作麽生是法身 僧無對 師曰 汝問我與汝道 僧問 如何是法身 師曰 空華陽𦦨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不見如何 曰 爲甚麽如此 師曰 祇爲如此

僧祇; 阿僧祇的略語 爲印度數目之一 無量數或極大數之意 又作阿僧伽 阿僧企耶 阿僧 僧祗 華言不可算計 或無量數 無央數 於印度六十種數目單位中 阿僧祗爲第五十二數 [新華嚴經四十五阿僧祇品 俱舍論十二分別世間品 大智度論四] 智度論五十一 僧祇 秦言數 阿 秦言無

貶剝; 批評 批駁 貶 減也 損也 剝 削也

陽焰; 陽光照耀下的浮塵好象水波 比喩由妄心所生之虛幻假象 慧琳音義七 陽焰 熱時遙望地上屋上陽氣也 似焰非焰故名陽焰

 

이산화상(利山和尙)

승문(僧問) 뭇 색이 공()으로 돌아가거니와 공은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사왈 설두(舌頭; . 는 조사)가 입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입을 벗어나지 못합니까. 사왈 내외(內外)가 일여(一如)인 연고이다. 묻되 승기(僧祇)를 경과(經過; )하지 않고 법신(法身)을 획득한다 하니 스님의 직지(直指)를 청합니다. 사왈 아들이 아비의 업을 승계(承繼)한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폄박을 베풀지 말아라(貶剝不施).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신뢰(依賴)함이 있습니다. 사왈 대중은 그래 두고 무엇이 이 법신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네가 나에게 묻는다면 너에게 말해 주겠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법신입니까. 사왈 공화(空華; 空花)와 양염(陽焰)이다. 묻되 무엇이(如何)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운 여하를 보지 말아라(不見如何).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다만 이와 같기 때문이다.

僧祇; 아승기(阿僧祇; asaṃkhya)의 약어(略語). 인도 수목(數目)의 하나. 무량수(無量數) 혹 극대수(極大數)의 뜻. 또 아승가(阿僧伽)ㆍ아승기야(阿僧企耶)ㆍ아승(阿僧)ㆍ승기(僧祗)로 지음. 화언(華言)으론 불가산계(不可算計) 혹 무량수(無量數)ㆍ무앙수(無央數). 인도 60종 수목단위(數目單位) 중 아승기는 제52수가 됨 [신화엄경45아승기품. 구사론12분별세간품. 대지도론4]. 지도론51. 승기(僧祇)는 진()나라 말로 수()며 아()는 진나라 말로 무().

貶剝; 비평. 비박(批駁). ()은 감()이며 손()이며 박()은 삭().

陽焰; 햇빛이 조요(照耀; 밝게 비추다)하는 아래의 부진(浮塵)이 물결을 아름답게 형상(形象)함이니 망심(妄心)으로 말미암아 난 바의 허환(虛幻)의 가상(假相)에 비유함. 혜림음의7. 양염(陽焰) 뜨거울 때 멀리서 보이는 지상과 옥상의 양기(陽氣). () 같으나 염이 아닌지라 고로 이름이 양염이다.

 

韶州乳源和尙

上堂 西來的的意不妨難道 衆中莫有道得者 出來試道看 時有僧出禮拜 師便打曰 是甚麽時節 出頭來 便歸方丈僧擧似長慶 慶云 不妨不妨 資福代云 爲和尙不惜身命 仰山作沙彌時 念經聲高 師咄曰 這沙彌念經恰似哭 曰 慧寂秖恁麽 未審和尙如何 師乃顧視 仰曰 若恁麽 與哭何異 師便休

的的; 確實 眞實 的 實也

念經; 誦經讀經也 念 誦讀 西遊記第三回 一邊走 一邊心思口念

 

소주(韶州) 유원화상(乳源和尙)

상당(上堂) 서래(西來)의 적적(的的)한 뜻은 말하기 어려움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대중에 말함을 얻을 자가 있지 않느냐, 나와서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하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이 어떤(甚麽) 시절인데 출두(出頭)하여 오느냐.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중이 長慶에게 들어 보이자 장경이 이르되 不妨不妨. 資福代云 화상을 위해 身命을 아끼지 않습니다. 앙산(仰山)이 사미가 되었을 때 염경(念經)하는 소리가 높았다.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이 사미는 염경하는 게 곡()함과 흡사하구나. 가로되 혜적(慧寂)은 다만 이러하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에 돌아보았다. 앙산이 가로되 만약 이러하다면 곡()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스님이 바로 쉬었다.

的的; 확실. 진실. ()은 실().

念經; 송경, 독경임. ()은 송독(誦讀). 서유기 제3. 한편으론 달리고 한편으론 심사구념(心思口念)했다.

 

松山和尙

同龐居士喫茶 士擧橐子曰 人人盡有分 爲甚麽道不得 師曰 祇 爲人人盡有 所以道不得 士曰 阿兄爲甚麽却道得 師曰 不可無言也 士曰 灼然灼然 師便喫茶 士曰 阿兄喫茶 爲甚麽不揖客 師曰 誰 士曰 龐公 師曰 何須更揖 後丹霞聞乃曰 若不是松山 幾被箇老翁惑亂一上 士聞之 乃令人傳語霞曰 何不會取未擧橐子時

橐子; 托盤 亦作托子 橐與托音義同

阿兄; 阿 前綴 一兄長 哥哥 二對同輩的尊稱 此指二

一上; 一場 一番 上 助詞

 

송산화상(松山和尙)

방거사(龐居士)와 함께 끽다(喫茶)했다. 거사가 탁자(橐子)를 들고 가로되 사람마다 모두() 분한(分限; )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말함을 얻지 못하는가. 사왈 다만 사람마다 모두 있기 때문에 소이로 말함을 얻지 못한다. 거사가 가로되 아형(阿兄)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함을 얻는가. 사왈 말이 없음은 옳지 못하다. 거사가 가로되 작연(灼然)하다, 작연하다. 스님이 바로 끽다했다. 거사가 가로되 아형(阿兄)은 끽다하면서 무엇 때문에 객에게 읍()하지 않는가. 사왈 누구(). 거사가 가로되 방공(龐公). 사왈 어찌 다시 읍()함을 쓰겠는가(). 후에 단하(丹霞)가 듣고 이에 가로되 만약 이 송산(松山)이 아니었다면 거의() () 노옹(老翁)이 일상(一上) 혹란(惑亂)함을 입었을 것이다. 거사가 이를 듣고 이에 사람을 시켜 단하에게 전어(傳語)하여 가로되 왜 탁자를 들어 않은 때를 회취(會取; 는 조사)하지 않는가.

橐子; 탁반(托盤; 쟁반)이니 또한 탁자(托子)로 지음. ()과 탁()은 음의(音義)가 같음.

阿兄; ()는 전철(前綴; 接頭辭). 1. 형장(兄長; .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붕우). 가가(哥哥; . 오빠). 2. 동배(同輩)에 대한 존칭.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一上; 1(). 1(). ()은 조사.

 

則川和尙

蜀人也 龐居士相看次 師曰 還記得見石頭時道理否 士曰 猶得阿師重擧在 師曰 情知久參事慢 士曰 阿師老耄 不啻龐公 師曰 二彼同時 又爭幾許 士曰 龐公鮮徤 且勝阿師 師曰 不是勝我 祇欠汝箇幞頭 士拈下幞頭曰 恰與師相似 師大笑而已 師摘茶次 士曰 法界不容身 師還見我否 師曰 不是老師洎答公話 士曰 有問有答 葢是尋常 師乃摘茶不聽 士曰 莫怪適來容易借問 師亦不顧 士喝曰 這無禮儀老漢 待我一一擧向明眼人 師乃拋却茶籃 便歸方丈

久參; 謂長久參習

老耄; 年老衰倦 年老昏亂

二彼; 一猶言他們二位 他們兩箇 二彼此 此指二

鮮徤; 猶鮮健 强健有精神

幞頭; 古代一種頭巾 古人以皂絹三尺裹髮 有四帶 二帶系腦後垂之 二帶反系頭上 令曲折附項 故稱四脚 或折上巾 至北周武帝時 裁出脚後幞髮始名幞頭 初用軟帛垂脚 隋始以桐木爲骨子 唐方以羅代繒 帝服則脚上曲 人臣下垂 [百度詞典]

明眼人; 比喩有見識的人

 

칙천화상(則川和尙)

촉인(蜀人)이다. 방거사(龐居士)와 상간(相看)하던 차에 사왈 도리어 석두(石頭; 希遷)를 뵌 때의 도리를 기득(記得)하는가. 거사가 가로되 오히려 아사(阿師)가 중거(重擧)함을 얻었다. 사왈 정지(情知; 思料)하노니 구참(久參)한 일이 거칠다(). 거사가 가로되 아사(阿師)가 노모(老耄)하니 방공(龐公) ()만이 아니다. 사왈 이피(二彼)가 동시(同時)거늘 또 어찌 기허(幾許; 얼마. 는 조사)를 다투겠는가. 거사가 가로되 방공(龐公)은 선건(鮮徤)하여 또() 아사(阿師) 보다 낫다(). 사왈 이는 나 보다 나은 게 아니라 다만 너의 저() 복두(幞頭)가 모자란다(). 거사가 복두(幞頭)를 집어 내리고 가로되 바로() 스님과 상사(相似)하다. 스님이 대소(大笑)할 따름이었다. 스님이 차를 따던(摘茶) 차에 거사가 가로되 법계(法界)가 몸을 용납(容納)하지 않는데 스님이 도리어 나를 보는가. 사왈 이 노사(老師; 自稱의 말)가 아니었다면 공()의 말에 답함에 이르렀을() 것이다. 거사가 가로되 유문유답(有問有答)은 대개(大葢) 이 심상(尋常)이다. 스님이 이에 적다(摘茶)하며 듣지 않았다. 거사가 가로되 아까 용이(容易)하게 차문(借問)했음을 괴이히 여기지 말아라. 스님이 또한 돌아보지 않았다. 거사가 할()하고 가로되 이() 예의(禮儀)가 없는 노한(老漢), 내가 낱낱이(一一) 명안인(明眼人)을 향해 듦()을 기다려야 하리라. 스님이 이에 다람(茶籃; 차 바구니)을 던져버리고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久參; 이르자면 장구하게 참습(參習).

老耄; 연로하여 쇠권(衰倦; 쇠하고 게으름). 연로하여 혼란함.

二彼; 1. 타문(他們; 그들) 2(), 타문(他們) 양개(兩箇)라고 말함과 같음. 2. 피차(彼此).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鮮徤; 선건(鮮健)과 같음. 강건(强健)하면서 정신(精神)이 있음.

幞頭; 고대 1종의 두건. 고인이 3척의 검은 비단으로 머리카락을 쌌는데 4(; )가 있었으니 2()는 두뇌 뒤에 매어서 드리우고 2대는 두상에 반대로 매었음. 굽게 꺾어지게 해 목에 붙인지라 고로 명칭이 사각(四脚) 혹 절상건(折上巾). 북주(北周) 무제 시에 이르러 각후(脚後)의 복발(幞髮)을 잘라 내었으며 비로소 복두(幞頭)로 이름했음. 처음은 부드러운 비단을 써서 각()을 내렸음. ()에서 비로소 오동나무로 골자(骨子)를 만들었으며 당()에서 비로소 나(; . 비단)로 증(; 비단)을 대체했음. 제복(帝服)은 곧 각상(脚上)이 굽었고 인신(人臣)은 아래로 처졌음 [백도사전].

明眼人; 견식(見識)이 있는 사람에 비유함.

 

忻州打地和尙

自江西領旨 常晦其名 凡學者致問 唯以棒打地示之 時謂之打地和尙 一日被僧藏却棒然後致問 師但張其口 僧問門人曰 秖如和尙每日有人問便打地意旨如何 門人卽於竈內取柴一片 擲在釜中

忻州; 今山西省忻州

 

흔주(忻州) 타지화상(打地和尙)

강서(江西; 마조를 가리킴)에서 영지(領旨; 意旨領悟)함으로부터 늘 그 이름을 숨겼다(). 무릇 학자가 치문(致問; 질문하다)하면 오직 방(; 주장자)으로써 땅을 때려 이를 보인지라 당시에 이르기를 타지화상(打地和尙)이라 했다. 어느 날 중이 방()을 숨겨버린 연후에 질문함을 입자 스님이 단지 그 입을 벌렸다. 중이 문인(門人)에게 물어 가로되 지여(秖如) 화상이 매일 어떤 사람이 물으면 바로 타지(打地)한 의지(意旨)가 무엇인가. 문인이 곧 부뚜막() 안에서 땔나무 일편(一片)을 취해 솥 속에 던져 두었다().

忻州; 지금의 산서성 흔주(忻州).

 

潭州秀溪和尙

谷山問 聲色純眞 如何是道 師曰 亂道作麽 山却從東過西立 師曰 若不恁麽 卽禍事也 山又從西過東立 師乃下禪牀 方行兩步 被谷山捉住 曰 聲色純眞事作麽生 師便打一掌 山曰 三十年後 要箇人下茶也無在 師曰 要谷山這漢作甚麽 山呵呵大笑

 

담주(潭州) 수계화상(秀溪和尙)

곡산(谷山)이 묻되 성색(聲色)이 순진(純眞)하나니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어지럽게 말해 무엇하리오. 곡산이 도리어 동쪽으로 좇아 서쪽에 이르러() 섰다. 사왈 만약 이러하지(恁麽) 않는다면 곧 화사(禍事). 곡산이 또 서쪽으로 좇아 동쪽에 이르러 섰다. 스님이 이에 선상에서 내려와 바야흐로 두 걸음 가다가() 곡산이 착주(捉住; 잡아 머물게 하다)함을 입었는데 가로되 성색이 순진한 일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바로 1() 때렸다. 곡산이 가로되 30년 후 저() 하다(下茶; 차를 따르다)할 사람을 요()하더라도 없을 것입니다. 사왈 곡산 저한(這漢)을 요하여 무엇하랴. 곡산이 하하대소(呵呵大笑)했다.

 

江西椑樹和尙

臥次 道吾近前 牽被覆之 師曰 作麽 吾曰 葢覆 師曰 臥底是 坐底是 吾曰 不在這兩處 師曰 爭奈葢覆何 吾曰 莫亂道 師向火次 吾問 作麽 師曰 和合 吾曰 恁麽卽當頭脫去也 師曰 隔濶來多少時邪 吾便拂袖而去 吾一日從外歸 師問 甚麽處去來 吾曰 親近來 師曰 用簸這兩片皮作麽 吾曰 借 師曰 他有從汝借 無作麽生 吾曰 秖爲有 所以借

當頭; 當面 當下 頭 後綴

隔闊; 阻隔闊別 卽別離

 

강서(江西) 비수화상(椑樹和尙)

누운 차에 도오(道吾)가 근전(近前; 앞으로 접근)하여 이불()을 당겨() 덮었다(覆之). 사왈 무엇하느냐(作麽). 오왈(吾曰) 개부(葢覆; 덮다)합니다. 사왈 누운 것(臥底)이 옳으냐(), 앉은 것이 옳으냐. 오왈(吾曰) 이 양처(兩處)에 있지 않습니다. 사왈 개부(葢覆)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오왈(吾曰) 어지럽게 말하지 마시오. 스님이 향화(向火)하던 차에 도오가 묻되 무엇합니까(作麽). 사왈 화합(和合)한다. 오왈(吾曰) 이러하다면(恁麽) 곧 당두(當頭)에 벗기겠습니다(脫去). 사왈 격활(隔闊)하여 온 지 다소의 시일인가. 도오가 바로 소매를 떨치고 갔다(拂袖而去). 도오가 어느 날 밖으로 좇아 돌아왔다. 사문(師問)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오왈(吾曰) 친근(親近)하러 왔습니다. 사왈 이 양편피(兩片皮; 입술)를 까부름()을 써서 무엇 하리오(作什麽). 오왈(吾曰) 빌립니다(). 사왈 그에게 있다면() 너의 빌리는 대로 좇겠지만 없으면 어찌하겠는가(作麽生). 오왈(吾曰) 다만 있기 때문에 소이로 빌립니다.

當頭; 당면. 당하(當下). 두는 후철.

隔闊; 조격(阻隔; 막혀서 서로 통하지 못함)하여 활별(闊別; 오랫동안 헤어져 만나지 못함)이니 곧 별리(別離).

 

京兆草堂和尙

罷參大寂 至海昌和尙處 昌問 甚麽處來 師曰 道場來 昌曰 這裏是甚麽處 師曰 賊不打貧人家 僧問 未有一法時 此身在甚麽處 師作一圓相 於中書身字

罷參; 罷休參禪之意 參學者開悟 大事了畢之際 不再修道參禪

 

경조(京兆) 초당화상(草堂和尙)

대적(大寂; 마조의 시호)에게서 파참(罷參)함으로부터 해창화상(海昌和尙)의 처소에 이르렀다. 해창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옵니까. 사왈 도량(道場)에서 옵니다. 해창이 가로되 이 속(這裏)은 이 어느 곳(甚麽處)입니까. 사왈 도적이 빈인(貧人)의 집은 털지 않습니다. 중이 묻되 1법도 있지 않을 때 이 몸()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스님이 이에 1원상을 짓고 가운데에 신자(身字)를 썼다.

罷參; 참선을 파휴(罷休)함의 뜻이니 참학자가 개오하여 대사를 요필(了畢)한 즈음에 다시 수도하여 참선하지 않음임.

 

洞安和尙

有僧辭 師曰 甚麽處去 曰 本無所去 師曰 善爲闍黎 曰 不敢 師曰 到諸方 分明擧似 僧侍立次 師問 今日是幾 曰 不知 師曰 我却記得 曰 今日是幾 師曰 今日昏晦

 

동안화상(洞安和尙)

어떤 중이 고별했다. 사왈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본래 가는 곳이 없습니다. 사왈 잘 하라(善爲), 사리(闍黎). 가로되 불감(不敢)입니다. 사왈 제방에 이르거든 분명히 들어 보여라(擧似). 중이 시립(侍立)하던 차에 스님이 묻되 금일은 이 얼마()인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내가 도리어 기득(記得)한다. 가로되 금일은 이 얼마입니까. 사왈 금일은 혼회(昏晦; 어두운 그믐).

 

京兆興平和尙

洞山來禮拜 師曰 莫禮老朽 山曰 禮非老朽 師曰 非老朽者不受禮 山曰 他亦不止 洞山却問 如何是古佛心 師曰 卽汝心是 山曰 雖然如此 猶是某甲疑處 師曰 若恁麽 卽問取木人去 山曰 某甲有一句子 不借諸聖口 師曰 汝試道看 山曰 不是某甲 山辭 師曰 甚麽處去 山曰 㳂流無定止 師曰 法身㳂流 報身㳂流 山曰 總不作此解 師乃拊掌保福云 洞山自是一家 乃別云 覔得幾人

老朽; 老人自謙之詞

一句子; 子爲助詞 一句 原意指一言 又作向上底那一句 乃表詮佛法究竟之語 亦卽指示無言無說之究竟之語

 

경조(京兆) 흥평화상(興平和尙)

동산(洞山; 良价)이 와서 예배했다. 사왈 노후(老朽)에게 예배하지 말아라. 산왈(山曰) 노후(老朽)가 아님에 예배합니다. 사왈 노후가 아닌 자는 예배를 받지 않는다. 산왈(山曰) 그도 또한 멈추지() 않습니다. 동산이 도리어 묻되 무엇이 이 고불의 마음입니까. 사왈 곧 너의 마음이 이것이다. 산왈(山曰)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오히려 이는 모갑이 의심하는 곳입니다. 사왈 만약 이러하다면(恁麽) 곧 목인(木人)에게 문취(問取)하러 가거라. 산왈(山曰) 모갑이 일구자(一句子)가 있어 제성(諸聖)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사왈 네가 시험 삼아 말해보아라. 산왈(山曰) 이 모갑이 아닙니다. 동산이 고별했다. 사왈 어느 곳(什麽處)으로 가느냐. 산왈(山曰) 흐름을 따라(㳂流) 정지(定止)가 없습니다. 사왈 법신(法身)이 연류(㳂流)하는가, 보신(報身)이 연류하는가. 산왈(山曰) 내내() 이런 이해(理解)를 짓지 않습니다. 스님이 이에 부장(拊掌; 拍掌)했다保福이 이르되 洞山은 스스로 이 一家. 이에 別云하되 몇 사람을 覓得하겠는가.

老朽; 노인의 자겸(自謙)의 말.

一句子; ()는 조사가 됨. 1구의 원의(原意)1언을 가리킴. 또 향상지나일구(向上底那一句)로 지음. 곧 불법의 구경(究竟)을 해석함을 표하는 말임. 또한 곧 무언무설의 구경을 지시하는 말임.

 

逍遙和尙

鹿西和尙問 念念攀緣 心心永寂 師曰 昨晩也有人恁麽道 西曰 道箇甚麽 師曰 不知 西曰 請和尙說 師以拂子驀口打 西拂袖便出 師召衆曰 頂門上著眼

驀口; 驀 當 正對著

 

소요화상(逍遙和尙)

녹서(鹿西) 화상이 묻되 염념(念念)이 반연(攀緣)하지만 심심(心心)이 영적(永寂; 영원히 고요함)합니다. 사왈 어제 저녁에도 어떤 사람이 이렇게(恁麽) 말했다. 녹서가 가로되 저() 무엇이라고(甚麽) 말했습니까. 사왈 알지 못한다. 녹서가 가로되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스님이 불자로써 입에다가(驀口) 때렸다. 녹서가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스님이 대중을 불러 가로되 정문상(頂門上)에 착안(著眼)하라.

驀口; ()은 당(). 정대착(正對著).

 

福谿和尙

僧問 古鏡無瑕時如何 師良久 僧曰 師意如何 師曰 山僧耳背 僧再問 師曰 猶較些子 問 如何是自己 師曰 你問甚麽 曰 豈無方便 師曰 你適來問甚麽 曰 得恁麽顚倒 師曰 今日合喫山僧手裏棒 問 緣散歸空 空歸何所 師乃召僧 僧應諾 師曰 空在何處 曰 却請和尙道 師曰 波斯喫胡椒

耳背; 背 聽覺不靈 靈 聰明 曉

波斯; 一國名 又稱波嘶 波剌私 波剌斯 波囉悉 今之伊朗 二指波斯人 此指二

 

복계화상(福谿和尙)

승문(僧問) 고경(古鏡)에 티()가 없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승왈(僧曰)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如何). 사왈 산승은 귀가 먹었다(耳背). 중이 다시 묻자 사왈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묻되 무엇이 이 자기입니까. 사왈 네가 무엇(什麽)을 물었느냐. 가로되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네가 아까 무엇을 물었느냐. 가로되 이렇게(恁麽) 전도(顚倒)를 얻습니까. 사왈 금일 합당히 산승의 손안의 방()을 먹어야 한다. 묻되 인연이 흩어져 공()으로 돌아가거니와 공은 어느 곳(何所)으로 돌아갑니까. 스님이 이에 중을 불렀다. 중이 응낙했다. 사왈 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도리어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더, 사왈 파사(波斯)가 호초(胡椒; 후추)를 먹었다.

耳背; ()는 청각이 불령(不靈)이니 령()은 총명, ().

波斯; 1. 나라 이름(Persia). 또 명칭이 파시(波嘶)ㆍ파랄사(波剌私)ㆍ파랄사(波剌斯)ㆍ파라실(波囉悉)이니 지금의 이랑(伊朗; 이란). 2. 파사인(波斯人)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洪州水潦和尙

初參馬祖 問曰 如何是西來的的意 祖曰 禮拜著 師纔禮拜 祖乃當胸蹋倒 師大悟 起來拊掌呵呵大笑曰 也大奇 也大奇 百千三昧無量妙義 祇向一毫頭上 識得根源去 禮謝而退 住後 每告衆曰 自從一喫馬祖蹋 直至如今笑不休 有僧作一圓相 以手撮向師身上 師乃三撥 亦作一圓相 却指其僧 僧便禮拜 師打曰 這虛頭漢 問 如何是沙門行 師曰 動則影現 覺則冰生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乃拊掌呵呵大笑 凡接機大約如此

頭漢; 虛妄不實者

 

홍주(洪州) 수료(水潦; 水老로 지음) 화상

처음 마조(馬祖)를 참()해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서래(西來)의 적적(的的; 명백. 확실)한 뜻입니까. 마조가 가로되 예배하거라(禮拜著). 스님이 겨우 예배하는데 마조가 곧() 가슴에다(當胸) 밟아 넘어뜨렸다(蹋倒). 스님이 대오했다. 일어나 부장(拊掌; 拍掌)하며 하하대소(呵呵大笑)하고 가로되 또한 대기(大奇)하다, 또한 대기하다.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의(無量妙義)를 다만 일호두상(一毫頭上; 後綴)을 향해 근원(根源)을 식득(識得)했다. 예배하고 물러났다. 주후(住後)에 매번 고중(告衆)해 가로되 마조의 밟음을 한 번 받음()으로부터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웃음을 쉬지 못한다. 어떤 중이 1원상(圓相)을 지어 손으로써 스님의 신상(身上)을 향해 모았다(). 스님이 이에 세 번 제거하고() 또한 1원상을 짓고 도리어 그 중을 가리켰다. 중이 바로 예배했다. 스님이 때리고 가로되 이() 허두한(虛頭漢). 묻되 무엇이 이 사문행(沙門行)입니까. 사왈(師云) ()하면 곧 그림자가 나타나고 각()하면 곧 얼음이 생겨난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스님이 이에 부장(拊掌; 拍掌)하며 하하대소(呵呵大笑)했다. 무릇 접기(接機)함이 대약(大約) 이와 같았다.

虛頭漢; 허망하여 실답지 못한 자.

 

浮盃和尙

行婆來禮拜 師與坐喫茶 婆乃問 盡力道不得底句分付阿誰 師曰 浮盃無剩語 婆曰 未到浮盃 不妨疑著 師曰 別有長處 不妨拈出 婆斂手哭曰 蒼天中更添冤苦 師無語 婆曰 語不知偏正 理不識倒邪 爲人卽禍生 後有僧擧似南泉 泉曰 苦哉浮盃 被這老婆摧折一上 婆後聞笑曰 王老師猶少機關在 澄一禪客逢見行婆 便問 怎生是南泉猶少機關在 婆乃哭曰 可悲可痛 一罔措 婆曰 會麽 一合掌而立 婆曰 伎死禪和 如麻似粟 一擧似趙州 州曰 我若見這臭老婆 問敎口瘂 一曰 未審和尙怎生問他 州便打 一曰 爲甚麽却打某甲 州曰 似這伎死漢不打 更待幾時 連打數棒 婆聞却曰 趙州合喫婆手裏棒 後僧擧似趙州 州哭曰 可悲可痛 婆聞此語 合掌歎曰 趙州眼光 爍破四天下 州令僧問 如何是趙州眼 婆乃竪立拳頭 僧回擧似趙州 州作偈曰 當機覿面提 覿面當機疾 報汝凌行婆 哭聲何得失 婆以偈答曰 哭聲師已曉 已曉復誰知 當時摩竭國 幾喪目前機

行婆; 指信佛修行之老婦

冤苦; 冤屈痛苦

機關; 指師家爲令學人得悟 而順應其根機所設之機法 禪門之師家 常以古則公案 一喝一棒 接化學人 稱爲機關

怎生; 怎麽生 又作作麽生 卽何 生爲接尾詞 相當於如何了 禪宗多用於公案之感歎或疑問之詞

伎死禪和; 指沒伎倆而執著於邪解之禪僧 禪和; 禪和子禪和者之略稱 卽參禪者

如麻似粟; 比喩極多

四天下; 四洲 古代印度人之世界觀 謂於須彌山四方 七金山與大鐵圍山間之鹹海中 有四個大洲 又稱四大部洲 四大洲 四天下 須彌四洲

 

부배화상(浮盃和尙)

능행파(行婆)가 와서 예배했다. 스님이 더불어 앉아 끽다(喫茶)했다. 행파(行婆)가 이에 묻되 힘을 다해도(盡力) 말함을 얻지 못하는 구()를 도리어 누구(阿誰)에게 분부(分付)합니까. 사왈 부배(浮杯)는 잉어(剩語)가 없습니다. 파왈(婆曰) 부배에 이르지 않았어도 의심함(疑著)에 방애(妨礙)되지 않습니다. 사왈 달리 장처(長處; 나은 곳)가 있으면 염출(拈出)하여도 방애되지 않습니다. 행파가 염수(斂手; 拱手)하고 곡()하며 가로되 창천(蒼天) 중에 다시 원고(冤苦)를 더합니다. 스님이 말이 없었다. 파왈(婆曰) 말은 편정(偏正)을 알지 못하고 이치는 도사(倒邪)를 알지 못하면서 위인(爲人; 사람을 위하다)하면 곧 화()가 발생합니다. 후에 어떤 중이 남천에게 들어 보였다. 남천이 가로되 고재(苦哉)로다, 부배(浮盃), 이 노파에게 한 번(一上; 은 조사) 최절(摧折)을 입었구나. 행파가 후에 듣고 웃으며 이르되 왕노사(王老師)도 오히려 기관(機關)이 적다. 징일선객(澄一禪客)이 행파를 봉견(逢見)하자 바로 묻되 어찌하여(怎生) 이 남천이 오히려 기관이 적습니까. 행파가 이에 곡()하며 가로되 가비가통(可悲可痛)이로다. 징일이 망조(罔措)했다. 파왈(婆曰) 압니까. 징일이 합장하고 섰다. 파왈(婆曰) 기사선화(伎死禪和)가 삼과 같고 좁쌀 같다(如麻似粟). 징일이 조주(趙州)에게 들어 보였다. 주왈(州曰) 내가 만약 이() 취노파(臭老婆)를 본다면 질문하여 입을 벙어리()가 되게 하겠다. 징일이 가로되 미심하오니 화상이 어떻게(怎生) 그에게 물으시겠습니까. 조주가 바로 때렸다. 징일이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모갑을 때립니까. 주왈(州曰) 이런() 기사한(死漢)과 같은 것을 때리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幾時)를 기다리겠는가. 몇 방() 연타(連打)했다. 행파가 듣고 도리어 가로되 조주도 할미의 손안의 방()을 합당히 먹어야 한다. 후에 중이 조주에게 들어 보이자 조주가 곡()하며 가로되 가비가통(可悲可痛)이로다. 행파가 이 말을 듣자 합장하며 감탄해 가로되 조주의 안광(眼光)이 사천하(四天下)를 삭파(爍破; 照破)하는구나. 조주가 중을 시켜 묻게 하되 무엇이 이 이 조주의 눈입니까. 행파가 이에 주먹(拳頭)을 세워 일으켰다. 중이 돌아가 조주에게 들어 보였다. 조주가 게를 지어 가로되 당기(當機)하여 적면(覿面; 當面. 面對)에 제기(提起)하고/ 적면하여 당기(當機)가 빠르다()/ 너 능행파에게 알리나니()/ 곡성(哭聲)에 어찌 득실(得失)이겠는가. 행파가 게로써 답해 가로되 곡성(哭聲)을 스님이 이미 깨쳤으나()/ 이미 깨쳤음()을 다시 누가 아는가/ 당시에 마갈국(摩竭國; 摩竭陀)에서/ 거의 목전기(目前機)를 상실(喪失)할 뻔했다.

行婆; 불법을 믿고 수행하는 노부(老婦)를 가리킴.

冤苦; 원굴(冤屈; 원통하고 억울함)로 통고(痛苦).

機關; 사가(師家)가 학인으로 하여금 득오하게 하려고 그 근기에 순응하여 베푸는 바의 기법을 가리킴. 선문의 사가가 늘 고칙의 공안이나 11(一喝一棒)으로 학인을 접화(接化)함을 일컬어 기관이라 함.

怎生; 즘마생(怎麽生)과 같음. 또 작마생(作麽生)으로 지음. 곧 하()니 생()은 접미사가 됨. 여하료(如何了; 어떠한가)에 상당함. 선종에서 다분히 공안의 감탄, 혹 의문지사(疑問之詞)에 사용함.

伎死禪和; 기량(伎倆; 技倆과 같음)이 없으면서 사해(邪解)에 집착하는 선승을 가리킴. 禪和; 선화자(禪和子)ㆍ선화자(禪和者)의 약칭. 곧 참선자.

如麻似粟; 극다(極多)에 비유함

四天下; 4().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 이르기를 수미산의 사방에 7금산과 대철위산의 함해(鹹海) 중에 4개의 대주(大洲)가 있다. 또 명칭이 4대부주ㆍ4대주ㆍ4천하ㆍ수미4.

 

潭州龍山和尙亦云隱山

問僧 甚麽處來 曰 老宿處來 師曰 老宿有何言句 曰 說則千句萬句 不說則一字也無 師曰 恁麽則蠅子放卵 僧禮拜 師便打 洞山與密師伯經由 見溪流菜葉 洞曰 深山無人 因何有菜隨流 莫有道人居否 乃共議撥草溪行 五七里間 忽見師羸形異貌 放下行李問訊 師曰 此山無路 闍黎從何處來 洞曰 無路且置 和尙從何而入 師曰 我不從雲水來 洞曰 和尙往此山多少時邪 師曰 春秋不涉 洞曰 和尙先住 此山先住 師曰 不知 洞曰 爲甚麽不知 師曰 我不從人天來 洞曰 和尙得何道理 便住此山 師曰 我見兩箇泥牛鬬入海 直至于今絕消息 洞山始具威儀禮拜 便問 如何是主中賓 師曰 靑山覆白雲 曰 如何是賓中主 師曰 長年不出戶 曰 賓主相去幾何 師曰 長江水上波 曰 賓主相見 有何言說 師曰 淸風拂白月 洞山辭退 師乃述偈曰 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把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因茲燒庵 入深山不見 後人號爲隱山和尙

蠅子; 卽蒼蠅 子 後綴

行李; 一行走 二行脚時所帶的複包 此指二

浮生; 謂人生在世 如天上浮雲 水上浮萍 難以常在 故曰浮生

 

담주(潭州) 용산화상(龍山和尙)亦云隱山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노숙(老宿)의 처소에서 옵니다. 사왈 노숙이 무슨 언구가 있었느냐. 가로되 설하면 곧 천구만구(千句萬句)지만 설하지 않으면 곧 1자도 없습니다. 사왈 이러하다면(恁麽) 곧 승자(蠅子)가 알을 방출한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동산(洞山; 良价)과 밀사백(密師伯)이 경유(經由)했는데 개울()에 채엽(菜葉)이 흐름()을 보았다. 동왈(洞曰) 심산(深山)에 사람이 없을텐데 무엇으로 인해 채엽(菜葉; )이 흐름을 따름이 있는가. 도인이 있어 거처함이 아닐까. 이에 함께 의논하여 풀을 헤치며 개울 따라 갔더니(溪行) 5, 7리 사이에서 홀연히 파리한 형상에 이상한 모양(羸形異貌)의 스님을 보았다. 행리(行李; 보따리)를 내려놓고 문신(問訊)했다. 사왈 이 산은 길이 없거늘 사리(闍黎)는 어느 곳을 좇아왔는가. 동왈(洞曰) 길이 없음은 그래 두고 화상은 어디로 좇아 들어오셨습니까. 사왈 나는 운수(雲水)를 좇아오지 않았다. 동왈(洞曰) 화상이 이 산에 거주한 지 얼마의 시일입니까. 사왈 춘추(春秋)에 건너지 않는다. 동왈(洞曰) 화상이 먼저 거주했습니까. 이 산이 먼저 거주했습니까, 사왈 알지 못한다. 동왈(洞曰)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합니까. 사왈 나는 인천(人天; 인과 천)을 좇아오지 않았다. 동왈(洞曰) 화상은 어떤 도리를 얻어 바로 이 산에 거주합니까. 사왈 내가 보았는데 두 개의 이우(泥牛)가 싸우며 입해(入海)하더니 바로 우금(于今; 至今)에 이르기까지 소식이 끊겼다. 동산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예배하고 바로 묻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청산이 백운에 덮였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장년(長年: 오랜 해)에 문호를 나서지 않는다. 가로되 빈주가 서로 떨어지기가 얼마입니까. 사왈 장강수(長江水) 위의 파도다. 가로되 빈주가 상견하면 어떤 언설이 있습니까. 사왈 청풍이 백월(白月)을 떨친다. 동산이 사퇴(辭退)하자 스님이 이에 술게(述偈)하여 가로되 3()의 모옥(茅屋)에 종래로 거주하나니/ 한 줄기 신광(神光)에 만경(萬境)이 한가하다/ 시비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분변하지 말지니/ 부생(浮生)의 천착(穿鑿)엔 상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소암(燒庵)하고 심산(深山)에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후인이 호()하여 은산화상(隱山和尙)이라 했다.

蠅子; 곧 쉬파리(蒼蠅). 자는 후철.

行李; 1.행주(行走; 다니다). 2. 행각할 때 휴대하는 바의 복포(複包; 보따리).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浮生; 이르자면 인생이 세상에 있음이 천상의 부운, 수상의 부평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기 어려운지라 고로 가로되 부생임.

 

襄州居士龐蘊者

衡州衡陽縣人也 字道玄 世本儒業 少悟塵勞 志求眞諦 唐貞元初謁石頭 乃問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頭以手掩其口 豁然有省 後與丹霞爲友 一日石頭問曰 子見老僧以來 日用事作麽生 士曰 若問日用事 卽無開口處 乃呈偈曰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處沒張乖 朱紫誰爲號 丘山絕點埃 神通幷妙用 運水及搬柴 頭然之曰 子以緇邪素邪 士曰 願從所慕 遂不剃染 後參馬祖 問曰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祖曰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士於言下頓領玄旨 乃留駐 參承二載 有偈曰 有男不婚 有女不嫁 大家團欒頭 共說無生話 自爾機辯迅捷 諸方嚮之 因辭藥山 山命十禪客相送 至門首士乃指空中雪曰 好雪片片不落別處 有全禪客曰 落在甚處 士遂與一掌 全曰 也不得草草 士曰 恁麽稱禪客 閻羅老子未放你在 全曰 居士作麽生 士又掌曰 眼見如盲 口說如瘂

衡州; 今湖南省衡陽縣 北有五嶽之一衡山 隣接湘水瀟水 有大慧宗杲所住鐵岡寺 開福寺 龐蘊居士所住龐山寺等

眞諦; 指眞實不妄之義理 如謂世間法爲俗諦 出世間法爲眞諦

偶諧; 偶 相對 投合 諧 和諧 配偶 偶諧卽相對而和諧之義

張乖; 同乖張 違背之義

剃染; 剃髮染衣的略稱 剃去頭髮 換著黑色僧衣 指出家爲僧

參承; 參見服侍

團欒頭; 同團圝頭 團圓

閻羅老子; 卽閻羅王 子 後綴 閻羅王; <> Yama-rāja ()又作閻魔 焰摩 琰摩等 意譯作雙 雙世 遮止 縛 平等等 閻羅王 又稱閻魔王 琰魔王 閻魔羅王等 略稱閻羅 焰羅 閻王 爲鬼世界之始祖 冥界之總司 地獄之主神 於上擧諸譯語中 雙 謂兄妹共爲地獄之王 兄治男事 妹治女事 故又稱雙王 雙世 謂竝受苦與樂之意 遮止 謂遮止罪人更造惡業之意 平等 謂業鏡平等 自彰其罪之意 ()冥界十王之第五 本地爲地藏菩薩 於冥途中掌管亡人五七日時之冥王 據傳閻王掌管之冥界第五殿 是大海底東北部沃燋石下之叫喚大地獄 及十六誅心小地獄 亡魂在抵達第五殿前 須先至望鄕臺上 觀望子孫在陽間之情形 後才至此殿受審判 此殿閻王鐵面無私 判刑正直嚴厲 加上十六誅心小地獄專誅世人之橫心 邪心 毒心 怨心 恨心 淫心 妬心 私心等偏邪不正之心 [正法念處經十六 阿毘達磨順正理論三十一 華嚴經探玄記六 玄應音義十三 二十一 預修十王生七經 地藏十王經]

 

양주(襄州) 거사 방온(龐蘊)이란 자는

형주(衡州) 형양현(衡陽縣) 사람이며 자()가 도현(道玄)이다. 가세(家世; )가 본래 유업(儒業; 유교로 업을 삼음)이었다. 어릴 적에 진로(塵勞)를 깨달아 의지(意志)가 진제(眞諦)를 구했다. 당 정원(貞元; 785-805) 초 석두(石頭; 希遷이니 靑原行思法嗣)를 알현하여 이에 묻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석두가 손으로써 그의 입을 가렸다. 활연(豁然)히 살핌이 있었다. 후에 단하(丹霞)와 벗이 되었다. 어느 날 석두가 문왈(問曰) 자네가 노승을 본 이래로 일용사(日用事)가 어떠한가(作麽生). 사왈(士曰) 만약 일용사를 묻는다면 곧 입을 열 곳이 없습니다. 이에 게를 드려() 가로되 일용의 일이 다른 게 없나니/ 오직 내가 스스로 우해(偶諧)한다/ 낱낱마다(頭頭) 취사(取捨)가 아니며/ 곳곳마다 장괴(張乖)가 없다/ 주자(朱紫)를 누가 호했나/ 구산(丘山)이 점애(點埃)도 끊겼다/ 신통과 묘용이여/ 물 옮김과 및 땔감 운반(運搬; )함이다. 석두가 그렇다 하고 가로되 자네는 치(; )가 되겠는가(), (; )인가. 사왈(士曰) 원컨대 소모(所慕; 思慕하는 바)를 좇겠습니다. 드디어 체염(剃染)하지 않았다. 후에 마조를 참()해 물어 가로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가로되 네가 한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거사가 언하에 현지(玄旨; 현묘한 意旨)를 문득 영오(領悟)했다. 이에 유주(留駐)하며 두 해 동안 참승(參承)했다. 게가 있어 가로되 아들()이 있으나 혼인하지 않고/ 딸이 있으나 시집가지 않았다/ 대가(大家; 大衆)가 단란두(團欒頭)하여/ 함께 무생화(無生話)를 설한다. 이로부터 기변(機辯)이 신첩(迅捷)했고 제방에서 그를 향(; )했다. 약산(藥山)에게 고별함으로 인해 약산이 십선객(十禪客)에게 명해 상송(相送; 전송)하게 했다. 문수(門首; 문 앞)에 이르러 거사가 곧 공중의 눈을 가리키며 가로되 호설(好雪)이 조각조각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전선객(全禪客)이 있어 가로되 어느 곳에 떨어져 있습니까. 거사가 드디어 1()을 주었다. ()이 가로되 또한 초초(草草; 거친 모양)함을 얻지 말아야 합니다. 사왈(士曰) 이러하고도 선객으로 일컫는다면 염라노자(閻羅老子)가 그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전이 가로되 거사는 어떠합니까. 거사가 또 장(; 손바닥으로 치다)하고 가로되 눈으로 보아도 소경과 같고 입으로 설해도 벙어리 같다.

衡州; 지금의 호남성 형양현. 북에는 5악의 하나인 형산이 있고 상수(湘水)와 소수(瀟水)에 인접했음. 대혜종고가 거주한 바의 철강사(鐵岡寺)ㆍ개복사(開福寺), 방온거사가 거주한 바의 방산사(龐山寺) 등이 있음.

眞諦;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는 의리를 가리킴. 세간법을 일러 속제라 하고 출세간법을 진제라 함과 같음.

偶諧; ()는 상대, 투합이며 해()는 화해(和諧), 배우(配偶)니 우해는 곧 상대하여 화해(和諧)함의 뜻.

張乖; 괴장(乖張)과 같음. 위배의 뜻.

剃染; 체발염의(剃髮染衣)의 약칭. 두발을 깎아 제거하고 흑색 승의로 환착(換著)함이니 출가하여 승인이 됨을 가리킴.

參承; 참견(參見)하여 복시(服侍).

團欒頭; 단란두(團圝頭)과 같음. 단원(團圓; 1. 둥근 것. 2. 가정이 원만함).

閻羅老子; 곧 염라왕(閻羅王)이니 자()는 후철(後綴). 閻羅王; <> Yama-rāja. (1). 또 염마(閻魔; Yama)ㆍ염마(焰摩)ㆍ염마(琰摩) 등으로 지음. 의역하면 쌍()ㆍ쌍세(雙世)ㆍ차지(遮止)ㆍ박()ㆍ평등 등으로 지음. 염라왕(閻羅王)은 또 명칭이 염마왕(閻魔王)ㆍ염마왕(琰魔王)ㆍ염마라왕(閻魔羅王) 등이며 약칭이 염라(閻羅)ㆍ염라(焰羅)ㆍ염왕(閻王). 귀세계(鬼世界)의 시조며 명계(冥界)의 총사(總司)며 지옥의 주신(主神)이 됨. 위에서 든 여러 역어(譯語) 중 쌍()은 이르자면 형과 누이가 함께 지옥의 왕이 되어 형은 남사(男事)를 다스리고 누이는 여사(女事)를 다스리는지라 고로 또 명칭이 쌍왕(雙王). 쌍세(雙世)는 이르자면 고와 낙을 병수(竝受)함의 뜻이며 차지(遮止)는 이르자면 죄인이 다시 악업을 지음을 차지(遮止)함의 뜻이며 평등은 이르자면 업경(業鏡)이 평등하여 그 죄를 스스로 드러냄의 뜻임. (2). 명계(冥界)10왕의 제5니 본래의 지위는 지장보살이 되며 명도(冥途) 중에서 망인(亡人)의 오칠일(五七日) 때를 장관하는 명왕(冥王). ()에 의거하면 염왕(閻王)이 장관하는 명계의 제5(殿)은 이 대해의 바닥 동북부의 옥초석(沃燋石) 아래의 규환대지옥(叫喚大地獄) 16주심소지옥(十六誅心小地獄). 망혼(亡魂)이 제5(殿)의 앞에 저달(抵達)하면 꼭 먼저 망향대(望鄕臺) 위에 이르러 자손이 양간(陽間; 人世間)에 있는 정형(情形)을 관망하고 후에 비로소() 이 전(殿)에 이르러 심판을 받음. 이 전(殿)의 염왕은 철면이라 무사(無私)하여 판형(判刑)이 정직하고 엄려(嚴厲)하며 위에 더하여 16주심소지옥은 세인의 횡심(橫心)ㆍ사심(邪心)ㆍ독심(毒心)ㆍ원심(怨心)ㆍ한심(恨心)ㆍ음심(淫心)ㆍ투심(妬心)ㆍ사심(私心) 등 편사(偏邪)하고 부정(不正)한 마음을 전주(專誅)[정법념처경16. 아비달마순정리론31. 화엄경탐현기6. 현응음의13, 21. 예수십왕생칠경. 지장십왕경].

甞遊講肆 隨喜金剛經 至無我無人處致問曰 座主 旣無我無人 是誰講誰聽 主無對 士曰 某甲雖是俗人 粗知信向 主曰 祇如居士意作麽生 士以偈答曰 無我復無人 作麽有疎親 勸君休歷座 不似直求眞 金剛般若性 外絕一纖塵 我聞幷信受 總是假名陳 主聞偈 欣然仰歎 居士所至之處 老宿多往復問醻 皆隨機應響 非格量軌轍之可拘也 元和中 北遊襄漢 隨處而居 有女名靈照 常鬻竹漉籬以供朝夕 士有偈曰 心如境亦如 無實亦無虛 有亦不管 無亦不拘 不是賢聖 了事凡夫 易復易 卽此五蘊有眞智 十方世界一乘同 無相法身豈有二 若捨煩惱入菩提 不知何方有佛地 護生須是殺 殺盡始安居 會得箇中意 鐵船水上浮 士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作這箇語話 士曰 你作麽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士因賣漉籬 下橋喫撲 靈照見 亦去爺邊倒 士曰 你作甚麽 照曰 見爺倒地 某甲相扶 士將入滅 謂靈照曰 視日早晩及午以報 照遽報 日已中矣 而有蝕也 士出戶觀次 靈照卽登父座 合掌坐亡 士笑曰 我女鋒捷矣 於是更延七日 州牧于公頔問疾次 士謂之曰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好住世間皆如影響 言訖 枕于公膝而化 遺命焚棄 江湖緇白傷悼 謂禪門龐居士 卽毗耶淨名矣 有詩偈三百餘篇傳於世

隨喜; 謂見他人行善 隨之心生歡喜

格量; 規格 數量

襄漢; 襄水和漢水流域 共同流經區域的統稱 該區在湖北省襄陽市

漉籬; 一種竹編器具

老老大大; 對年老者的譏刺語 隱含恁麽年老 猶不明悟之義

 

일찍이 강사(講肆)에 유행(遊行)하면서 금강경을 수희(隨喜)했다. 무아무인처(無我無人處)에 이르자 치문(致問; 질문하다)하여 가로되 좌주(座主), 이미 무아무인(無我無人)이라 했거늘 이 누가 강설(講說)하며 누가 듣습니까. 좌주가 대답이 없었다. 거사가 가로되 모갑이 비록 이 속인이지만 대강(大綱; ) 신향(信向)을 압니다. 좌주가 가로되 지여(祇如) 거사의 뜻은 어떻습니까(作麽生). 거사가 게로써 답해 가로되 무아(無我)며 다시 무인(無人)이거늘/ 어찌(作麽) 소친(疎親)이 있겠는가/ 그대에게 강좌(講坐)를 휴력(休歷; 經歷함을 쉬다)하기를 권하노니/ 바로() 구진(求眞)함만 같지 못하다/ 금강반야의 자성은/ 밖으로 1섬진(纖塵)도 끊겼나니/ 아문(我聞)과 아울러 신수(信受)/ 모두 이 가명(假名)을 진설(陳設)했다. 좌주가 게를 듣자 흔연(欣然)히 앙탄(仰歎)했다. 거사가 이르는 바의 처소에는 노숙(老宿)이 많이 왕복(往復)하며 질문하고 응수(; 應酬와 같음)했는데 모두 수기(隨機)하여 응향(應響; 응해 울리다)했고 격량(格量)과 궤철(軌轍)로 가히 잡지() 못했다. 원화(元和; 806-820) 중 북쪽 양한(襄漢)을 유행(遊行)하면서 수처(隨處)하여 거주했다. 딸이 있었으니 이름이 영조(靈照)였고 늘 죽녹리(漉籬)를 팔아() 조석(朝夕)에 이바지했다. 거사가 게가 있어 가로되 마음이 여()며 경계도 또한 여니/ ()도 없고 또한 허()도 없다/ ()에 또한 상관(相管)하지 않고/ ()에 또한 구애(拘礙)되지 않나니/ 이 성현은 아니지만/ 요사(了事; 일을 마치다)한 범부다/ 쉽고도 또한 쉽나니/ 곧 이 5()에 진지(眞智)가 있다/ 시방세계(十方世界)가 일승(一乘)과 한가지거늘/ 무상(無相)의 법신이 어찌 둘이 있겠는가/ 만약 번뇌를 버리고 보리(菩提)에 든다면/ 어느 방면에 불지(佛地)가 있는 줄 알지 못하겠네. 호생(護生)하려면 모름지기 이 죽여야 하나니/ 죽여 없애야 비로소 안거(安居)/ 개중(箇中)의 뜻을 회득(會得)한다면/ 철선(鐵船)이 수상(水上)에 뜨리라(). 거사가 좌차(坐次)에 영조(靈照)에게 물어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밝디밝은 백초두(百草頭; 는 조사)에 밝디밝은 조사의(祖師意).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조왈(照曰) 노로대대(老老大大)가 이러한(這箇) 어화(語話)를 짓습니다. 사왈(士曰) 너는 어떠한가. 조왈(照曰) 밝디밝은 백초두(百草頭)에 밝디밝은 조사의(祖師意)입니다. 거사가 이에 웃었다. 거사가 녹리(漉籬)를 팔고는 다리에서 내려오다 끽박(喫撲; 땅에 넘어짐)함으로 인해 영조가 보고서 또한 아버지 가로 가서 넘어졌다. 사왈(士曰) 네가 무엇을 하느냐. 조왈(照曰) 아버지가 땅에 넘어짐을 본지라 모갑이 상부(相扶)합니다. 거사가 장차 입멸(入滅)하려 하면서 영조에게 일러 가로되 해의 조만(早晩)을 보다가 오(; 正午)에 이르면 보고하거라. 영조가 급히 알렸다. 해가 이미 중(; )이며 일식(日蝕)이 있습니다. 거사가 문호(門戶)를 나가 보던 차에 영조가 곧 부좌(父座)에 올라 합장한 채 좌망(坐亡)했다. 거사가 웃으며 가로되 내 딸의 기봉(機鋒)이 빠르구나(). 이에 다시 7일을 연장(延長)했다. 주목(州牧) 우공(于公)이 문질(問疾)하던 차에 거사가 일러 가로되 단지 모든 소유(所有)가 공하기를 원할지언정 삼가 모든 소무(所無)를 실답다 하지 말아라. 세간에 잘() 머묾이 모두 영향(影響)과 같다. 말을 마치자 공()의 무릎을 베개로 하여 화(; 遷化)했다. 유명(遺命)으로 분기(焚棄)했고 강호의 치백(緇白)이 상도(傷悼)했다. 이르되 선문(禪門)의 방거사는 곧 비야(毗耶)의 정명(淨名)이다. 시게(詩偈) 3백여 편()이 있어 세상에 전한다.

隨喜; 이르자면 타인의 행선(行善; 선을 행함)을 보고 따라서 마음에 환희를 냄.

格量; 규격(規格). 수량(數量).

襄漢; 양수(襄水)와 한수(漢水) 유역(流域)이니 공동으로 유경(流經)하는 구역의 통칭(統稱). 이 구역은 호북성 양양시(襄陽市)에 있음.

漉籬; 일종의 대로 엮은 기구.

老老大大; 연로한 자에 대한 기자어(譏刺語: 헐뜯고 비꼬아서 하는 말). 이렇게 연로하면서 오히려 밝게 깨치지 못했는가 하는 뜻을 은함(隱含)하였음.

 

五燈會元卷第三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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